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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해설 및 분석 / 괴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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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괴테  

1. 괴테 이전의 《파우스트》전설

괴테가 중세 독일의 전설인 《파우스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자기의 희곡작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일찍이 소년 시절 때부터 품었다고 한다.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Urfaust)》가 작성된 것은 그의 슈트라스부르크 유학시절이니 1774년경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간행된 것은 그후에도 여러 차례 가필한 《단편 파우스트》로서 1790년이다. 그후 다시 실러의 권고 등으로 새 장면이 첨가되어 제 1부가 나온 것은 실러의 사후인 1808년이었다. 그 다음에 오랜 동안의 공백 기간이 경과한 후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에서 전사하자 그에 자극을 받아 제 2부의 집필이 시작되었다(바이런의 운명은 본작 중 제 2부 3막에서 현시되고 있다. 주석 참조).

그리하여 전편을 완결한 것은 1831년 8월이었으니 그가 죽기 불과 반년 전이었다. 따라서 도합 60년이나 걸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질풍노도기로부터 고전기를 거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생애가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인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15,6세기경에 실재하였다고 전하는 연금술사 요한 파우스트 박사이며, 거기에 마술사의 이야기가 혼합되어서 16,7세기에는 널리 독일 각지에 〈파우스트 전설〉이 전파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처음으로 책이 되어 나온 것은 1587년, 괴테의 출생지인 프랑크부르트에서 출판업자 요한 슈피스에 의한 것이었으며 한편 영국의 극작가 말로우에 의한 비극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화》는 체제를 갖춘 최초의 파우스트극이라고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영국의 순회극단에 의해서 다시 독일로 역수입되어 그것이 민중극 또는 인형극의 형태로 상연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파우스트 전설에는 여러 가지의 변형이 생겨 일정치 않지만, 대체로 주인공이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반항적 인물이었고 젊은 괴테가 좋아하였던 독일적 영웅의 기질을 지닌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학문과 능력을 획득하고서도 끝내 만족치 못하고 우주의 궁극적 신비를 규명하고자, 또는 온갖 부귀영화의 극치까지 누리고자 하는 것이 그 기본 성격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악마에게 몸을 팔고 그 대가로 악마의 도움을 받아 그 욕구를 달성하려 한다. 한편 악마는 파우스트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24년 후에는 그의 영혼을 차지하겠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악마를 일단 자기의 심복 종으로 삼고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향락과 욕정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외적인 욕망을 만족시켜도 마음의 안정은 얻지 못한다. 마침내 그가 회개하고 신에게 용서를 빌려고 할 때, 악마는 미녀의 대표적 존재인 고대 그리스의 헬레네를 마술로 재현시킨다.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녀를 포옹하려 들자 그 순간 헬레네는 복수의 여신으로 변해서 파우스트의 영혼을 앗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24년의 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대략 이와 같은 줄거리인데 괴테에게는 특히 그러한 파우스트의 과잉 의욕과 충동, 그리고 그 고뇌와 운명이 독일적인 인간상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괴테가 그 인간상을 인류의 보편적 상징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형상으로서 끌어올리기까지는 80평생의 체험과 줄기찬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있어서는 주인공이 멸망하지 않고 구제를 받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이 점은 괴테 자신이 인생관이나 종교관의 근본문제이기도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가 종래의 권선징악적인 전설 이야기의 경지를 벗어나서 위대한 인류의 문학으로 변모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한 것이다. 하기야 괴테 이전에도 계몽주의자 레싱이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제시키려 하였고 그의 진리 탐구의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는 종래의 관점에 대해서 최초로 반기를 들었지만, 레싱의 파우스트는 결국 완결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입장은 단순히 지식의 면에서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괴테에 있어서처럼 그것이 뚜렷한 체험으로써 전인적인 근본문제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2. 《파우스트》 제 1부 해설

권두에는 <헌시>와 <무대에서의 전희>가 있다. 본문의 내용과는 별로 관계가 없으며 전자는 작자가 일찍이 초고를 썼을 당시의 친구들을 추억하고 그후 그것을 다시 집필하게 된 동기와 감상이 들어 있다. <전희>는 작가와 극장장 및 비판자의 3인의 입장을 구별하여 표시함으로써 괴테 자신의 문학 및 연극에 대한 기본 관점의 일단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다음에 <천상의 서곡>이 나오는데 여기서 작품 전체의 윤곽이 암시된다. 즉 메피스토는 천상의 신과 내기를 하여 기어코 파우스트를 유혹할 자신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신은 그가 옳은 길을 찾아가리라는 걸 알지만 그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서 메피스토의 유혹을 허락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은 방황하는 것이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하지만 신은 동시에 "선량한 인간은 설혹 컴컴한 충동에 동요될지라도 역시 올바른 길을 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메피스토는 관능적 향락과 욕망의 충족으로 인간을 끝내 유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만은 신과의 내기에서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본곡에 들어가서 제1부의 막이 열리면 <밤>의 장면이다. 파우스트는 50여 세의 노교수로서 중세기풍의 고딕식 연구실에 혼자 앉아 있다. 그는 우주일체의 가장 깊은 진리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철학, 법학, 의학 등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목적하던 우주의 본질 규명에는 접근하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아무리 발돋움하여도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그는 일찍이 배워두었던 영술로써 초인의 경지에 들려 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실패한 그는 구차스러운 육신에 얽매였기 때문에 드높은 자신의 이상을 발휘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인간이라는 탈을 벗어나서 영들의 세계로 하늘 높이 비상하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사방의 벽에 가득 찬 책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고요한 밤중에 홀로 독배를 마시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부활절의 새벽 종소리와 더불어 예수의 재생을 노래하는 어린이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그 희망에 넘친 맑은 목소리는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다시 그 아득한 옛날의 생의 환희로 일깨워 주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었던 독배를 떨어뜨린다. 그가 필생의 학문과 지식, 그리고 정신력으로도 얻지 못했던 다른 하나의 생의 의의를 그 소박한 노랫소리―인간성의 근원에 담긴 자연성으로 말미암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의 긴 독백과 맨앞의 파우스트의 독백은 그 이상과 내용에서뿐 아니라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매우 높이 평가되는 명문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다음날 부활절에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가보았으며, 민중들 사이에 끼어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기도 하면서 한낱 인간으로서 이 고민과 향락을 체험하였고 그것으로써 지금까지 도달치 못하였던 진리를 발견해 보려고 한다.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 그는 강아지 한 마리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변신이었다. 다시 서재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새로운 의욕으로 신약성서를 독어로 번역한다. 우선 "태초에 말씀이 계셨나니라"의 말씀(logos)을 독어로 das Wort(말)라고 했다가 주저한다. 그 단어를 그렇게 높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다시 der Sinn(뜻)이라고 번역해 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너무 소극적이어서 또 다시 die Kraft(힘) 라고 바꾸어 봤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방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die Tat(업)로 하여 "태초에 업이 있었느니라"로 낙착되었다―우주의 근원에 존재하면서 만물을 지배하는 본질을 <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괴테 자신의 이념이기도 하다. 이념 이외에도 이 장면은 언어와 개념의 문제, 번역과 표현력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역사 등 여러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한편 파우스트를 따라왔던 강아지는 학생의 모습으로 변모하여 차츰 악마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어서 그 유명한 계약이 체결된다.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하고 외친다면, 그때에는 자네가 나를 결박해도 좋네!
    나는 기꺼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겠네!        
    그때에는 조종을 울려도 좋아!

만약 파우스트가 향략이나 유혹에 빠져서 꾸준히 향상 노력하는 자신의 기상을 잃는다면――즉, 어느 한 순간에 향략의 극치를 맛보고 거기에 만족해 버린다면, 어떠한 벌이고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그 영혼을 탈취하려는 메피스토와 오히려 그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넓은 세계를 마음껏 체험하고 자기가 학문으로써 도달치 못한 인간과 우주의 근본 진리를 획득해 보려는 파우스트는 함께 인생수업의 길을 떠나게 된다.

마술의 힘으로 젊어진 파우스트는 맨 먼저 순진한 처녀 그레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의 예상과는 달리 그것은 너무나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이었다. 젊은 남녀는 마술의 힘도 곁들여 끝내 넘지 못한 선을 넘었고 그 결과로 뜻하지 않게도 처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 하는 과오를 범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서 그후 멀리 환락경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석하고 있었으나 그레첸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아차리고 분연히 메피스토펠레스를 힐책하여 되돌아간다. 파우스트는 도취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가 뿌린 죄의 씨를 회피함이 없이 달게 받으려는 각오가 있었던 것이다. 그레첸은 그 동안 사생아를 낳고 어쩔 줄 몰라 엉겁결에 아기를 죽이고 자수하였으며, 감옥에 갇혀서도 무서운 자책감에 시달려 광증까지 나타나게 된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구출코자 하였으나 이미 그녀는 속세를 단념하였고 오직 성녀 마리아의 은총에 매달려 영혼의 구원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몽매에도 그리던 애인 파우스트가 감방에 나타나서 함께 도망치자고 하였을 때도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당신이 무섭다"하고 뒷걸음질친다. 그 처참하고 애처로운 광경을 보았을 때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녀는 심판을 받았소(Sie ist gerichtet.)"라고 말했지만 그때 천상으로부터 "구제받았으니라(Sie ist gerettet.)"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죄과도 진실한 인간성과 양심으로써 정화될 수 있다는 괴테 특유의 기독교 정신의 일단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해서 비극 제 1부는 막이 내리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그레첸이 사랑하는 파우스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도덕적으로는 이미 갈라졌어도 인간적인 애정과 유대는 그래도 연결되고 있으며, 바로 이 영원한 인간적인 사랑이 다음 제 2부의 마지막에서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파우스트》제 2부의 해설

대자연을 소생시키는 위력은 심신이 모두 처참하게 되어가지고 혼수상태에 있던 파우스트를 다시금 새로운 의욕으로 깨어나게 해준다. 파우스트는 이번에는 대세계(Makro Kosmos)를 체험하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애초에 파우스트를 꾀어냈을 때 우선 소세계를 경험한 다음 대세계로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제 1부는 소세계였으며, 즉 소시민의 세계 또는 인간의 개인적인 체험과 그 문제가 취급된 것이다. 반면 제 2부에서는 시야를 넓혀서 사회적이며 국가적인 차원, 즉 인간의 공동생활이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때 마침 재정난을 당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지폐를 마구 찍어내게 하여 위기를 극복하였으나 후일에는 인플레의 부작용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괴테 자신이 바이마르 공국에 입궁하여 국정에 참여하였을 당시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하여간에 파우스트는 재정난을 구제한 공으로 중용되었고 황제는 파우스트를 현자로 믿고 고금을 통함 미남미녀인 파리스 및 헬레네를 불러내 보라는 분부를 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마술을 믿고 그것을 승낙하였으나 독일적 내지는 북구 계열의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기독교적이고 낭만적인 세계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남구적인 그리스의 고전미에 대해선 어두웠고 따라서 그들을 불러내올 재주가 없었다. 다만 메피스토펠레스한테서 열쇠를 얻어가지고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나라로 건너가 거기서 헬레네의 형태만을 빌어오게 되었다. 그곳에는 먼 과거로부터 미래에 걸친 일체의 형태와 도식이 보존되어 있으며 모든 형태가 그 어머니들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착상은 매우 괴테적이며 그의 이탈리아 여행의 상징성을 생각할 수 있고 한편 그의 《식물변형론》에서 피력된 독특한 생물발생의 이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머니들의 나라에서 파우스트는 삼발이 향로를 이끌어왔으며 그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파리스와 헬레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은 본체가 없고 그저 형태뿐인 유상이었는데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파우스트가 그것을 껴안으려 하였다. 그 순간 그 열쇠가 그녀에게 접촉되면서 폭발하여 파우스트는 기절하고 만다. 여기서도 우리는 미의 형태와 본질, 예술의 창조성과 시대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암시되어 있음을 본다.

제 2막에서는 기절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 운반되어 와서 예전(제1부) 파우스트의 연구실에 뉘어져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전의 파우스트의 조수였던 바그너는 그동안 명교수가 되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생명을 만들어낼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한때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대신하여 야유를 해줬던 대학신입생은 이제 신진학파의 학자로서 피히테, 쇼펜하워류의 주관철학을 대담하게 내세운다. 그 극단적인 절대주의에 대해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또 다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맹점을 찔러 야유한다. 체험을 존중하는 시인 괴테의 그 당시의 신념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바그너의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인 시도는 마침내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탄생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단계에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술의 힘이 필요하였다(여기서 자연과학의 한계가 암시됨).

하여간 호문쿨루스는 총명한 지능을 소유한 인조인간이 되었고 그의 투시력을 가지고 지금 옆방에서 잠자고 있는 파우스트의 꿈까지 해명될 수 있었다. 그때 파우스트는 미녀 헬레네의 출생의 아름다운 광경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를 소생시키려면 고전미의 나라인 그리스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잠을 깨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마술의 비행 망토에 태워서 그리스로 운반하였는데 총명한 인조인간인 호문쿨루스가 유리의 레토르트 속에서 빛을 발하여 공로를 안내하여 갔다.

그리하여 그리스 최고의 전설의 발상지인 텟살리아에 일행이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깨어나 파우스트가 헬레네를 찾아 헤맸으나 발견치 못하는 반면, 옛 고전의 세계가 화려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여기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제1부에 있었던 <발푸르기스>의 낭만성과 대응하여, 그리스 올림푸스의 신들보다 더욱 고대의 근원적인 요괴들까지 동원된다. 여기서 특히 괴테의 해박한 지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으로 발휘되고 전대미문의 스펙터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사들에 어두운 우리독자들을 위하여 가능한 하나하나 주석을 달고 설명을 시도하였지만, 역자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통감한다.(Trunz 교수 Hamburger Ausgabe의 주석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괴테가 멀리 아득한 옛날을 묘사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이상과 관점을 잃지 않는 점이다. 특히 지구와 지각의 생성에 관한 논쟁은 오늘날 석유시대의 우리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수성론을 대표하는 탈레스와 화성론을 대표하는 아낙사고라스의 논쟁이 나온다. 괴테는 당시 베르너 교수의 수성론을 대체로 지지한 듯하나 양설이 모두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괴테는 만물 속에 내재하는 생명의 본질 같은 것을 생각하였으며, 그것이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고 촉진시키는 것인데 여기선 그 작용을 에로스의 신이 담당하는 것으로 하였다.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의 운명도 이 에로스와 연관이 된다. 그는 파우스트 일행을 이곳까지 안내해 왔지만 자기 자신은 영적인 존재일 뿐 아직 육체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육체를 지닌 인간이 되어 보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빛을 발하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 갈라테아를 만나고, 그녀의 만물을 길러내는 <물>에서 발생된 근원적 미에 혹하여, 그녀의 조개옥좌에 부딪쳐 레토르트가 깨어지면서 옥쇄하고 만다. 여기서 불과 물의 요소가 다시 화합하고, 4대 원소가 에로스 신의 통치하에 고차적인 질서를 지향하는 광경의 묘사는 아름다우면서도 뜻깊은 표현이라 하겠다. 대체로 이곳의 묘사는 파우스트 극의 진행하고는 직접 연결이 안되지만, 괴테의 세계관과 특히 그리스 미의 발생과정이 엿보인다. 즉 처음의 단계에서는 추악하고 비루한 요괴들이 많이 나타나지만, 차츰 세련되고 고귀한 모습, 아름다운 여신 등으로 장면이 순화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다음 제3막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의 궁전이다. 때마침 트로야 성이 함락되었고 왕비 헬레네는 다시 그리스로 귀환한다. 그런데 메피스토펠레스가 변장을 하고 기다렸다고 헬레네를 계략으로 꾀어서 게르만 침입군의 수령에게로 인도하여 결혼하게 된다. 그 수령이 바로 파우스트인 것이다. 여기 중세 게르만의 영웅과 고대 그리스의 미녀와의 결합은 북구의 생명력과 고전미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포리온은 영국의 천재시인 바이런을 암시하고 있다. 조숙한 천재 오이포리온은 경쾌하고 개성적이며 투쟁적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언덕에서 대담한 비약을 하여 거꾸로 떨어졌으며 그 아름다운 육체는 증발하고 만다. 헬레네는 그 뒤를 따라 저승으로 내려가 버렸고 이제 파우스트에게는 그녀의 껍질, 즉 겉옷만이 쥐어져 있게 되는데, 이것은 독일문학이 고전미의 형식만을 향유하게 된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고전주의적 세계의 방문으로 이상이 풍부해져서 돌아온 파우스트는 미적 향락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써 얻으려 한다(제4막). 그는 광대한 해안지대의 황량한 소택지를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로 만들어보려고 의욕에 불탄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황제의 강적을 물리치고 그 보상으로서 그 토지를 입수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로운 민중과 함께 자유로운 토지에서의 삶>을 꿈꾸고 전력을 다해 그 실현을 위하여 진력함으로써 정신적 만족을 얻는다.

파우스트는 연령이 백 세에 도달하며(제5막) 메피스토펠레스가 불러낸 요녀가 뿜는 입김으로 눈까지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의를 발견한다. 그는 그 뜻깊은 순간을 심안으로 꿰뚫어보면서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도다"하고 외친다. 그러니까 메피스토펠레스는 애초의 약속대로 그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서 향락이나 물질적 욕심의 만족을 얻는 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내기의 외형적 조건에는 졌을 망정, 그 내용에 있어서는 최후의 시련에까지 훌륭히 이겨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구원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의 궁극적 구원은 자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천상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테의 종교관이었다. 천사들이 뿌리는 장미꽃은 악마들을 쫓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보호했지만 그것이 천국에까지 오르기에는 하늘로부터의 은혜가 있어야 되었다. 그때 속죄하는 여인, 즉 옛 애인이었던 그레첸이 나타나 성모 마리아께 그의 영혼을 위한 은총을 빌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천국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이것이 이 대작의 마지막 구절이거니와, 하나의 여성 그레첸의 사랑은 이제 영원히 여성적인 힘과 합쳐서 비로소 그의 무한의 높은 곳까지 인도하여 오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괴테 자신의 여러 여성의 힘으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이지만, 여기서는 또한 게르만의 고대로부터 독일 남성이 언제나 여성을 통하여 정화되고 향상되어온 전통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시인의 대시극

괴테의 문학과 인간

  1. 개요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자유시에서 유서 깊은 명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832년 3월 22일 바이마르에서 뜻깊은 일생을 끝마쳤다. 25세 때 발표된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문제작이었다.  그보다 앞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  라이프찌히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때마침 불어닥친 젊은 혈기의 문학운동 〈슈투름 운트 드랑〉에 휩쓸려서 새로운 문단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 그는 바이마르 공국으로 초빙되어 국정에 참여하였고 국력배양과 국민복지를 위하여 근 10년 동안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그의 문학 및 예술관에는 일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즉, 어두운 충동과 정열과잉의 시인으로부터 그는 밝고 우아한 고전적인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괴테는 《식물변형론》등 자연과학의 업적도 크지만, 시·소설·희곡 등 문학의 각 분야에서 놀랄 만큼 좋은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빌헤름 마이스터(Wilhelm Meister)》 《친화력(Die Walverwandtschaften)》 《서동시집(Der West Meister)》등은 높은 예술성과 깊은 사상성으로 후세에까지 매우 높이 평가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가 긴 일생을 두고 자신의 온갖 경험과 사상을 한 작품 속에 쏟아넣은 비극 《파우스트(Faust)》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것이다.

2. 청년 괴테와 질풍노도

젊은 괴테가 최초로 접촉을 가지게 된 당시의 독일문단은 계몽주의의 일색이었다. 더구나 고도로 발달한 프랑스 고전주의의 영향이, 독일에서는 공허한 형식미와 미사여구를 논하는 기교로 변모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대적인 발달로서, 과거의 무미건조한 형식과 외면적 도덕률을 타파하고 진실로 독일적인 생명과 인간 감정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시대정신는 이제 합리주의에서 비합리주의로, 섭리의 질서에서 파괴적 카오스로, 프랑스적 고전 비극에서 셰익스피어적 성격 비극의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같은 질풍노도 운동이 독일 문단에서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젊은 괴테와 헤르더의 우연한 해후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헤르더는 마침 파리 여행을 마치고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눈 수술을 받기 위해 체류하고 있었는데, 21세기의 괴테는 그곳 대학에 유학하고 있으면서, 5년 선배인 그를 자주 방문하여 담소했었다. 그때 헤르더의 자유분방한 정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테에게로 전파되었고, 그의 독창적이고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후일 괴테에게서 시적 표현으로 결실될 소지가 되었던 것이며 자연히 인간 감정의 심연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된 문학의 본질을 암시 받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의 전형으로서도 성서, 민요, 오시 안의 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이 지적되었고 프랑스적인 형식의 세련보다도 한층 근원적이고 소박한 요소가 강조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문학이 독일의 민족성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당시의 괴테의 시에서는 소박하고 신선한 자연감각이 넘쳐흐른다. 모든 기교로부터 벗어나서 청순하고 솔직한 감정이 대자연가 융합되어서 그대로 토로되고 있다.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도 화려하고,
   나를 향해서 빛나는 것일까!
   태양은 저렇게 번쩍이고
   풀밭은 저렇게 다정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감각에도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과 보람이 나타난다. 그리고 괴테는 자신의 각 시기에 따라서 항상 이상적인 여성이 마련되었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어느 날 괴테가 슈트라스부르크의 교외, 제젠하임으로 소풍을 갔을 때 그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를 보고, 그녀의 청순하고 목가적인 아름다움에 반했다.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감미로운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던 괴테는 그때 연속적으로 〈프리데리케〉의 노래를 작시하였으며, 서정시인으로서의 괴테가 이때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물론 그의 라이프찌히 시대의 장식적인 아나크레온류의 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풍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괴테의 사랑은 먼젓번의 케첸에 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불붙는 열광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약 1년간의 교제 후에는 그녀를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괴테의 두 번째의 도주인데, 그때그때의 여성으로부터 최대의 것을 섭취한 다음에는 자신의 보다 높은 비약을 위해서 매번 그 여성들을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처럼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도덕적으로 그가 나중까지 비난받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자신도 양심에 크게 가책을 느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직후에 집필된 희곡작품 《괴츠》에는, 바이슬링겐이 충실한 약혼녀 마리아를 버리고 요부 아델하이트의 미색에 탐닉한 나머지 끝내 부하에게 독살 당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다분히 괴테 자신의 자책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은 또한 괴테의 질풍노도적인 요소를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사회적 예술적 전통에 대한 대담한 반항, 자연으로 향하는 뜨거운 정열, 문학의 형식과 법칙을 벗어나는 분방한 태도 등이라 하겠다.

그 1년 후에 발행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그 결함과 무리를 다분히 극복한 괴테 최초의 성공작이다. 단순한 성공작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젊은이들의 가슴에 충격을 갖다주어서 독서층을 감격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린 문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릴리와의 약혼  

괴테가 릴리라고 불렀던 16세의 아름다운 이 처녀는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본명은 엘리자베드 쇠네만이라고 하였다. 26세의 괴테는 그 소녀와 사귄 지 불과 3개월만에 정식으로 약혼까지 하였으나 끝내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대체로 괴테의 여성에 대한 사랑은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사랑을 할 때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바쳐 열렬히 사랑하는 그런 태도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릴리에 대한 사랑은 매우 열렬하였다. 그런데도 괴테는 약혼한 지 한 달도 채 못돼서 후회를 한다. 그 당시 헤르더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 있다.  '자유를 동경하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가정이라는 행복의 항구로 가까이 가려는 생활의 배를 다시금 먼바다로 밀어냅니다.' 요컨대 그의 천부의 〈시〉정신은 결혼이라는 기반에 얽매이게 되는 것을 방해하였던 모양이며 그때 마침 기회가 있어 친구를 따라 스위스 여행을 떠났으니 그것이 말하자면 괴테의 여성으로부터의 제 4의 도주가 되었던 것이다. (제 3의 도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계기가 되었던 여성임.) 그러나 릴리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으며 괴테는 스위스에 가서도 끝내 그녀를 잊지 못하였고, 그녀 역시 괴테를 열렬히 사랑하여 '만일 이 나라에서 결혼하기 어렵거든 저를 미국이든 어디든 데려가 주세요' 하고 애원까지 하였다 한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악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괴테는 끝내 릴리를 잊지 못한다.

  그리운 릴리여, 그대를 사랑하지 않았던들
  아름다운 이 경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는가.
  그러나 만약에 내가, 릴리여, 그대를 사랑하지 않았던들
  내가 행복을 대체 어디서 발견했을 것인가.

                                            <산상에서>

바이마르 행과 슈타인 부인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의 영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을 받고 궁정에 도착한 것이 1775년 10월이었으니 나이 26세의 젊은이였다. 잠시 체류한 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것이, 자기의 일생을 거기서 바치게끔 된 것은 공작의 극진한 대접과 지우에도 기인하지만, 후일 독일문화의 황금시대가 거기서 이룩될 것 같은 패기와 예술적 분위기를 민감한 괴테가 이미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과연 바이마르는 괴테를 중심으로 하여 독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적 융성을 이룩하였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후진국이던 독일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마르 체류 중 괴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곳의 기라성 같던 시인이나 음악가 또는 철학자들이 아니고 슈타인 부인이란 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바이마르 체류 이후 10년간 괴테는 그 부인에게 정열을 쏟았으며, 그 시기의 괴테의 눈부신 활동 또한 슈타인 부인의 영향이 컸었다. 그녀는 괴테의 넘쳐흐르는 정열을 교묘히 진정시키면서 그의 타고난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게끔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여성적인 우아하고 품위 있는 정신은 괴테의 거친 질풍노도를 극복하여 높은 고전주의에로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이었다.

3. 독일 고전주의와 괴테

독일 고전주의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과 직결된다. 괴테는 자신의 말과 같이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난〉것이었다. 괴테가 슈타인 부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버린 것은 부인에게 결정적인 감정의 타격을 주었지만 괴테에게는 오히려 〈감정의 인간〉으로부터 〈눈의 인간〉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젊은 괴테에게 절도의 안정과 명랑성을 주려고 노력한 슈타인 부인의 교양의 목표가, 오히려 그녀로부터 도피해간 이탈리아에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괴테에게 이탈리아는 결코 낯선 나라는 아니었으며, 이미 오래 전부터 동경하여 왔고, 또한 기대하였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서의 여러 가지 체험과 고대 미술품에 대한 감상은 그에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바이마르에서의 불안과 초조는 말끔히 가시었고 정신의 안정과 균형이 다시 이루어졌으며, 맑은 남국의 하늘처럼 너그럽고 명랑한 분위기와 심정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시안이나 셰익스피어를 대신하여, 고대 로마나 빈켈만이 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지금껏 정체되었던 그의 문학활동은 새로운 고전적의적 정신 하에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괴테의 고전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역시 그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완성된 비극《이피게니에(Iphigenie)》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의 유명한 유리피데스의 원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식과 내용이 모두 고전적이다. 그러나 괴테는 단순한 그리스 비극에서 진실로 독일적인 심령극을 창조해내고 있다. 여기서 여주인공 이피게니에의 고귀한 인간성이 구제의 열쇠가 되며(그리스 비극에서는 그렇지 않다), 제재가 그리스 것이긴 하지만 내용의 사상은 기독교적이며 괴테 특유의 휴머니즘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독일 고전주의의 특색이 담겨 있다. 괴테가 이탈리아를 찬미하고 고대예술에 심취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저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독일적이며 자기 자신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여성상으로서 이피게니에가 슈타인 부인의 면모를 띠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괴테는 슈타인 부인으로부터 도주하여(제 5의 도주) 오히려 그녀의 고귀한 본질을 구상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테에게는 언제나 우아한 여성의 힘에 의해 거친 남성의 격정이 진정되고 보다 높은 교양의 경지로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를 괴테의 일생에 있어서의 시대구분으로 본다면 그것은 괴테의 청춘시대였던 <질풍노도>와 그의 만년에 해당하는 낭만시대의 중간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질풍적인 광란에 대하여는 온순과 우아를, 낭만의 자유 분방한 공상에 대해서는 양식 적인 균형의 미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원리적인 관찰이고, 개개의 작품을 통해 관찰한다면 가장 고전적이라고 하는 《이피게니에》나 《타소(Tasso)》에서도, 그 마귀에 이끌린 점은 오레스트(이피게니에의 동생)의 가슴속에 광란하는 <마신적인 요소>가 얼마나 질풍노도 시대의 광포와 가까운 것인가―또는 타소의 현실도피와 공상 속에는 얼마나 많은 <낭만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는가―그리고 또 이피게니에의 입에서는 모든 주의와 경향을 초월하여 얼마나 보편적인 인류애의 정신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를 역력히 엿볼 수 있는 바이니, 대체로 생명이 있는 작가와 작품을 어떠한 이즘이나 주의를 가지고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4. 만년의 괴테

실러와의 교류

괴테보다 10년 아래인 실러는 괴테와 마찬가지로 젊은 정열과 정의감을 가지고 질풍노도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후일 독자적인 명상과 철학, 역사의 연구  등을 통하여 역시 고전적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시인의 근본적 차이도 있고 해서 같은 바이마르 시대에 살면서도 접근이 어려웠었는데, 1749년 예나 학회에서 우연히 의기가 투합하였으며, 그후 그들의 협력과 우정은 독일고전주의를 빛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괴테의 결혼  

괴테는 일생동안 9 명의 여성과 애정 관계를 가졌는데 그 중 결혼한 여인은 크리스티아네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와의 이탈리아 여행 직후부터 동거생활을 해오다가 1년만에 정식 결혼에 이르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네는 교육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매우 영리하여 괴테의 성미와 일의 성질까지도 파악하고, 남편을 잘 섬기고 돌보았을 뿐 아니라 그의 저작과 자연과학 연구에 긴요한 도움까지 주었다. 그리고 괴테 가의 상당히 복잡하고 손님도 많은 집안살림을 적절히 처리해냈으며,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항상 겸손하게 들어앉아서 아는 척하지 않는 매우 이상적인 주부였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이마르 국도 프랑스군에게 침공 당하게 되었는데, 술 취한 군인들이 한때 약탈을 자행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괴테의 침실에까지 침입한 프랑스의 난폭한 군인들이 그를 해치려 하였다. 그때 크리스티아네가 용감하고도 기지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던들 괴테의 생명은 위험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그때 이후의 즉 괴테 만년의 가장 중요한 활약은―《파우스트》를 포함해서―그녀의 덕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괴테도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억제치 못했으며 특히 그녀가 근 20년이나 첩이라느니 식모라느니 하는 뒷공론을 들어가면서도 한결같이 봉사해준 은덕을 생각하여, 마침내 서둘러 정식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천화력》과 소녀 민나  

괴테가 저작을 위하여 잠시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에 체류한 일이 있었는데(1807년), 거기서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서점 주인 프롬만의 집에 자주 출입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집에 양녀로 있는 민나에게 갑작스러운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은 그녀가 열 살 정도였을 때부터 괴테는 잘 알고 있었던 터인데, 이제 몰라보도록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그녀의 모습을 대하자 그는 새삼스러이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피가 마구 솟아오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위험감을 가지게 된 괴테는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했으며, 그후 용무도 생기고 해서 그녀로부터 도주(제7의 도주)하기 위하여 그곳을 아주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사랑의 체험은 그후 집필된《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속에서 영원히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작품 속에 그려진 내용은 격렬한 정열이긴 하지만 그것을 그리는 작가의 필치는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서 가히 체념의 경지에 도달한 노시인의 높은 심경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괴테 만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나로서《서동시집》이 있다. 괴테의 깊은 인간통찰과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은 멀리 동양에까지 미쳤으며 특히 14세기의 페르샤 시인 하피스에 대해서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을 가졌다. 그래서 괴테는 그 무렵의 자신의 뜻깊은 시집을 《서동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즉 서방시인에 의한 동양적인 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시집 속에서 한 가닥 광채를 발하는 것은 역시 괴테의 새로운 여성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그 시집 속의 백미인 <술레이카의 편>은 아름다운 마리안네에 대한 그의 정열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네는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빌레머 씨의 양녀로서 나중에 그의 후처가 된 여성인데, 괴테는 1814년 그 집을 방문하여 마침 꽃피는 나이에 있었던 그녀에게 몹시 이끌렸었다. 그 눈치를 챈 빌레모 씨는 재빨리 그녀를 자기의 정식 부인으로 피로하였다. 다음해 가을 괴테는 또 다시 그 집을 방문하여 그녀와도 친숙하게 지냈는데 그때는 그 남편도 그들의 친교를 방해하지 않는 아량을 보였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즉 그녀가 뛰어난 서정시인이라는 점이었다. 괴테가 그녀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에 답하여 그녀가 쓴 시는 괴테를 놀라게 하는 솜씨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가 그대로 <술레이카의 편>으로서 전기한 《서동시집》속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론 시인으로서 위대한 괴테의 힘이 <정신감응>이 되어 그녀에게 작용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하여간에 그녀가 놀라운 시재의 소유자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는 더욱 친숙해지고 정열의 불이 붙었던 것인데, 그때 이미 나이가 65세였던 괴테는 내심의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그녀를 단념하고, 어느 보름날 밤에 그녀와 작별하면서 '이제부터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서로의 생각을 하기로 하자'는 약속을 하고 그녀로부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제8의 도주).

그러나 《서동시집》은 <술레이카의 편>과 같은 사랑과 정열 이외에도 괴테의 인생관과 이상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해주는 의미심장한 작품들로 가득찬 시집인 것이다.

노시인의 회춘  

괴테는 아내 크리스티아네와 사별(1816년) 후 몇해가 지나서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할 기회를 가졌으니 그 상대방의 여성은 바로 마리엔바트의 온천지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 19세의 소녀 올리이케였다. 1823년 여름, 괴테는 마침 나이 74세가 되던 생일날(8월 28일) 그 젊은 소녀를 껴안고 무용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때 그의 정열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는  열렬한 것이었으며, 그 점은 그 당시의 연시, <마리엔바트의 비가>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또한 얼마나 진지한 사랑을 하였는가는 그녀에 대한 구혼 중매를 서 달라고 바이마르 국의 대공에게까지 정식으로 부탁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그 구혼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괴테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완곡한 방법으로 거절되었지만 그 결과로 전기한 <마리엔바트의 비가>, 즉 노시인의 영원한 젊은 정열의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괴테는 긴 일생동안 그 풍부한 결실에 못지 않게 여러 여성들과의 사랑을 경험하였는데, 괴테의 사랑은 결코 고답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진지하고 헌신적인 사랑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여성에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겸허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는 여성들에 의하여 항상 높은 단계의 정신적 발전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괴테의 만년의 가장 큰 업적으로서는 역시 《빌헬름 마이스터》와 《파우스트》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두 작품은 그가 젊은 청년시대에 구상하여 쓰기 시작했으나 여러 번 중단되었다가 고령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는 괴테의 일생의 전체험과 예지, 그리고 각단계의 여러 가지 감정감각이 내포되어 있을뿐더러 정치적 사회적 이념들로부터 인류문화와 예술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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