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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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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현부는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 선조는 신인(神人)이었다. 형제가 15명인데 모두 체구가 크고 굉장한 힘이 있었다. 천제(天帝)께서 명(命)하여 바다 가운데 있는 다섯 산을 붙잡게 했던 자가 바로 이들이었다." 한다. 자손에게 이르러서는 모양이 차츰 작아지고 또한 소문이 날 정도로 힘이 센 자도 없었으며, 오직 복서(卜筮 : 점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터가 좋고 나쁨을 보아서 일정한 장소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향리(鄕里)나 세계(世系)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먼 조상은 문갑(文甲)인데 요의 시대에 낙수 가에 숨어서 살았다. 임금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백벽을 가지고 그를 초빙하였다. 문갑은 기이한 그림을 지고 와서 바치므로 임금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낙수후에 봉하였다. 증조는 상제의 사자라고만 말할 뿐,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바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고 와서 백우에게 주던 자이다. 할아버지는 백약으로 하후시대에 곤오에서 솥을 주조하였는데 옹난을과 함께 힘을 다하여 공을 세웠고, 아버지는 중광(重光)인데 나면서부터 왼쪽 옆구리에 '달의 아들 중광인데 나를 얻는 사람은, 서민은 제후가 될 것이고 제후는 제왕이 될 것이다.'는 글이 있었으므로 그 글에 따라서 중광이라 이름한 것이다.

현부는 더욱 침착하고 국량이 깊었다. 그의 어머니가 요광성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기를 뱄다. 막 낳았을 때 관상장이가 보고 말하기를, "등은 산과 같고 무늬는 벌여 놓은 성좌를 이루었으니 반드시 신성할 상이다." 하였다. 장성하자 역상을 깊이 연구하여 천지, 일월, 음양, 한서, 풍우, 회명, 재상, 화복의 변화에 대한 것을 미리 다 알아내었다. 또 신선이 대기를 운행하고 공기를 호흡하여 죽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천성이 무를 숭상하므로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임금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시켜 초빙하였으나 현부는 거만스럽게 돌아보지도 않고 곧 노래를 부르기를,

"진흙 속에 노니는 그 재미가 무궁한데 높은 벼슬 받는 총영(寵榮) 내가 어찌 바랄소냐?"

하고 웃으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를 불러들이지 못했는데, 그 뒤 송 원왕 때 예저가 그를 강제로 협박하여 임금에게 바치려 하였다. 그런데 그가 아직 왕을 뵙기 전에, 왕의 꿈에 어떤 사람이 검은 옷 차림으로 수레를 타고 와서 아뢰기를, "나는 청강사자인데 왕을 뵈려 합니다." 하였는데, 이튿날 과연 예저가 현부를 데리고 와서 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벼슬을 주려 하니 현부는 아뢰기를, "신이 예저에게 강압을 당하였고, 또한 왕께서 덕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와서 뵙게 되었을 뿐이요, 벼슬은 나의 본의가 아닙니다. 왕께서는 어찌 나를 머물러 두고 보내지 않으려 하십니까?" 하였다. 왕이 그를 놓아 보내려 하다가 위평의 밀간으로 인하여 곧 중지하고 그를 수형승에 임명하였다. 또 옮겨 도수사자를 제수하였다가 곧 발탁하여 대사령을 삼고, 나라의 시설하는 일, 인사문제, 그리고 기거동작, 흥망에 대하여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물어 본 뒤에 행하였다.

왕이 어느날 농담하기를, "그대는 신명의 후손이며 더구나 길흉에도 밝은 자인데, 왜 일찌기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예저의 술책에 빠져서 과인의 얻은 바가 되었는가?" 하니 현부가 아뢰기를,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아뢰니, 왕이 크게 웃었다. 그 후 그의 종말을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진신(搢神)들 사이에는 그의 덕을 사모하여 황금으로 그의 모양을 주조해서 차는 사람이 있다.

그의 맏아들 원서는 사람에게 삶긴 바 되어 죽음에 임하여 탄식하기를, "택일을 하지 않고 다니다가 오늘날 삶김을 당하는구나. 그러나 남산에 있는 나무를 다 태워도 나를 문드러지게는 못할 것이다." 하였으니, 그는 이처럼 강개하였다. 둘째 아들은 원저라 하는데, 오 월의 사이를 방랑하면서 자호를 통현선생이라 하였다. 그 다음 아들은 역사책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모양이 극히 작으므로 점은 치지 못하고 오직 나무에나 올라가서 매미를 잡고는 하더니, 또한 사람에게 삶긴 바 되었다. 그의 족속에는 혹 도를 얻어서 천년에 이르도록 죽지 않는 자가 있는데, 그가 있는 곳에는 푸른 구름이 덮여 있었다. 혹은 관리 속에 묻혀 살기도 하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현의독우라 칭했다.

사신은 이렇게 평한다. "지극히 은미한 상태에서 미리 살피며, 징조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방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그러짐이 있는 법이다. 현부같은 지혜로도 능히 예저의 술책을 막지 못하고 또 두 아들이 삶아 먹힘을 구제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옛적에 공자는 광(匡) 땅에서 고난을 겪었고 또 제자인 자로가 죽어서 젓으로 담겨짐을 면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점 정리

작자 : 이규보

연대 : 고려 고종

성격 : 교훈적, 우의적

주제 : 거북을 의인화하여 안분지족의 처세와 절개를 나타냄

줄거리 : 현부, 즉 거북의 선대는 신인이었고 대대로 국가에 공적이 있었다. 그는 은둔한 선비로 점을 잘 쳤고 임금이 불러도 자연 세계가 좋다고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춘추 시대에 세상에 나와서 송 원왕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으나 그 후 간 곳을 모른다. 사대부들도 그를 숭상하여 황금으로 그의 형상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자들까지 있었다. 그의 두 아들은 사람에게 끓임을 당해 죽었으나, 둘째 아들은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은거하여 스스로 통현 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족속 중에 도를 얻어 천세에 이르도록 죽지 아니한 자도 있다.

내용 연구

 

현부[거북을 의인화]는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 선조는 신인(神人)이었다. 형제가 15명인데 모두 체구가 크고 굉장한 힘이 있었다. 천제(天帝)께서 명(命)하여 바다 가운데 있는 다섯 산[중국의 큰 명산으로 화산, 수산, 태실, 대산, 동래]을 붙잡게 했던 자가 바로 이들이었다." 한다. 자손에게 이르러서는 모양이 차츰 작아지고 또한 소문이 날 정도로 힘이 센 자도 없었으며, 오직 복서(卜筮 : 점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터가 좋고 나쁨을 보아서 일정한 장소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향리(鄕里)나 세계(世系)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먼 조상은 문갑(文甲)인데 요의 시대에 낙수[황하의 지류] 가에 숨어서 살았다. 임금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백벽[흰옥구슬]을 가지고 그를 초빙하였다. 문갑은 기이한 그림을 지고 와서 바치므로 임금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낙수후에 봉하였다. 증조는 상제[하느님]의 사자라고만 말할 뿐,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바로 홍범구주(洪範九疇)[하나라 우임금 때 낙수에서 나온 신귀의 등에 있었다는 구장의 문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으로 삼은 것]를 지고 와서 백우[곧 우, 요임금이 우를 백에다 봉했기 때문에 백우라 한 것이다]에게 주던 자이다. 할아버지는 백약으로 하후[우임금의 나라 이름, 하나라]시대에 곤오[하나라의 곤오국]에서 솥을 주조하였는데 옹난[미상]을과 함께 힘을 다하여 공을 세웠고, 아버지는 중광(重光)인데 나면서부터 왼쪽 옆구리에 '달의 아들 중광인데 나를 얻는 사람은, 서민은 제후가 될 것이고 제후는 제왕이 될 것이다.'는 글이 있었으므로 그 글에 따라서 중광이라 이름한 것이다.

현부는 더욱 침착하고 국량이 깊었다[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 그의 어머니가 요광성[북두칠성 가운데 일곱 번 째 별 이름]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기를 뱄다. 막 낳았을 때 관상장이가 보고 말하기를, "등은 산과 같고 무늬는 벌여 놓은 성좌를 이루었으니 반드시 신성할 상이다." 하였다. 장성하자 역상[천체가 나타내는 여러 가지 천문 현상]을 깊이 연구하여 천지, 일월, 음양, 한서[추위와 더위], 풍우, 회명[어두움과 밝음], 재상[재앙과 상서], 화복의 변화에 대한 것을 미리 다 알아내었다. 또 신선이 대기를 운행하고 공기를 호흡하여 죽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천성이 무를 숭상하므로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임금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시켜 초빙하였으나 현부는 거만스럽게 돌아보지도 않고 곧 노래를 부르기를,

"진흙 속에 노니는 그 재미가 무궁한데 높은 벼슬 받는 총영(寵榮)[군주의 총애를 입어 번영함] 내가 어찌 바랄소냐?"[벼슬과의 거리를 두려는 의미]

하고 웃으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를 불러들이지 못했는데, 그 뒤 송 원왕[춘추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 송의 임금] 때 예저가 그를 강제로 협박하여 임금에게 바치려 하였다. 그런데 그가 아직 왕을 뵙기 전에, 왕의 꿈에 어떤 사람이 검은 옷 차림으로 수레를 타고 와서 아뢰기를, "나는 청강사자인데 왕을 뵈려 합니다." 하였는데, 이튿날 과연 예저[춘추 시대 송나라의 어부]가 현부를 데리고 와서 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벼슬을 주려 하니 현부는 아뢰기를, "신이 예저에게 강압을 당하였고, 또한 왕께서 덕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와서 뵙게 되었을 뿐이요, 벼슬은 나의 본의가 아닙니다. 왕께서는 어찌 나를 머물러 두고 보내지 않으려 하십니까?" 하였다. 왕이 그를 놓아 보내려 하다가 위평[송 원왕의 신하로 박사의 자리에 있었음]의 밀간[몰래 말함]으로 인하여 곧 중지하고 그를 수형승[수형은 물이 흐르는 맞은 편, 그 곳을 맡는 관직이란 뜻]에 임명하였다. 또 옮겨 도수사자[산과 늪의 일을 맡는 벼슬 이름]를 제수하였다가 곧 발탁하여 대사령[일관, 천관, 천문을 맡은 벼슬 이름]을 삼고, 나라의 시설하는 일, 인사문제, 그리고 기거동작, 흥망에 대하여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물어 본 뒤에 행하였다.

왕이 어느날 농담하기를, "그대는 신명의 후손이며 더구나 길흉에도 밝은 자인데, 왜 일찌기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예저의 술책에 빠져서 과인의 얻은 바가 되었는가?" 하니 현부가 아뢰기를,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아뢰니, 왕이 크게 웃었다. 그 후 그의 종말을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진신(搢神 : ‘벼슬아치’의 총칭. / 지위가 높고 행동이 점잖은 사람.)들 사이에는 그의 덕을 사모하여 황금으로 그의 모양을 주조[쇠붙이를 녹여 거푸집에 부어 필요한 모양을 만듦.]해서 차는 사람이 있다.

그의 맏아들 원서는 사람에게 삶긴 바 되어 죽음에 임하여 탄식하기를, "택일을 하지 않고 다니다가 오늘날 삶김을 당하는구나. 그러나 남산에 있는 나무를 다 태워도 나를 문드러지게는 못할 것이다."[현부의 맏아들 원서가 죽음을 당하기 전에 자신의 분함을 토로하는 대목으로 분하고 화나는 마음이 담겨 있으므로 절치부심(이를 끊을 정도로 분한 마음)이 어울림] 하였으니, 그는 이처럼 강개하였다. 둘째 아들은 원저라 하는데, 오 월의 사이를 방랑하면서 자호를 통현선생이라 하였다. 그 다음 아들은 역사책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모양이 극히 작으므로 점은 치지 못하고 오직 나무에나 올라가서 매미를 잡고는 하더니, 또한 사람에게 삶긴 바 되었다. 그의 족속에는 혹 도를 얻어서 천년에 이르도록 죽지 않는 자가 있는데, 그가 있는 곳에는 푸른 구름이 덮여 있었다. 혹은 관리 속에 묻혀 살기도 하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현의독우라 칭했다.

사신은 이렇게 평한다. "지극히 은미한 상태에서 미리 살피며, 징조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방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그러짐이 있는 법이다. 현부같은 지혜로도 능히 예저의 술책을 막지 못하고 또 두 아들이 삶아 먹힘을 구제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옛적에 공자는 광(匡) 땅에서 고난을 겪었고 또 제자인 자로가 죽어서 젓[새우·조기·멸치 따위의 생선이나 조개·생선의 알·창자 따위를 소금에 짜게 절여 삭힌 반찬으로 여기서는 형벌의 일종]으로 담겨짐을 면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서 : 앞일을 예언한 책

행기 : 몸을 움직임.

도인 : 도가 양생범의 하나로서 신선한 공기를 체내로 이끌어 넣는 방술

천세 : 오랜 세월

이해와 감상

 

고려 후기에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가전(假傳) 작품. 거북을 의인화하여 지은 작품으로 저자의 문집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되어 있다. ≪동문선≫에도 실려 있다.

〈청강사자현부전〉에서 주인공 현부(玄夫:거북)의 선조는 신인(神人)이며 굉장한 힘이 있어서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을 지탱하였다. 그러나 자손대에 이르러 형체가 작아지고 힘도 사라져서 다만 점을 치는 것으로 직업을 삼았다.

먼 조상 문갑(文甲)은 요(堯)시대에 살아 이상한 그림을 임금에게 바쳐 낙수후(洛水侯)로 봉함을 받았다. 증조부는 상제의 사자라 자칭하였다. 홍범구주(洪範九疇 : 중국 夏나라 禹王이 남겼다는 정치이념으로 9개 조항의 큰 법)를 백우(伯禹)에게 주는 등 대대로 국가에 공적이 있었다.

 

성품이 무(武)를 숭상하여 항상 갑옷을 입고 다녔다. 임금이 그 이름을 듣고 초빙하였으나 현부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노래하기를 “진흙 속에 노닐어 재미가 무궁한데 문갑 속에 담기는 사랑을 어이 바랄까!” 하며 자연세계가 더 좋다고 하여 응하지 않았다.

 

송(宋) 원왕(元王) 시절 왕 앞에 끌려가게 되어 왕의 존중을 받았으나 벼슬은 사양하였다. 그러자 왕이 묻기를 “신명(神明)의 후손이요, 좋고 나쁜 일을 환히 알면서도 어찌하여 붙잡히게 되었는가?” 하자, 현부는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며,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아뢰니 왕이 웃었다.

자손 중에는 오월(吳越) 사이에 은거하며 동현선생(洞玄先生)이라고 자호(自號)한 자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붙잡혀 삶아 먹힌 자도 있었다. 사신이 말하기를 “지극히 은미한 상태에서 미리 살피며, 징조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방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그러짐이 있는 법이다. 현부의 지혜로도 예저(豫且)의 술책을 방지하지 못하였다. 두 아들이 삶아 먹힘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다른 이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가전 작품의 성격 중 하나는 ‘조희(嘲戱)’ 정신에 있다고 하겠다. 이규보는 〈청강사자현부전〉을 통하여 주인공의 삶 자체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말한다. 성인도 삶에 어그러짐이 있고, 현부처럼 앞일의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자도 어부의 꾀에 빠져 사로잡히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잡혀 삶아 먹힘을 당하기도 하니 여타의 인간이야 자칫 잘못하다가는 삶을 망치기가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입신행도(立身行道)를 추구함이 본질이 되는 유자(儒者)들은 모름지기 나라를 어질게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치국의 도리를 다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천리를 명심하여 수신함으로써 어지러운 시대를 뚫고 살아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청강사자현부전〉에서는 복무(卜巫)가 삶을 구제할 수 있는 방편이 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미신적 신앙보다는 지족(知足)의 처세가 더욱 소중함을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東國李相國集, 假傳體文學論攷(申基亨, 國語國文學 15∼17, 1956∼1957), 假傳體文學論考(高敬植, 高鳳 25, 慶熙大學校, 198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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