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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곡(子夜曲) - 이육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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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곡(子夜曲) - 이육사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문장 23, 1941.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노정기>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실향(失鄕)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게 된 화자는 수만호 빛이래야 할고향에 대한 바램을 갖고 있지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른현실의 고향을 생각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그리고 파이프라는 시어를 통해 화자가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화자는 어두운 밤, 어느 항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삭막해져 가는 고향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파이프의 연기처럼 사라져 간 표랑(漂浪) 생활은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지도록 고향을 찾고 있지만, 그 고향은 이미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없는 빼앗긴 땅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이미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이다. ‘파이프에 타오르는 꽃불3연의 연기와 연관된다. 화자에게 있어서 이 담배는 꽃불’, ‘연기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념의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꽃불1연의 이미지와 연관시키면 수만호 빛과 서로 상통하게 된다. 이 때의 불은 고향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희망적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꽃불이 향기롭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희망적 이미지는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시는 담배의 불빛과 연기가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을 상실한 화자는 4연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라는 육사 특유의 역설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포근히 안길 공간, 즉 고향을 상실한 절규로, 그는 결국 매운 술을 마시며 절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슬픔의 격정은 5연에서 강물처럼 표랑의 의미를, ‘처럼 애상과 정감에 젖은 짙은 객수(客愁)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숨 막힐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슬픔의 격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는 파이프에서 타오르는 불빛 같은 향기로운 희망과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는다.

 

물론 화자가 고향을 떠나 북방 이국의 객창에서 느끼는 이러한 실향 의식은 비극적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수만호 불빛이 사라진 대신 이끼만 푸르게 자라난 고향을 원형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바람 불고 눈보래 치는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달려나가는 적극적 저항 의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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