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의 형제들 / 해설
by 송화은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 김희숙(노문학자)
내용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낳은 위대한 작가이다. 그의 마지막 소설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그의 창작 계획에 비추어 보면 미완으로 남은 작품이지만, 이 작가의 문학적·사상적 삶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결산하는 걸작이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카라마조프 집안 사람들이다. 아버지인 표도르와 그의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가 이 집안의 구성원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장편 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번죄 소설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다. 즉, 친부 살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탐욕스럽고 방탕한 노인 표도르와 큰아들 드미트리는 그루센키라는 여인을 두고 질투와 증오 속에서 서로 반목한다. 그러는 중에 표도르가 살해되자, 혐의는 당연히 드미트리에게 간다. 하지만 표도르를 살해한 사람은, 둘째 아들 이반의 정신적 사주를 받은 스메르자코프였다.
스메르자코프가 자살하는 바람에 드미트리의 무죄 입증은 어려움에 처한다. 드미트리는 비록 직접 아버지를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시베리아의 유배길에 오른다.
이렇듯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전개에 재미와 깊이를 부여해 주는 것은, 이 세 아들이 대표하는 인간형이다.
큰아들 드미트리는 무엇보다도 정념(情念)의 인간이고 미학적 인간이다. 그는 '마돈나의 이상' (성스러움)을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소돔의 이상' (추악함)에 이끌리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면성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고, 또 이 양면성이 그가 보기엔 미(美)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미는 마돈나에만 깃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소돔 속에도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는 무서워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드미트리는 말한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그의 여러 모순적인 행동들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인 이반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작품 속에서 서구의 합리주의와 무신론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가 제시하는 무신론의 핵심은,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대심문관의 전설'에 집약되어 있다. 대심문관은, 무지한 인류를 영원히 사로잡을 수 있는 세가지 힘, 즉 기적, 신비, 권위를 거부하고, 지상의 빵 대신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그리스도를 비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겐 선택의 자유, 양심의 자유만큼 짐스러운 것이 없다. 인간은 무력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끌어 줄 강력한 힘과 물질적인 풍요를 갈망하게 되는데,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간적인'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심문관의 논리는 서구적 합리주의, 공리주의, 무신론, 사회주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사이비 메시아주의의 논리이다.
이반이 이러한 논리의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마저 배제된 인간은 아니다. 사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세상,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다. 신이 만든 세상에서 고통받는 인류, 특히 고통받는 어린아이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천국 입장권을 반환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가진 논리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막내인 알료샤는 종교적 인간이고 신앙의 인간이다. 광활한 러시아적 영토에 걸맞는 드미트리의 영혼이 러시아의 현재를 상징하고, 이반의 무신론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당대의 여러 지식인들이 제시한 서구적 합리주의 정신을 상징한다면, 알료샤의 신앙은 작가가 제시하는 미래의 러시아를 상징한다.
작가는 인간 영혼의 자유와 사랑, 그리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하는 신앙만이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진정한 힘이라도 믿는다. 알료샤는 이러한 작가의 믿음을 소설 속에서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 알료샤의 성격과 이념적 입장은 이 작품에서 드미트리나 이반에 비해 완전하게 형상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이 작품이 지닌 미완의 성격과 연관된다. 당초 작가는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이 작품을 구상했고, 이 작품은 알료샤의 어린 시절에 일어난 한 사건, 즉 아버지 살해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료샤가 대표하는 인간형에서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희망과 암시적 대안을 읽어 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자유와 양면적인 본성을 억압하는 대가로 경제적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당대의 어떠한 이념에도 반대했다. 그가 수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유토피아는, 불합리하고 변덕스러우며 때로는 한없이 무능력한 존재인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과 고통, 그리고 수난을 거쳐서 도달하게 될 신의 왕국이었다. 이 신의 왕국은 "만인은 만인에게 죄인이다."라는 죄의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한 죄의 속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다름 아닌 인간성 부활의 희망이 된다.
『카라마토프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가 겪는 고통과 그의 영혼의 부활은 바로 이러한 도식 속에서 전개되며, 이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창작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와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수난을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 깊이 인간 영혼의 신비를 파고 들어간 작가이다. 그는 인간 내면의 온갖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거기에 동참하고 정화된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래서, 자신의 여러 작품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하고 진단한 세계는 19세기 러시아이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직 모든 인간적 모순과 내면의 혼돈, 영혼의 갈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핵 심
이 작품은 친부 살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이 사건과 관련된 카라마조프의 세 형제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탐구했다. 작가는 각각 정념과 지성, 신앙을 상징하는 세 형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의 삶을 좇아 가면서, 무신론적 합리주의가 아닌 수난을 통한 구원을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론적인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모든 인물들과 그들의 목소리(입장)들은 저마다의 논리적, 정념적 근거를 가지고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반향하고 있다.
저 자
러시아의 소설가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1821년, 모스크바의 한 자선 병원에서 가난한 군의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37년 페테르부르크의 공병 학교를 마치고 2년간 기사로 근무했으나, 창작을 위해 직장을 금나두고, 1845년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여,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1849년 사회주의 이념 서클에 가입한 것이 문제되어 체포, 사형 선고를 받지만, 형 집행 직전에 사면을 받아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이후 형 미하일과 <시대>,<세기> 등 잡지를 발행하면서 장편 창작에 몰두한다. 관리의 미망인으로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안나를 만나, 이후 안정된 생활 속에서 『죄와 벌』,『백치』,『악령』,『미성년』,『카라마조프의 형제들』등 걸작을 발표했다. 1881년 1월에 폐병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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