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파도- 김현승

by 송화은율
반응형

파도 - 김현승


< 감상의 길잡이 1 >

 

김현승의 시가 갖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관념적인 시적 대상까지도 뚜렷한 이미지로 포착하여 명징하게 드러내는 뛰어난 형상력이다. 이는 사물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적 관념을 날카롭게 추출해 내는 감성적 능력과 상통하는 것으로, 그의 뛰어난 직관적 투시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모더니스트적 면모를 가지고 있는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는 병약한 문명과 결별하고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새로운 충동에 대한 추구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표현면에서부터 그와 같은 특징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시가 전해 주는 감각은 매우 신선한 것으로 몇 개의 형상을 떠올려 준다. 1연에서는 파도를 술 위에 부은 술에, 파도의 흰 거품을 술의 거품에, 출렁이는 바다를 춤추는 땅 또는 술을 담은 잔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는 바다를 가슴에 비유하고 있으며, 가슴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뱀의 잔등처럼 꿈틀거리는 해면(海面), 언어를 출렁이는 선박에 비유하고 있다. 3연에서는 병약한 도시 문명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책인 듯 수평선을 그어 놓은 파도를 원시적 성욕만큼 순수하고 생명력 넘치는 짐승에 비유하고 있다. 4연에서는 죽음을 표상하는 깊은 물이랑들과 이웃하며 솟아오르는 파도의 물거품을 라이락 꽃에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각 연들의 중심 이미지인 가슴짐승등은 하나의 논리 속에 통합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맨처음 제시되어 있는 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술은 머리, 즉 이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즉 감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슴은 술에 의해서 유발되는 감정의 흥분으로 그 연관성이 맺어지게 된다. ‘짐승기쁨에 사나운 짐승’, 즉 광분적인 상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술에 의해 유발된 감정의 흥분이 빚어 낸 충동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은 그러한 충동이 유발하는 새로운 세계, 즉 순수한 원시적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가슴짐승의 상호 연쇄적인 작용에 의해 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작품은 똑같은 형태를 가진 네 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연은 각기 다른 형상을 통해 파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 1연은 술 위에 부은 술로, 2연은 영원히 잠들 수 없는 가슴으로, 3연은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로, 4연은 라일락의 꽃떨기로 각각 파도를 은유한다.

 

이러한 비유들을 통해 나타난 바다의 모습은 생명의 힘찬 활력과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것은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 춤추는 땅'이며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과도 같은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다는 문명에 더럽혀지지 않은 원시적 삶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3연에서 바다를 `()보다 깨끗한 짐승들'의 달림으로 본 것이나, 4연의 `저 파도의 꽃떨기'라는 구절들이 그러하다.

 

그러면 이 전체를 통해 시인이 그리고자 한 바다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 가슴, 짐승, 꽃 등 얼핏 보기에 서로 동떨어진 이들 사물 사이에는 대체 어떤 공통성이 있는가? 해설자의 생각으로는 `메마른 문명과 이지(理智)의 세계를 넘어선 삶'이라는 데로 집약되는 것 같다. 술이란 냉철한 지적 정신과 대립적인 도취의 성질을 띠는 것이며, `머리'가 이성적 능력을 뜻하는 데 비하여 `가슴'이란 흔히 감성과 정열의 근원으로 말하여진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이라든가 꽃이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 문명의 세계와 대조적인 의미를 띤다는 점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들 사물의 비유를 통해 시인이 노래한 것은 제3연에 보이는 `저무는 도시와 / 병든 땅' , 메마른 문명의 세계에 대립되는 창조적 생명력의 상징으로서의 바다를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제3연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 해서 나머지 부분들이 소홀히 될 수는 없지만, 3연이야말로 다른 부분들에 담긴 시상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시 전체의 흐름을 집약하는 절정의 매듭이라고 할 수 있다. `저무는 도시와 / 병든 땅'에 대립되는 동물의 모습은 제3연만이 아니라 제2연에도 나타난다.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이 그것이다. 이때의 `배암'은 바다의 출렁임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의 일부이지만, 메마른 문명의 세계에 대립하는 생명의 모습으로 제3연에 나타난 `짐승들'과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파도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에 `부글부글, 꿈틀거리는, 사나운, 꽃떨기' 등의 힘차고 화려한 어감을 가진 말들을 사용한 것도 이에 도움을 준다. [해설: 김흥규]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