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춘심 /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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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 心[춘 심] / 김영랑

 

──南方春信[남방춘신] · 3

 

이 고삿 저 골목에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유창하다. 정초 나들이에 길거

리서 잠깐 만나 인사하는 소리만도 아니다. 웬 음성을 그리 높이 낼 리도

만무하다. 음향이 봄기운을 타는 것이다. 휭휭 울려난다. 어린애들은 벌써

츰내(호도기)를 만들기로 댓가지를 부러뜨린다. 더 일찍 아는 것 같다. 

언덕에 산소나 물그대로 의자(倚子)를 만들고 흥청거리면서 늬나늬 늬나누

── 를 분다. ‘  허참’ , ‘   하는 소리가 윳댁()에서 들

려 나온다. 사이좋은 고부(姑婦)간의 살림 수작이 그러하다.

 

전라도서도 이곳 말이란 것이 처음 듣는 이는 아직 말이 덜 되었다고 웃

, 자주 듣는 이는 간지러워 못 듣겠다고 얼굴에 손까지 가리운다.

시인 C는 감각적인 점에서만도 많이 잡아 써야겠다고 한다. 통틀어 여기

말이 토정(吐情) 같으나 타도(他道) 말인들 의사 표시에 그치기야 하느냐마

는 보다 더 토정일 것 같다. 우리가 등이 가려우면 긁고 꼬집으면 아야야를

발음하는 것과 그리 거리가 없는 말일 것 같다.

 

여자의 말이 더욱 그러하다. ‘  이응   하는 부정어가 어디 또

있는가.

 

길거리에서 떠드는 말소리가 공중으로 휙 날아 들어온다. 봄이 아니고야,

봄이 아니고야 그럴 수 없다. 바람이 댓잎 끝을 새어 나오는데 끝이 다 퍼

져 버려서 말소리가 타고 오는 것일까. 어디 그뿐이랴, 장차는 산골짜기마

다 찾아가서는 그 간질간질한 안개 아지랑이를 이리 몰고 저리 몰고 다닐

바람이다. 그러노라면 안개 아지랑이 멋지게 계곡에 숨을 날도 앞으로 며칠

아니다.

 

멋이란 말에 언뜻 생각키우는 것이 지용의  이다. 호남 해변에 가객

기생(歌客妓生) 사회를 중심으로 멋이 발전했을 것 같다고 하여 서경 시문

(書經 詩文)에서 보는 것은 멋이 아니라 운치(韻致)라 하고 멋은 아무래도

명창 광대(名唱 廣大)에 물들어 온 것 같다고 하였다. 시문이 운치와 맛이

어떻게 틀린다는 것을 얼른 말하기는 좀 어렵겠으나 명창 광대께서 멋이 물

들어 온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선비에게서 광대 명창이 멋을 배우려 애를 써도 격을 갖추지 못하고 떨어

지는 수가 많기 때문에 흔히 그들은 신멋을 범한다. 그러고 보니 죄가 멋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격 높은 평조(平調) 한 장()을 명창 광대가 잘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는 것과 그 양

반 멋있다는 것과는 전연 말뜻이 틀린다는 것이다. 관북 관서(關北 關西)

친구를 많이 아는 우리는 지용의 멋있는 훌륭한 시품(詩品)도 알 만하다.

수심가나 근대 일찍 육자배기가 퇴폐적일지는 모르되 남도 소리에 대한 지

용의 견해엔 좀 승복치 못할 점이 많다 하겠다. 멋이 소리에만 있을 바 아

니거니 운치에 무릎을 꿇어놓는 것이 부당할까 생각한다.

 

선비 가객이 소위 신멋을 범치 않음을 보라. 멋의 항변이 길어졌으나 지용

은 평양서 멋진 기생을 못 만나 보신 듯하다.

 

코트 바닥은 내일쯤은 백선(白線)을 그을 만하게 습기가 걷혔다. 정연히

라인을 그어 놓아도 난타(亂打)라도 할 벗의 흰 운동복이 되었을까. 사동을

보내 둔다. 론 테니스, 내 청춘의 감격이 무던히 바쳐진 론 테니스, 흰 라

, 하얀 네트, 흰 유니폼, 하얀 볼, 봄볕에 그들은 발랄하다. 라켓 든 손

을 흐르는 혈조(血潮), 1초 전에 만들어진 정혈(精血)이리라.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나는 론 테니스에서 얻었다 함이 솔직한 고백일 것 같다. 사동이 모

래와 흙을 파들여 온다. 화단에 신장(新裝)을 시작한다. 이 구석 저 구석

모여 있는 낙엽은 한번 진 채 겨울을 났다가 이제야 쓸리운다. 화단에 구르

는 낙엽은 겨울의 한 운치임에 틀림없다. 후엽(朽葉)을 추려 보니 몇 종류

안 된다. 동청(冬靑)의 표()가 안 붙어 있는 초화(草花)가 이곳에서는 곧

잘 그대로 동청(冬靑)한다. 흙을 새로 깔고 잔디를 떼어다가 선을 두르고

화단의 흙을 만지며 떡 고물 가을 감()이 난다.

 

朝鮮日報[조선일보] 194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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