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 / 김영랑
by 송화은율春 雪[춘 설] / 김영랑
── 南方春信[남방춘신] · 1
때마침 구정 초(舊正初) 보름 전이라 예년 같으면 지금 한창 설놀이에 날
가는 줄 모를 판이다. 안방에서는 윷판이 벌어지고 사랑방에서는 여러 가지
내기판이며 풍류 시조까지 떠들썩할 것이요, 마당에 모인 붉은 댕기들은 널
판을 서넛은 갖다 놓고 어머어마 높이 뛰고, 고삿길에서 돈치던 놈들은 담
넘어 보려다 넘어지고 요새 밤 같이 초생달이 차츰 커가노라면 남방(南方)
에서는 가장 큰 설놀이라 할 줄다리기도 시작될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금년부터는 시골서들도 양력과세를 안할 수 없게 된
관계로 실상은 음 · 양력간에 설 쇠는 것이 흐지부지가 되고 만 셈이다. 세
말 정초(歲末正初)가 눈에 뛸 만큼 번거롭지도 않았고 거리의 세배꾼이며
선산에 성묘꾼도 아마도 많았던 것 같다. 풍습과 기분이란 게 묘한 것이어
서 먼저 설 때엔 잠자코 있던 축들이 이번 설에는 하고 잔뜩 벼르고들 있었
던 모양인데 세찬(歲饌) 보름께쯤 시원한 눈이 척설(尺雪)이 넘고 그 위에
또 내리고 또 쌓이고 하는 통에 제법 말만씩한 놈들이 모퉁이에다 널판을
갖다는 놨으나 암만해도 뛸 수가 없어 한숨만 쉬는 것을 본다.
눈도 눈도 첨 보았다. 남쪽엔 눈이 왜 없을 거냐마는 40년래 처음 보는 눈
이라니 우리 눈알이 휘둥그래질 밖에 없다. 스키를 보내라, 전보를 친다.
스케이트를 K주(州)까지 사러 간다. 야단들이었다. 전보 주문이란 것이 그
럴 법한 것이 이곳 눈과 얼음이 해만 번듯 나면 녹아 버릴 것이 정해논 일
아닌가. 척설(尺雪)이라 치더라도 흙이 따습더라도 완연히 따스울 것을 이
곳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까닭이다. 더러 희한한 눈이 그렇게 내려서 스키가
뭔지 스케이트 맛이 어떤 것인지를 남방 사람들도 교습받을 필요가 없지 않
다. 겨울에 화로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 장판의 방이 따습기나 했으면 마련
오줌도 참고 앉아서들 시조나 읊고 풍류나 좀 하면 몇 날 안 되는 겨울이라
어느새 가고 없다. 이번 눈통에 그래도 그 시조만은 재미를 본 셈이었다.
‘설월(雪月)이’ 하든지 ‘적설(積雪)이’ 하든지 도무지 실감있게 불러
보지는 못했을 축들이 요번에는 한량(閑良)은 둘째치고 초월(初月)도 ‘설
월(雪月)이’ 요, 산옥(山玉)도 ‘적설(積雪)이’ 다. 눈 설(雪)자는 시조를
모두 가리켜 내려는 것이다. 시조가 아니더라도 우리 말로 ‘눈’하기보다
한자로 설(雪)자가 눈에 더 가까운 것도 같아서 ‘눈’ 을 넣어 시조를 주면
설(雪)자 넣어 달랜다. 눈이 쌓이고 있을 때 실컷 설자(雪字) 시조를 읊어보자는
심사도 그럴법히 여겨진다. 그 눈이 스키나 스케이트를 산 축들의
염려를 가라 앉히지 못하고 그만 이번 비에 자취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그
럼 그렇지, 신문에 삼방(三防)과 금강(金剛)에 새로 강설(降雪)이 심하여
이제부터 스키가 시작될 것을 써는 놓았고 전보친 축들의 원망도 사주어야
될 법하다.
눈이 없을 적에 정초 비가 왔더라도 틀림없이 봄비의 맛이 나는 곳이라 반
삭(半朔)을 넘어 천지를 하얗게 덮었던 눈 때문에 겨울도 지리하다는 감이
없지도 않았던 것을 단 하룻밤 비에 허망하게도 물러간 것이 겨울이요, 찾
아든 것이 벌써 봄밖에 없다.
바닥이 따스우니 눈 속에서도 자랐을 것, 수선(水仙)은 한 치가 넘는다.
보리꾼은 호미로 캐어 죽을 끓일 만큼 소복소복 커올랐다. 봄이 풍기는 새
파란 잎이 색깔이 벌써 들었고, 흙빛이 더 검어진 것이 분명하여 김이 솔솔
오르고 있다.
내 눈 감고 잠자리에 들어도 매양 슬프고 꿈이 오히려 서러운 때가 많아져
서 아침이면 참새보다도 귀를 더 속히 뜨고 자리를 걷어차면 뒷산을 오른
다.
오늘 아침은 이불 속에서 문득 김이 무럭무럭 오를 강물이 보고 싶어져서
그대로 내걷기 30분, 저자를 지나고 들을 지나고 강언덕에 나섰다.
강물은 앞산 얕은 봉우리를 돋는 햇발에 잠잠히 이는 물결뿐, 밤새 생긴
밤의 흐름이라 그럴 법히 어린 태가 돌고 무럭무럭이라기보다 그저 김이 서
리는 정도로 서너 치 물김이 오르고 있다.
《朝鮮日報[조선일보]》 1940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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