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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풍경(川邊風景) / 요점정리 / 박태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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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박태원(朴泰遠 : 1909.12.7~1987)

소설가. 필명 몽보(夢甫)·구보(丘甫)·구보(仇甫)·구보(九甫)·박태원(泊太苑). 서울 출생. 경성제일고보,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등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의 등단은 30년 《신생(新生)》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세태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발표한 《우맹(愚氓)》 《골목 안》 《성탄제》 등에도 비슷한 경향을 잘 드러내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함으로써 작가의식의 전환을 꾀한 바 있고, 6.25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李泰俊)·안회남(安懷南)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술된 작품 외에 단편소설 《사흘 굶은 보름달》 《애욕》《피로》 《5월의 훈풍》, 장편소설 《태평성대》 《군상(群像)》 등이 있다.

 

요점정리

갈래 : 장편소설, 세태소설
배경 : 시간 - 1930년대 어느 해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 공간 - 청계천변을 중심
                으로 한 서울
성격 : 모더니즘 계열
의의 : 세태소설 혹은 경아리(서울) 문학의 대표작.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특히, 카메라 아이(eye)의 기법이 돋보임.
제재 :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한 서민들의 일상사.
주제 : 1930년대 서울 중산층과 하층민들의 삶과 애환.

인물 : 7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재봉이 : 15-6세 가량인 이발소 사환. 이발소와 빨래터 골목에서 일어나는
                     대소사(大小事)를 상세히 목격한다.
         민 주사 : 재력 있는 50대의 사법 서사. 안성집과 취옥 사이를 오가며 주색 잡
                기(酒色雜技)에 골몰함.
         하나꼬 : 스무 살의 카페 여급. 손 주사, 은방 주인, 강 서방 등의 표적이 되어
                    있는 여인.
         이쁜이 : 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나 친정으로 쫓겨남. 점룡이가 짝
                   사랑한 인물.
         금순이 : 순박한 시골 색시로 가족들과 헤어져 기미꼬, 하나꼬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
         만돌 어멈 : 포악한 남편과 사는 행랑 어멈.
         창수 : 꾀 많은, 한약국집 사환.

구성 : * 이 작품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마찬가지로 '발단-전개-위기-절정-
           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청계천
           변을 중심으로 그곳에 사는 여러 인물들이 빨래터, 이발소, 한약국, 이쁜이
           네집, 포목점, 행랑집, 카페 등지에서 벌이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일상사들이
           작가에 의해 세밀하게 관찰될 뿐이다.


이해와 감상

  1936년 <조광>지에 연재된 장편 소설.

어느 해 2월 초부터 다음해 1월까지 꼭 1년 간 청계천변에 사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나열로 된 이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작가 박태원의 대표작이다. 당시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도시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태 소설'의 진수(眞髓)를 맛보게 된다.

{천변 풍경}은 1936년 8월부터 10월, 1937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에 연재한 박태원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기교 작가나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박태원은 이 소설을 통하여 단순하고 미묘한 것까지도 가장 풍부하고 흥미 있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작가적 역량을 확인시켜 준다.

이 작품은 2월 초부터 다음해 정월 말까지 1년 간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서민의 생활 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7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다양한 삶의 생태와 음영(陰影)을 드러내므로 특정 주인공은 없다. 이는 이 소설이 특정 화자에 의하여 서술되지 않았으며, 다양한 서술 양식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설의 구심점을 잃기 쉬운 이 소설은 삽화적 이야기를 다중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 쓰이는 카메라 아이(eye)의 기법을 통해 상이(相異)한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 줌으로써 시간성과 공간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특히, 작가는 이를 여인들의 집합소인 빨래터와 남성들의 시교장인 이발소를 중심으로 초점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 양식과 생태를 재현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행랑살이 어멈, 신전 주인, 이발사, 포목전 주인, 한약국과 양약국 주인, 부의회 의원, 사법 서사, 금은방 주인, 카페 여급, 기생, 미장이, 첩, 여관 주인, 당구장 보이, 아이스케이크 장수, 전매청 직원, 공장 노동자 등 1930년대 서울에 거주하던 각종 직업의 인물들이 모자이크식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실제의 거리와 지형, 동명, 건물들과 같은 도시의 물리적 사실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인습과 근대적인 문물이 혼재(混在)되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세태 소설이라는 평가나 도시 소설이라는 논의는 세태나 도시의 풍속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세밀한 세태의 묘사를 통하여 당대적 진실을 추구하려 한 작가 정신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

일정한 줄거리는 없다. 1년 동안 청계천변에 사는 약 70여 명의 인물들이 벌이는 일상사가 그 주된 내용이다.

민 주사, 한약국집 가족, 포목전 주인을 제외한 재봉이, 창수, 금순이, 만돌이 가족, 이쁜이 가족, 점룡이 모자(母子) 등은 모두 청계천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점룡이 어머니, 이쁜이 어머니, 귀돌 어멈을 비롯한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떤다. 이발소집 사환인 재봉이는 이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민 주사는 이발소의 거울에 비친 쭈글쭈글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숩짓지만, 그래도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해 한다.

여급 하나꼬의 일상, 한약국집에 사는 젊은 내외의 외출, 한약국집 사환인 창수의 어제와 오늘, 약국 안에 행랑을 든 만돌 어멈에 대한 안방 마님의 꾸지람, 이쁜이의 결혼, 이쁜이를 짝사랑하면서도 이를 바라보기만 하는 점룡이, 신전집의 몰락, 민 주사의 노름과 정치적 야망, 민 주사의 작은집인 안성집의 외도, 포목점 주인의 매부 출세시키기, 이쁜이의 시집살이, 민 주사의 선거 패배, 창수의 희망, 금순이의 과거와 현재, 기미꼬와 하나꼬의 여급 생활, 금순이와 동생 순동이의 만남, 하나꼬의 시집살이와 이쁜이의 속사정, 재봉이와 젊은 이발사 김 서방의 말다툼, 친정으로 돌아오는 이쁜이, 이발사 시험을 볼 재봉이 등으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박태원의 `천변풍경' (청계천/글 최재봉)

 

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쪽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서울의 중심부를 뚫고 동진한 다음 답십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틀어 내려가다가는 성동구 사근동과 송정동, 성수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중랑천과 합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의 어름이다. 태백시 인근에서 샘솟아 강화 북쪽의 서해로 몸을 풀기까지 5백㎞ 가까운 한강의 흐름이 대체로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강의 제2지류인 청계천의 물길은 본류와는 정반대되는 행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본디 이름이 청풍계천(淸風溪川)인 청계천은 그러나 일제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교까지가 1차로 복개된 데 이어 1958년부터 시작된 여러차례의 복개로 지금은 용두동과 마장동 어름 이하를 제하고는 정작 물길을 볼 수는 없게 돼 있다. 폭 50m의 아스팔트가 덮이고 그것도 모자라 삼일고가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청계천에서 `맑은 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복개되기 전의 청계천에는 제법 맑은 물이 흘렀고, 시골의 여느 개울가와 마찬가지로 아낙들은 빨래더미 속에 일신의 번뇌와 세상 근심을 함께 넣어 두들기고 비벼 빨았다. 박태원(1909~86)의 장편 <천변풍경>은 바로 이 청계천 빨래터의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1936~7년에 걸쳐 월간 [조광]에 두차례로 나뉘어 연재된 <천변풍경>은 일제 통치의 극성기라 할 30년대 중반 서울 서민층의 삶을 꼼꼼히 재현하고 있다. 모두 50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제목이 가리키는대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장삼이사들의 삶의 이모저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되는 사건도 주인공이라 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이 소설에서 어찌 보면 청계천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청계천 주변이라는 것말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과 사건들을 하나의 소설 속에 모아 놓는다. 요컨대 청계천은 이 소설의 조직원리가 된다.

 

젊은 첩 안성댁이 학생놈과 보쟁이는 모양을 보고 속을 태우는 민주사, 바람둥이 남편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의 무관심과 시부모의 학대를 못이겨 이혼하고 돌아오는 이쁜이, 처녀과부 신세로 호색한인 시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무작정 상경한 금순이, 술집 여급에서 부잣집 맏며느리로 신분이 격상됐으나 남편의 변심과 시댁 식구들의 냉대로 괴로워하는 하나꼬, 금순이와 하나꼬를 친언니처럼 보살피는 또다른 여급 기미꼬, 시골 가평에서 상경해 어리보기 취급을 당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서울 깍쟁이로 변모하는 소년 창수, 청계천 다리 밑 움막에 거주하는 거지들….

 

소설은 이들 천변 인물군상의 1년 남짓한 삶을 카메라의 눈처럼 충실히 좇을 뿐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일구어내거나 섣불리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득 시작하고 불쑥 끝난다. 기승전결이 따로 없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도 천변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고, 소설이 끝난 다음에도 그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럴진대, 소설의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서 청계천은 근대와 전근대,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접경이다. 창수와 금순이, 만돌 어멈 등은 각자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시골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시험해보고자 할 때 청계천변을 그 첫 무대로 삼는다. 그곳에는 기생과 카페 여급이 나란히 활보하며, 냉혹한 이익의 추구와 끈끈한 인간애가 공존한다. 시골에서와는 달리 청계천의 빨래터에는 엄연히 주인이 있어 빨래꾼들에게서 돈을 받아서는 다시 나라에 세금을 낸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모르고 빈손으로 나온 시골뜨기 아낙이 다른 빨래꾼들의 역성 덕분에 첫번의 요금 지불을 면제받을 만큼은 인정이 살아 있다.

 

<천변풍경>은 이처럼 두개의 시대의 공존과 자리바꿈을 세필화의 필치로 그려내지만, 그것은 그뿐,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임화가 그 자연주의적 편향을 지목해 `세태소설'이라 이름붙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는 소박한 휴머니즘의 관점은 있을지언정 뚜렷한 이념이나 사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 어느 인물에게서도 당시의 민족적․계급적 모순에 대한 자각을 엿볼 수 없음은 물론 그에 대한 밖으로부터의 비판도 부재하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귀돌 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들의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육십팔원짜리 `콘서트'로 `쩨․오․띠․케'의 주간방송, 고담이라든 그러한 것을 흥미 깊게 듣고 있는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그 물건이었다󰡓는 대목은 그 직후에 나온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탁류>의 풍자적 어투나 비극적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박태원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이효석 등 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함께 문학친목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해 활동한다. 그들이 내세운 바는 문학적 전문성과 프로의식이었거니와, 그것은 실은 카프 계열의 계급문학에 대한 반발에 다름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1일'과 <천변풍경>은 당시로 보아 최고의 문학적 기교를 갖춘 작품으로서 춘원 이광수와 월탄 박종화 등의 상찬이 잇따랐다. 그 박태원이 해방기에는 좌익계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을 맡고 한국전쟁중 월북해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받는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한 사실은 지금도 숱한 논란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 다 괜은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소설 속 한 인물은 청계천 복개에 관한 소문을 듣고 턱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마나 그 넓은 청계천은 어김없이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이제 그 위로는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빨래하는 아낙들이 깃들었던 천변의 가옥 자리에는 높직높직한 건물들이 솟아 있다. 한때 맑았던 물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소음과 진동에 짓눌리며 질식 상태로 흘러간다. 광교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무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청계천 평화시장은 1970년 봉제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감싸안고 오늘도 청계천의 복개된 도로 아래로는 한때 맑았으나 더이상은 맑지 않은 물이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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