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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랑전(崔娘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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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랑전(崔娘傳)

태수가 관아에 돌아온 뒤로 일념으로 최랑을 잊지 못하여 틈을 타서 최랑에게로 다시 가려 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갑자기 벼슬이 떨어져 곧장 도성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를 전송하려고 마을 사람들이 모였을 때, 태수는 최랑이 있는 남촌으로 달려가서 함께 가자고 하였다. 최랑의 어미가 눈물을 흘리면서 여쭈었다.

"내 딸이 불행했기에 사또께서 파직을 당하셨으니, 스스로 박명함을 한탄할 뿐이지 누구를 원망하오리까? 데리고 가시겠다는 높은 뜻에 깊이 감동해 마지않사옵고, 하물며 토사 덩굴은 이미 송백에 서려 있사옵고, 꽃과 버들은 이미 꺾는 이에 맡겨졌으니, 죽고 살고 간에 명령만 따를 바입니다. 어찌 감히 모시고 가기를 사양하오리까? 다만 어린것이 깊은 가정 안에서만 자라 문이나 뜰밖에도 나가 본 일이 없어, 먼 길을 휘몰아쳐 가다 보면 반드시 노독이 날 것입니다. 잠깐 몇 해만 말미를 주시어 성장하기를 기다려 보내드린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또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에 남쪽 땅으로 발령받아 내려오신다면 이 또한 편리할까 하옵는데, 나으리 뜻이 어떠실지 모르겠사옵니다."

 

태수가 파직당한 것쯤은 개의치 않으나, 이별하기가 어려워 최랑을 꼭 데리고 가려 했었으나 어미의 말이 매우 사려 깊은 얘기이므로 마지못해 허락하고 초연히 어쩔 수 없어 할 뿐이었다. 내일이면 멀리 떨어져야 하겠어서 밤새도록 떠날 얘기에 눈썹에는 시름이 서리고 볼은 눈물로 얼룩져, 어허 한숨짓고 혀 차는 소리가 창 밖에까지 들리었다. 태수는 떠나기에 임하여 최랑 어미에게 다시 일렀다.

"애당초 데리고 가려 했으나 일이 뜻과 같지 않게 돼서 쓸쓸한 행색이 무언가 잃어버린 것만 같소. 몇 해씩이나 긴 기한은 들어주기 어려우니, 명년 봄을 기다려 데려갈 생각이오. 나머지 말은 다시 않겠으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마오."

 

낭자의 어미가 말했다.

"감히 명대로 아니하오리까?"

 

이에 일어나 말을 타려 할 때, 최랑의 어미는 절하여 보내면서 울어서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하였고, 낭자 또한 뜰에 내려 절하며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태수도 처참한 낯빛이 되어 차마 바로 굽어보지 못하고, 오직 말 위에서 자주자주 돌아볼 뿐이었다.

 

이렇게 한 번 헤어진 뒤로 천 리를 격하고 보니 구름은 아득하고 소식조차 끊겼는데, 구슬 창에 앵두꽃은 두 번이나 다시 피고 졌다.

 

하루는 어미가 딸을 보고 눈물지으며 말하였다.

"나으리가 벼슬이 떨어져 돌아가던 날 1년 기한을 허락하셨는데, 이제 2년이 지났건만 소식이 막연하니, 어찌 무심하기가 이와 같을 줄 알았겠느냐? 너의 진사님은 나이도 있으시고 부귀를 누리시며 지위는 높고 재산도 많으니 어찌 소진(蘇秦)이 같은 교만한 마음이 없겠느냐? 옛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할 것이니 반드시 무릉 땅 이름난 색시를 맞이해 들였을 것이다. 일찍이 이러할 줄을 알았더라면 동행함만 못했을 것을, 공연히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리오?"

 

서로 부둥켜 안고 한참 이리 울고 있을 때, 여자종이 대문께 나갔다 들어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가씨 그만 우시와요.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

물으니 과연 이씨 댁에서 하인이 왔다는 것이었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게 놀라고 기뻐하며 그 내력을 물으니, 편지 한 통을 낭자에게 받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편지에 씌어 있기를,

"서릿발이 정히 높은데, 꽃다운 형편이 어떠한고? 한 번 헤어진 뒤로 이제 이태나 되었네그려! 바람을 향해 정을 날리니 어쩔 줄을 모르겠네. 올 때의 굳은 언약은 일 년을 기한으로 정했으나, 세상일이란 연고도 많아 어쩔 수 없이 천연했으니, 나의 허물이라기보다 조물주의 시기하심이로세. 이제 조정의 은혜를 입어 안주 통판으로 제수되었기에 그대가 서울에 오기를 기다려 동행코자 하니, 행장을 독촉해 길에 올라 갈 기약에 뒤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최랑 집에서는 글을 받고 크게 기뻐 곧장 행구를 차려 좋은 날을 가려서 떠나려는데, 어미는 문밖에 전송나와 울면서 하소연하였다.

""처음에는 기한을 어긴다고 원망하였는데 이제는 다시 데려간다고 한이로구나! 너는 갈 곳을 얻었다지만 나는 누구를 의지하리오? 망망한 이 이별은 하늘이나 땅만이 알아 주리라."

낭자가 이를 말려 말하였다.

"당초에 나를 나으리께 허락할 적에 오늘처럼 멀리 떠나보낼 줄을 몰랐습니까?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애를 태운들 어찌하겠습니까? 서울이 비록 멀다지만 어찌 돌아와 뵈올 날이 없으리까?"

 

어미는 한 때의 이별이나 빈 창자가 찢어지는 듯하건만 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떨치고 갔다. 배웅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녀의 지극한 정의에 이렇게 멀리 헤어지는데 딸아이는 전혀 서글퍼하는 기색이 없으니, 딸의 박정함이 이럴 줄 몰랐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한 5리쯤 가서는 자기 집 쪽을 돌아보고 소리를 가누지 못하고 통곡하며 가니, 딸의 마음에는 눈물을 보여 공연히 슬픔과 괴로움만 도울 게 아니라 어미의 마음을 위로함만 못하다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략)

 

요점 정리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한문필사본.

주제 : 최랑과 이 여택의 비극적인 사랑

표현상의 특징 : 서술자가 작품에 개입하여 등장 인물의 심정을 독자에게 해설해 주고 있으며, 특별한 장치 없이 우연한 요소에 의해 사건이 전개됨.

작품의 특징 :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현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사실성이 두드러진다는 것, 둘째, 전기적 서술 전통에 얽매여 전기적 낭만성이 위축되있다는 것, 셋째, 사회 환경과 현실 세계의 횡포에 유린당하는 가련한 여주인공의 비극적 좌절을 그려 억압적인 현실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줄거리 : 계림( 遽 林) 땅의 최랑(崔娘)은 일찍이 편모 슬하에서 자란다. 마을의 유지 몇몇이 그녀를 첩으로 삼겠다고 나서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랑의 나이 13세에 이미 재색이 드러나 인근의 칭찬이 자자했으나, 본시 천적(賤籍)에 속했던지라 다른 천인들 틈에 끼여 관청에서 복역하였다. 그 때 관아의 백장(伯長)이 그녀를 아깝게 여기던 중, 마침 그와 의형제를 맺은 바 있는 곡강태수(曲江太守) 해서문관(海西文官) 이여택(李汝澤)에게 주선하였다.

이여택은 새삼 그녀의 재색에 감동하고 혼례를 치르게 된다. 최랑은 내직에 발령받은 태수와 일년을 기한으로 이별을 한다. 그러나 두 해나 넘어서야 겨우 안주통판관(安州通判官)이 된 태수와 어렵게 상봉하게 된다.

그 무렵 통판관은 횡포한 관리 둘을 지나치게 다스려 죽이는 결과가 되었다. 통판관은 그 가족들의 보복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최낭자만 모진 매를 맞게 되었다.

그녀는 경성까지는 겨우 도착했으나 통판관의 품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된다. 통판관은 애도해 마지않았으나, 왕명으로 서주(西州)에 부임하는 몸이 된다. 그에게서 이 비극을 전해들은 낭자의 어머니는 통곡과 비탄에 잠긴다.

이해와 감상

 

작품 속에 나오는 서주나 곡강과 같은 지명으로 보면 중국이 배경인 듯하고 통판 등의 관직이름으로 보아서는 송(宋)나라 때의 이야기인 듯하다. 이는 역시 최랑이라는 천적의 처녀와 사대부출신인 이여택이라는 풍류랑 사이의 기연(奇緣)과 비련을 그린 비극적 염정소설로 볼 수 있다.

최랑과 그녀의 어머니가 처음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제도사회 속에서의 신분적인 극복, 곧 면천(免賤)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작자는 이 소설의 결구에서 다만 홍안박명(紅顔薄命)과 풍류남자의 불행이 예사롭지 않음을 강조했을 뿐이다.

또한, 두 사람 사이의 애정에 시금석(試金石)이 될 만한 사건의 설정, 또는 긴장의 계기가 될 만한 제3의 강력한 연적 등이 전혀 없어 극적인 생동감이 빠진 흠이 없지 않다.

대신, 천신만고 끝의 행운적 짧은 만남에 뒤미처 급격한 불행이 닥침으로 해서 최랑이라는 천가여인의 비극적 숙명을 한층 극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에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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