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천리를 올라온다 / 김영랑

by 송화은율
반응형

천리를 올라온다 / 김영랑

 

천리를 올라온다

또 천리를 올라들 온다

나귀 얼렁소리 닿는 말굽소리

청운의 큰 뜻은 모여들다 모여들다.

 

남산 북악 갈래갈래 뻗은 골짜기

엷은 안개 그 밑에 묵은 이끼와 푸른 송백

낭랑히 울려나는 청의동자(靑衣童子)의 글 외는 소리

나라가 덩그러니 이룩해지다.

 

인경종이 울어 팔문(八門)이 굳이 닫히어도

난신외구(亂臣外寇)더러 성()을 넘고 불을 놓다.

퇴락한 금석전각(金石殿閣) 이젠 차라리 겨레의 향그런 재화(才華)로다.

찬란한 파고다여, 우리 그대 앞에 진정 고개 숙인다.

 

철마가 터지던 날 노들 무쇠다리

신기한 먼 나라를 사뿐 옮겨다 놓았다.

서울! 이 나라의 화사한 아침 저자러라

겨레의 새 봄바람에 어리둥절 실행(失行)한 숫처년들 없었을 거냐.

 

남산에 올라 북한관악(北漢冠岳)을 두루 바라다보아도

정녕코 산() 정기로 태어난 우리들이라.

우뚝 솟은 묏부리마다 고물고물 골짜기마다

내 모습 내 마음 두견이 울고 두견이 피고

 

높은 재 얕은 골 흔들리는 실마리 길

그윽하고 너그럽고 잔잔하고 산뜻하지

백마 호통소리 나는 날이면

황금 꾀꼬리 희비교향을 아뢰리라.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