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박명(妾薄命)
by 송화은율첩박명(妾薄命)
평생에 다른 사람 얼굴 아는 이 없어
오랜 세월 깊은 방에 있었지요.
한 번 내 신세가 잘못되어
옥돌을 옥인 줄 알고 속았지요.
미움도 사랑도 부질없어라
아침엔 좋다더니 저녁엔 멀리하네.
서글피 가을 부채 같은 신세를 탄식하며
님의 수레 타는 것 단념했지요.
누굴 위해 좋은 침대 먼지를 털리오
비단 이불 넣어둔 지 오래 되었다오.
님 없는 쓸쓸한 방에 달마저 지고
다만 날아가는 반딧불만 바라본다오.
근심에 겨워 잠시 꿈을 꾸면서
어슴푸레 풀 싸움도 해 보았지요.
세상에 사마상여 같은 재주 없거니
뉘라서 옛 사랑을 되찾아 주리오.
요점 정리
작가 : 이곡
갈래 : 한시
성격 : 애상적
구성 :
기 - 일편단심
승 - 임에게 버림받은 마음
전 - 독수공방의 외로움
결 - 옛 사랑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
제재 : 궁궐 여인들의 비극적인 삶
주제 : 임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
특징 : 사물을 통해 화자의 처지와 정서를 드러냄
내용 연구
평생에 다른 사람 얼굴 아는 이 없어[임 한 사람만 사랑했다는 말로 일편단심을 뜻함]
오랜 세월 깊은 방에 있었지요.
한 번 내 신세가 잘못되어
옥돌[임]을 옥인 줄 알고 속았지요.
미움도 사랑도 부질없어라
아침엔 좋다더니 저녁엔 멀리하네.[임의 변심]
서글피 가을 부채 같은[불필요한 존재 화자의 처지 상징] 신세를 탄식하며
님의 수레 타는 것 단념했지요.
누굴 위해 좋은 침대 먼지를 털리오
비단 이불[임과 함께 덮으려고 준비한 이불] 넣어둔 지 오래 되었다오.
님 없는 쓸쓸한 방에 달[독수공방하는 화자의 외로움을 강화]마저 지고
다만 날아가는 반딧불만 바라본다오.
근심에 겨워 잠시 꿈을 꾸면서
어슴푸레 풀 싸움도 해 보았지요.
세상에 사마상여 같은 재주 없거니
뉘라서 옛 사랑을 되찾아 주리오.
이해와 감상
버림받은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노래이다. 마음이 변해 떠나 버린 임 때문에 가을 부채같이 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옛 사랑을 다시 찾기를 소망하고 있다. 제목 '첩박명'은 한나라 성제의 비였던 허 황후가 총애를 독차지하다가 성제의 노여움을 사서 독약을 먹고 자살하기 직전 "어찌할거나, 나의 박복함이여."라고 한탄했던 것을 도입한 것이다.
심화 자료
사마상여
자는 장경(長卿).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출생. 처음에 재물을 관에 기부하고 시종관이 되어 경제(景帝)를 섬기고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으나, 가끔 경제의 아우인 양(梁)나라 효왕(孝王)이 문인 추양(鄒陽)·매승(枚乘)·엄기(嚴忌) 등을 거느리고 사신으로 왔는데, 그것을 부러워하여 관직을 내놓고 손님으로서 양나라로 갔다. 얼마 안 되어 효왕이 죽자 고향으로 돌아가 가난하고 궁한 생활을 하며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다.
뒷날 《자허부》가 무제(武帝)의 상찬(賞讚)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되어 시종관으로서 다시 무제를 섬기게 되었다. 그뒤로 사부(辭賦)를 지어 바쳐, 동방삭(東方朔)·매고(枚皐)·엄조(嚴助) 등과 함께 무제의 사랑을 받았다. 무제가 서남을 개발할 때 진언하여 인정을 받아,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때 실직한 일도 있으나, 다시 부름을 받아 효문원령(孝文園令)이 되었다.
그가 지은 부(賦)는 본디 29편이었다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기재되어 있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자허부》를 비롯하여 부 3편, 《유파촉격(喩巴蜀檄)》 등 4편이 있다. 그 밖에 위작의 의심이 드는 《장문부(長門賦)》, 《미인부(美人賦)》 등이 있고, 《사마문원집(司馬文園集)》(司馬長卿集이라고도 한다) 1권이 있다.
그의 문학은 부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 초사(楚辭)를 조술(祖述)한 송옥(宋玉)·가의(賈誼)·매승(枚乘) 등에 이어 '이소재변(離騷再變)의 부(賦)'라고도 일컬어진다. 특징은 사물을 따르기보다 오히려 상상의 분방(奔放)함에, 간결하기보다 오히려 다변적(多辯的)인 데에 있다. 어휘는 세련되고, 구절은 균제(均齊)를 존중하고 화려하다.
대표작 《자허부》 및 그 후편 《상림부(上林賦)》는 자허(子虛), 오유선생(烏有先生), 망시공선생(亡是公先生) 등 세 명의 가공 인물의 사(辭)를 빌어 천자제후(天子諸侯)의 원유(苑?), 수렵의 호화로움을 논하고, 끝으로 군주 절검(節儉)에 유의하여야 함을 설명하여 풍간(諷諫)의 뜻을 내포하는데, 그 풍간은 덧붙임일 뿐 '풍(諷) 백(百)에 대하여 권(勸)은 하나'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 대화적(對話的) 형식에는 선례가 있지만, 그 수사존중(修辭尊重)의 풍(風)이 육조문학(六朝文學)에 끼친 영향은 크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탁문군(卓文君)과의 연애 사건이다.
고향에서 곤궁에 처해 있을 무렵 쓰촨성 린충[臨?]의 부호 탁왕손(卓王孫)에게 초대된 자리에서, 그 딸인 문군을 보자 연정을 품게 되어 청두로 사랑의 도피를 하였다. 두 사람의 생활은 극도로 가난하고 궁하여 수레와 말을 팔아 선술집을 차렸다. 문군이 술을 팔고, 상여는 시중에 나가 접시닦이 일을 하였다고 한다. 훗날 재산을 분양받아 부유해진 상여는 정치적 야심은 없었다고 한다. 또, 그는 일찍부터 소갈증(消渴症)을 앓아, 만년에는 산시성[陜西省] 마오링[茂陵]에 칩거하였다. 무제에게 봉선(封禪)에 관하여 권한 《봉선문(封禪文)》은 유고(遺稿)로 남겨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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