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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 /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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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 水[춘수] / 김영랑

南方春信[남방춘신] · 2

 

이 강물의 나이는 열 여섯을 잡을까. 더구나 오늘이 초여드레, 조금 물이

많을 리 없다. 바다는 바로 밑이다. 갖다 뵈면 쭐 ── 따뤄 질 성싶다. 

배가 들어올라치면 오늘 이 강물은 그 배가 다 마셔 버려도 마셔 버릴 듯

줄기 가늘다.

 

눈 녹은 뒤 초봄이 이 강물에서 얼른 보인다. 며칠 전까지 강가에 얼어붙

었던 얼음장이 녹기에 이틀이 다 못 갔다. 오리 갈매기가 저 밑 바닷가로

몰리는 듯하더니만 우 ── 하니 되돌아온다. 기고 날고 톰방거리고 강물이

너무 순해 보여서 그런 성싶다. 너무 허리가 늘어서 그런 성싶다. 그놈들이

아침 날빛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그런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햇빛을 좋

아한다는 것은 실상 그리 천연(天然)일 수가 없다. 보람이니 설움이니 건강

이니 지지리 햇빛은 쌍화탕이나 다를 거 무엇이냐. 햇빛을 사람이 좋아하기

로 아무래도 오리 갈매기보다는 하등열질(下等劣質)이다. 사람은 차라리 해

를 등지고 사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광명을 찾는다는 말부터가 따져 보

면 수상하다.

 

물새와 햇발! 하루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즐겨 볼 수 있다면 세사

(世事)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천리 만리로다. 그 사람들 틈에서 시()

어쩌다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다. 몇 세기에 한 사람 적선(謫仙)이 난다 하

더라도 사람에게 큰 자랑이 아닐까. ‘베토벤’ , ‘모짜르트’ , ‘슈베르

’ ‘쇼팽 이 났다는 것은 사람의 큰 자랑일 밖에 없다. 한 발 남짓을 넘

는데 원근(遠近)의 왕래를 가지고 나룻배도 물 위에 떴다. 물새가 난다. 

다로 바다로 난다. 해가 오른 뒤 사람과 오래 사귀는 것이 위험함을 물새는

안다. 물결 하나 까딱 않는 강물, 나룻배는 잠잠히 오르는 물김만 헤치고

가며 오며 한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같아 만지니 따스하다. 거울 있어

본다면 불그스레하리라. 아까 말한 건강이 다 이렇게 얻은 건강이 죄 될 것

도 없으므로 우리는 감사할 것도 없이 그저 건강할 뿐이다.

 

발을 돌려 딛는다. 어느 해 이른 봄, 그 아침도 다 이런 아침이었으리라.

발을 벗고 사장(沙場)을 들어섰다가 몹시 차서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다.

겨우 봄맛 담근 강모래를 섣불리 다룰 것도 없다. 산은 모두 제 품 안에 지

난 삼림암석(森林岩石)을 다 드러내어 보이고는 있지마는 저마다 얼굴을 환

히 드러내지 않는다. 더구나 기압의 탓인지 극히 엷은 안개가 이 골짝 저

골짝에 얕이 몰려 있는 초봄인듯한 숫스런 태와 간지러움까지 가벼이 싣고 있다.

몇 날이 못 가서 벗어질 어린애 낯에 솜털이 아니냐.

 

비로 쓸 것도 없다. 박사(薄紗)로 가리워진 명모(明眸)로 하여 우리는 마

음 더 설렐 수가 있다. 아까 지나던 저자가 거진 다 헤어진다. 그 아낙네가

찬물에 들어 깊이 든 조개를 잡을 수는 없었다. (석화)도 그리 흔할 수는

없다. 누구 하나 이 아침 옷 속에 손을 여민 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시렵지

않은 탓이다. 저자꾼이 온통 아낙네들인데 추워 뵈지를 않고 활발하다. 

으로 추위는 없다는 것쯤 다 알아버린 까닭이다. 한낮쯤 하여 의자(椅子)

미나리 방죽과 볼통갓 동바를 내려다보고는 코트 위에다 놓고 잠잠하고 따

스한 날빛을 수북이 받으며 앉았다. 봄동은 눈에 눈되고 비에 씻기웠으나

외려 더 싱싱하고 탐스럽고 번듯한 품이 생으로 뜯어먹음직도 하다. 요새

미나리가 얼마나 미각을 당기는가, 고속(故俗)을 떠나 서울에나 사는 친구

에게 물어 본다면 그는 금방 혓바닥에 침이 돌리라. 그 미나리가 자라기 서

너 치보다 더 자라면 캐어 먹는 미나리가 아니라 베어 먹는 미나리가 된다.

맛이 떨어질 것은 물론이요, 운치가 있을 턱이 없다. 미나리 봄동이 정초부

터 밥상에 오르는데 봄동이 더 전동혹한(前冬酷寒)으로 실수(失手)될 수가

있으나 유자(柚子) 내가 퍼렇게 사흘 동안 언제고 우리의 진미가 아닐 수

없다.

 

朝鮮日報[조선일보] 194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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