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채만식 - 역사적 탁류의 인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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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탁류의 인식 - 채만식의 탁류와 태평천하
김태수

 

 

한국의 근대문학사를 돌아보는 데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들 가운데 염상섭과 채 만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한국의 지성사라거나 정신사적 측면으로 보아도 빼놓을 수 없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그들의 구체적인 작업에 대한 검토를 통했을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남긴 작업이 그만큼 평범함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가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설 자리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에, 그에 대한 해답을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내용의 이런 작품을 써야 한다는 방법론적인 지시가 작가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적을 지나치게 의식한 작가일수록 '좋은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다시 말하면 생명이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박제된 작품을 내놓는다는 사실의 인식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작가의 작품들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 특성, 정신 등이 타당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작가의 본질과 역사적 역할을 인식하는 일이며 그 작가를 전통으로서 받아들인다면 그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작가들이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채만식은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무엇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목적 의식에서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 대해서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다. 이에  기록으로서 남긴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사실보다 훨씬 고차원의 목적 의식에 속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언어를 통한 정신적 작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고차원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설득력도 감동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 태생으로 부농출신이다. 3.1운동 전해인 1918년 서울에서 고등 보통 학교에 들어갔고, 4년 뒤에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 1년만에 동경 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그 때부터 신문사 기자.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한 것으로 보면, 신문학 초기 우리 문인들이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을 채만식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신문사 기자로 있던 1925년, 《조선문단》에 <세 길로>라는 작품으로 추천을 받은 것을 보면 그 당시 다른 작가들과 거의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것은 그 당시 지식인 계층에 속한 작가--혹은 작가 지망자가 왜 대부분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서구문학의 형식이 도입된 그 당시에는 바로 서구식 언론의 도입기였고, 문학은 신문.잡지의 주요한 내용을 담당하였으며, 따라서 춘원으로부터 이룩되기 시작한 문학 저널리즘이 그 신문.잡지와 동시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지식인 본래적인 질문 앞에서 신문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신문을 통해 지식인의 생각을 전달하려 했기 때문이고 셋째, 인문 사회 과학 계통의 대학을 나온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침략 정책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기자라는 직업을 택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직업이 같다고 해서 같은 내용의 글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지만, 또한 상당한 수의 문인들이 소시민적 지식인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그보다 더 많은 정당한 지성으로서 자리를 지킨 지식인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면, 문인들의 신문사 기자 겸직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채만식의 작품에서도 일본의 식민지 정책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드러나고 있는 것도 당시의 신문사 기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현실 파악의 정당성을 발견하게 한다.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과 일제의 탄압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일본은 소위 대동아공영을 꿈꾸면서 중일 전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이 땅을 대륙 침략의 발판을 삼고자 하고, 이 땅에서 착취를 보다 강제적으로 집행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서는 내선일체라는 표어를 내걸고 한글 말살 정책 등 보다 악랄한 우리 문화의 말살을 획책하며,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한편, 국내의 민족 단체들에 대해서는 그 뿌리조차 존속할 수 없데 탄압하였다. 1930년을 전후해서 우리 문단에는 카프 문학이 전개된다. 많은 작가들이 이 카프에 참가하거나 동조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그것은 카프가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동조했다기보다 일제에 대한 항거 수단으로서의 카프에 동조했다고 보여진다. 사실 카프의 역할이나 그것의 역사인식 태도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지만, 채만식도 카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고 카프의 배일적 태도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촌> <레디 메이드 인생> 등이 이 시대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그것은 동반자의 그룹에 넣기보다는 세태 소설이라는 채만식 자신의 특유한 세계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기 직전인 1935년 채만식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개성에 이주, 이때부터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후 10년 동안 그의 중요한 작가 시대가 전개되는데 <탁류>(조선일보), <태평천하>(조광), <여인전기>(매일신보) 등의 장편을 비롯하여 <패자의 무덤>, <여자의 일생>, <치숙> 등이 이때에 나온 작품이다. 이제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탁류>와 <태평천하>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을 검토해 보자.

먼저 <탁류>를 보면 주인공 초봉이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유씨의 교육열에 힘입어 여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운 뒤 약제사의 꿈을 안고 약국 점원 노릇을 한다. 그녀는 온건한 사회주의자 남승재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집안 살림의 부를 위해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한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결혼이 남편의 사기와 피살의 과정을 통해서 그녀의 기구한 운명을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 결국 그녀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 한다.  초봉이는 말하자면 당시 신식 교육을 어설프게 받은 대표적인 여성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아버지 정주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군서기' 출신의 안이한 관료주의와 전통적인 가장 의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밖에서의 비굴함을 집에서의 엄격함으로 보상하고 있다. 그는 미두장에서 젊은이들로부터 구박을 받고 초봉이를 '돈 많고 부잣집 외동아들이고 서울에서 전문 대학교'를 나왔다는 사기꾼 고태수에게 시집보낸다. 그리고 딸의 불행이 가져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부인의 구멍가게에서 나온 돈으로 미두장에서 요행이나 바라며 살아간다. 그는 신식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고수함으로써, '관료주의'에 물듦으로써 '전통적인 것'의 좋은 점도 '신식 문물'의 좋은 점도 자기 것으로 택하지 못한 당대의 어떤 계층을 대표하고 있다. 또한 은행원 고태수는 은행의 급사로부터 출발한 자기의 삶에서 '은행'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받는 생활적.금전적 혜택만을 생각하고 도덕적 이념으로부터 멀어져서 횡령과 간음을 일삼다가 비명에 가고 마는데 그는 그러한 삶을 통해 사회적 혼란의 가장 나쁜 측면을 대변하고 있다. 온건한 사회주의자 남승재는 채만식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정당하게 삶에 대치하고 있는 인물이다. 병원의 조수로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돈없는 환자를 돌보며, 학교에 못 다니는 어린애들을 모아 야학을 세우고, 자신이 의사가 되었을 때 계봉이와 결혼할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탁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채만식은 식민지 시대에 있어서 '뿌리 뽑힌 자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지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전통 사회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신식 문물을 제대로 수용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의 가장 피상적인 이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하여 '근대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나쁜 악습만을 좇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온 주인공들이 남승재와 계봉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꺼번에 망해 가는 것은 그들이 전통 사회에서 이미 뿌리 뽑힌 자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근대화'는 '돈'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그 이전에는 돈이 아니라 쌀이었다) 이들의 비극이 모두 그 화폐와 관련된 것을 감안하면 이 전통 사회에서의 '뿌리 뽑힌 자들'의 비극의 의미를 파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사가 양반 출신도 지주 출신도 아니기 때문에 가장 의식이라는 전통적인 구습과 '화폐 위주(초봉이의 결혼을 강행시킨 점에서)'라는 신악에 쉽사리 휩쓸릴 수 있었던 것이고 고태수의 횡령과 실패가 그것을 말하며, 초봉이가 결단의 순간에 남승재에게 가지 못하고 그 기구한 삶을 운명으로 체념하고 받아들인 것도 그것을 말한다. 사실상 이들 주인공들이 종사하는 직업이나 관계하는 일이나 비극의 원인이 대부분 약국, 병원, 은행, 미두장과 같이 개항 이후에 이 땅에 세워진 것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모두 '화폐'와 관계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남승재와 계봉이의 성공은 이들이 '뿌리 뽑힌 자들' 가운데서 자기의 삶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남승재는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질 만큼 신문화에 대해서 그 현상적인 것만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인 의미와 그것의 역사적 관계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고 야학을 세워 가르치는 것이 그것을 말하며 그가 의사로서 자리를 잡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것과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계봉이는 초봉이의 삶의 실패를 통해서 자기의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의식을 소유하고 있고 신문물에 대해서 비판적 선택을 하고 있다.

<탁류>가 정신의 혼란기(일제시대라는 식민지적 상황과 서구 문물이 폐쇄된 이 땅에 거침없이 들어왔다는 점에서)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뿌리 뽑힌 자들'의 삶과 풍속을 보여 준 것이라면 <태평천하>는 전통 사회 출신의 인물들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오랜 지주 가문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신식 문물이 들어오기 이전에 아버지 윤 동규 세대에 어느 정도 이루어진 부이기 때문에 그리고 토지를 부의 단위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지주들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천하>는 말하자면 그러한 지주가 한말에서부터 일제 시대까지 어떠한 삶을 살게 되고 어떠한 사고 속에 머물게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염상섭의 <삼대>가 그러한 것처럼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지주이며 전형적인 구두쇠이다. 그는 아버지가 일으켜 놓은 가산을 더 늘이는 데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데, 그동안 한말의 화적들로부터 아버지가 피살되었고 화적들의 위협이 없어지자, 직원이라는 벼슬을 사게 된다. 그것은 옛날 지주들이 벼슬을 사거나 벼슬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전통적인 지주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는 <삼대>의 조부처럼 족보를 만들고 전통 사회 속에서 자리잡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들어와서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빼앗기면서 다시 불안을 느끼지만 일제의 관헌들이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단속함으로써 그 불안도 없어지게 된다. 그의 역사에 대한 태도는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로 압축되고 있는 것처럼, 인색한 이기주의와 소시민적 안락주의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그는 며느리들은 퇴락한 양반 출신에서 골라 지주=양반이라는 전통 사회의 가치관에 명실상부하게 입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은 윤직원의 자위 행위의 범주를 못 벗어난다. 그는 사회의 변화에 민감해서 '수형(手形)' 장사로 자신의 부를 유지하고 있고 라디오의 명창 프로에 귀를 기울일 만큼 여유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그가 전통 사회에서 아무런 사회적 윤리감을 갖고 있지 않음으로써 돈을 벌 수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그는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에서도 그러한 윤리감을 떠나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이조왕조의 유교적 관료주의에 입각해서, 아니 자기 이전에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 행위로 큰손자를 군수로, 작은손자를 경찰서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당시 지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권력에 대한 향수였던 것이다.

<태평천하><태평천하>전통적인 지주들의 아들들이 일제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자손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하나는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로 대표되는 것으로 자신이 벌지 않은 재산으로, 신학문을 형식적으로 배우고 난 다음, 자신이 산다는 것에 대한 투철한 인식 없이 무기력하게 방탕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선조의 죄악(소작인들을 착취하고 고리채로 빈민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것을 인식한 데서 오는)에 대한 보상 행위로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이들과 대응되는 인물들의 업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들은 분명히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에 도달할 만큼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고민하지도 않았던 계층이다. 그러기 때문에 창식은 첩을 얻고 놀음을 하고, 종수는 군의 고원(顧員) 노릇을 하면서 주색에 빠져 잇을 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없다. 반면에 이 소설에서 삽화처럼  잠깐 언급되고 있는 종수와 같은 인물이 다른 한 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신교육을 통해 '민족' '국가' '사회' '역사'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지 인식하려는 의식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종학이 동경 유학을 가서 독립 운동에 관여했다가 붙잡혔다는 소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평천하>에서 종학에 관한 부분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상황(1938년)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첫째, 윤직원 영감의 태도이다. '우리만 빼놓고 다 망해라'로 요약되는 그의 의식은 전통적인 지주 계급의 이기주의이다. 그는 '화적'이 없어지고 '독립운동가'가 없어진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인식하고 있으면서 종학이 사상범으로 붙잡힌 것을 원통해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 일제에 건물도 지어 주고 일제의 정책을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는 족보를 만들고 양반으로 행세한다. 이 모든 것은 윤직원 영감이 정신사적 측면에서 전시대의 가장 나쁜 점을 고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탁류>의 모든 주인공들이 망해 가는 데 반해서 그가 새로운 사회 속에서 존속하고 있는 이유는 <탁류>의 주인공들이 '뿌리 뽑힌 자들'인데 반해서 그는 지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 대로부터 '금권의 유세'를 인식하고 있을 만큼 '화폐'로 요약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의 적응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는 '민족'이나 '국가'나 '독립'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금전'만이 있는 것이다. 채만식은 말하자면 이러한 전통적인 지주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아무런 아픔이 없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과거에의 복수심에 불타고 있고 윤리적.도덕적 타락의 극을 헤매고 있는 지주 계층에 대한 비난인 것이다.

둘째는 윤직원 영감의 아들과 손자인 창식, 종수의 삶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식민지 지주의 아들로서 부정적인 측면을 대변한다. 아버지의 인장, 할아버지의 인장을 위조해서 술값을 치르고, 계집을 사고, 놀음하고,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입으로 '태평천하'를 구가했다면 이들은 오히려 몸으로 구가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기력한 방탕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것은 곧 전통적인 지주 계층의 몰락의 과정을 대변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처하지도 못하는 태도이고 재산을 보존하지도 못하는 방법이고 국가나 민족을 위하는 방법도 아니며, 사회적 윤리감이 부족했던 전세대의 모순을 그 극점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채만식은 이들 부자간의 관계를 종수가 사창굴에서 아버지 창식의 첩을 만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저주이며 매도이 던 것이다. 이들의 윤리적 타락은 윤직원 영감으로 대표되는 한말 지주 계층의 몰락 그 자체인 것이다. 특히 이들이 신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형식적인 과정만을 밟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셋째, 민족 운동에 투신한 종학의 경우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종학은 이 소설의 표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채만식이 이 작품에서 비난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학은 말하자면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에서 보여진 여러 가지 부정적인 전통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고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가 사회주의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독립운동의 한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특히 채만식이 <탁류>와 <태평천하> 두 작품에서 비난하지 않는 인물이 여기의 종학과 <탁류>의 남승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개화주의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이것은 채만식이, 동시대의 식민지 지식인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폐습으로부터 탈출한 진보적 개화주의자였음을 의미하는데, 두 인물이 두 작품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일제의 검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넷째, 이 두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탁류>의 계봉이를 제외하고는 비극적인 삶의 표본으로 나온다. 우선 <탁류>의 초봉이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하고 있지만 '명님이',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 고씨, 딸 서울 아씨, 손자며느리 박씨와 조씨, 그리고 동기 '춘심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제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는 없다. 그러나 이런 여자들의 삶이란 것이 모두 전통적인 세계의 부정적 측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비극적 삶이 채만식의 작품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규명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들 여자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산물로 나타난다. 초봉이가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비극적인 결혼을 하였고, '명님'이가 부모네들의 가난에 의해 팔리었고,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들이 그 집안의 가풍에 휩쓸려서 살고 있고, 서울아씨가 아버지의 강권으로 결혼했던 것이 그것을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채만식이 이들 여성에 대해서 동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구시대의 희생자에 대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것은 채만식이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그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그 시대의 정신사의 변모 과정에 대해서 꿰뚫어 보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채만식의 의도가 작품 안에서 직재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흔히 채만식을 풍자 소설가니 세태 소설가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만 그의 소설에는 지문에 사투리를 포함한 구어체가 사용되고 있고, 곳곳에서 야유조나 은유조의 말이 개입되고 있어서 곧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든가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이 태평천하'로 표현되는 부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극도로 희화화되고 있는 그의 문체는 당시 일제라는 침략자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학 지식인이 상황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이러한 방법론적 문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말을 바꾸면 문체는 상황과 표리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풍자 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의 개척자적 자리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탁류>에서 '뿌리 뽑힌 자들'의 식민지 시대의 삶을, <태평천하>에서 전통적인 지주의 식민지 시대의 삶을 보여 준 것은 그에게 세태 소설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채만식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속성은 작가의 작위적인 부분의 노출이다. 초봉이가 몇 분만 참았더라면 살인하지 않았을 것을, 혹은 이 때에 이렇게 했으면 비극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을, 종수가 '여학생' 창녀를 요구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버지의 첩을 만나지 않았을 것을 하는 식의 가정법이 그의 소설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우연'의 지나친 연속처럼 보인다. 이것은 그의 소설에서 감상적 요소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작가의 지나친 야유에 원인하고 있는 것 같다. 풍자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조롱은 그러한 작위에서 더욱 살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상에서 본 채만식의 작품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 사회의 정신적 변동에 관한 중요한 고찰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것은 염상섭의 <삼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의 문학이 형식을 달리하고 나타났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태평천하>에서 한 가족 5대가 등장하는 것은 <삼대>와 비교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지주인 조부에 대해서 관대하며 신식 문물의 피상적 수용자 상훈과 급진적 개화파 병화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고 보수적 개화파(이 말이 타당할는지 모르겠지만) 덕기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채만식은 전통적인 지주인 윤직원 영감과 전형적인 지주 자손으로 방탕의 길을 걷는 창식, 종수, 그리고 경제적 무능력자이며 전통적인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닌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정주사, 사회에 대해서 아무런 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소시민적 이해 관계에 얽매어 있는 '뿌리 뽑힌 자들'에 대해서 혹독한 비난을 하고 있는 데 반해서 온건한 사회주의자인 종학과 남승재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 두 작가의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들의 어떤 태도가 더 정확하다거나 정당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들의 상황이 오늘의 상황으로 바뀌었을 때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 채만식과 염상섭의 선구적 작가 정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채만식의 '역사의 탁류'에 대한 인식은 식민지 시대 문학인으로서 뛰어난 것이다. 그는 <탁류>를 통해서 전통 사회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새로운 식민지 사회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태평천하>를 통해서 전통사회에서 뿌리박은 사람이 새로운 식민지 사회에서도 현상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 대체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 작가가 자기 시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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