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쿠오 바디스 / 솅키에비치 / 해설과 줄거리

by 송화은율
반응형

쿠오 바디스(Quo Vadis:1896) / 솅키에비치

  해설
  폴란드의 문호 솅키에비치의 역사 소설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며
이 작품으로 그는 1905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 작품의 부제는 "네로 시대의 이야기"이며 크리스트교가 로마 제국 치하에
유포될 당시 네로 황제의 크리스트교에 대한 박해를 배경으로 쓴 것이다.
퇴조기의 로마 사회의 퇴폐와 부패한 화려함을 묘사했다. 통치와 행정 기구의
절대 권력과 하나의 정신력 즉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대비시켜
크리스트교의 신앙이 로마의 신을 정복하여 가는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에필로그에서 사도 베드로가 폭군 네로의 박해에 견디지
못하여 로마를 벗어나 도피의 길을 떠날 때 압피아 국도에서 그리스도의 환영을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하고 묻자 그리스도가
대답하기를 '네가 로마를 버리었으니 나는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간다. 네가 나의 어린 양들을 버리었으니...'라고 대답하였다는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상 실제의 인물이나 전형적인 로마 호민관 비니키우스와
그의 애인 리기아만은 작가가 상상해 낸 인물이다.

  작가 약전
  솅키에비치는 1846년 5월 5일 러시아령 폴란드의 비슬라강 델타 도시보다
가까운 볼라오크세이스카에서 대저택을 가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전통적이고
애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귀공자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866년 그의 나이
20세에 바르샤바 대학의 의학과에 입학했다가 곧 문학과로 옮겨 철학 역사학
문헌학 문학 등을 광범위하게 공부했다.


  1872년에는 처녀작 유머 소설 "내 고장의 예언자"를 발표하였다. 초기의
작품들은 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1876년 30세에는 바르샤바의
신문 가제타 폴스카의 해외 특파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조국의 신문에 통신을
보내고 있었으나 그에게 미국은 환멸의 나라이었다.


  귀국 후 "미국 여행에서의 편지"를 써서 '가제타 폴스카'지에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1905년은 작가 솅키에비치에게는 기쁨과 분노가 뒤얽힌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이 해에 그는 59세의 나이로 '산문적 서사시의 위대한 공헌'을 남겼다는
칭송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러한 작가로서의 영광과는 달리 그가
사랑하는 조국의 마지막 독립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조국을 염려하는 열렬한 애국자였으며 폴란드의 민족 사상을 고무시킨
공적이 인정되어 '폴란드의 영웅'이라는 또 하나의 관사가 늘어났다.

  줄거리
  페트로니우스가 잠을 깬 것은 한낮이 다되어서였다. 그는 문무에 탁월한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다. 어젯밤 네로 황제가 주최한 향연에서 네로와 루칸
세네카를 상대로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토론을 하는데 함께
끼어 밤을 세웠다. 늦게 일어나 피로를 풀기 위해 황제 욕실보다 한층 풍취가
있는 정원의 욕실에 들어 갔었다.


  욕탕 당번인 노예 두 명이 측백나무의 탁자에 기대고 있는 그를 감람 향유에
손을 담그게 하고 주물러 주고 있었다.


  이 때 비니키우스가 소아시아에서 돌아와 주인을 만나겠다는 말을 전한다.
비니키우스는 페트로니우스 누나의 아들인데 코르블로 장군의 휘하에서
파르티아군과 싸우는 원정에 종군하다가 로마에 개선한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조카가 아름다운 용모와 씩씩한 기개를 지닌 우아한 성품을
가진 전형적인 로마 무관의 성격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누구보다도 비니키우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니키우스가 이 곳을 찾아온 것은 귀국의 인사만이 아니었으며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출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로마와 리지아 족과의
전쟁에서 불모가 되어 지금은 로마의 정신 플라우티우스의 집에서 양녀로 있는
리지아 족의 공주에게 반했기 때문에 이 사랑을 이루고 싶어 외숙부의 힘을
빌리고 싶었던 까닭이다.


  "저는 파르티아 군의 화살 끝에는 가벼운 상처도 입지 않고 돌아왔으나 사랑의
여신이 쏜 화살에 맞아 견딜 수 없어 외숙의 힘을 빌리고자 찾아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두 사람은 욕실에 속해 있는 기름 바르는 방에 들어가 부인 노예들의 손에서
시베리아 향유를 발랐다. 여신과 같이 아름다운 고스 출신의 여자 노예는 가운의
주름을 가지런히 하고 있었다.
  "이건 참으로 잘 고르신 미녀들입니다"


  비니키우스는 감탄하며 아름다운 노예를 바라보았다.
  "나는 양보다도 질을 취한다. 나의 집에 수용된 노예는 400이 넘지만 빨강
수염도 이 이상의 미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페트로니우스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빨강 수염은 포악한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형과 아내를 죽이고 어머니까지 죽인 폭군이다. 궁중에서 무엇이고 그에게
충고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페트로니우스 한 사람뿐이다.


  비니키우스는 전선에서 돌아오다 낙마하여 팔을 다쳤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플라우티우스 장군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에서 친절한 간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정원의 샘터에서 비너스가 솟아 오른 듯한 처녀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이 투명하게 비치는 듯이 아름답게 보였으므로
환영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 여자가 노예라면 사면 되지 않느냐?"
  "노예는 아닙니다. 볼모로 잡혀 온 리지아 족장의 딸인데 플라우티우스의
아내가 된 폼포니아가 양녀로 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여자가 노예가 아니라고 해도 양친이 없고 플라우티우스의 가족이 되어
있으면 플라우티우스가 너에게 그녀를 줄 마음이 있으면 되겠지 내가 힘써 보자.
너는 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해 보았느냐?"
  비니키우스는 자신이 없는 소리로 말했다.
  "출발하던 전날 밤 송별 만찬에서 리기아를 만났으나 그 때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만난 것이 그 샘터였습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숨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 그 곳을 떠나야겠다고 말하며
그녀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도무지 나오질 않았고 그
곳에서의 고통이 다른 곳에서의 환락보다도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갈대로 모래 위에 무엇인가를 그려
놓고 가버렸습니다"
  "무엇을 그렸지?"
  "물고기였습니다. 자기의 혈관에는 물고기와 같은 찬 피가 흐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이튿날 오후 두 사람은 플라우티우스의 집으로 방문하였다.
  페트로니우스는 플라우티우스를 고지식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모르는 무관일
것이라고 내심 경멸하고 있었으나 그의 집은 소박하고 취미가 고상한 구조로
장식되어 있었으므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페트로니우스는 극히 정중하고 품위 있게 비니키우스가 이 집에서 받은 후대에
대한 답례를 하러 왔다고 말하였다. 네로 황제의 신임 받는 말벗이고 또한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는 별칭을 지닌 귀인의 방문에 당황하고 있던 노장군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 여러 가지 한담을 나눈 후 그들을 정원으로
안내하였다.


  정원에서는 그의 아들 아울루스와 리기아가 유쾌하게 공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비니키우스도 한축 끼어 공을 던지자 리기아가 손을 높이 들어 받았다. 그
사이에 페트로니우스는 리기아를 자세히 관찰하였는데 그녀의 완벽한 미모에
그도 탄복하였다.


  투명하고 맑은 장미빛을 띤 얼굴 깊은 바다와 같이 푸른 눈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호박 빛깔의 머리 탐스럽고 품위 있는 어깨며 부드러운 선을 이루고
있는 몸매 페트로니우스는 예술가의 안목으로 리기아의 아름다움을 경탄했다.
이 처녀의 상을 세우고 그것을 봄이라고 적어도 어색하지 않겠다고 느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비니키우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에게 좋은 수가 있다. 며칠 후에 아름다운 리기아가 너의 집에서 곡물의
신이 주는 음식을 먹고 있게 될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교묘한 말솜씨로 네로를 설복하여 3일 후 플라우티우스의
양녀로 있는 리기아를 네로의 휘하에 있게 하며 그녀를 비니키우스에게
양도하도록 손을 써놓았다. 플라우티우스와 그의 아내 폼포니아는 리기아를
폭군이며 위험한 네로에게 보낸다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리기아는 폼포니아의 가슴에 안겨서 슬피 울었다. 자기를 데려가는 이유를
몰랐으나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충성이 지국하고 힘이 엄청난 거인 우르수스는 리기아 공주가 볼모로 잡혀
왔을 때 따라온 노예였다. 그는 그리스도 신자이며 리기아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호하고 있었다.


  리기아는 페트로니우스의 계획으로 네로의 해방 노예인 악테에게 보내졌다.
  악테는 전에 네로 황제의 애첩이었다. 한때 그녀의 앞에서는 로마에 있는
원로원들도 머리를 숙였는데 선량한 그녀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았다.
네로의 총애가 사라진 후에도 궁중에 머물러 있으며 네로의 충실한 시녀로서
때때로 주연에도 나가게 되어 있었다.


  오늘은 향연의 날이며 리기아도 참석하게 되었다. 향연의 자리는 타락한
향락이 난무하는 것을 리기아는 알고 있었다.
  리기아는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오욕의 구덩이에서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리기아는
향연의 자리를 피하려 했다. 악테는 네로가 화를 내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니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만일 수치를 당하거나 죽음을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때에는 당신의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해요. 처음부터 위험을 당할 필요는 없지요. 무자비한
네로를 성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악테는 자기만이 쓰는 화장실로 리기아를 데리고 들어가서 기름을 발라 주고
옷을 입혀 주었다. 머리에는 금가루를 뿌려 주었다.
  "리기아 당신은 폼피아 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요"
  악테는 리기아를 황홀하게 쳐다보았다.
  연회는 말할 수 없이 화려했다. 채색한 가운을 입고 덧신에 반달 수를 붙인
원로 의관을 위시하여 유명한 귀족 예술가와 분장을 한 귀부인들이 별과 같이
앉아 있었다.


  악테는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의 성질과 몸가짐까지도
설명하며 편안히 마음먹으라고 했다. 리기아는 겁이 나서 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란해졌다.

 

초청객들은 그칠 사이 없이 들어왔다. 황제의 노예들과 근위병도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리기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그녀의 아름다운 두 볼이 붉어졌다. 원주
사이로 비니키우스와 페트로니우스가 나타났다. 흰 옷을 입은 신관과 같이
아름답고 고상한 두 사람은 사람이 없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낯선 사람들 중에서
비니키우스를 발견하자 리기아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비니키우스를 만나
이야기해 보고 싶은 마음이 그녀의 공포를 몰아냈다.


  "안녕하셨소. 아름다운 분이시여!"
  리기아가 돌아보니 비니키우스가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덧옷을 벗은 그는
용감한 전사답게 근육이 늠름하였으며 반달을 그린 듯한 눈썹과 서늘한 눈
단정한 얼굴이 수려했다.
  "안녕하셨어요. 비니키우스 님"
  리기아는 자기를 왜 이런 곳에 데리고 왔는지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궁성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무섭다면 이 곳을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리기아는 비니키우스의 친절이 고마웠다.
  이 때 네로는 그의 시를 읊으라는 간청을 듣고 폼피아를 나오게 하였다.
그녀는 자수정 빛 옷을 입은 눈부신 여인이었는데 리기아는 지금까지 폼피아와
같은 미인을 본 일이 없었다.
  흥분되어 있던 비니키우스는 리기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폼피아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녀와 비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무대 위에는 광대 한 패가 음탕한 장난을 하여 보인다. 연회의 밖으로 나온
비니키우스는 리기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리기아 키스해 주시오. 나는 기다릴 수 없소. 내일 밤에 당신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겠으나 나는 내일 밤까지 참을 수가 없소. 어서 당신의 입술을
나에게 주시오"
  비니키우스는 리기아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리기아는 그리스도의 열렬한 신앙자였기 때문에 그의 추한 모습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리기아는 힘껏 저항하며 용서를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다시 리기아를 끌어안아 키스를 하려 했다. 그때 우르수스가
나타났다. 그는 무서운 힘으로 비니키우스를 나뭇잎 다루듯이 옆으로 밀쳐
버렸다.


  우르수스를 따라 나오게 된 리기아는 플라우티스의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악테에게 호소했다. 악테는 만약 리기아가 궁전을 탈출하면 플라우티스와
폼포니아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되고 리기아는 궁성으로 다시 붙잡혀 오게 될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따라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였다.
  "궁성은 당신에게 비니키우스의 집보다 위험합니다"
  악테는 리기아에게 비니키우스의 아내가 되기를 암시했다.
  "아닙니다. 나는 이 곳에 머물러 있지 않겠습니다. 물론 비니키우스의 집에도
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비니키우스가 싫습니까?"
  "나는 그가 싫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신자입니다"
  리기아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우르수스도 그녀를 따라 아침 햇살이
창에 비칠 때까지 기도하였다. 리기아는 퇴폐한 궁중의 공기 속에 한시라도
머물러 있기 싫었다. 그녀는 플라우티우스 집에 화를 끼치지 않도록
비니키우스가 데리러 올 때를 이용하여 우르수스를 따라 로마 밖으로 도망하려
결심하였다. 어디를 가나 우르수스만은 자기를 구할 수 있으며 우르수스
이외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밤이 점점 가까워졌다. 리기아는 악테와 이별하는 것을 슬퍼하였다. 어둠
속에는 우르수스가 대기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악테는 자기가
지니고 있던 보석을 아낌없이 꺼내어 리기아의 옷섶에 꿰매 넣어 주고 도망할
때에 팔아 쓰라고 하였다.
  비니키우스로부터 리기아를 호송할 사람이 도착했다.
  "갑시다"
  리기아는 조용히 말하고 악테를 껴안았다.
  비니키우스가 보낸 가마는 수십 명의 노예가 호위하고 있었다. 리기아를
도중에서 빼앗겼다는 말을 들은 비니키우스의 안색은 노여움으로 뒤덮였다.
분노는 머리끝까지 타올라 그녀를 찾기 위해 노예를 팔방으로 풀어 놓고 자신도
말을 달려 찾아보았다. 아무 소득이 없었다.
  비탄에 빠진 비니키우스를 본 페트로니우스는 조카의 연정을 동정하여 로마에
물샐 틈 없는 비밀 수사망을 쳤다. 어느 날 여자 노예인 에우니케가
페트로니우스에게 말했다.
  "킬로 키로니데스라는 지혜자를 찾아보면 알 것입니다"
  그는 사이비 철학자인데 리기아가 비니키우스 앞에 물고기를 그렸다면 반드시
그는 새로운 신을 믿는 신자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리스 어로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이 다섯 단어의 머리 글자만을 따서 맞춰 보면
물고기라는 단어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들 사이에 쓰는 비밀 암호였다.
  네로 황제의 어거스트 왕녀가 병으로 죽었다. 제사나 의사의 치료도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병이 난 시기는 리기아를 궁성에서 만나 때였다. 그녀의 앞에서
왕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었다. 알려지지도 않은 이상한 신을 믿는다는 말과
함께 리기아가 왕녀에게 마법을 걸어 죽게 했다는 것이다. 왕녀의 병은 리기아가
마법을 걸었다는 말이 퍼졌다.


  페트로니우스는 리기아의 실종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제일 먼저 플라우티우스의 집이 화를 입게 될 것이고 자기들도 궁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혜가 많은 페트로니우스는 사랑하는 왕녀를 잃은 비탄을
잊도록 황제에게 안티움으로 여행할 것을 권하였다. 네로도 쾌히 그의 말을
들었다.
  "낯선 땅에서 죽은 딸을 위한 송가를 짓고 작곡도 하자"
  페트로니우스는 네로가 로마 밖으로 나가 있는 사이에 리기아를 찾아내어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로 계획을 세웠다.
  "너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사랑에서도 승리자가 되어라"
  그는 사랑하는 조카 비니키우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어느 날 킬로가 기독교 신자들이 모이는 설교회에 리기아가 우르수스를 데리고
출석한다는 정보를 전하자 비니키우스는 이 킬로에게 많은 사례금을 주고 안내를
받기로 했다. 오늘 저녁만은 반드시 리기아를 만나고 그녀를 자기 곁에 둘 것을
생각하며 비니키우스의 마음은 기쁨에 차 있었다.
  밤이 되자 그들은 로마에서도 제일 가는 투기사 크로톤을 데리고 갔다.
살라리아 가도의 묘지를 향해서 가는 검은 그림자들이 어둠 속에서 행렬을
이루며 가고 있었다. 군중은 시가로부터 떨어진 공동 묘지에서 성가를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며 예배를 보는 것이었다. 비니키우스는 이 엄숙한
분위기에 감동되어 서 있었다.
  "베드로, 베드로"
  군중은 중얼거리며 모두 꿇어 앉았다. 베드로는 어진 어버이와도 같이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호사스런 생활을 버리시오. 청빈과 순결과 진리를 사랑하시오. 불신과 사기와
비방을 삼가하시오. 그대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베드로는 현세에 있어서의 평화가 아니고 사후에 그리스도와 영구히 삶을 같이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을 듣고 있는 사이에 비니키우스는 그녀를 붙잡더라도 그녀의 마음을
잡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요한과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이틀 밤을 뜬 눈으로
새웠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에 주는 소생하여 우리들에게 '그대들에게 평화가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비니키우스는 꿈결같은 마음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킬로가
옷소매를 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와 같은 분이 계십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리기아가 서 있었다. 그러나 비니키우스는 이 곳에서
리기아를 붙들게 되면 일대 소동이 일어날 것만 같아 리기아를 그의 집 앞에서
납치하려고 크로톤을 데리고 뒤를 밟았다.
  리기아의 집 문 앞에는 우르수스가 지키고 서 있어서 덤벼드는 크로톤을
강철과 같은 양팔로 꽉 눌러 버리고 말았다. 비니키우스는 날쌔게 안으로 들어가
리기아를 안고 뜰로 나왔다. 우르수스는 맥이 풀어진 인형과 같은 크로톤을 손에
들고 있었으나 즉시 비니키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죽이지 말아요"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외치는 소리를 꿈같이 들었을 뿐 온 빛깔이 두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비니키우스는 심한 통증으로 눈을 떴다. 우르수스는 리기아를 지키기 위해
비니키우스를 죽일 수 있었으나 리기아의 만류로 부상만 입히고 말았다.
  비니키우스는 기독교 신자인 의사 글라우코스의 치료와 리기아의 정성 어린
산호로 건강을 회복했으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
  베드로의 말씀은 특히 그의 마음을 감화시켰으며 또한 달소의 바울의 웅변은
한마디 한마디가 몸 속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리기아도 점차 비니키우스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집의 주인은
완고한 기독교도로서 리기아가 그리스도 아닌 지상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몹시
노하며 그녀를 심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리기아의 사랑을 축복해 주었다.
  "당신의 사랑에 죄는 없습니다"
  비니키우스는 리기아를 통해서 기독교에 접함으로 내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향락으로 지내오던 생활은 덧없고 추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으며 그가 그토록 숭배해 마지않던 외삼촌 페트로니우스의 생활을
연민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즈음 로마 역사상 유례없는 대향연이 아그리파 호수에서 벌어졌다. 이 날 밤
비니키우스는 복면을 한 여인에게 유혹당했으니 복면을 한 여인은 네로의 황후
폼피아였다. 오직 페트로니우스의 기지로 이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안티움에 체재한 네로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가를 음송하고 운율을 감상했다.
깊은 교양과 섬세한 취미와 감정을 지닌 페트로니우스는 네로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네로의 변덕은 예측할 수 없으니 페트로니우스에 대한 총애도 언제
거두어질지 모른다. 그는 조카 비니키우스의 안전을 네로의 환심을 계속 사 둘
필요가 있었다.


  네로는 예술적 기질이 있으나 성격 파탄자로서 망상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네로는 안티움에서 시를 짓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시가의 예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가 있다. 도리어 그것은
필요하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대도시의 불타오르는 장면을 본 일이 없다"
  교활하고 간계에 능한 근위 총독 티겔리누스는 페트로니우스를 시기하고
어떻게 하든 네로의 신임을 독차지하려고 꾀하고 있다.
  "황제님이 한 마디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안티움을 불바다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안티움은 아무일 없이 향연을 벌이며 나날을 보냈다.
  "황제님 로마에 불이 났습니다. 시가의 대부분이 불 속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로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오 신이여! 불에 싸인 도시를 보고 나의 트로이의 노래를 짓자. 곧
출발하자. 불이 꺼지기 전에..."
  로마의 대화재 멸망을 향해 치닫는 로마는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으니
그에 박차를 가하듯 과대 망상가이자 폭군인 네로는 파멸을 향해 줄달음질 치고
있지 않은가?


  로마의 참상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로마의 시민들 질서도 없고 폭력이 들끓었다. 타인의 집을 빼앗는 사람 젊은
부인을 납치해 가는 사나이 쌓이고 쌓인 압박과 학정에 대한 원한은 광란으로
변하여 시가는 절망과 공포 신음 광란으로 들끓고 있었다. 로마의 화재는 황제가
시상을 얻기 위하여 방화한 것이라는 유언 비어가 어느덧 군중 사이를 떠돌기
시작했고 군중은 네로와 폼피아를 죽이라고 아우성쳤다.


  네로는 밤에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는 7일 동안 불탄 후 잿더미가 되었으나
티벨 강 건너편의 가난한 부락은 재화를 면하였다.


  네로 황제에 대한 로마 시민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네로는 겁을
먹기 시작했다. 비겁한 황제는 이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군중의 원성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누구를 원성의 제물로 할
것인가? 티겔리누스는 기독교도를 생각해 냈다. 로마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무리들 당시 기독교는 로마의 천민들과 양심적인 귀족층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로마인의 가치관으로 볼 때 기독교도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리들이었다.
네로와 티겔리누스는 군중들에게 향락을 제공하고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피의
향연을 계획했다. 굶주린 사자 들소와 씨름을 할 장사로 우르수스를 지목했다.
미녀와 야수 미녀를 지키기 위한 노예의 목숨을 건 싸움 향연에 굶주린 로마
시민에게는 최고의 오락이 될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를 살리기 위해 황제에게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으나 도리어 네로를 불쾌하게 할 뿐이었다. 위험은 페트로니우스에게도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니키우스는 사랑하는 리기아가 체포된 뒤로는 밤낮을 번민하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워 베드로의 발 밑에 꿇어 앉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 고통을 전하며 지금의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라 말하니 그 말에 위안을
얻어 고통 속에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현세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영원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원형 경기장 리기아와
우르수스의 사형 집행자는 들소였다. 비니키우스는 애인의 최후를 보며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이윽고 우르수스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그는 거상과도 같이 보였다. 넓은
로마에서도 그처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찾아 볼 수 없었으므로
관중은 환호성을 올렸다. 나팔 소리를 신호로 창살문이 열리자 거대하고 억센
들소가 질풍처럼 뛰어들어왔다. 그런데 그 두 뿔 사이에는 옷을 벗은 여자가
매어 있었다. 그 여자는 기절해 있었다.
  '리기아다! 주여 기적을'


  비니키우스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고 넋이 나간 듯 '믿습니다 믿습니다'만을
반복했다. 페트로니우스가 토가로 그의 얼굴을 가려 주었다. 신자답게 유순하고
평화롭게 죽으려고 결심하였던 우르수스는 이 광경을 보자 눈에 불을 켠
사람처럼 뛰어들어 날뛰는 야수를 향해 덤벼들어 양손으로 힘껏 황소의 뿔을
잡아 눌렀다. 경기장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사람과 소의 필사의 투쟁!
  이와 같이 장엄하고 치열한 광경은 로마가 생긴 이래로 처음 보는 일이었다.
우르수스의 양쪽 발은 발목까지 모래 속으로 들어갔고 그의 등은 활처럼
휘어지고 머리는 우뚝 솟은 양쪽 어깨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온 몸의 근육은
터질 듯이 불거졌다. 사람과 황소는 꼼짝도 않는다. 그러나 양쪽은 죽을 힘을
다하여 대결하고 있었다. 극단의 긴장이었다.


  돌연 괴상스러운 신음 소리가 장내를 진동했다. 관중은 우르수스가 거대한
들소의 머리를 껴안은 것을 보았다. 야수의 신음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들소의 머리는 점점 틀어져서 우둑우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머리가 꺾어져서 땅 위에 쿵 하고 넘어졌다. 그 순간 거인은 들소의 뿔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자기의 주인인 리기아를 두 팔로 안아 내렸다. 우르수스는
처절한 몸짓으로 관중을 향해 그녀를 들어 보였다. '나의 아가씨를 살려 주시오'
우르수스의 몸짓은 그것이었다.


  이것을 본 관중은 우르수스의 행위에 감격하여 그를 용서하고 희생자인 가련한
공주를 구하라고 외치며 미칠 듯이 소리질렀다. 장내의 건물은 들끓는 소리로
진동하였다. 소리는 그대로 황제의 포학과 잔인에 대한 저주로 변해 갔다.
  비니키우스도 경기장에 뛰어내리며
  "불쌍한 희생자를 보호하라!"고 호소하였다. 수천의 군중들은 일제히 황제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으나 황제는 듣지 않았다. 군중들은 분노하여
  "빨강 수염! 어미 죽인 놈! 아내 죽인 놈! 방화범을 투기장으로 끌어
내려라!" 하고 외쳤다. 투기장에서는 군중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네로는 드디어 관중의 뜻에 따라 그들을 살려 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로마의 영웅 비니키우스와 아름다운 리기아를 축복하자. 괴력 우르수스 만세!"
  외치는 소리와 함께 뇌성과도 같은 칭찬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와 같이
영웅을 숭배하는 로마 시민들의 열광적인 찬탄으로 기독교인 리기아와
우르수스는 목숨을 구했다.


  리기아가 구원된 것은 체포를 면한 기독교 신자들에게 주의 영광의 뚜렷함을
믿게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를 위시하여 살아 남은 신도들을 또다시 투옥한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베드로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비니키우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찾아가
로마를 떠날 것을 권유하였다. 베드로는 듣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신의 가르침을
위하여 로마에 남아 있으려 하였다. 그러나 비니키우스의 권유를 물리친
베드로도 폭군 네로의 절대 권력 아래에 짓밟힌 그리스도의 비참한 자취를
돌아보고 이 위험으로부터 살아 남아 그리스도의 뜻을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신자들의 권유에 못 이겨 일단 로마로부터 몸을 피하기로 하였다.
  동이 틀 무렵 칸파니아를 향하여 남몰래 걸어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베드로 또 한 사람은 그를 따르는 보조 소년 나자렛이었다. 그들은
박해받은 형제들을 남겨 두고 로마를 떠나는 것이다. 길가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다. 적막한 거리에는 두 사람이 신은 나막신의 딸그락거리는
소리만 낮게 울릴 뿐이었다.


  이 때에 금빛의 황홀한 광채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베드로는 발을 멈추고
나자렛에게 물었다.
  "저 빛이 무엇일까?"
  "저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말하였다.
  "누군가 빛 가운데로 걸어온다"
  베드로는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놀라움과 기쁨과 황홀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펴며 부르짖었다.
  "오오 그리스도! 오오 주여!" 하고 땅에 얼굴을 댔다. 늙은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계속하였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나자렛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베드로의
귀에는 슬프고 맑은 소리가 들렸다.
  "네가 나의 양 떼를 버리고 가니 나는 로마로 가서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박히겠다"
  베드로는 말없이 땅 위에 엎드려 있었다. 주의 말씀에 힘을 얻은 베드로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쥐어 들고 걸음을 돌렸다.
  "로마로"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와 전도를 계속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복음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불어났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황제가 전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해 오더라도 살아 있는
전리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진리의 승리가 시작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의 최후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두
사도는 체포되어 바티칸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다. 삶의 최후에
직면하자 수많은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이 세상의 축복을 빌면서 기쁘게 형을
받았다.
  "나는 마침내 성스러운 싸움에서 이겼고 신앙의 길을 지키었으니 정의의 관은
나의 머리 위에 놓일 것이다"
  베드로는 만족한 듯이 숨을 거두었다.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는 주의 은총을 찬양하며 더욱 신앙을 깊이 하고 고요한
시실리아의 영지에 양부모인 플라우티우스 장군과 폼포니아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스 이래의 미적 생활과 고전적 정신의 최후의 풍류가였던 페트로니우스는
네로로부터 죽음을 당하기 전에 친구들을 불러서 성대한 향연을 벌이고 그들에게
이별을 고한 다음 네로를 비판하는 시를 읊고 팔의 동맥을 끊어 그를 사랑하는
여자 노예 에우니케와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쾌락주의자다운 최후를 마쳤다.
  네로의 변덕은 더욱 심해져 아무런 까닭도 없이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자기의
아내 폼피아까지도 죽였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빈덱스와 갈리아 군단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네로는 코웃음만 치면서 여행길에서도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네로는 여전히 극장과 음악에 파묻혀 살았고 광기는 극에 달했다.
  네로의 측근자들은 그가 반란군을 진압할 생각을 않고 마치 역사에 없었던
예술가로 자처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황제가 사실은
몹시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시구를 생각하는 듯 태연한 척하며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그의 행동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해졌다. 수만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가는 또 허물어지곤 하였다. 때때로 그는 눈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도피할 결심으로 파리와 수금을 수레에 싣게 하고 젊은 여자 노예들을
동원하여 낭자군을 만드는 한편 동양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에게 다시 로마로
회군하라는 명령을 내릴까도 생각했다. 또 어떤 때는 반란군을 전쟁으로써가
아니라 노래로써 정복해 보리라는 생각도 했다. 반란군이 노래를 듣고 항복하는
광경을 상상하고서 그는 혼자서 마음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되면 그 놈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앞에 모여들 것이다. 그 때 나는 그들 앞에서 개선 송가를
부르리라. 이것은 아마 후세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 자빠질 획기적인
일일 것이라고 그는 공상했다. 또 다시 피비린내가 그리워지는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나는 이집트만으로도 만족하겠다'하고 갑자기 겸손해지기도 했다.
이럴 때면 그에게 예루살렘 정복까지도 약속해 준 점쟁이가 생각났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한낱 유랑 시인이 되어 하루의 끼니를
구걸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생각하고 전세계의 군주로서가 아니라 대시인으로서
온 겨레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을 상상하고 혼자 도취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는 고민하고 노심 초사하고 악기를 타고 계획을 바꾸고 시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날을 보냈다. 온 세상이 어리석고 텅 빈 무서운 꿈처럼 보였다.
그의 삶은 과대한 표현, 애처러운 시구, 신음과 눈물, 그리고 피의 뭉치나 다름
없었다.


  로마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혼란해졌다. 현실은 이제 그를 위협하기에
충분할만큼 변화되어 있었다.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터였고 네로의 비현실적인 광기는 반란군의 계획에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로마 시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디어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 아내, 형제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네로는 죽음을 절감했으나 광기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아, 위대한 예술가의 종말이란 이런 것인가?"
  이제 누구도 네로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해방된 종들은 이제는 황제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듣고 네로는 자기를 묻을 무덤을 파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기의
몸에 꼭 알맞게 무덤을 파라고 자기 자신이 흙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곡괭이질을 할 적마다 흙이 튀는 것을 보고 네로는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살찐 그 뚱뚱한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이 흘렀다. 그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비극 배우 같은 음조를 띠면서 그가 죽어야
할 때는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시귀를 중얼거리더니 마침내는
자기를 불태워 달라고 소리 질렀다.


  그 때 밖에서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백인 대장이 부하를 거느리고 네로의
목을 가지러 왔다.
  "자아 빨리! 빨리 하시죠!" 하고 해방 노예는 서둘렀다. 네로는 단도를 꺼내어
떨리는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찔렀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찔릴 만한 용기가 없었다. 옆에
있던 에파프로디테가 네로를 부축하여 자기 손으로 그 단도를 눌렀다. 단도는
깊숙히 그 자루까지 목으로 들어갔다. 네로의 두 눈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커다랗고 원망스럽고 그리고 공포로 가득 찬 눈알이었다.
  "사형이 집행 유예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고 백인
대장은 안으로 들어오자 헐레벌떡거리면서 소리쳤다.
  "이젠 다 늦었다! 아아 너의 그 충성!" 하고 네로는 숨가쁜 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 뚱뚱한 목에서 피가 솟아 정원에 떨어졌다. 그는 두 다리를 비비꼬다니
드디어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다음 날 끝까지 남편에게 충실한 악테는 네로의 시체를 값진 보자기에 싸서
향유에 적신 장작으로 화장을 했다.
  이리하여 네로는 폭풍처럼 화재처럼 전쟁처럼 그리고 무서운 전염병처럼
사라져 없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 바티칸 언덕 위에 있는 베드로의 예배당인 로마를 지배했다.
  옛 카페나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금도 조그마한 예배당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거의 다 지워져 보이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