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사회와 인간 생활
by 송화은율정보 사회와 인간 생활
정범모(鄭範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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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사회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규정되고 있다. 한 나라의 산업 구조에서 지식․정보 산업을 포함하는 3차 산업의 취업 인구가 50퍼센트를 넘을 때, 그 나라는 정보 사회로 들어간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땅이 제일 증요했던 농경 사회, 자원․자본이 제일 증요한 산업 사회를 거쳐, 지식․정보가 가장 증요시되는 사회가 정보 사회라는 관점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보 사회란 지식․정보의 생산, 처리, 저장, 전달이 가장 활발하고 증요해진 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구체적으로 정보 시회를 개념화(槪念化)해 주는 것은 여러 전자 기기(機器), 특히 텔레비전, 전화, 전신, 컴퓨터, 인공 위성 등과 같은 정보 테크놀로지의 출현과 보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 사회는 전자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모든 발명에는 다음의 조건들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첫째, 그것은 어떤 인간적 필요를 충족하는 이기(利器)이기에 발명되고 존재하며, 둘째, 그러나 거의 언제나 그것이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어떤 위협 또는 위해로 의구심을 받게 되고, 셋째, 그것은 싫건 좋건 인간 생활, 사회 체제에 크고 작은 변화를 유발하는 영향을 끼치게 되며, 넷째, ‘문화 진화’에서 쓸모가 있는 한, 사람은 그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보 테크놀로지에도 이런 네 가지, 즉 그것이 가지는 이점, 몰고 오는 위협, 끼치는 영향,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텔레비전, 전화, 컴퓨터, 인공 위성 등 정보 테크놀로지가 인간 생활에 주는 의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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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보 기기는 인간을 잡노동에서 해방시켜 준다. 즉, ‘편하게’ 해 준다. 컴퓨터와 전화를 이용하여 쇼핑과 예약을 할 수 있으며, 은행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해방’은 인간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좀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 좀더 심오한 지적 모험, 즘더 수준 높은 예술적 탐구에 젖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편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정보 기기는 우리의 경험 세계를 시간의 제약, 공간의 제약, 사회의 제약에서도 벗어나게 해 준다. 미국에 가 있는 아들에게 거는 장거리 전화는 태평양이라는 공간을 초윌하게 해 주고, 그것은 배 또는 비행기를 타고 건너 가야 할 시간을 초월하게 해 준다. 컴퓨터는, 수 년 걸릴 계산을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속도로 해치운다. 또, 세계 유명 도서관의 모든 정보를 자기 방의 퍼스널 컴퓨터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여러 가지 제약에서 벗어나게 한다. 텔레비전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헤쳐 놓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텔레비전을 통하여 재벌들의 생활을 볼 수 있다. 또, 남자에겐 여자의 신비가 깨지고, 여자에겐 남자의 신비가 허물어진다. 이 모든 정보는 텔레비전 이전에는 여러 사회 집단이 각기의 벽 속에 깊이 감추어 두고 있던 것들이다. 또 하나의 의미에서 개방 사회(開放社會)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해방과 개방은 유사(有史) 이래 최초로, 엄청나게 풍부한 문화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따라서, 풍부한 자아 실현(自我實現)의 가능성을 터놓고 있는 셈이다. 정보 테크놀로지는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지적, 예술적, 도덕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수단과 여건(與件)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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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명의 이기(利器)도 우리에게 혜택만을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정보 테크놀로지도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 테크놀로지 증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와 있는 텔레비전이 끼치는 영향에서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폭력이 실생활에서 폭력 사건을 부채질한다는 걱정은 여러 연구에서 꽤 근거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가벼운’ 시청에서 ‘중독적인’ 시청으로 이어지는 텔레비전 시청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 독서력, 문장력을 떨어뜨리고, 덜 성숙된 시청자로 하여금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하고, 광고에 쉽게 영향을 받게 한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넓은 사고 영역에 걸쳐 본다면, 텔레비전 문화가 이론적 사고, 계열적 사고, 심층적 사고, 추상적 개념화(槪念化)의 힘을 둔화(鈍化)시키며, 인내와 자제력(自制力)을 약화시키고, 개성까지도 파괴한다는 주장도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생생하기는 하지만 만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사소하고 말단적인 것에 집착하게 하고,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하는 해악도 범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면 슈퍼마켓의 진열대와 주유소를 연상하며, 정치란 이름 있는 사람들이 큰 건물에 드나드는 일 정도로 여기고, 전쟁이 란 즐비한 시체가 아니면 멀리 흩어지는 폭탄 연기의 이미지로 생각될 뿐이다. 그 앞, 뒤, 밑, 속을 이어 가며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컴퓨터의 위해에 관한 주장도 비슷한 논조를 취한다.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은 사고 형태와 수준에 관한 문제다. 컴퓨터는 그것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속도 면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횔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컴퓨터의 기능은 복잡하기는 하더라도 궁극(窮極)은 공식에 따라 진행되는 수리적, 논리적인 여러 조작의 집적(集積)으로 이루어지는 지능을 말한다. 공식에 따르지 않는 지적, 정신적 기능은 컴퓨터에는 있을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컴퓨터처럼 공식에 따르는 정신 기능을 수렴적 사고(收斂的思考)라 하고, 이에 비해 인간이 이루어 내는 종합적 사고를 발산적 사고(發散的思考)라 한다. 발산적 사고는 과학, 문학, 예술, 철학 등에서도 아주 중요한 지적 기능이다. 이러한 지능은 컴퓨터에는 없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컴퓨터가 ‘죄와 벌’과 같은 문학 작품을 써낼 수는 없다. 지나치게 컴퓨터에 의존하거나 중독되는 일은 이런 발산적 사고의 퇴화(退化)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컴퓨터의 혁신, 발전이 하도 빨라서 컴퓨터 사용자는 내일의 진보는 믿으면서도 어제로 향하는 역사 감각은 무디어진다. 말하자면, ‘시간의 섬’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컴퓨터 시대의 인간은 그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강한 정의적(正義的) 애착(愛着)도 증오(憎惡)도 가지지 않는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의 주장으로 사생 결단을 내려는 일도 드물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시대는 크나큰 선(善)을 이룰 사람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크나큰 악(惡)을 저지를 사람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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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유명한 말을 기억한다. 즉, 의사 소통에 어떤 수단을 쓰느냐가 의사 소통의 내용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더욱 구체화해 보면, 의사 전달의 수단이 의사의 내용을 각색하고, 그 의사의 내용이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 환경을 각색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행동의 역할이 이전과 달리 각색된 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인쇄 문화에서 정보 사회의 비디오 문화 또는 전자 문화로의 전환은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이다. 그러면 이 전환은 사람들의 행동 환경, 사회적 역할 체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자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은 모든 사람의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헤쳐 놓는다. 그래서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특이하고, 격리되어 있고, 감추어져 있어서 서로 모르고 지냈던 여러 집단의 내막이나 사정과 정보들이 노정(露呈)된다. 텔레비전 프로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되고,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내막을 알게 되고, 여자들은 남자의 장막을 들춰 내어 알게 되고, 시민들은 권력자들의 허위를 알게 된다. 그리고 종래 집단 사이를 갈라 놓고 있던 각종 존경, 외포(畏怖), 신비의 장막이 걷힌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집단 정체감(正體感)에 심한 동요와 회의를 몰고 오며, 동시에 새로운 집단 정체감을 찾게 하는 동기가 되며, 그것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활동을 유발하게 된다.
우선 텔레비전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 함께 본다. 더구나 텔레비전을 보고 이해하는 데는 인쇄 문화에서처럼 어려운 문자 해득력(解得力)이나 추상력(抽象力)이 필요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이에 관계 없이 어른처럼 배우고, 또한 어른에게서 배우기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서 더 배운다. 그래서 어른에 대한 옛날과 같은 외포나 존경은 사라진다. 이것이 전통적인 역할과 행동을 기대하는 어른들이 어린이, 젊은이의 불손, 거만, 경망(輕妄), 무분별한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불평하게 되는 근원이 될 수 있다.
또, 전자 미디어는 여러 권위자, 지도자들의 베일도 벗겨 놓는다. 그들도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권위도 끌어내려지고, 의사, 과학자라는 전문적 권위도 옛날처럼 외경(畏敬)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권위자, 지도자의 처신의 방법도 옛날과는 아주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정체성이 동요한다. 남자들은 쉽게 볼 수 없는, 또는 점잖은 처지에서는 봐서도 안 되는 여자들의 내막을 보며, 여자들도 쉽게 볼 수 없는 남자들의 내막을 본다. 여기에서도 신비나 낭만이 사라진다.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이 어떤 그윽한 것이 아니라, 별것 아닌 것이 된다.
이러한 모든 일은, 전에는 서로 특이했고, 서로 격리되어 있었고, 서로 폐쇄적이던 여러 집단 상황의 정보들을 전자 미디어가 모두에게 시간, 공간, 사회적 제약을 넘어서 개방적으로 제공하는 데에서 시작되 었다. 그 결과, 각기 특이했던 행동 특성들이 혼합(混合), 동질화(同質化), 중간화(中間化)되는 경향이 생긴다. 극단적인 기인(奇人)이나 강렬한 정열을 지닌 사람도 사라지고, 아주 극단적인 저주나 증오도, 화려한 찬양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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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사회의 대표적인 기기인 텔레비전, 전화, 컴퓨터, 인공 위성은 서로 연결, 조합되어 어마어마한 정보 체제를 구성한다.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정보 사회를 특징화하는 기기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텔레비전은 우리를 개방하며, 컴퓨터는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즉, 텔레비전은 모두의 정보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컴퓨터는 단순 정신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것은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폭넓은 해방과 개방은 위치 감각의 상실 또는 실재관(實在觀), 세계관의 계속적인 동요를 낳을 수도 있다. 이 자체는 고통이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 방향의 거점을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으로 제약된, 또는 한계 규정된 위치에 잡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회학, 심리학에서는 ‘역할’이라고 부른다. 일단, 위치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 더 고차적인 새로운 위치 감각의 형성에 이어진다면 해방과 개방은 축복일 수도 있다.
정보 사회를 축복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개방사회를 사는 지혜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고, 또 하나는 해방된 정신적 자유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 하는 문제다.
개방 사회라는 말은 사람들이 타고난 계급이나 계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마음대로 진출할 수 있는 사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두의 정보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는 사회라는 또다른 차원의 의미가 부가된다. 모든 집단 관계는 어느 정도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정보의 통제를 통해서 그 역할이 결정된다. 그것이 집단 사이의 신비이며, 신비는 외경으로 이어진다. 그러 나 개방 사회에서는 모두의 정보를 공개, 전달함에 따라 지도자와 국민 사이, 어른과 아이들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신비와 외경의 베일이 없어진다. 전자 미디어 문화를 지속하는 한, 이 변질(變質)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변질을 다 좋다고 할 수도 없으나, 반대로 다 나쁘다고 몰아칠 수도 없다. 문제는 개방으로 변질해 가는 새로운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역할들을 찾는 일이다.
둘째는, 단순 정신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를 좀더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써야 하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컴퓨터가 흉내낼 수 없는 발산적 사고를 이용한 예술적 창작과 감상, 지적인 창의와 모험, 도덕적인 재지향(再指向)과 통찰의 길을 가야 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의 흥수 속에서 지식을 찾아 나가야 하며, 인간관, 사회관, 세계관을 새로운 상황과 정보에 적합하게 계속적으로 재주조(再鑄造)해 나가야 한다.
역설적(逆說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정보 테크놀로지 시대가 될수록 인문 교육이 필수적인 것이 된다. 자동 장치로 가득한 전자 시대는, 사람들을 기계 시대의 고역(苦役)에서 해방시켜 주는 대신, 사람들을 자아 실현과 사회 발전에 정신적 자원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해방은 지적 모험(知的冒險)과 예술적 탐구의 정열도 없고, 능력도 모자라는 인간에게는 도리어 허무감을 낳고 박탈감과 반항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가 가져다 준 해방과 자유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수천 년 전, 떠돌아다니며 살던 유목 시절을 끝내고, 책상에 앉아 펜과 책으로 문명을 가꾸어 왔다. 이제, 정보 테크놀로지에 의해 인간은 다시 넓은 들판으로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되었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개방되고, 더 많이 해방되었기에 더 넓은 공간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운명처럼 사람들에게 좀더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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