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망(春望)
by 송화은율춘망(春望)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물만 있고
성 안의 봄에는 풀과 나무만 깊어 있구나.
시절을 애상히 여기니 꽃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처자와)이별하였음을 슬퍼하니 새조차 마음을 놀라게 한다.
전쟁이 석 달을 이었으니
집의 소식은 만금보다 값지도다.
흰머리를 긁으니 또 짧아져서
다해도 비녀를 이기지 못할 것 같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두보
갈래 : 언해(원시 : 오언율시)
연대 : 두보가 46세(757년)덕 2년에 지음
표현 : 선경후정, 대구법, 과장법
제재 : 전란의 상심
구성 : 두련, 함련, 경련, 미련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물만 있고
성 안의 봄에는 풀과 나무만 깊어 있구나. (1-2행 전란으로 인해 폐허가 된 모습)
시절을 애상히 여기니 꽃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처자와)이별하였음을 슬퍼하니 새조차 마음을 놀라게 한다.(3-4행 전란으로 인한 상심)
전쟁이 석 달을 이었으니
집의 소식은 만금보다 값지도다. (5-6행 가족에 대한 그리움)
흰머리를 긁으니 또 짧아져서
다해도 비녀를 이기지 못할 것 같구나. (7-8행 쇠약한 육신과 늙음에 대한 탄식)
주제 : 전란의 비애, 전란으로 인한 상심
내용 연구
수도가 적에게 함락되어 패하고 남은 것은 산하와 같은 자연뿐이다.
장안성 안은 흥겨운 봄이건만 한갓 초목만이 우거져 있을 뿐이다라는 뜻으로 1,2구 두련은 전란으로 인하여 폐허가 된 외경을 그린 것으로 대구적 표현이다.
함련에는 다음과 같은 주가 있다. " 꽃과 새는 항상 평화로운 때 즐기거늘, 이제 꽃을 보니 눈물이 흐르며, 새소리를 들으니 마음을 놀라게 되는지라, 세상이 얼마나 난세인가 알 수 있다. "라는 말로 시적 화자의 감정이입이 된 구로, 3,4구가 대가된 대구법이다
고지 눈므를 쁘리게코 : 꽃이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작자가 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표현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을 들자면 '맑은 햇살이 나를 맞이한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맑은 햇살(객체)이 나(주체)를 맞이할 수는 없으므로 내가 맑은 햇살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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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구는 3구를 이어받아 전란에 싸인 시국을 부연한 것이고, 6구는 4구를 이어받아 가족과의 이별의 슬픔을 부연한 것이다. '
'을 '춘삼월'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전란에 시달린 고난과 멀리 떨어져 소식조차 알 길없는 처자에의 그리움과 상심이 심화되어 비녀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머리카락이 빠져 있다고 표현함으로써 전란의 비극을 침통하게 표현했다. 8구는 과장법
작품을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보자.
[1] 보기를 읽고 두보 문학 번역의 이유를 문학 번역의 이유를 문학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이끌어주기 : 문학의 보편성의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보편성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번역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중세 시대 문학은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한시를 모범으로 하여 조선의 문인들이 창작에 임했다는 점에서 볼 때, 두보의 한시는 모법이 될 만하였기에 번영한 것이다. 또한 유교를 숭상한 조선 왕조에서 두보의 시는 유교적인 속성을 잘 반영하였으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두보의 시는 윤리와 도덕의 지침서라는 점에서 두보의 문학은 번역할 이유가 충분하였다. 그것은 보편적인 관점에 부합하였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점에서 두보의 문학은 번역할 이유가 충분하였다. 그것은 보편성이라는 관점으로 묶어볼 수 있다.
[2] 구성 창작 : 이 작품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우리말로 다시 번역해 보자.
이끌어주기 : 어떤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내용과 함께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두보가 46세 때 지은 작품으로 아내와 자식을 만나러 갔다가 안녹산의 군대에게 잡혀서 장안에 연금되었을 당시(757년) 전쟁의 비극과 혈육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노래한 시이다. 이러한 내용을 배경적 지식으로 알려 주고 이를 고려하여 알려 주고 이를 고려해서 번역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구성 창작 활동이지만 주어진 작품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리 어려운 활동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번역한 내용을 돌려 읽고 수정해 주는 활동을 가미하면 좀 더 효과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예시답안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물만 그대로 남아 있고
성 안의 봄에는 풀과 나무만 그 색이 짙구나.
지금의 시절이 생각하니 꽃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처자와 이별하였음을 슬퍼하니 새조차 마음을 놀라게 한다.
전쟁의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되니
집의 가족들의 소식은 만금보다 더 귀하구나.
횐머리를 긁으니 또 짧아져서
남은 머리를 다 모아서 비녀를 꽂지 못하겠네.
이해와 감상
두보의 나이 46세 때 봉선현에 기식하고 있는 처자를 만나러 갔다가 백수에서 안록산 군에 사로 잡혀 장안에 연금 되었을 때 지은 오언 율시의 작품으로 각 2행씩이 모여서 하나의 연을 이룬다. 안녹산군에게 폐허가 된 장안의 모습과 처자를 그리며 시국을 걱정하는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폐허(廢墟)가 된 외경 묘사로써 시상을 불러 일으키어 두련(頭聯)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구절로, 나라가 망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풀과 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세사(世事)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새가 울어도 헤어진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놀란다고 한 함련은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으로, 난리통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두보의 간절한 심회를 잘 표현하고 있다. 경련에서는 전쟁(戰爭)이 계속되는 상황을 노래하고, 미련(尾聯)에서는 타향에서 덧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특히, 제 1, 2구의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의 대구적 구성은 전쟁 뒤의 어지러운 세상을 꿰는 듯이 그렸고, 듣고, 보면 감흥에 넘칠 꽃과 새마저도 도리어 슬픔을 돋군다고 생각을 이은 그 절묘한 구성은 가히 시의 극치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심화 자료
두시언해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한시를 언해한 책. 원제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이다. 25권 17책. 활자본. 을해자(乙亥字).
〔간행경위〕 초간본은 세종·성종대에 걸쳐 왕명으로 유윤겸(柳允謙) 등의 문신들과 승려 의침(義砧)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1481년(성종 12)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있는 조위(曺偉)의 서문에 의하면 간행목적이 세교(世敎)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간본은 목판본으로서 초간본 발간 이후 150여년 뒤인 1632년(인조 10)에 간행되었다. 장유(張維)의 서문에 의하면, 초간본을 보기 힘들던 차에 경상감사 오숙(吳栗)이 한 질을 얻어 베끼고 교정하여 영남의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간행시켰다고 한다. 이 중간본은 초간본을 복각(覆刻)한 것이 아니라 교정(校正)한 것이므로, 15세기 국어를 보여주는 초간본과는 달리 17세기 국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어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체재 및 특징〕 체재는 두보의 시 전편(全篇)인 1,647편과 다른 사람의 시 16편을 기행·술회·회고·우설(雨雪)·산악·강하(江河)·문장·서화·음악·송별·경하(慶賀) 등 52부로 분류하였다. 국어사적으로 볼 때, 초간본과 중간본의 비교연구는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로의 언어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초간본에는 방점(傍點) 및 반치음 戇, 窮 등이 사용되었으며, 자음동화 현상이 표기에 뚜렷이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구개음화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중간본은 방점과 戇의 소실을 비롯하여 窮이 사용되지 않을 뿐더러 말음 ㄷ의 ㅅ으로의 변화현상, 자음동화 현상의 표기법상 노출, 구개음화현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중간본의 언어 차이에 의한 국어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최초의 국역 한시집(漢詩集)이라는 점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순수 고유어를 풍부하게 구사하고 있는 점, 그리고 문체에 있어 운문의 성격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점 등 국어국문학연구에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 본〕≪두시언해≫의 중간본은 규장각도서와 서강대학교 도서관 등 각지에 그 완질(完帙)이 산재되어 있으나, 초간본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완질 25권 중 권1·2·4·5·12의 5개권이 발견되지 않고 그 나머지만 현존하고 있다.
초간본의 권 3·7·8·9·10·16·17·19·20·21·22·23은 이겸로(李謙魯)가, 권10·11·25는 이병주(李丙疇)가, 권7은 이희승(李熙昇)·김형규(金亨奎), 권10은 이능우(李能雨), 권13은 전형필(全灐弼), 권14는 조참연(趙參衍), 권15·16은 정철(鄭喆), 권18은 최현배(崔鉉培), 권25는 이관구(李寬求) 등이 소장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에 권6·7·11·15·16·24, 보성고등학교의 석남장서(石南藏書)에 권3, 연세대학교에 권6, 동국대학교에 권20·21이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의 현존본 중 권3·9·18·19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1954∼1959년 통문관(通文館), 1976·1978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년 홍문각(弘文閣) 등에서 영인되었다.
≪참고문헌≫ 杜詩諺解批註(李丙疇, 通文館, 1958), 杜詩諺解論釋(全在昊, 宣明文化社, 1969), 杜詩諺解의 國語學的 硏究(全在昊, 二友社, 1975), 中世語의 한글 資料에 대한 綜合的인 考察(安秉禧, 奎章閣 3, 서울大學校圖書館, 197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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