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by 송화은율
테스
운명에 회롱당한 테스의 사랑
태생적 유전과 환경이 그 사람의 인생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는 철저한 운명론에 의해 그려진 사랑의 모티브! 테스를 읽다보면 사람의 의지, 희망과 열정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닳게 된다. 적어도 만인의 연인 테스에게 만큼은 운명적 시련이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요 시인인 토머스 하디(1840∼1928)가 그려낸 테스는 이미 몰락한 더버빌 가의 딸인데, 누구보다도 순진하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심성을 간직한 시골 처녀다.
하지만 짓궂은 신의 회롱은 그녀가 온전한 양가집 규수로 성장하는 길을 방해하고 나선다.
토머스 하디의 표현대로라면, '몹시 미목이 아름다운 처녀이고 감정이 나타나기 쉬운 함박꽃 같은 입과 천진한 큰 눈이 얼굴의 빛깔과 윤곽에 더욱 더 풍부한 표정을 지어주는' 테스! 그녀는 앞으로 만나 진정으로 사랑할 남자를 그려보던 중에 엔젤 클레어를 자기 마을의 야유회에서 만난 후 행복한 앞날에 대한 꿈에 젖는다.
하지만 테스는 며칠 후 집안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저 음험한 알레크 더버빌을 만나게 되고, 야수 같은 그의 정욕에 순결을 잃고 만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테스의 모진 운명이 그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녀가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순결을 잃지 않았을 테고, 야유회 때 그 미지의 청년 엔젤을 보지 않았어도 그녀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신의 회롱에 애간장을 태우지 않았을 텐데, 이런 문제에 대해 토머스 하디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중히 세운 계획일지라도 그릇 판단하여 실행한다면 기다리던 성과는 좀체 얻지 못하고, 사랑할 사람은 사랑해야 할 때에 얼른 나타나지 않는가 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신은 가엾은 인간들에게 '자, 여길 봐!'하고 가르쳐 주지도 않고, 또한 인간이 '어디로?'하고 물어 보아도 '여기다!'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무튼 테스는 다시 엔젤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죄책감과는 상관없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정직한 테스는 그의 청혼을 받았을 때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털어놓고 그의 이해를 구하려 한다. 엔젤이 보여주는 사랑이 자신의 과거 따위로 인해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백의 기회를 놓치고 테스는 엔젤과 결혼식을 올리게 되며 신혼 첫날밤을 맞는다. 그리고 엔젤이 먼저 자기의 옛 일, 즉 불건전한 여자와의 성경험을 밝히는 자리에서 테스는 용기를 얻어 자신도 순결을 잃은 여자임을 밝힌다.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왔던 엔젤인데, 그는 그러나 '부드러운 옥토 속에 광맥이 한 줄기 뻗히고 있듯이 꼬치꼬치 캐는 딱딱한 논리의 광맥이 가로놓여 있는' 이상주의적 결벽성을 지닌 남자다. 테스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신분도 환경도 가족들의 반대도 저버릴 수 있었던 엔젤인데, 순결 문제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것이다.
엔젤은 그 즉시 테스를 등지고 브라질로 떠나 버린다. 그로 인해 테스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신들의 운명적 회롱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버린다.
음험한 알레크에게 순결을 잃은 후 사생아까지 낳았고 결혼한 남편에게서 무정하게 버림받은 테스를 사람들은 곱게 보아주질 않는다. 그리하여 남편 엔젤을 기다리다 지친 그 절망 상태의 테스는 또다시 알레크의 유혹을 받게 되는데, 그때 남편 엔젤에게 보낸 편지의 대강은 이러하다.
"아, 어째서 당신은 제게 이렇게도 어처구니없는 대접을 하시나요? 엔젤! 저는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나쁜 여자는 아니에요. 곰곰 생각해 보니, 저도 당신을 용서해 드릴 순 없어요. 제가 당신에게 받은 대접은 너무 억울해요."
테스는 다시 마음에도 없는 알레크의 품에 안겨 버리고, 한 발 늦어서야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눈물겹게 깨닳은 엔젤이 테스에게로 돌아온다.
그 때문에 테스는 사랑하는 엔젤과 자기 사이를 갈라놓은 장본인 알레크를 증오한다. 끝내 알레크를 살해하고 엔젤에게로 뛰어간다. 며칠 동안이나마 비로소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화합된 사랑을 누리는 그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런 행복이 오래 갈리 없으니' 드디어 추격자들에 의해 테스는 체포되고 만다. 음탕하고 간악한 여자로 낙인찍혀 처형을 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테스의 모진 운명과 함께 그녀의 정신적 순결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가련한 주인공 테스로 하여금 과거를 털고 다시 소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 땅의 남자들, 사회적 편견주의에 의해 무작정 조롱을 받고 거부를 당한 것이다. 테스가 알레크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는 사건의 저변에는 그 책임 소재가 엔젤에게 있고, 나중에 엔젤이 돌아왔을 때 테스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기를 구원하는데 서슴치 않았다. 때문에 그토록 모진 운명의 회롱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테스의 순결과 그로 인한 구원은 자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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