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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靑葡萄) - 이육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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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靑葡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꿈꾸며 : 문장지에 발표된 원본시(原本詩)에는 꿈꾸려로 되어 있다. “꿈꾸려라고 해야 하늘이 들어와 박히는 목적이 (민족의 광복을)꿈꾸기 위함이 된다. 만약 꿈꾸며로 하게 되면 하늘이 꿈꾸는 것과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것 두 가지의 의미가 병렬되어 나타나게 됨.

 

(문장 7, 1939.8)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저항 시인 이육사의 대표작의 하나로, 다른 작품과는 달리 치열한 투쟁의 의지가 내면화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청포도라는 사물을 통하여 시의 밝고 선명한 분위기를 형성하여 억압된 시대의 장벽을 넘어서 평화로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잔잔한 마음의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성격 : 상징적, 감각적

심상 : 시각적 심상

특징 : 선명한 색채의 대조

구성 : 청포도로 표상되는 고향을 떠올림(1)

청순한 시간으로 나타나는 고향(2)

아름다운 공간으로 나타나는 고향(3)

전설의 내용(4)

화자가 소망하는 세계(5)

미래에 대한 순결한 소망(6)

제재 : 청포도

주제 : 조국 광복의 염원.(평화로운 삶에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청포도가 상징하는 의미를 10자 내외로 쓰라.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

 

2. 이 시의 대조적 심상의 시어나 시구들을 찾아내어 구별하여 색채별로 쓰라.

* 푸른빛 :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청포

* 흰빛 :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

 

3. 의 의미를 30자 내외로 설명하라.

어두운 역사 속에 괴로운 삶을 겪는 민족이나 지사의 시련

 

4. 이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를 두 문장으로 써 보라.

이 시에서 과거는 청신한 느낌을 주는 푸른빛의 이미지로, 미래는 순결한 느낌을 주는 흰빛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고향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써 조국 광복이 된 평화로운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 감상의 길잡이 1 >

6연으로 된 이 시는 두 연씩 짝을 이루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겠다. 일제하에서 쓰여진 시 같지 않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밝다.

 

내 고장은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며,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는 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라기보다 전설이다.

 

첫째 부분(1-2)에서, 화자는 청포도를 통해 밝은 미래가 담긴 전설을 보고 있다.

전설은 그의 시 󰡔󰡕에서는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으로 나타나는데, 이 시의 두 번째 부분(3-4)에 그 전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청포를 입은 손님청포도에서 유추된 개념인 바, 그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가까운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부분(5-6)은 그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리라는 굳은 믿음을 근거로 손님을 위해 작은 향연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맞는 손님은 너무도 오랫동안 화해롭고 풍요로운 삶을 상실한 채 제 땅에서 유배당한 고달픈나그네이다. 마땅히 주인 노릇을 해야 할 그가 일제에 의해 나그네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 당시의 현실인 셈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이 시는 그것이 지닌 의미 이상으로 뛰어난 시적 표현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 생생한 감각적 표현을 무시한다면 시를 읽는 즐거움은 반감되고 만다.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청포로 대표되는 푸른빛과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으로 대표되는 흰빛의 밝고 선명함은 이루어져야 할 아름다운 꿈의 빛깔이기도 한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李陸史의 그 유명한 청포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고장은 일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공간적 요소이고,칠월은 일정한 계절을 한정하는 시간적 요소이다. 그리고 청포도는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특정한 사물(object)이다.

 

그러니까 청포도의 시작은내 고장/칠월/청포도의 의미 단위로 시간-공간-사물의 세 꼭지점을 지닌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같은 삼각구도의 모태 속에서 여러가지 의미와 이미지가 탄생된다. 청포도를 읽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삼각형의 변화를 추적해 가는 언어의 위상기하학이라 할 수 있다.

 

청포도의 모양을 묘사한 다음 연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확실해 진다.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에서 금세 눈에 띄는 것은 전설하늘, 그리고주저리주저리알알이의 대구(對句)일 것이다.주저리주저리는 포도송이의 선조성(線條性)전설의 지속적(持續的) 시간을 수식하고 있는 말이다. 포도는 줄줄이 열리는 그 연속성 때문에 예로부터 대()를 이어가는 다산성(多産性)의 상징이 되어 왔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처녀들이 포도를 먹는 것을 망측하게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알알이라는 말은주저리의 반복어와 대조를 이루는 말로 파랗고 투명하고 무한한 구형의 하늘을 압축해 놓은 공간성을 묘사한 것이다. 내 고장 칠월로 시작된 청포도는 어느덧 전설의 무궁한 시간과 하늘의 무한한 공간 속에 용해된우주의 포도로 심화되어 있다.

 

그 하늘의 꼭지점이 다시 바다로 변하고 전설의 옛 시간이 약속의 새 시간으로 뻗어간 것이 3연째의 시구들······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이다.

 

자연 그대로의 층위로 제시되었던 청포도의 삼각형이 우주와 일체화한 삼각형으로 심화되고 그것이 3·4연에 오면 인간의 층위, 즉 사회와 역사의 층위로 가 삼각형의 구도가 바뀌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삼각형에서 청포도가 있었던 곡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자신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하늘과 아득한 전설 이 청포도로 들어와 익어가는 것처럼, 먼 바다에서 어렴풋한 약속을 한 청포입은 그 손님이 찾아옴으로써 의 계절은 익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각구조를 통해서 유추해 보면 지금까지 청포 입은 손님이 누구냐로 논란을 빚었던 일들이 참으로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청포(靑袍)’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푸른 도포로 조선조 때 4품에서 6품의 관원들이 입던 관복이라고 적혀 있다. 그 사전적인 뜻풀이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 평자들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많은 답안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 중의 한 답안에는 내 고장 칠월을 양력으로 치면 8월이 되니까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바다에서 온 청포 입은 손님은 우리에게 광복을 가져다 준 미군 병사들이라고 한 어느 국문학자의예언설까지 있다.

 

하늘과 전설이 청포도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처럼 청포 입은 손님은 내게로 오는 것이다. 그것을 우선 음운적 층위에서 보면청포청포도와 음이 같다. 글자 하나가 틀릴 뿐인 것이다. 그리고 색채 이미지 역시 같은 청색 계열이다.

이 시의 전체 기조색이 청색인 것이다. 하늘도 바다도 전설도 모두가 청포도와 같은 푸른 색조이므로 그 손님의 옷이 청포라는 것은 조금도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청색은 흰 돛이나 마지막의 은쟁반, 그리고 모시수건 같은 백색 계열과 대응하는 중요한 색채적 이미지를 자아낸다.

 

이를테면 음성이나 영상으로 보면 왜 하필 청포인지 금세 납득이 간다. 다만 소리나 영상의 감각적 기능과 어울리게 되는 관념(이미지)의 부분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의 구조를 결정하는 삼각형의 꼭지점들의 변화를 보면 된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삼각형의 구조를 앞의 것과 비교하는 청포 입은 사람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저절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에서 우리는보는 포도,상상하는 포도가 마지막에는따먹는 포도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의 삼각형은 내고장 칠월의 청포도이고, 2의 삼각형의 하늘과 전설로서의 우주적 청포도, 그리고 제3의 삼각형의 따먹는 청포도······.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의 마지막 시행을 놓고 생각해 보자. 공간의 꼭지점은마을하늘바다에서식탁은쟁반으로 응축되었다. 시간은 아득한 옛날의 전설에서마련해 두렴으로 기다리고 예비하는 근()미래의 시간으로 수렴되었다. 그것은 이미 열리고 익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먹는 것을 예비하는 종결의 시간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상물의 꼭지점이 청포도 하나에서 그것을 먹는 나와 손님까지 셋이다. 최후 만찬의 식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예수는 그것이 나의 피와 살이라고 했다.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은 곧 예수와 그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관념적인 메시지가 신체성(身體性)을 갖고 살과 피로 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식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포도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나와 손님이 하나의 신체성(身體性)을 획득한우리로서 일체화한다.

 

육사(陸史)는 그의 시황혼에서도 외로운 수녀(修女), 수인(囚人),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나 아라비아의 대상(隊商)들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지구 끝의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황혼의 골방을 몽상했다.

 

청포도를 먹는다는 것은 곧 하늘의 공간과 전설의 시간을 먹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제1의 자연삼각형, 2의 우주삼각형, 그리고 제3의 인간(사회, 역사)의 그 삼각형이 오버랩될 때 그의 시적 행위는 종결된다. 그것이 육사(陸史)우리의 식탁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로 모든 것이 일체화하는 그 종결의 장소이다.

 

황혼에 있어서의 골방처럼 은쟁반의 작고 둥근, 그러나 눈부신 빛의 금속 위에 육사(陸史)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담았다. 아니다. 마지막 시행들이···좋으련,···마련해 두렴의 원망(願望) 종지형으로 끝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로 담으려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란, 그리고 삶과 인간의 역사란 청포도를 함께 먹기 위해 마련하는우리의 식탁, 그리고 그것이 한층 더 응축된 은쟁반을 예비해 두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몽상의 끝에 있는 것은 언제나 진솔하고 정갈한 다공질(多孔質)의 섬유, 그 모시수건이 아니겠는가. <이어령>

 

< 감상의 길잡이 3 >

1, 2연에서 시인은 청포도가 풍성하게 익어 가는 고향의 7월을 생각하고 있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이 마을 전설'이 그처럼 풍성하게 열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전부터 이 마을에서 가꾸어져 왔으며, 그래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평화로운 삶과 푸근한 옛 이야기들이 포도의 풍성함에 어울려 떠오른다는 의미이다. 또한 포도는 마치 먼 하늘이 영롱한 빛깔의 꿈을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 듯이 싱싱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에서 갑자기 눈을 들어 시인은 지금 그의 곁에 없는 그리운 이를 생각한다. 그는 이 아름다운 곳에 있지 않고 어딘가 먼 곳에서 괴로운 방랑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노래된다. 그러나 언젠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날 그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 부분의 아름다운 색채 감각이 암시하듯이 그 날은 억눌린 소망이 밝은 빛 아래 펼쳐지는 때이며, `내 고장 7'의 참다운 평화가 살아나는 때이다. 그 때 찾아오리라는 `청포를 입은 손님'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괴로운 삶을 겪고 있는 이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미래의 어느 때 그를 맞아 누리고 싶은 삶을 제5연에서 그려본다. 간절히 그리워하던 삶의 꿈이 이루어질 때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다. 이 구절은 단순하면서도 함축성이 깊다. 두 손을 포도의 물로 적신다는 것은 풍성한 식욕과 건강을 암시하면서, 마음을 탁 터놓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긴장된 갈등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화해로운 미래의 삶을 향한 순결한 소망을 `은쟁반'`모시 수건'이라는 사물로 구체화한다. 은쟁반과 모시 수건의 희디 흰 빛깔에서 티없이 깨끗한 기다림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해설: 김흥규]

 

< 감상의 길잡이 4 >

이 시에는 이육사의 시가 흔히 표현한 복잡한 갈등 의식이나 대결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제재인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소재들에 의해 고향의 이미지를 티없이 맑은 세계로 승화시킨 다음, 이런 공간에서 같이 지낼 님()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읊었다.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는 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인물로 대표되는 세계라 하겠다. 결국 이 시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시적 자아를 보여 주어 건강한 정서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휘 선택에 있어서 이 시는 시각 심상이 주도하고 있다.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흰 돛, 청포, 모시 수건등은 이런 특징을 지닌 예이다. 또 이들 시어는 고향을 청순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상징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청포도가 전통적이며 과거와 관계되는 세계를 표상한다면, ‘흰 돛, 모시 수건으로 드러나는 흰색의 이미지는 미래와 관련을 맺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 시의 율격은 두드러진 외형률이 눈에 띄지 않으나 차분하게 그리움을 읊어 나가기 위해 4음보와 유사한 율격을 많이 구사하였고, 부분적으로 3음보격도 활용하였다.

 

이러한 감상은 이육사의 전기적 사실과 관련을 매지 않고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육사가 지사적 정신으로 독립을 위한 행동을 했던 사실과 관련하여 이 시를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읊은 것으로 해석하는 역사주의적 관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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