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진주만의 수업 / 전문 / 이노구치 구니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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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의 수업 / 이노구치 구니코


그것은 소학교 마지막 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해의 사회과 과목은 세계사였는데, 그 일로 인해 어린 내 마음은 우울했다. 우울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아마 그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수업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서 공부할 즈음부터 나는 교과서의 맨 끝부분에 있는 어느 페이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 읽고 있었다. 수업이 르네상스 시대 부분에 이르렀을 때에는 인력거의 삽화와 버섯구름 사진이 실려 있는 그 페이지를 거의 암기해 버리고 말았다. 진주만이라는 커다란 표제가 붙은 그 페이지를 살며시 넘길 때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 수업을 하실 날을 마음에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슬프다든가 화가 난다든가 시시하다거나 안절부절못한다거나 하는 그런 것에는 해당이 안 되는, 정말로 우울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첫째 일본에 관해서, 촌스런 인력거나 전투적인 사무라이의 나라라는 설명이 기묘하게 설명되었고, 바닥에서 잠을 자고 종이로 방과 방 사이를 칸을 질러 생활한다라고 쓴 표현도 쇼크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일에는 그즈음의 나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그러나 진주만의 수업은 다르다. 그건 내게 있어서 최초의 진주만의 수업이었고, 더구나 나는 반에서 유일한 일본 아이로서 그 수업에 임해야만 했던 것이다. 교과서는 일본이 여하히 악마적인 세계 정복의 야심과 광기로 평화스런 미국을 경악하게 했나 하는 것을 심술궂은 투로 기술하고 있다. 촌스런 후진국 국민이 자유와 정의를 구현한 위대한 미국에 대해서 가소로운 도전을 했다는 이야기와 그리고 그 야망은 원자 폭탄에 의해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는 일들이 옛날이야기처럼 엮어져 있다. 그건 마치 선과 악의 대결이고, 세계의 구세주 대 악마의 서자가 대치하는 구도였다.

한 해도 마지막에 가까워졌고 제2차 세계 대전 이야기도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은밀히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꾀병으로 어머니를 속여서 그 날 하루 학교를 쉬기로 하는 작전이다.

천식의 발작과 복통을 전날 밤부터 자신도 놀랄 만큼 대담한 연기로 꾸며 댔다. 양친에게 교과서를 보이고 부모들 세대에 대한 분노를 정면에서 터뜨린 다음 당당하게 학교를 쉬는 방법을 왠지 나는 택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나는 어린 값에는 이국(異國)에서 안간힘을 다해 부모를 감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꾀병을 연출한 데 대한 죄책감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단 한 가지 최후까지 마음에 걸려 좀처럼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세계사 선생님의 일이었다. 그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서, 수업이 시작되면 어느 틈엔가 교실 전체에 옛날 세계가 펄쳐져 갔다. 나는 그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다. 진주만의 수업을 빠지면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 그 해답은 끝내 찾아 내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어머니가 몇 번이나 깨우러 왔지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어머니는 빵죽을 쑤었는데 일어나련? 하고 물으러 왔다. 아플 때 어머니는 언제나 빵죽을 쑤어 주셨다. 어머니는 내 병을 믿어 주신 걸까……. 나는 그 약간 달착지근한 빵죽을 먹으면서 결국 스쿨 버스를 타고 가야지 마음먹었던 것이다.

세계사 교실로 들어간다. 잰 걸음으로 자기 자리를 향하는 나더러 "하이 쿠니코"라고 선생님은 말을 건네 주셨다. 그 밝은 목소리에 오히려 내 마음은 긴장했다.

수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나는 마치 돌처럼 꼼짝도 않고 교과서의 그 페이지를 열어 놓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무나 긴장하여 내 주위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쓰고 계신다…… 일본의 석유 수입의 비율이다 ……아니 교과서에 그런 것이 써 있었나? …… 선생님의 음성이 내 귀에 되돌아 온다.

선생님은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신다. 일본은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 발전하기 위해서 외국으로부터 자원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아무리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도 무역을 통해 발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러나 구미 각국은 아시아의 나라들이 지나치게 발전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일, 그것은 일본의 자원 수입을 곤란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일 …… 그런데 웬걸 미국은 실은 구라파 전재에 참전할 계기를 포착하려 하고 있었던 일 ……아니야! 교과서하고 전혀 틀린 것을 선생님은 이야기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단 한 사람의 학생을 위해 그 수업을 해 주신 것이었다. 반 친구들은 모두 그 날 수업의 내용이 교과서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더구나 평소에는 활발한 학생들 중 누구 한 사람 그것을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전쟁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사건에는 반드시 복잡한 배경이 있다 ―― 그것을 단일 원인론으로 단정하여 결론지어 버리려는 것은 역사에 대한 폭력이다 ―― 라고 선생님은 수업을 끝냈다.

방을 나갈 때 선생님께 진심으로 무언가를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입을 열기만 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전보다 더 나는 진주만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을 비난하는 화살의 정면에 서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내 안의 어린 부분이 구원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내 안에 다른 또 한 사람의 나를 발견한다. 이미 어린아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그 다른 또 한 사람의 나는 복잡한 국제 관계의 진상 해명과 그리고 평화 추구에 관계되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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