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술의 현대화, 가능한가
by 송화은율전통 예술의 현대화, 가능한가
최 병 식 : 편의상 나눈다면 모든 미술은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술은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보완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얼마 전까지 이론 교수가 30～40년씩 없었던 학교도 많았고요. 실기만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반복적인 훈련, 이것이 우리 작가에게 치명적인 문제점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이런 점 때문에 ‘소재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가집을 그리고 바가지를 그리면 전통이고, 빌딩을 그리고 자동차를 그리면 현대적이고, 인간의 소외를 느끼면 현대적이다 하는 것은 형식주의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내용 논리가 철저하게 되어 있으면 형식논리는 그렇게 무섭지 않습니다. 내용 논리가 없기 때문에 문제점이 노출되는데, 철저한 실기에 대한 경험과 고뇌가 있으면, 내용을 세우는 데도 쉽습니다. 그래서 비평도 창작적 비평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두 가지가 항상 보완 관계가 있으면 전통과 현대도 잘 풀리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유학 간 학생들을 보면 처음 6개월까지는 우수하다고 해요. 문제는 형식 논리의 훈련을 받아서 잘 그리는 것 같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맙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교육자의 입장에서 철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다면 자동으로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논의하게 되고 정체성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죠. 돌아가신 백기수 선생님은 마지막에 공자를 심취하셨고 서양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셨는데, 하루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그러십니다. 이런 회귀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철저한 정신적 고뇌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형식 논리에 치우치다 보니까 무슨 사조나 외국의 밀려오는 정보 체계가 대학생이나 젊은 작가들을 더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문화 강좌를 개설했을 때 생각보다 학생들의 관심이 많다는 데 정신적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도 결국은 나름대로 정리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삼십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교육 제도의 문제도 되고, 사회적 지원의 문제도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연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한의학 같은 경우를 예를 들면, 한의사는 많은데 한의학자는 적다는 겁니다. 사학자나 미학자는 많지만 작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적극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평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서편제, 동의보감, 일련의 답사기 등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큰 관심을 일으키는 열망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승화시키지 못한 것은 교육이나 사회적 정부의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이 건 용 : 왜 우리는 전통을 생각해야 하는가, 왜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에 대답하려면 단순히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요즘에 와서 세계화가 진행되니까 국제의 국경이 없어지고, 정치‧사회적 국경도 유럽 같은 경우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문화적 국경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입맛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것 아닙니까. 결국 우리를 지켜 주는 것은 문화적 국경인 것 같은데, 사람의 행복을 조건을 보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겁니다. 생활의 방식 전반을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요는 더 세계 부는 세계화의 바람을 맞으며 좀더 구심력이 강한 문화를 갖고 오래 버텨주었으면 합니다. 좀더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져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저 문화는 의미 있다고 하면 우리 문화는 더욱 힘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세계화 바람을 타고 오는 문화의 핵심은 실용주의인 것 같습니다. 그 실용성은 무시 못할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문화 중에 우리를 지켜주고 세계로부터 존중을 받을 실용적 가치를 지닌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21세기에 또다른 중심으로 서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 전통과 현대사 편집부, 전통과 현대 제9호, 전통과 현대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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