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가(赤壁歌) - 군사들이 술 마시고 자신들의 신세 한탄하는 장면
by 송화은율
적벽가(赤壁歌) -군사들이 술 마시고 자신들의 신세 한탄하는 장면
아니리
군사들이 승기(勝氣)내어 주육을 장식하고,
중머리 장단
노래 불러 춤추는 놈 서럽게 곡하는 놈 이야기로 히히 하하 웃는 놈 투전(鬪 )하다 다투는 놈 반취(半醉) 중에 욕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 끝에다가 턱 꿰인 놈, 처처(處處) 많은 군병 중에 병노직장위불행(兵勞則將爲不幸)이라. 장하(帳下)의 한 군사 전립(戰笠)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 봇물 터진 듯이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니,
아니리
한 군사 내달으며,
"아나 이애 승상(丞相)은 지금 대군을 거나리고 천리 전쟁을 나오시어 승부를 미결(未決)하야 천하 대사를 바라는데, 이놈 요망스럽게 왜 울음을 우느냐 우지 말고 이리 오느라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 연(然)하여 왈,
"네 설움 제쳐 놓고 내 설움 들어 보아라."
진양조 장단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배별(拜別)한 지가 몇 날이나 되며, 부혜(父兮)여 생아(生我)하시고 모혜(母兮)여 육아(育我)하시니,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인데 호천 망극(昊天罔極)이로구나. 화목하던 전대권당(全大眷黨) 규중의 홍안 처자(紅顔妻子) 천리 전장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꺼나 기다리고 바라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의려지망(依閭之望) 몇번이나 되며 서중의 홍안 거래(鴻雁去來) 편지를 뉘 전하며 상사곡(相思曲) 단장해(斷腸解)는 주야 수심에 맺혔구나. 조총(鳥銃) 환도(環刀)를 둘러메고 육전 수전을 섞어 할 제 생사(生死)가 조석(朝夕)이로구나. 만일 객사(客死)를 하게 되면 게 뉘라서 암사를 하며 골폭사장(骨曝沙場)에 흩어져서 오연(烏鳶)의 밥이 된들 뉘라 손뼉을 두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이 뉘 있드란 말이냐. 일일사친(日日思親) 십이시(十二時)로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하는 말이 부모 생각 너 설음이 충효지심 기특허다. 또 한 군사 나서며,
중머리 장단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라 너 내 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남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들어 근 오십이 장근토록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월 부부 한탄. 어따 우리 집 마누라가 온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 대찰(名山大刹) 성황신당(城皇神堂) 고묘 총사(古廟叢祠) 석불 보살미륵 노구맞이 집짓기와 칠성 불공 나한 불공(羅漢佛供) 백일산제(百日山祭) 신중맞이 가사 시주(架裟施主) 연등시주(燃燈施主) 다리 권선(勸善) 길닦기며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성조조왕(成造 王) 당산(堂山) 천룡(天龍) 중천 군웅(衆天軍雄) 지신제(地神祭)를 지극 정성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든 남기가 꺾어지랴. 그 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십삭이 절절찬 연후에 하루는 해복기미가 있던가 보더라.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혼미(昏迷) 중 탄생하니 말이라도 반가울 때 아들을 낳었구나. 열 손에다 떠받들어 땅에 누일 날 전혀 없이 삼칠일(三七日)이 지나고 오륙 삭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암잘강 섬마 둥둥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감을 사 껍질 베껴 손에 주며 주야사랑 애정한 게 자식밖에 또 있느냐 뜻밖에 이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나오너라 외는 소리 아니올 수 없던구나 사당문 열어놓고 통곡재배 하직한 후 간간한 어린 자식 유정한 가족 얼굴 누워 등치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後嗣)를 전해 주오. 생이별 하직하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에 안고 아가 웅아 업어 볼거나.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꾸짖어 왈, 어라 이 놈 자식 두고 생각는 정 졸장부의 말이로다. 전장에 너 죽어도 후사는 전하겠으니 네 설움은 가소로다.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
중머리 장단
이내 설움 들어 봐라. 나는 부모 일찍 조실(早失)하고 일가친척 바이 없어 혈혈단신(孑孑單身) 이내 몸이 이성지합(二姓之合) 우리 아내 얼굴도 어여쁘고 행실도 조촐하야 종가대사(宗家大事) 탁신안정(托身安定) 떠날 뜻이 바이 없어 철 가는 줄 모를 적에 불화병 외는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웨는 소리 나를 끌어내니 아니올 수 있든가. 군복 입고 전립(戰笠)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내 거동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며, 날 죽이고 가오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이팔 홍안 젊은 년을 나 혼자만 떼어놓고 전장을 가랴시오. 내 마음이 어찌 되겄느냐. 우리 마누라를 달래랄 제 허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가 세상을 태어나서 전장출세(戰場出世)를 못 하고 죽으면 장부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우지 마오. 달래여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던구나. 잡았던 손길을 에후리쳐 떨치고 전장을 나왔으나 일부지전장 불식이라. 살아가기 꾀를 낸들 동서남북으로 수직(守直)을 허니 함정에 든 범이 되고 그물에 걸린 내가 고기로구나. 어느 때난 고국을 갈지 무주공산 해골이 될지 생사가 조석이라. 어서 수이 고향을 가서 그립던 마누라 손길을 부여잡고 만단정회 풀어볼꺼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박봉술 창(唱)
군사들이 싸움에 이기겠다는 기개를 떨쳐 술과 고기를 다투어 먹을 때, 노랩부르며 춤추는 놈, 서럽게 우는 놈, 이야기하며 웃는 놈 노름하다가 싸우는 놈, 반쯤 취한 상태에서 욕하는 놈, 잠이 부족해 서서 자다가 창 끝에 턱이 꿰인 놈, 곳곳에 많은 군사 가운데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불행이 닥치는 법이라. 장막 아래서 한 군사가 모자를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서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서럽게 우니,(병사들의 다양한 모습)
한군사가 내달으며 "아나 이애, 지금 승상은 대군을 거느리고 천 리 밖 싸움터에 나오셔서 아직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천하의 큰일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놈 너는 왜 요망스럽게 울고 있느냐? 울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가 잠시 울음을 그치고 말하기를, "네 설움은 일단 제쳐놓고 내 설움을 들어 보아라."(울고 있는 병사를 나무라며 술을 권함)
"고당에 계신 늙은 부모님을 이별한 지가 벌ㅆ 몇 날이나 되며,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신 그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나, 그 은혜가 너무나 크고 끝이 없네그려. 화목하던 일가 친척과 집안의 젊은 아내 어린 자식이 천리 밖 싸움터에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이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까 하며 기다리다가, 서산에 해가 기울어지니 문밖에서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이며 바람 불고 궂은 비 내리는 데 대문에 기대어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인가. 한나라 소무는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냈다지만 나는 누구 편에 편지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임을 그리는 단장의 마음으로 항상 수심에 잠겨 지내고 있다네. 칼과 활을 둘러메고 육지와 물 위에서 적과 싸워야 할 테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아닌가. 만일 객사를 하게 되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 줄 것이며, 벌판에서 참혹하게 죽은 내 몸이 까마귀와 매의 밥이 된다고 한들 누가 손뼉을 쳐 후여 하고 날려 주리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네그려." 이렇게 말하면서 서럽게 우니, 여러 군사들이 말하기를 "너의 부모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다." 이때 또 한 군사가 나서며(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사연)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본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나 근 오십이 가깝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서 우리 부부가 늘 한탄하며 지내다가, 우리 마누라가 자식을 얻기위해 온갖 치성을 다 드리는데. 이름난 산의 큰 절, 성황 신당, 오래된 사당, 돌부처, 보살 미륵 등에 제사 지내는 음식 마련하기와 사당 짓기며, 칠원성군과 나한에게 불공 드리기. 백일동안 산신제 지내기, 여승에게 가사와 연등 시주하기, 다리놓는데 희사하기와 길닦기 그리고 집에 있는 날은 성조신과 조왕신, 당산, 장독대의 신, 여러 하늘의 신들. 지신 등에게 지극한 정성을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겠으며 심은 나무가 꺾어지랴. 그달부터 태기가 있으니 부정한 자리에 앉지 않고, 바르게 썰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으며,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고, 나쁜 일을 보지 않으려고 극히 조심을 하였다네.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정신이 없는 중에 드디어 해산을 하고 보니, 딸이라도 반가울 판에 아들을 낳았다네그려. 그 애를 어찌나 귀히 여겼던지 땅에 누일 새가 없이 항상 손에 안고 키우는데. 에 이레가 지나고 오륙 개월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도리도리, 쥐엄잘강, 섬마, 둥둥 재롱을 보며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주고, 감을 사서 껍질 벗겨 손에 쥐여 주니. 밤낮으로 사랑스러운 것이 자식밖에 또 어디 있던가. 그런데 뜻밖에도 "위나라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우러 가자. 나오너라." 외치는 소리에 안 나올 수가 없더구만. 사당에 나아가 통곡하며 두 번 절하여 하직한 후, 연약한 어린 자식과 아내의 등을 두드리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대를 잇도록 해 주오." 생이별하고 싸움터에 나왔으나, 내가 언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안아 볼 수 있을까. 아이고 내 신세야." 이렇게 말하며 서럽게 우니 여러 군사들이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에라 이놈아, 자식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졸장부나 하는 짓이다. 싸움터에서 네가 죽어도 네 대는 잇게 생겼으니 네 설음은 가소롭다." 그러자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고향에 두고온 자식을 그리는 사연)
"나의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일가 친척도 전혀 없어서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롭게 자랐는데, 그런 내가 예쁘고 얌전한 아내를 얻었으니 종가로서의 큰 일을 감당하고, 평생 몸을 의탁하여 편히 지내고 싶어서, 고향 떠날 생각이 젼혀 없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싸울 뜻이 있는 위나라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우러 가자." 외치는 소리가 나를 끌어 내니 어디 오지 않을 수가 있던가. 군복 입고 벙거지 쓰고 창을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그것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 달려 들어 나를 안고 엎어지며, " 날 죽이고 가면 몰라도 살려 두고는 못가리라. 이팔 청춘 젊은 나를 혼자만 떼어 놓고 어떻게 싸움터에 가려 하오." 울부짖으니 그 때 내 마음이 어떠했겠나. "허허 마누라 울지 마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싸움터에 가 보지 못하면 대장부의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울지 마오."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화를 내도 소용이 없데그려. 잡았던 손을 후리쳐 떨쳐 버리고 이 싸움터에 나왔지만 세월이 흘러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구먼. 살아갈 방도를 찾고 싶지만 사방에서 지키고 있으니, 함정에 빠진 범이나 그물에 걸린 고기꼴이 되고 말았네, 언제라도 고향에 돌아가게 될지. 아니면 황량한 산에 구르는 해골이 될지. 생사가 아침 저녁에 달려 있네그려. 어서 빨리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마누라 손을 잡고 쌓인 회포를 풀어 봤으면,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고향의 아내를 그리는 사연)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연대 : 미상
갈래 : 판소리 사설
문체 : 가사체, 구어체
제재 :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성격 : 해학적, 지배 계층에 대한 풍자와 비판적
구성 : 크게 보아 삼고초려, 강능 피난, 박망파 싸움,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 타령, 적벽강 싸움, 화용도로 구성되는데, 바디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음
표현 : 율문체, 구어체와 한문체의 혼용
주제 : 적벽 대전과 이 전쟁을 주도해 나간 영웅 이야기. 주체적 세력인 민중의 의식 성장, 인용된 장면의 주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조조의 패전.
기타 : 가사체와 구어체 중심으로, 한문어구가 많이 쓰임
① '삼국지연의'의 '적벽 대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② 영웅보다는 평민을 내세워 전쟁을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③ 외래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줄거리 :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적벽 대전에서 크게 패한 조조가 화용도로 도망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500도부수를 거느린 관운장을 만나 구차스럽게 잔명(殘命)을 빌어 목숨을 건져 화용도를 빠져나가는 장면까지이다.
등장인물 :
조조 : 작은 것에도 쉽게 놀라며,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한 인물이다. 자신의 약점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안목이 부족하다.
정욱 : 방자형 인물로 익살스럽다. 상전인 조조를 조롱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었다.(적벽가에서는 조조와 같은 인물의 성격을 창조적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꾀가 많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적벽가'에서는 소심하고 비겁한 인물로 희화화하여 보여 주고 있다.)
적벽가의 인물: 적벽가에서는 삼국지연의에 없는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기존의 인물을 변화시키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영웅들의 쟁패인 만큼 보통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벽가는 이름없는 병사들을 다수 등장시켜 그들의 사연을 토로하게 한다. 또 조조는 매우 희극적인 인물로 만들고 그 모사인 정욱을 춘향가의 '방자'와 같은 인물로 변용시키고 있다. 이것은 판소리가 영웅서사시가 아니라 범인(凡人)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삼국지연의와 판소리 적벽가의 비교
|
갈래 |
내용 |
주인공 |
인물형상 |
작가의식 |
조조의 모습 |
미의식 |
삼국지연의 |
소설 |
영웅의 활약 |
장수(영웅) |
유형화 |
영웅주의 |
영웅화 |
비장미, 숭고미 |
적벽가 |
판소리 사설 |
전쟁중의 민중의 모습 |
군사(민중) |
개성화 |
민중의식 |
풍자 (희화화) |
골계미 |
삼국지연의 |
적벽가 |
웅장한 전쟁 장면과 무수한 영웅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주로 그들을 묘사하고 있다. 하층 군사들은 소외된 채 전쟁의 희생물로밖에 되지 않는다. |
최하층 군사들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존재를 쓰고 있으며, 그들이 전쟁에서 겪은 고난과 역할, 전쟁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있다. |
적벽가와 화용도
신재효의 작품인 '적벽가'는 이전의 완판본인 '화용도'와 매우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우선 '화용도'가 사건이 주가 되고 인물이 종이 되는 반면 '적벽가'는 인물이 주 사건이 종이 되는 경향을 이룬다. 그로 인해 적벽가는 사건을 적게 다루면서도 이에 등장하는 인물의 심리 표현과 행동 묘사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화용도'에서는 평면적인 사건만을 길게 나열할 뿐 인물의 심리 묘사가 등한시 되고 있다. 이 점이 적벽가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다.
특징 : 이 작품은 '삼국지연의'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영웅적이었던 인물인 조조를 소심하고 비겁한 인물로 희화화하고 적벽대전에 패하여 비굴하게 도망가는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으며 무명의 여러 군사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학적인 희극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내용 연구
[아니리 :판소리에서 연기자가 창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극적인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사설]
군사들이 승기(勝氣)[이기려는 기개]내어 주육을 장식[다투어 먹음]하고,
[중머리 장단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노래 불러 춤추는 놈 서럽게 곡하는 놈 이야기로 히히 하하 웃는 놈 투전(鬪錢)하다 다투는 놈 반취(半醉) 중에 욕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 끝에다가 턱 꿰인 놈, 처처(處處) 많은 군병 중에 병노직장위불행(兵勞則將爲不幸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앞으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뜻)이라. 장하(帳下 :장막 아래)의 한 군사 전립(戰笠 : 군인이 쓰는 벙거지)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 봇물 터진 듯이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니,- 병사들의 다양한 모습
[아니리]
한 군사 내달으며,
“아나 이애 승상(丞相 :중국의 옛 벼슬 이름. 여기에서는 조조를 뜻함.)은 지금 대군을 거나리고 천리 전쟁을 나오시어 승부를 미결(未決 : 아직 결정하거나 해결하지 아니함)하야 천하 대사를 바라는데, 이놈 요망스럽게 왜 울음을 우느냐 우지 말고 이리 오느라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 연(然)하여 왈,
“네 설움 제쳐 놓고 내 설움 들어 보아라.”- 울고 있는 병사를 나무라며 술을 권함
[진양조 장단 :'세마치' 장단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느린 장단으로 극적 상황이나 한가한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머리가 희어져서 늙은 부모가 거처하는 곳.) 배별(拜別 :배웅하여 이별함.)한 지가 몇 날이나 되며, 부혜(父兮)여 생아(生我)하시고[어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모혜(母兮)여 육아(育我)하시니[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 시경의 소아편에 나오는 말],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인데 호천 망극(昊天罔極 :끝이 없이 넓고 큼.)이로구나. 화목하던 전대권당(全大眷黨 :일가 친척.) 규중[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의 홍안 처자(紅顔妻子 :나이가 어린 처) 천리 전장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꺼나 기다리고 바라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 :부모가 문 밖에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인 왕손가가, 섬기던 민왕이 사냥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나 임금이 간 곳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자, 그 어머니가 "나는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늦게 돌아오면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리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밖에 나가 기다리는데' 너는 임금이 간 곳을 모르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느냐?"하고 꾸짖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의려지망(依閭之望 :집 밖에서 기대어 기다림.) 몇번이나 되며 서중의 홍안 거래(鴻雁去來 :하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잡혀서 사람이 살지 않는 북쪽 바닷가로 귀양을 갔는데, 사연을 적은 비단을 기러기 발에 매어 자기 나라로 날려 보내 제 처지를 알려서 19년만에 돌아온 것에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전할 방도가 없음을 한탄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다) 편지를 뉘 전하며 상사곡(相思曲 :악부신가의 서른여섯 곡중 하나) 단장해(斷腸解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그리움.)는 주야 수심에 맺혔구나[오매불망 : 자나깨나 잊지 않음]. 조총(鳥銃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던 총. 적벽 대전 당시에는 없던 무기로 판소리의 구비문학적 성격을 보여 주는 말.) 환도(環刀)를 둘러메고 육전 수전을 섞어 할 제 생사(生死)가 조석(朝夕)이로구나. 만일 객사(客死 : 객지에서 죽음)를 하게 되면 게 뉘라서 암사[장사를 지냄.]를 하며 골폭사장(骨曝沙場 :모래밭에 참혹하게 죽음)에 흩어져서 오연(烏鳶 :가마귀와 솔개)의 밥이 된들 뉘라 손뼉을 두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이 뉘 있드란 말이냐. 일일사친(日日思親 :매일매일 어버이를 생각함) 십이시(十二時)로구나.[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부모 생각을 하는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하는 말이 부모 생각 너 설음이 충효지심 기특허다.
(중략)
또 한 군사 나서며,
[중머리 장단]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라 너 내 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남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들어 근 오십이 장근토록[가까이 되도록.]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월 부부 한탄하다. 어따 우리 집 마누라가 온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 대찰(名山大刹) 성황신당(城皇神堂) 고묘 총사(古廟叢祠 :오래된 사당과 여러 신을 모신 사당) 석불 보살미륵 노구맞이[제사를 지내기 위한 밥차림] 집짓기와 칠성 불공 나한 불공(羅漢佛供) 백일산제(百日山祭) 신중맞이 가사 시주(架裟施主) 연등시주(燃燈施主) 다리 권선(勸善)[다리를 만드는데에 시주함.] 길닦기며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성조조왕(成造 王 :선조신과 조앙신) 당산(堂山) 천룡(天龍 :장독대의 신) 중천 군웅(衆天軍雄) 지신제(地神祭)를 지극 정성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든 남기가 꺾어지랴. 그 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고)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눈으로는 나쁜 일을 보지 않고) 십삭[열달]이 절절찬 연후에 하루는 해복기미[해산할 기미]가 있던가 보더라.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혼미(昏迷 :의식이 흐림) 중 탄생하니 말이라도 반가울 때 아들을 낳었구나. 열 손에다 떠받들어 땅에 누일 날 전혀 없이 삼칠일(三七日)이 지나고 오륙 삭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암잘강 섬마 둥둥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감을 사 껍질 베껴 손에 주며 주야사랑 애정한 게 자식밖에 또 있느냐 뜻밖에 이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나오너라 외는 소리 아니올 수 없던구나 사당문 열어놓고 통곡재배 하직한 후 간간한[연약한] 어린 자식 유정한[다정한] 가족 얼굴 누워 등치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後嗣 :자손이 뒤를 잇는 일)를 전해 주오. 생이별 하직하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에 안고 아가 웅아 업어 볼거나.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꾸짖어 왈, 어라 이 놈 자식 두고 생각는 정 졸장부의 말이로다. 전장에 너 죽어도 후사는 전하겠으니 네 설움은 가소로다.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
[중머리 장단]
이내 설움 들어 봐라. 나는 부모 일찍 조실(早失)하고[중의적 표현] 일가친척 바이 없어 혈혈단신(孑孑單身 :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 이내 몸이 이성지합(二姓之合 : 두 성씨가 만나 혼인함) 우리 아내 얼굴도 어여쁘고 행실도 조촐하야[단정하여] 종가대사(宗家大事) 탁신안정(托身安定 :몸을 의탁하고 편히 지냄) 떠날 뜻이 바이[전혀] 없어 철 가는 줄 모를 적에 불화병[서로 총포를 들이대며 싸우는 전투] 외는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웨는 소리 나를 끌어내니 아니올 수 있든가. 군복 입고 전립(戰笠)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내 거동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며, 날 죽이고 가오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이팔 홍안 젊은 년을 나 혼자만 떼어놓고 전장을 가랴시오. 내 마음이 어찌 되겄느냐. 우리 마누라를 달래랄 제 허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가 세상을 태어나서 전장출세(戰場出世)를 못 하고 죽으면 장부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우지 마오. 달래여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던구나. 잡았던 손길을 에후리쳐 떨치고 전장을 나왔으나 일부지전장 불식이라[날이 거듭되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잡았던 손길을 - 불식이라: 잡았던 손길을 떨치고 전장에 나왔으나 날이 계속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다.]. 살아가기 꾀를 낸들 동서남북으로 수직(守直 :지키니)을 허니 함정에 든 범이 되고 그물에 걸린 내가 고기로구나[살아가기 - 고기로구나 : 살아 돌아갈 일을 도모하여도 사방에서 지키고 있어 꼼짝도 못함을 함정에 든 범과 그믈에 걸린 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어느 때난 고국을 갈지 무주공산 해골이 될지 생사가 조석이라. 어서 수이 고향을 가서 그립던 마누라 손길을 부여잡고 만단정회[여러 가지의 시름과 그리움] 풀어볼꺼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 판소리에서 연기자가 창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극적인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사설
진양조 장단 : '세마치' 장단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느린 장단으로 극적 상황이나 한가한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중머리 장단 :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병노직장위불행 :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앞으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뜻
승상(丞相) : 중국의 옛 벼슬 이름. 여기에서는 조조를 뜻함.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 머리가 희어져서 늙은 부모가 거처하는 곳.
배별(拜別) : 배웅하여 이별함.
부혜여 생아(生我)하시고 : 어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모혜여 육아하시니 : 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 :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
호천 망극(昊天罔極) : 끝이 없이 넓고 큼.
전대권당(全大眷黨) : 일가 친척.
홍안처자(紅顔妻子) : 나이가 어린 처.
출문망(出門望) : 부모가 문 밖에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인 왕손가가, 섬기던 민왕이 사냥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나 임금이 간 곳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자, 그 어머니가 "나는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늦게 돌아오면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리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밖에 나가 기다리는데' 너는 임금이 간 곳을 모르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느냐?"하고 꾸짖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의려지망(依閭之望) : 집 밖에서 기대어 기다림.
홍안 거래(鴻雁去來) : 하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잡혀서 사람이 살지 않는 북쪽 바닷가로 귀양을 갔는데, 사연을 적은 비단을 기러기 발에 매어 자기 나라로 날려 보내 제 처지를 알려서 19년만에 돌아온 것에서 나온 말.
상사곡(相思曲) : 악부신가의 서른여섯 곡중 하나.
단장해(斷腸解) :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그리움.
조총(鳥銃) :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던 총. 적벽 대전 당시에는 없던 무기로 판소리의 구비문학적 성격을 보여 주는 말.
암사 : 장사를 지냄.
골폭사장(骨曝沙場) : 모래밭에 참혹하게 죽음.
오연(烏鳶) : 가마귀아 솔개
일일사친(日日思親) : 매일매일 어버이를 생각함.
장근토록 : 가까이 되도록.
고묘 총사 : 오래된 사당과 여러 신을 모신 사당.
노구맞이 : 제사를 지내기 위한 밥차림.
다리권선 : 다리를 만드는데에 시주함.
성조조왕 : 선조신과 조앙신
천룡(天龍) : 장독대의 신
해복기미 : 해산할 기미
간간한 : 연약한
유정한 : 다정한
후사 : 자손이 뒤를 잇는 일
탁신안정 : 몸을 의탁하고 편히 지냄
불화병 : 서로 총포를 들이대며 싸우는 전투
일부지전장 불식 : 날이 거듭되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허니 : 지키니.
만단정회 : 여러 가지의 시름과 그리움
잡았던 손길을 - 불식이라 : 잡았던 손길을 떨치고 전장에 나왔으나 날이 계속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다.
살아가기 - 고기로구나 : 살아 돌아갈 일을 도모하여도 사방에서 지키고 있어 꼼짝도 못함을 함정에 든 범과 그믈에 걸린 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 작품 해설 ---
'적벽가'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이다. 적벽가의 원전(原典)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없는 것으로 판소리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일전(一戰)을 벌이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적벽 대전(赤壁大戰)의 전야(前夜)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설움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설움은 고향의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어서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움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음 날이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에 죽거나 부상당할 운명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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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넋을 잃고 조각배 얻어 타고 주먹 쥐고 도망할 제, 범같은 선봉 황개 장창을 손에 쥐고 벽력 같은 호령 소리,
"홍포 입은 저 조조놈, 너 어디로 가려느냐. 선봉 황개 여기 있다."
조조가 할 수 없어 홍포 벗고 도망하니 도 크게 외치는 소리,
"수염 긴 놈 조조니라."
수염을 석 베이니,
"수염 벤 놈 조조니라."
깃발 떼어 턱을 사고 반생반사(半生半死) 도망할 제, 장요의 날랜 살이 황개 소아 물에 넣고 언덕에 올라가서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죽자살자 도망할 제,
"이놈, 조조 닫지 마라."
벽력 같은 호령 소리 예서 나고 제서 나니, 여몽 능통 감녕이라 마른 뜰에 부어 쫓듯 나무꾼들 노루 쫓듯 빈틈없이 쫓아오니 조조 거동 장관이라. 총 소리에 귀가 먹먹 내를 쐬어 눈이 캄캄 눈썹이 다 탔으니, 용천아치 초를 잡고 낯이 데어 벗어지니 당창(唐瘡)을 올렸는가 온몸에 내를 쐬어 전복 따러 가게 되고, 두 코가 뻑뻑하여 재채기하는 모양 굴 속에 너구리가 고춧가루총 맞은 듯 알몸으로 말에 앉아 아무리 도망한들 사면이 복병이라. 죽을밖에 수 없으니 그래도 간웅이라 정욱을 돌아보며 재담하여 하는 말이,
"내 마상태(馬上態)가 어떠하냐?"
정욱이 여짜오되,
"그대로 모셔다가 동작대에 앉혔으면 이교녀가 반하겠소."
조조 평생 먹은 마음 역적질 뿐이기로 죽을 판에 재담하되 천자 편으로 붙이어,
"이게 어디 적벽강이냐, 지소방(紙所房) 고랫속이지. 내 형상을 내 보아도 숯장수 뽄이로다. 이대로 붕하시면 송자이나 될지라도 목야(牧野)의 상주(商紂) 송장, 귀신이 될지라도 북방의 흑제(黑帝) 귀신, 송장 중에 잡것이요, 귀신 중에 하뻘이라,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죽고 살기 고사하고 남부끄러 못 하겠다."
제 손서 말을 몰아 달랑달랑 달아나며 살이 올까 철환 올까 목은 장 옴츠리니, 정욱이 비소(誹笑)하여,
"승상 목 좀 내놓시오. 근본 두풍(頭風) 과하시니 좋다는 편전(片箭)으로 삼박 퉁겨 피 빼시면 두풍이 나으리다."
"아서라, 그러다가 숟가락을 아주 놓으면 천자 노릇 누가 할꼬."
불변천지(不辯天地) 도망터니 화광(火光)은 점점 멀리 복병은 안 나온다.
앞으로 가는 길에 산세가 험준하고 수목이 총잡(叢雜)하니 조작 물어,
"예가 어디냐?"
좌우 여짜오되,
"오린이오 조조가 말 위에서 손뼉치며 대소하니 제장이 물어 여보시오 승상님 장졸을 다 죽이고 좆만 차고 가는 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저다지 웃으시오."
조조가 대답하되,
"주유와 제갈량이 꾀 없음을 웃는다. 이러한 좁은 목에 눈 먼 장수 하나라도 매복을 하였으면 우리들 남은 목숨 독 속의 쥐새끼지."
* 용천아치: 변덕스럽게 행동하고 수다스러운 사람 * 당창(唐瘡): 창병(瘡病). 한방에서 '매독'을 가리키는 말 * 마상태(馬上態): 말에 탄 맵시 * 지소방(紙所房): 종이로 만든 방 * 목야(牧野): 지명 * 상주(商紂): 상나라의 주왕. 술을 좋아하고 음란하여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주나라 무왕에 쫓겨 녹대(鹿臺)에 도망하여 불에 타 죽음 * 흑제(黑帝): 다섯 천제(天帝) 중의 하나. 북방의 신. 은나라의 탕왕이 이에 해당함 * 비소(誹笑): 비웃는 웃음 * 두풍(頭風): 머리가 늘 아프거나 부스럼이 나는 병 * 삼박: 잘 드는 칼에 잘 베이는 모양 * 불변천지(不辯天地): 천지를 분간하지 못함
이 말이 지든 말든 방포 소리 '퀑' 복병이 내닫는다.
화광(火光)은 접천(接天)하고 고성(高聲)이 진지(震地)로다. 범같은 일원(一員) 대장 호통하며 나오는데, 활면중이(闊面重耳)에 백옥을 깎았는 듯 눈망울은 물결 같고, 이어 허리, 곰의 팔에 황금 투구 녹포(綠袍) 은갑(銀甲) 장창(長槍)을 비껴들고,
"이놈 조조야, 당양 장판 큰 싸움에 상산 자룡 내 재조를 네 눈으로 보았지야. 우리 군사 장령 모아 너 하나를 잡으려고 이속 온 지 오래로다. 닫지 말고 창 받으라."
동에서 번뜻 서장(西將)을 베고, 남에서 번끗 북장(北將)을 베며 번개같이 쫓아오니 조조가 혼비백산(魂飛魄散) 하마(下馬)에 뚝 떨어져 주먹 쥐고 도망할 제, 따라오던 장수 군사 절반이나 다 죽이고 여간 남은 군장복색 하나 없이 다 뺏긴다. 장합 서황 두 장수로 자룡을 대적하고 조조는 도망할 제, 동남풍은 끈지게 불고 검은 구름 뒤엎으며 급하게 오는 비가 동이로 퍼붓듯이 쭉쭉 쏟아지니 조조와 장졸 신세 갈수록 불쌍하다. 의갑(衣甲)이 다 젖으니 춥긴들 오죽하며 여러 날 굶었으니 배가 오죽 고플소냐. 조조가 쫓겨가도 호기는 그저 잇어 복마군(卜馬軍)을 불러,
"우산 올리라. 데인 살에 빗물드니 쓰려 어디 살겠느냐."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의 하는 분부 어찌 그리 무식하오? 노불승거(勞不乘車) 서불장개(薯不張蓋) 옛 명장의 한 일이라 상창기곤(傷瘡飢困) 남은 군사 울며불며 따라오는데, 적벽강 불 속에 우산 어디 남았으며 설령 우산 있다 하고 승상 혼자 우산 받고 어디로 가시겠소. 이만 비를 못 견디고 만일 장비 만낫으면 우산으로 막으시려오?"
십전구도(十顚九倒) 가느라니 날이 점점 새어가며 비가 조금 개는구나.
남이릉 가려 하고 호로곡에 당도하니 인마(人馬)가 기진하여 촌보(寸步)를 갈 수 없다. 조조가 쉬어 앉아 의갑을 벗어 내어 바람결에 말리며 화병(火兵)에게 분부하여,
"노구 걸고 밥을 하라."
화병이 썩 나서서 정면상대 바로 떠서,
"걸 노구 어디 있고 밥할 양식 어디 있소?"
조조가 호령하여,
"너 이놈, 군량, 누구 다 어디 두었는고?"
그 판이 되었거든 무슨 법이 있겠느냐. 화병이 바로 막 서서,
"양식 간 데 모르시오? 취철산 적병강에 산같이 쌓인 양초(粮草) 승상의 방정으로 불 속에 넣었으니 저리 시장하거든 거기를 찾아가서 튀밥 주워 잡수시오."
조조가 화를 내어,
"승패는 병가상사(兵家常事), 한 번 실수하였다고 네 놈의 말버릇이 그럴 수가 있단 말가. 양식은 그렇다고 노구 얻다 두었느냐?"
"예, 노구 말씀 들으시려오? 적벽강 그 불 속에 간신히 아니 죽고 이 몸 살아 돌아올 제, 퉁노구 안 버리고 등에 지고 오옵기는 승상의 진지 짓자 정성인 게 아니오라, 행여나 아니 죽고 내 집에 돌아가면 부엌에 걸어 두고 나물국 끓여 먹자 단단 간직하였더니, 오림에서 자룡 만나 목숨을 살자 하고 퉁노구 무릅쓰고 수풀 밑에 엎어졌더니, 누구 밑 복판에 위나라 위자(魏字) 어찌 쓰여 조장군이 보시더니. '애고 이놈 위병이라, 여름날 급한 벼락 쪽박 쓰고 방위해도 조자룡 내 창법을 퉁노구로 방위할소냐.' 그놈의 얕은 꾀가 똑 조조. 창으로 푹 찌르니 노구 산산 부서지고 창 끝이 빗나가서 목은 아니 찔렸기에 죽은 듯이 누웠다가 그 장군 가신 후에 가만가만 걸어왔소."
* 활면중이(闊面重耳): 활달한 얼굴에 드리운 귀 * 혼비백산(魂飛魄散): 몹시 놀라 혼백이 흩어짐 * 의갑(衣甲): 군 복장 * 복마군(卜馬軍): 짐을 싣는 말을 부리는 군사 * 노불승거(勞不乘車): 고되어도 수레를 타지 않음 * 서불장개(薯不張蓋): 더워도 양산을 펴지 않음 * 상창기곤(傷瘡飢困): 상하여 아프고 굶주림 * 십전구도(十顚九倒): 칠전팔기. 여러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함 * 촌보(寸步): 몇 발자국의 걸음 * 화병(火兵): 밥을 짓는 병사 * 노구: 노구솥 * 양초(粮草): 군사들이 먹을 양식과 말이 먹을 풀 * 병가상사(兵家常事): 싸움에서 일승일패는 흔히 있는 일이다 * 조장군: 조자룡
조조가 꾸짖어,
"너 이놈 퉁노구가 그랬으나 저랬으나 네 장수 이름자를 조조야 조조야 여호소아(如呼小兒) 한단 말가."
"그 장군님이 조조라 하더랬제 내가 조조라고 하오? 그러하나 저러하나 우리 군중에서 승상님 장군님 하제, 오 한 양국 사람들은 그러한 장수 말고 오륙세 아이들도 모두 다 하는 말이 조조 그놈 죽일 놈, 조조 그놈 죽일 놈 하니, 행세를 어찌 하여 인심 그리 못 얻었소? 지금 살아 계실 적에 남의 욕이 저러할 제, 상사(喪事)나신 천만년에 그 시비(是非)가 어떻겠소?"
조조가 들어 본즉 대답할 말이 없어 대고 얼러,
"너 이놈 그런 걱정 네게는 부당(不當)이라. 진지 지금 안 올리면 네놈 목을 베리라."
위턱과 아래턱이 견딜 수가 있겠느냐.
진지를 지을렬 제 아총(兒塚) 덮은 질솥 단지 벗겨다가 걸어 놓고 촌가의 노략한 쌀 물에 씻어 안친 후에, 부시를 치려 한들 그 비 맞은 부싯깃이 아런들 불붙겠나. 부시를 한참 칠 제 조조가 정욱더러,
"우리 따라 온 군사가 도합이 몇 명이냐?"
"백만 명이오."
"모두 다 어디 가고 저것이 남았느냐? 갈 길은 아직 멀고 군사는 몇 없으니 화병놈 밥할 틈에 군사 점고하여 보자."
"어디 점고할 것 있소. 나는 가르칠 게 승상님은 꼽아 보오.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모퉁에 한 놈, 나무 밑에 한 놈, 부시치는 놈 하나, 승상님 하나, 나 하나, 모두 일곱이오."
"그럴 리가 있나. 앞에서 먼저 간 놈, 뒤에서 못 따라온 놈, 산곡에 숨은 놈, 촌려(村閭)에 노략간 놈, 응당히 많을 테니 대좌기(大坐起)하고 장호적(掌號笛)하라."
정욱이 대답하고 점고를 시작할 제, 할 노릇은 다 하여 좌기취(坐起吹)를 하는데 주먹대고 나팔 불고 입으로 북 불고 놋기 조각 바라 치고 막대기에 가랑잎 달아 숙정패(肅靜牌) 삼아 꽂고 대취타(大吹打)한 연후에 장호적을 한참 하니, 군사들이 들어오는데 이것이 전장에 온 군사 뽄이 아니라 기(己) 갑년(甲年) 기민(飢民) 뽄이로구나. 어린 작대안을 정욱이 펴들고 차례로 부르는데,
"좌부(左部) 우사(右司) 전초(前哨) 일기(一旗) 일대장 공중쇠."
* 여호소아(如呼小兒): 어린애 부르듯 함 * 상사(喪事): 죽다 * 아총(兒塚): 어린 아이의 무덤 * 부시: 부싯돌에 깃을 놓고 쳐서 불똥이 일어 불붙게 하는 쇳조각 * 촌려(村閭): 마을 * 대좌기(大坐起): 대장이 자리를 잡고 일을 처리할 태세를 갖춤 * 장호적(掌號笛): 각 장군, 기대총을 모아 사람의 수효를 세거나 군의 사무를 위해 쇠납으로 알리는 신호 * 좌기취(坐起吹): 좌기(坐起)를 취할 때 하는 군악 * 놋기: 놋쇠로 만든 그릇 * 기(己) 갑년(甲年): 천간이 기(己)와 갑(甲)이 들었던 해 * 기민(飢民): 굶주린 백성 * 좌부(左部): 대중군(大中軍)의 앞에 선 부대 * 우사(右司): 장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서는 부대 * 전초(前哨): 앞쪽 오른쪽 진영에 속한 대오의 선두 * 일기(一旗): 앞쪽 오른쪽 진영의 선두 전초의 다음에 서는 기수 * 일대장: 일기의 다음에 서는 부대
기총(旗總)이 옆에 서서 대답하되,
"물고(物故)요."
"이대장 육대쇠."
"물고요."
"삼대장 무거쇠."
"물고요."
"사대장 허망쇠."
'물고' 소리 장 하기가 기총(旗總)도 무안하여 대담 뽄을 고쳐서,
"죽었소."
"오대장 맹랑쇠."
"그놈도 그랬소."
"낭선수(狼선手) 팔랑쇠."
"아까 하던 말이오."
"어따 이놈아, 쇠자 항렬은 다 죽었단 말이냐?"
"적벽강 그 불 속에 무슨 쇠가 안 녹겠소?"
"장창수(長槍手) 장내두리."
"예."
저놈이 들어오는데 한 다리는 절룩절룩, 한 팔은 들어 메고 부러진 창대 끌면서 애고애고 울며 온다. 조조가 반겨 물어,
"점고 시작한 지가 반일(半日)이 되었으되 대답하고 오는 놈 처음 너를 보았으니, 반갑기는 반가우나 울기는 왜 우느냐?"
"우는 내력 들어보오. 적벽강에 뛰어 나다 이 다리가 위골(違骨)하고, 오림에서 복병 만나 이 창을 뺏삽기에 창 아니 뺏기려다 팔과 창이 다 부러져, 창날은 빼어 가고 창대 꺾어 버리기에 짚고는 왔소마는 내 신세를 생각하니 모진 목숨 아니 죽고, 설령 고향 갈지라도 병신되기 원통한데 만일 복병 또 만나면 내 꼴이 어떻겠소 그 생각하고 우오."
조조가 복병소리 실허하여,
"방정스런 주둥이로 복병 소리 왜 하는고."
"승상님은 유복하여 저 꼴이 되었나 보오."
"등(藤)채 수성(守城) 가토리."
"예."
저놈이 들어오는데 고개 뒤로 딱 잦히고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느짓느짓 걸어와서 조조 앞에 절한다고 입으로,
"절이오."
하고 배만 쑥 내미니 조조가 꾸짖어,
"이놈, 그 절 뽄을 어디서 배웠느냐?"
"적벽강에서 난 절이오."
"누가 절을 가르쳤노?"
"선생 없이 자득(自得)이니 절 내력 들어보오. 적벽강 화염(火焰) 중에 몸을 뛰어 도망할 제, 군복 뒷자락에 불이 방장(方將) 타는 것을 어떻게 겁냈던지 아무런 줄 모르고서 주먹 쥐고 한참 가니, 고개 뒤로 잣당기고 맛난 내가 곧 나기에 함께 오는 사람더러 자세히 보라 한즉, 등덜미가 다 익어서 힘줄이 다 오그라져 빨끈 잦혀 놓았으니 앞으로 숙이기는 죽어도 할 수 없소."
조조가 의사 내어,
"이번은 파자락에 또 불을 질렀으면 가슴에서 잡아당겨 절로 꼿꼿하여지제."
"의사 참 영웅이오."
"조총수 한눈감이."
"예."
저놈은 들어오며 항문에 손 받치고 울면서 하는 말이,
"애고 똥구멍이야. 애고 똥구멍이야."
조조가 불러,
"너 이놈, 앓을 데가 오죽 많아, 똥구멍은 왜 앓느냐?"
* 낭선수(狼선手): 낭선창을 가진 병사. 낭선은 보졸(步卒)들이 낭선창을 가지고 하는 무예 * 위골(違骨): 뼈가 어그러짐 * 등(藤)채 수성(守城): 채찍을 가지고 성을 지키는 병사 * 방장(方將): 곧. 금방 * 잣당기고: 잡아당기다
저놈이 대답하되,
"적벽강서 아니 죽고 오림으로 도망터니 한 장수가 쫓아와서 내 벙치 썩 벗기고 내 상투 석 잡으며, 어허 그놈 어여쁘다. 죽이자 하였더니 중동 해소시켜 볼까. 갈대 숲 깊은 데로 끌고 들어가서 엎어지르며 하는 말이, '전장에서 나온 지가 여러 해 되었기로 양각산중(兩脚山中) 주장군(朱將軍)이 참것 맛을 못 보아서 밤낮으로 화를 내니, 옥문관은 구지부득(求之不得) 너 지닌 항문관(肛門關)에 얼 요기(療飢) 시켜 보자.'
침도 안 바르고 생짜로 쑥 디미니 생눈이 곧 솟는데 뱃살이 꼿꼿하여 두 주먹 아드득 쥐고 앞니를 뽀득 갈아 반생반사 막 견디니 그 옆에서 굿 보는 놈 걸음 차례 달려들어 일곱 놈을 치렀더니, 항문 웃시울 망건 당줄 조른 것이 뚝 끊어져 벌어지니 뱃속까지 훤하여서 걸림새가 아주 없어, 그래도 그 정으로 총은 아니 뺏아가고 옆에다 놓았기에 간신히 정신 차려 온몸을 주무르고 총대 짚고 일어서서 일보일게(一步一憩) 오옵는데, 제일 극난(極難)한 게 밥 먹어도 그대로, 물 먹어도 그대로 쉬지 않고 곧 나오니 밖에서는 못 막아서 안으로 막아볼까 포수에게 석냥 받고 총을 팔아 황육(黃肉) 사서 종자 만큼 떼어 넣어도 수르르 도로 나와, 주먹만큼 목침(木枕)만큼 아무리 떼어 넣어도 도로만 곧 나오니 어찌하여 살 수 있소."
조조 또 의사 내어,
"쇠살을 가지고서 사람 살을 때우려거든 암만 한들 될 것이냐. 길가에 쌓인 송장 사람 살을 베어다가 착실히 막아보라."
"궁노수(弓弩手) 두팔잡이."
"예."
요놈은 들어오는데 아무 데도 상처 없고 매우 덤벙여,
"이놈, 너는 무슨 재조 몸이 저리 성했느냐?"
저놈이 장담하여,
"팔십삼만되는 군사 게 하나 쓸 것 있소? 모두 나와 같사오면 일생 해도 치패(致敗) 없지."
조조 반겨 급히 물어,
"어찌 하면 그러하냐?"
"남들 한참 싸움할 제 모퉁이나 바위 틈에 가만히 숨어 앉아 구경을 실컷 하다, 호궤령( 饋令)이 내리거든 살짝 나와 얻어먹고 얻어먹고 하였으면 평생 제 몸 치패 없지. 설령 승전하다기로 승상이나 좋으시지 우리 같은 군사들이 무슨 큰 재미 보자 물인지 불인지 불계사생(不計死生)하고 왈칼왈칵 달려들어. 못된 놈들이제."
조조가 또 웃어,
"네 몸 하나 아끼기는 물 샐 틈이 없겠구나."
"복마군(卜馬軍) 마철이."
"예."
* 벙치: 벙거지 * 중동: 몸의 가운데 부분으로 성기를 일컬음. 성욕을 풂 * 구지부득(求之不得): 구해도 얻지 못함 * 일보일게(一步一憩): 한 발 가고 한숨 쉼 * 황육(黃肉): 소고기 * 종자: 종지 * 궁노수(弓弩手): 활쏘기를 맡은 병사 * 치패(致敗): 아주 결딴남 * 호궤령( 饋令): 군사들에게 식사를 하라는 명령 * 불계사생(不計死生): 삶과 죽음을 헤아리지 않음
이놈이 들어오는데, 아무것도 안 가지고 쓴 것은 전립(戰笠) 꼭지, 말채만 쥐었구나. 조조가 화 내 물어,
"말과 기계 얻다 두고 빈채만 쥐었으며, 전립 버렁 얻다 두고 꼭지만 쓰고 온다?"
저놈이 대답하되,
"생각하니 허망하오. 말은 기계 실은 채로 적벽강에 여몽 만나 두 수 없이 다 뺏기고 몸만 남아 도망타가 오림에서 복병 만나 꽉 잡고 안 놓기에 군복 주어 사화(私和)하고 오다가, 생각하니 말 안 된 일 있어서 전립을 벗어 내어 절초(切草)장수 칼받침에 칠 푼 받고 팔아다가 바늘 한 쌈 사가지고 점잖은 사람으로 상투람 올 수 없어, 전립에 남은 꼭지 끈 달아 쓰고 왔소."
"너 이놈, 군중에서 바늘은 얻다 쓰게?"
저놈이 웃으면서,
"세 치로 내어 놓아, 뉘 제 어미 붙을 놈이 이 고생 겪은 후에 군중(軍中)에 또 다녀요? 홍안유부(紅顔幼婦) 우리 아내 천리전장(千里戰場)에 날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편지 올까, 주야 축수(祝手) 바라다가 옥창앵도(玉窓櫻桃) 꽃이 지고 정상(井上) 오동잎 떨어져 설청운산 북풍한(雪晴雲散 北風寒)에 독수공방(獨守空房) 누웠다가, 문전에 청삽사리 퀑퀑 짖는 소리 듣고 행여 우리 임 오시나 전도출문(顚倒出門) 내다보니 임은 정녕 아니 오고, 풍설야귀(風雪夜歸) 하는 사람 청루(靑樓) 찾는 한량이라, 설운 마음 둘 데 없어 방 안으로 들어와서 각침찬금금란(角枕燦錦衾爛)에 여미망차 수여공침(予美亡此 誰與共寢)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들제, 이내 몸 돌아가서 낭도래시근야래(郎到來時近夜來) 사립 안에 들어서며 아기 어멈 거기 있나, 적벽강 싸움 갔던 자네 낭군 안고, '와 계신가, 와 계신가, 우리 낭군 와 계신가. 팔십삼만 다 죽는데 낭군 혼자 아니 죽고 날 보려고 와 계신가.' 방으로 들어가서 울려는 듯 웃으려는 듯, 낯을 대며 손을 잡고 '자넨 웬 사람으로 내 간장을 다 녹이는가. 남정북환(南征北還)하실 적에 배가 오죽 고팠으며, 초행노숙(草行露宿)하실 적에 몸이 오죽 추웠을까. 이 밥 먹고 이 옷 입소.' 온갖 정담 다 하면서 훨썩 벗고 둘이 누워 그린 상자 푼 연후에, 나는 무엇 줄 것 없어 바늘 한 쌈 정표(情表) 하자 주머니에 깊이 넣었소."
* 말채: 말채찍 * 버렁: 벙거지의 둥근 윗부분 * 절초(切草)장수: 살담배(썬 담배) 장수 * 세 치로 내어 놓아: 세 치의 남자의 음경을 내어 놓아 * 홍안유부(紅顔幼婦): 붉고 윤이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한 어린 아내 * 옥창앵도(玉窓櫻桃): 아름다운 창에 핀 앵두 * 설청운산 북풍한(雪晴雲散 北風寒): 눈 개고 구름 흩어져 북풍이 차다 * 독수공방(獨守空房):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밤을 지냄 * 청삽사리: 빛깔이 검고 긴 털이 곱슬곱슬한 개 * 전도출문(顚倒出門): 넘어져 가면서 문에 나옴 * 풍설야귀(風雪夜歸): 세찬 눈바람이 오는 밤에 돌아감 * 청루(靑樓): 푸르게 칠한 누각으로 귀인의 여자 또는 미인이 사는 집. 여기서는 기생집 * 한량: 벼슬을 못한 호반 * 각침찬금금란(角枕燦錦衾爛)에 여미망차 수여공침(予美亡此 誰與共寢): {시경} 당풍(唐風) 갈생(葛生)에 나오는 대목. '角枕이 찬란하며/비단이불이 곱도다/내 아름다운 분은 여기에 없으니/누구와 더불어 날을 샐꼬' * 전전반측(輾轉反側): 몇 번이고 뒤척이며 잠들지 못함. {시경} 주남(周南)에 나오는 대목 * 낭도래시근야래(郎到來時近夜來): 임께서 돌아올 때가 멀지 않은 밤이리 * 남정북환(南征北還): 남쪽을 정벌하고 북으로 돌아옴 * 초행노숙(草行露宿): 초원을 걷고 한길에서 잠을 잠
조조가 나무라,
"그놈 음남(淫男)이로고."
"승상은 영웅이라 팔십삼만 죽였으니 패남(敗男)이라 하오리까."
그렁저렁 점고하고 진지를 재촉하니 화병이 치던 부시 이때까지 안 붙었다.
"진지 올려라."
"밥 안쳤소."
"진지 올려라."
"상 놓소."
"진지 올려라."
"진지 괴오."
"진지 올려라."
"가져 가오."
"진지 올려라."
"내 좆도 인제 부시 치오."
원 오래 치느라니 어쩌다가 붙었구나. 막 불 살라 넣느라니 조조가 또 염소 웃음을 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의 한 번 웃음 조자룡을 청하여서 남은 인마 다 죽이고, 어떤 장수 청하자고 또 웃음을 웃으시오?"
조조가 대답하되,
"주유와 제갈량이 여간 재조 있다 하되 하룻비둘기라 암만 해도 재 못 넘제. 이러한 험한 곳에 복병을 하였으면 우리 신세 된 모양이 묶어 놓은 돼지라 살 수 잇나, 살 수 있나."
이 말이 지듯 말듯 좌우에서 총 소리가 콩 튀듯이 일어나며 벌떼같은 복병들이 불 지르고 냅다 설 제, 저 장수의 거동 보소. 검은 낯 고리눈과 표범 머리 제비턱에 비단 갑옷 순금 투구 장팔사모(丈八蛇矛) 비껴 들고, 심오마(深烏馬)에 높이 앉아 거뢰(巨雷)같은 목소리를 성정대로 뒤지르며,
"이놈 조조야, 연인(燕人) 장익덕(張益德)을 장판교(長坂橋)서 보았지야. 너 한 놈 탁란(濁亂)으로 한실(漢室)이 망케 되고 창생(蒼生)이 무슨 죄냐. 적벽 오병(鰲兵) 큰 싸움에 주도독께 아니 죽고 험악한 이 산중에 목숨 도망 너 왔느냐. 우리 군사 장령 모아 너 잡으러 내가 왔다. 탐낭취물(探囊取物) 내 창법을 네가 생심 방위할소냐. 종천강 종지출(從天降 從地出)을 네 재조로 못할 테니 목 늘여 창 받으라."
* 음남(淫男): 음탕한 남자 * 패남(敗男): 싸움에서 패한 남자 * 하룻비둘기: 멋 모르는 햇병아리라는 말뜻 * 고리눈: 눈동자의 둘레에 흰 테가 둘린 눈 * 장팔사모(丈八蛇矛): 장비가 가졌던 창 * 심오마(深烏馬): 장비기 탄 말 * 탁란(濁亂): 사회나 정치가 흐리고 어지러움 * 오병(鰲兵): 병사를 한목 무찔러 죽임 * 탐낭취물(探囊取物): 일이 몹시 쉬움을 말함 * 종천강 종지출(從天降 從地出): 하늘에서 내리고 땅에서 나옴
조조가 혼이 나서 벗은 갑옷 내버리고 말 등에 뛰어 올라 자분필사(自分必死) 도망할 제, 장요 서왕 뒤를 막아 장비와 대적하니 조조가 한참 도망타가, 장비 점점 멀어지니 방정을 또 내떨어,
"이애 정욱아 날 보아라, 목 있느냐?"
"목 없으면 말하겠소?"
"장비가 홀아비냐?"
"좋게 아들 낳아 장포(張苞)도 명장이라우."
"그 낯바닥 검은 색과 그 눈구멍 흰 고리에 어떤 계집이 밑에 누어 쳐다 볼거나. 내 통이 크지마는 만일 꿈에 보았으면 정녕 지녈키제."
말하며 가느라니 앞에서 가던 군사 아니 가고 품(稟)을 하여,
"앞 길이 두 갈랜데 큰 길은 좋사오되 형주(荊州)로 가자 햐면 오십 리가 더 있삽고 작은 길 화용도(華龍道)는 오십 리가 없사오니 산이 험코 길이 좁아 구렁텅이 많사옵고, 산등에서 내가 나니 어느 길로 가오리까?"
"화용도로 들어가자."
제장이 여짜오되,
"내가 나는 곳에 정녕 복병 있을 테니, 왜 그리 가자시오?"
"병서 아니 읽었느냐? 허즉실 실즉허(虛則實 實則虛)라, 제갈량이 얕은 소견 산머리에 연기 피워 복병이 있는 듯이 내가 그리 아니 가고 큰 길로 갈 것이니, 큰 길에 복병하여 꼭 잡자 한 일이나 내가 누구라고 제 잔꾀에 넘겠느냐? 잔말 말고 그리 가자."
제장이 추어,
"승상의 묘한 국량(局量) 귀신도 알 수 없소."
옆에 따라오는 군사 입바른 말을 하여,
"왜 저렇게 알거드면 황개의 사항서(詐降書)와 방통(龐統)의 연환계(連環計)에 그리 몹시 속았는고. 살망을 저리 떨고 무슨 재변 정녕 나제."
앞에 가던 말과 군사 아니 가고 자저하니 조조가 재촉하여,
"왜 아니 간다느냐?"
군사가 여짜오되,
"산은 험코 길 좁은데 새벽 비가 많이 와서, 구렁에 물이 괴고 진흙에 말굽 빠져 암만해도 갈 수 없소."
조조 호령 크게 한다.
"군사라 하는 것이 산 만나면 길을 파고, 물 만나면 다리 놓아 못 갈 데가 없는 것을 수렁에 물 괴었다 지체를 한단 말가?"
* 자분필사(自分必死): 스스로 꼭 죽으리라는 것을 앎 * 방정: 진중하지 못하고 몹시 가볍게 하는 말이나 행동 * 지녈: 기절 * 품(稟): 웃어른에게 가부(可否)를 여쭘 * 허즉실 실즉허(虛則實 實則虛): 허(虛)한 듯하지만 실(實)이고, 실(實)인 듯하나 허(虛)임 * 국량(局量): 도량과 재간 * 살망: 말과 행동이 경망스럽고 자잘함 * 자저: 주저함
군사를 동독(董督)하여 길가에 나무 베어 깊은 구렁 높이 메우고 좁은 길 넓힐 적에, 장요 허저 서황 등은 칼을 쥐고 옆에 서서 게으른 놈 목을 베니, 상창기곤(傷瘡飢困) 남은 군사 밟혀 죽고 칼에 죽고, 날은 차고 배는 고파 손 발 시려 우는 말이,
"적벽강에서 죽었더면 죽음이나 더운 죽음, 애써서 살아 와서 얼어 죽기 더 섧구나."
처량한 울음 소리 산곡이 진동하니 조조가 호령하여,
"죽고 살기 네 명이라 뉘 원망을 하자느냐."
우는 놈은 목을 베니 남은 군사 다 죽는다. 처량한 울음 소리 구천(九天)에 사무치니, 엄동설한 이 시절에 새가 분명 없을 터나 적벽 오림 호로곡(葫蘆谷)에 원통히 죽은 군사 원조(寃鳥)가 되어 나서 조조의 허다 죄목(罪目) 조롱하여 꾸짖는다.
벽오서로봉황지(碧梧棲老鳳凰枝) 저 봉황이 꾸짖는다.
"편체문장(遍體紋章) 이내 몸이 덕(德)빛 보고 내려오다 남훈전(南薰殿) 소소풍류(簫韶風流) 날아 내려 춤을 추고, 기산(岐山) 아침 날에 날아가서 울었더니 너같은 역적놈이 천하를 탁란키로 세상에 못 나가고 이 산중에 숨었노라."
월상비취(越裳翡翠) 무소식 저 비취가 꾸짖는다.
"문 무 주공 성인덕화(聖人德化) 천무열풍음우(天無烈風淫雨)키로 교지남(交趾南)에 월상씨(越裳氏)가 공 바치러 가올 적에 이 몸이 따라가서 좋은 상서(祥瑞) 되었더니 너같은 난신적자(亂臣賊子) 인군(人君)을 구박하여 천시재변(天時災變) 종종 하니 이 산중에 숨었노라."
자고비상월왕대( 飛上越王臺) 저 자고가 조롱한다.
* 동독(董督): 감시하고 독촉함 * 상창기곤(傷瘡飢困): 부상당하고 굶주려 고생함 * 원조(寃鳥): 원귀(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귀신)가 변해 된 새 * 벽오서로봉황지(碧梧棲老鳳凰枝): 벽오에는 늙은 봉황이 깃듦 * 편체문장(遍體紋章): 온 몸의 고운 채색 무늬 * 남훈전(南薰殿): 당(唐)나라의 궁전 * 소소풍류(簫韶風流): 순(舜)황제의 노래 이름 * 춤을 추고: 봉황래의(鳳凰來儀).봉황이 날아와서 춤을 춘다는 것으로 태평성대를 상징함 * 성인덕화(聖人德化): 성인(주(周)나라 문공(文公) 무공(武公) 주공(周公))의 덕행으로 감화시킴 * 천무열풍음우(天無烈風淫雨): 하늘에 폭풍이나 큰 비가 없어 맑고 깨끗함 * 상서(祥瑞): 복스럽고 길한 징조 * 난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힌 신하와 부모를 거역한 자식 * 인군(人君): 임금 * 천시재변(天時災變): 하늘이 내린 재변 * 자고비상월왕대( 飛上越王臺): 자고새가 월왕대 위를 날음
"여보소 조맹덕아, 불의지사(不義之事) 저리 하고 자네 부귀 오랠손가. 동작대 봄바람에 이교녀는 간 데 없고 낙목한천(落木寒天) 슬픈 바람 내가 올라 춤을 추세. 산량자치 시재(山梁雌雉 時哉)로다. 끌끌 우는 저 장끼 나의 뜻이 경개(耿介)하고 오색 문채(文彩) 고운 고(故)로 우리 임금 곤의수상(袞衣繡裳) 나의 형용 그려 내니, 너 입은 홍포 위에 이내 몸 그릴 생각 생심(生心)도 먹지 마라."
농산앵무능언어(농山鸚鵡能言語) 저 앵무가 말을 한다.
"적벽강 패군들아, 너의 고향 어느 곳이고? 객사전장(客死戰場)했다 하고 일봉서(一封書)를 써서 주면 너의 집 도장(堵牆) 안에 날아가서 내 전하마."
어사부중오야제(御史府中烏夜啼) 저 오작이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내 소리를 잊었는가. 월명성희(月明星稀) 깊은 밤에 요수삼잡(繞樹三잡) 높이 떠서 싸우면 망하리라 내 아니 일렀는가. 내 소리 안 믿다가 저 골이 웬 꼴인가."
까욱가욱 울고 간다.
상유황리심수명(上有黃리深樹鳴) 저 꾀꼬리 노래한다.
"객사전장(客死戰場) 저 장졸아, 너희 고향 잊었느냐. 너희 아내 너 기다려 네 얼굴 보려 하고, 사창전(紗窓前)에 졸다가 내 노래 한 소리에 꾸던 꿈 깨었다고 날 원망을 하더구나. 꾀꼴롱 꾀꼴롱."
유작유소 유구거지(維鵲有巢 維鳩居之) 저 비둘기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사백년 한나라가 까치 집이 아니어든 공연히 뺏으려고 내 재조를 하려 하니 아무런들 될 것이냐. 꾸우륵 꾸우륵."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저 따오기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간신 행세 부끄러워 황개의 호통 소리 그리도 무섭던가. 홍포조차 벗었으니 나 입은 것 빌려 줄까. 따옥따옥."
각향청산문두견(却向靑山問杜鵑) 저 두견이 슬피 운다.
"사장백골(沙場白骨) 저 원혼아, 천음우습(天陰雨濕) 깊은 밤에 고국산천 바라보며 추추( )히 우는 소리 나와 함께 불여귀(不如歸)라. 귀촉도 귀촉도."
저 쑤꾹새 조롱한다.
"욕심 많은 조승상아, 만종록(萬鍾祿) 좋은 고량(膏梁) 무엇이 부족하여 불의지사(不義之事) 하려다가 기갈이 자심한가. 이 산중 적막하여 먹을 것 없었으니, 쑥국이나 먹고 가소."
이리 가며 쑤꾹 저리 가며 쑤국.
* 불의지사(不義之事): 의롭지 못한 일 * 낙목한천(落木寒天): 나뭇잎 지는 추운 계절 * 산량자치 시재(山梁雌雉 時哉): 산골짝 다리 밑에 노는 암꿩아, 때를 만났구나 * 경개(耿介); 절조를 굳게 지키어 세속과 구차스럽게 화합하지 않음 * 오색 문채(文彩): 채색을 들인 비단 * 곤의수상(袞衣繡裳): 곤의는 용을 그린 천자의 예복. 수상은 오색의 수를 놓은 옷 * 농산앵무능언어(농山鸚鵡能言語): 농산의 앵무야 내 집에 소식 전해 다오 * 도장(堵牆): 담벽 * 어사부중오야제(御史府中烏夜啼): 어사가 집무를 보는 곳에서 까마귀가 밤에 욺 * 상유황리심수명(上有黃리深樹鳴): 머리 위에서 들리는 꾀고리는 숲에서 욺 * 사창전(紗窓前): 깁(紗: 견직물의 일종)을 친 창 * 유작유소 유구거지(維鵲有巢 維鳩居之): 까치가 둥지를 둠에 비둘기가 살도다. 타인의 지위를 점함을 비유.({시경}, 소남(召南)에 나오는 대목.) *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낮게 깔려 있는 노을의 모양 * 각향청산문두견(却向靑山問杜鵑): 청산을 쳐다 보며 두견새에게 물음 * 천음우습(天陰雨濕): 하늘이 음침하여 비가 옴 * 추추( ): 새 우는 소리를 형용 * 불여귀(不如歸): 뻐꾸기 * 만종록(萬鍾祿): 많은 봉록 * 고량(膏梁): 고기와 좋은 곡식. 맛있는 음식
저 비쭉새 조롱한다.
"통일천하 너를 주랴. 아나 옜다 비쭉. 이교녀를 너를 주랴. 아나 옜다 비쭉. 협천사(挾天子) 호령 제후 역적놈이 너 아니냐. 아나 옜다 비쭉. 짐살국모( 殺國母) 족멸충신(族滅忠臣) 네 죄목을 뉘 모르리. 아나 옛다 비쭉."
저 검정새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자네 형용 못 보거든 나를 보고 짐작하소. 볼수록 유복하지."
대가리 까딱까딱, 꽁지는 까불까불, 이리 팔팔 저리 팔팔. 비거비래(飛去飛來) 뭇새들이 온 가지로 조롱하니, 조조 제 역(亦) 무색하여 한 말 대답 못하고서 먼 산만 바라볼 제, 수목 삼삼 깊은 틈에 은은히 섰는 장수 신장은 팔척이요, 붉은 낯 채수염에 가만히 서 있거늘 조조가 보고 깜짝 놀라 마하(馬下)에 떨어지니 정욱이 묻자오되,
"승상님 평생 행세 어양도 하 많아서 웃기도 하 잘하고 울기도 하 잘하고, 불시에 좋아하고 불시에 나자하니 측량을 할 수 없소. 즉금(卽今) 하는 저 재조는 남 도르잔 궤술(詭術)이요, 적벽강 불에 간담(肝膽) 놀라 지랄병을 얻으셨소. 왜 공연히 앉았다가 솔방울 모양으로 뚝 떨어져 굴러가오."
조조가 손을 들어 수풀 사이 가리키며 정신 없이 말을 하여,
"나무 사이 보이는 게 정녕 관공(關公)이제."
"승상님 혼 나갔소? 그것이 장승이오."
"얘야, 장승이면 장비(張飛)하고 일가(一家) 되냐?"
"십리 오리 표하자고 나무로 깎아 세우니 화용도 장승이오."
조조의 평생 행세 만만한 데 호기 내어 나무로 깎았으니 말 못할 줄 짐작하고 호령을 크게 하여,
"너, 그놈 잡아 오라."
그래도 장령이라 어쩔 수가 있나. 추운 군사 손을 불며 장승 빼어 들여 놓으니, 조조 소견 만만커든 적벽 오림 호로곡에 무한히 당한 분(忿)과 여럿에게 받은 욕을 만만한 장승에게 모두 풀자 시작하여, 봉초(捧招)하는 죄인같이 문목(問目)하여 묻는구나.
"살등(煞等) 너의 신이 공산의 노목으로 사모(紗帽) 품대(品帶)하였으니 무슨 벼슬하였으며, 낯이 저리 붉었으니 웬 술을 그리 먹고, 눈을 몹시 부릅뜨니 홍문연(鴻門宴) 번쾌(樊쾌)러냐. 콧마루가 높았으니 한 고조의 후신이냐. 입 있어도 말 못하니 예양(豫讓)의 탄탄(呑炭)이냐. 뱃바닥에 글 썼으니 손빈(孫빈)의 궤술(詭術)이냐. 수염이 좋았으니 염참군(髥參軍)이 되려느냐. 뻣뻣 서서 절 안하니 주아부(周亞夫)의 군법이냐. 수림간(樹林間)에 우뚝 서서 대승상 가시는데 문안도 아니 하고 마음 놀랜 죄가 만사무석(萬死無惜)이니 장찬(粧撰) 말고 직고(直告)하라."
* 비쭉새: 후루룩 비쭉새 * 짐살국모( 殺國母): 짐새로 만든 독주로 국모(國母)를 죽임. ({후한서} 염황후비(閻皇后妃)에 나오는 대목) * 족멸충신(族滅忠臣): 충신의 족(族)을 멸함 * 채수염: 숱은 많지 않지만 퍽 긴 수염 * 어양: 의뭉함 * 나자하니: 언짢아함 * 궤술(詭術): 사람을 속이는 술책 * 봉초(捧招: 죄인으로부터 범죄 사실에 대한 진술을 들음 * 살등(煞等): 좋지 않은 띠앗 * 홍문연(鴻門宴): 한나라 고조 유방과 항우가 홍문에서 베푼 주연(酒宴) * 번쾌(樊쾌): 유방의 장수 * 예양(豫讓)의 탄탄(呑炭): 진(晉)나라의 예양이 지백(智佰)의 원수 조양자(趙襄子)를 치기 위해 몸에 옷칠을 하여 문둥이가 되고 숯를 삼키고 벙어리가 되었던 고사 * 염참군(髥參軍): 진(晉)나라의 치조를 달리 부르는 이름 * 주아부(周亞夫): 한나라 사람. 문제(文帝)가 이를 진장군이라 부름. 오초 7국을 격파하고 승상이 됨. 뒤에 헛소리를 믿고 정위(廷尉)로 벼슬을 버리고 내려가니, 5일 동안 식사를 하지 않고 죽음 * 만사무석(萬死無惜): 만 번 죽어도 애석지 않음 * 장찬(粧撰): 허물을 숨기어 꾸며 덮음
이런 난리 당하여서 인신(人神)이 잡유(雜類)하니 인형 지닌 장승으로 목신(木神)이 없겠느냐. 장승이 초사(招辭)할 제 간흉한 저 조조를 말 못하게 잡죄는데,
"의신(矣身)의 지원정세(至寃情勢) 낱낱이 아뢰리라. 천지개벽 구궁(九宮) 생겨 삼팔(三八)이 목이 되어 천상 천하에 있는 나무 영욕이 다 다르네. 요지의 벽도나무 왕모의 과실이요, 월중의 단계나무 항아의 정자되고, 봉래의 교리 화조 신선이 사랑하고, 남명의 대춘나무 천만년 장수하고, 역양의 오동나무 순임금 거문고요, 송나라 살구나무 공부자의 강단(講壇)이요, 진라 노송나무 오대부 벼슬하고, 풍패(豊沛)의 잣나무는 한 고조를 덮었고, 탁군의 뽕나무는 유황숙의 일산(日傘) 되니 장하다 하려니와, 근래 다른 나무라도 어떤 나무 팔자 좋아 미앙(未央) 건장(建章) 들보 되어 오채용문(五彩龍文) 몸에 감고 언연(偃然)히 높이 앉아 삭망 절일 제사날에 금관조복(金冠朝服) 하온 승상 꾸벅꾸벅 절을 하니 오죽이 좋을 텐데, 이내 팔자 무상하여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자라나서 시비(是非) 없이 늙쟀더니, 무상한 형주(荊州) 사람 도끼로 꽝꽝 찍어 가지 베어 울섶이며, 밑동 캐서 마판(馬板)하고, 장작나무 뒤삭 가래, 가지가지 다 한 후에 그 중에 곧은 도막 목척(木尺)으로 열 두 자를 먹줄 놓아 인거(引鋸)하여 큰 자귀질 고이 하고, 웬 놈의 얼굴인지 방울눈, 주먹 코에 주토(朱土)칠 많이 하고, 써렛니, 개털 수염 뱃바닥에 새기기를, '자형주관문(自荊州官門)으로 남거오십리(南踞五十里) 장승'이라 큰 길 가에 우뚝 세웠으니, 입 있으나 말을 할까, 발이 있어 도망할까, 부끄럽기 측량 없어 낯은 일생 붉어 있고 분한 마음 못 이기어 눈은 항상 부릅떴네. 불피풍우(不避風雨) 혼자 서서 내인거객(來人去客) 호송터니 오늘날 승상 행차 문안을 아니한다, 잡아 오라, 끌어 오라 호기(豪氣)를 저리 피우니, 호기 조금 두었다가 관공님 만나거든 피워 보게 하옵시오. 무타소공(無他所控)하니 상고처지(詳考處之) 하옵소서."
* 잡유(雜類): 뒤섞임 * 초사(招辭): 죄인의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말 죄인의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말 * 의신(矣身): '나'의 낮춤말. 저 * 지원정세(至寃情勢): 매우 원통한 사정 * 공부자: 공자 * 풍패(豊沛): 한나라 고조가 군사를 일으킨 땅 * 미앙(未央): 한나라의 궁전 이름 * 건장(建章): 한나라의 궁전 * 언연(偃然): 건만스럽게 * 금관조복(金冠朝服): 문무관이 조복을 갖출 때 쓰는 관과 조하(朝賀) 때 입는 예복 * 무주공산(無主空山): 주인 없는 빈 산 * 인거(引鋸): 큰 톱을 마주 잡아당김 * 불피풍우(不避風雨): 풍우를 피하지 못함 * 내인거객(來人去客): 오가는 사람들 * 무타소공(無他所控): 고할 바가 딴 데 없음 * 상고처지(詳考處之): 자세히 참고하여 처리함
조조가 들어보니 대답할 말이 없어 문자로 얼버무려,
"물구즉신(物久則神)이라 언족이식비(言足以飾非)로다. 불가취설(不可取說)이니 나출문외(拿出門外)하라."
장승 끌어 내던지고 차차로 전진할 제, 조조가 왜가리 웃음으로 웃어 제장이 여짜오되,
"승상아 하하 웃으시면 번번 큰 일 나옵는데, 또 저리 웃으시니 이번 우리 다 죽겠소. 싸우자니 군사 없고, 도망하자니 길이 없어 어찌 하잔 말씀이오?"
조조 장담 마구 하여,
"생각하니 시석업퍼 웃음이 버썩 난다. 우리가 이번 길에 할 치패를 했느냐?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제. 적벽강서 본 치패는 오나라서 한 일이니 손권(孫權)이라 하는 손은 저의 아비, 저의 형이 창업하여 준 것으로 삼세나 되었으며, 주유라 하는 손도 나인 비록 젊었으나 인물이 밉지 않고 풍류 속도 대강 아니, 저에게서 본 치패는 오히려 덜 우세제. 아까 소위 한나라는 그것 다 무엇이냐? 내 입을 떼어 놓으면 그것들이 갓 못 쓰제. 유황숙은 탁군에서 신만 삼던 궁조대(窮措大)요, 제갈량은 남양(南陽)에서 밭 파던 농토생(農土生), 아까 그 관운장(關雲長)은 하동의 독장수, 더더구나 장비 그 손은 탁군의 저육(저肉)장수 괘씸하다. 조자룡은 상산에서 노략질꾼, 세상이 그릇되니까 저희끼리 모여 주먹의 힘만 믿고 아무 인사 통히 없어 나와 저의 의론하면 가세는 고사하고 연치(年齒)만 가지고도 저의 존장(尊丈) 푼푼한데 절하기는 의논 않고 이놈 조조, 이놈 조조, 어른의 함자를 게딱지 떼듯 하니, 그러한 잡것들을 내가 탄키 점잖쟎아 버려는 두거니와 제 버릇 괘씸하제."
정욱이 들어보니 조조의 헛 장담이 원 듣기에 얄밉구나. 한번 물어보아,
"세상 말 알 수 없소. 사람마다 하는 말이 승상님 간사하여 남의 성자(姓字) 가지고서 행세를 하신다고, 근본은 하후씨(夏侯氏)인데 환자(宦者)놈에 수양(收養) 들어 추세(趨勢)를 하시느라 조씨라 한답디다."
* 물구즉신(物久則神): 물건이 오래 묵으면 변화가 생김 * 언족이식비(言足以飾非): 그 말의 교묘함은 자기의 그릇됨을 꾸밀 만한 힘이 있음 * 나출문외(拿出門外): 문 밖으로 잡아 냄 * 시석업퍼: 시시해서 *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 남에게 들어 볼 것도 없다 * 우세제: 남에게서 받는 비웃음 * 궁조대(窮措大): 궁핍한 선비 * 존장(尊丈): 존경해야 할 웃어른 * 푼푼한: 모자라지 않고 넉넉함 * 환자(宦者): 내시원(內侍院)의 관원 * 추세(趨勢): 대세의 흐름이나 경향
조조가 할 말 있나, 속 좋은듯이 슬쩍 덮어
"실없은 놈들이다. 남의 성은 어떻든지 제 성이나 잘들 쓰제.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좁은 목에 장수 하나 고사하고 군사 열만 두었으면 내 재조와 네 재조가 여우 새끼 같더라도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하 하고 또 웃더니 소리 못 끊어져 방포소리 일어나며, 오백명 도부수(刀斧手)가 철통같이 길을 막고 일원 대장 나오는데, 중조면(重棗面) 와잠미(臥蠶眉)에 봉(鳳)의 눈을 부릅뜨며 삼각수(三角鬚) 거스르고 녹포 은갑 백금 투구 청룡도 비껴 들고 적토마에 높이 앉아 벽력같은 호령 소리 산악이 무너진다.
조조는 넋을 잃고 장졸은 혼이 없어 서로 보고 말이 없다. 조조가 떨며 하는 말이,
"이래도 죽을 터요, 저래도 죽을 테니, 죽기로 싸워볼까."
제장이 대답하되,
"사람은 싸운다고 말 힘 없어 할 수 있소."
조조가 장담(壯談)통이 쏙 빠지고 방정을 떠는구나. 두 발 동동 구르다가 가슴 탕탕 뚜드리며,
"이번은 나 죽는다 어찌 할거나."
정욱이 여짜오되,
"관공의 가진 성기(性氣) 자세히 아옵나니, 오상이불인하(傲上而不忍下)요 기강이불릉약(欺强而不凌弱)에 은원(恩怨)이 분명하고, 신의소저(信義素著)하였는데 하물며 승상에게 구일은(舊日恩)이 있사오니, 애긍히 빌었으면 죽이지 않을 테니 지성으로 비옵소서."
조조의 평생 행세 간흉한 사람이라 제 마음 가지고서 남의 마음 생각하니, 전 은혜야 어떻든지 그러한 좋은 판에 똑 죽이는 수로구나. 잔꾀를 내어 보아,
"얘야, 나는 배 아프니 내 투구 네가 쓰고, 내 갑옷 네가 입고 나 대(代)로 가 빌어 보라."
정욱이가 모사(謀士)여든 제 수에 넘겠느냐. 아주 떼어,
"이런 말 앗으시오. 죽음에도 대신 있소? 애긍설화(哀矜說話) 다 빈 후에, 관공은 한 말씀에, 에라 이놈 간사하다. 청룡도 드는 칼로 연한 목을 콱 찍으면 어디가 생심이 나 대조조(代曹操)라 하오리까."
조조가 콱 소리에 목을 쑥 움츠리며,
"애고, 얘, 내 목이 똑 떨어진 것 같다. 말도 그리 박절하냐. 기신(紀信)은 임금 위해 대로 가서 죽었는데, 어찌타 내 막하에 대신 보낼 사람 없노."
* 도부수(刀斧手): 큰 칼과 큰 도끼를 든 군사 * 중조면(重棗面): 얼굴빛이 붉음 * 와잠미(臥蠶眉): 예쁜 눈썹 * 삼각수(三角鬚): 두 뺨과 턱에 세 갈래로 난 수염 * 오상이불인하(傲上而不忍下):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아랫 사람에게 정이 깊음 * 기강이불릉약(欺强而不凌弱): 강자를 속이지만 약자를 업신여기지 않음 * 신의소저(信義素著): 신의가 밝게 드러남 * 기신(紀信): 한고조의 충신. 항우가 고조를 영양에서 포위했을 때 고조 대신 항복하였는데, 항우는 그를 불에 태워 죽임
무수히 자저(자저)할 제, 삼국지에 있는 사적 조조가 관공 보고 말 타고 빌었으되 비는 뽄 아니기로 부득이 이 대문을 세상이 고쳤것다. 조조가 하릴 없어 갑옷 벗어 말에 걸고 투구 벗어 손에 들고, 관공전(關公前)에 나아가서 백배 합장 애걸한다.
"장군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 안녕하시니까?"
관공이 말 위에서 몸을 굽혀 대답하되,
"관모는 무사키로 군사의 장령(將令) 모아 승상을 만나려고 이곳 온 지 오래노라."
조조 울며 비는 말이,
"조조 신수 불행하여 적벽강에 패진(敗陣)하고 혈혈한 이 목숨이 간신히 이곳에 왔사오니, 장군님 장한 의기 옛날 정을 생각하셔 목숨 살려주옵소서."
관공이 대답하되,
"하비(下비)에 패군하고 승상 군중에 갔을 적에 과연 후은(厚恩) 입었기로 안량 문추 목을 베어 백마위(白馬圍)를 풀게 하여 그 은혜를 갚았으니, 오늘 같은 나라 일에 이사폐공(以私廢公) 못하리라."
조조 다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군전에 비나이다. 장군이 패군하고 소장의 나라 와 계실 제, 청하신 삼건사(三件事)를 그대로 시행하여 미부인(미夫人) 감부인(甘夫人)을 별당에 사처(舍處)하고 천자께 여짜와서 장군을 인견(引見)하여, 편장군(偏將軍) 한수정후(漢壽亭侯) 작록(爵祿)을 봉하옵고, 능라금수(綾羅錦繡) 금은기명(金銀器皿) 아끼쟎고 바치옵고, 삼일 소연(小宴) 오일 대연(大宴) 객례로 대접하고, 미녀 10인 보내어서 두 부인께 시위하고 비단갑옷 몸에 맞게 새로 지어 올리오며 사주머니 곱게 지어 수염싸개 하였으며, 타옵신 적토마도 소장이 드렸삽고, 황숙의 소식 듣고 하직 없이 가실 적에 금포(錦袍) 지어 가지옵고 몸소 가서 전송하고, 오관(五關)에 육장(六將) 베고 동행 천리하실 적에 막은 일이 없사오니 지성으로 하온 일을 장군 어찌 잊으니까."
관공이 대답하되.
"하직하러 수차 갔다 회피패(回避牌) 걸었기로 부득이 떠나올 제 봉금괘인(封金掛印) 하였으니 무슨 말을 그리 하노."
조조가 또 빈다.
"장군님 장한 의기 문독(文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유공지사(庾公之斯) 자탁유자(子濯孺子)들의 일을 모르시오. 일제포(一제袍) 연연하여 고인정(故人情)이 있사오니 장군도 전포(戰袍) 모아 범저(范雎)를 생각하오. 천리마 주던 사람 평생 아니 잊었으니 장군도 적토마 보아 제오륜(第五倫)을 생각하오. 소장 평생 먹은 마음 장군 어찌 모르시오. 황건적 난을 만나 이 몸이 기병(起兵)하여 역적을 소멸하고 천하를 삭평(削平) 후에 이 몸이 죽삽거든 묘비에 새기기를 한고(漢故) 정서장군(征西將軍) 조후지묘(曹侯之墓)라.
* 하비(下비): 현(縣) 이름 * 이사폐공(以私廢公): 사사로운 일로 공사를 폐함 * 삼건사(三件事): 관우가 하비에서 패하고 조조에게 잡혔을 때 희망한 세 조건 * 미부인(미夫人): 유비의 첩 * 감부인(甘夫人): 감후(甘后). 소열황후(昭烈皇后) * 편장군(偏將軍): 부장군 * 작록(爵祿): 관직과 봉록 * 능라금수(綾羅錦繡): 명주실로 짠 비단 * 금은기명(金銀器皿): 금 은으로 만든 그릇 * 회피패(回避牌): 관공이 유비현덕의 소식을 듣고 조조에게 고별하러 가니, 조조가 그 뜻을 미리 알아 문을 걸어 면회를 사절함 * 봉금괘인(封金掛印): 관우가 조조의 군중(軍中)을 떠날 때 여러 차례 조조에게서 받았던 금은을 창고에 넣고 봉인(封印)함 * 일제포(一제袍): 위(魏)나라의 수가(須賈)가 범저(范雎)를 가엾게 여겨 의복을 준 고사. 은혜를 생각하는 마음 * 전포(戰袍): 장수가 입던 옷 * 정서장군(征西將軍): 서방을 정벌한 대장군
소원이 이뿐인데 인심이 무거(無據)하여 천자를 바란다고 지목을 하거니와. 견마(犬馬) 같이 천한 나이 53세 되었으니 인제 산들 몇 해 살며. 풍진(風塵)에 고생하여 이 털이 세었으니. 센 대가리 베어다가 어디다 쓰오니까. 백마진(白馬陣)에 죽을 목숨 장군이 살렸으니. 장군이 살린 목숨 장군 도로 죽이시려우. 태산같은 높은 의기 새알에 다 누르시려우. 맹호같이 장한 위엄 궤상육(机上肉)을 잡수시려우. 살려주오 살려주오. 소장 목숨 살려주오. 함정에 빠진 짐승 열어 놓아 살리시오. 그물에 걸린 새를 끌러 놓아 살리시오. 명촉달야(明燭達夜)하신 맹세 천지가 증인이라. 만고천지에 독왕독래(獨往獨來)하실 테니 초개(草芥) 같은 이 목숨을 죽여 무엇 하오리까. 장군님 가실 적에 봉서(封書) 중에 하시기를 기유여은미보(其有餘恩未報)는 원이사지이일(願以俟之異日)이라 친필로 쓰였으니 두 말씀을 하시리까. 봉서가 여기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손을 싹싹 비비면서 꾸벅꾸벅 절을 하니 비는 짐승 꼬리 같고 죽는 새의 울음이라. 관공의 평생 행세 의중여산(義重如山)하온지라 불인지심(不忍之心) 못 금(禁)하여 말 머리를 돌리시니 주창(周倉)이 옆에 서서 분분(忿憤)하여 여짜오되.
"장군님 오실 적에 조조를 못 잡으면 군법을 당하기로 군령장(軍令狀)을 두었으니 저만 놈의 사정 보아 군령장을 어쩌리까. 청룡도를 소인 주면간사한 조조 목을 콱 찍어 올리리라."
조조가 깜짝 놀라 목을 쑥 움츠리며.
"여보시오 주별감(周別감)님 어찌 그리 유독(有毒)하오. 웃양반의 인심 얻기 하인에게 매였으니 아무 말씀하지 말고 말머리만 돌리시면. 가다가 큰 주막에 좋은 안주 술대접을 양대로 하오리다."
얼레설레판에 조조와 제장들이 다 살아 도망하니 관공의 높은 의기 천고에 뉘 당하리. 훗사람 글을 지어 관공을 송덕(頌德)하되 조만병패주화용 정여관공협로봉 지위당초은의중(曹瞞兵敗走華容 正與關公狹路逢 只爲當初恩義重)하여, 방개금쇄주교룡(放開金쇄鎖走蛟龍). 이러한 장한 일을 사기(史記)로만 전하오면 무식한 사람들이 다 알 수가 없삽기로. 타령으로 만들어서 광대와 가객들이 풍류좌상(風流座上) 장 부르니 늠름한 그 충의가 만고에 아니 썩을까 하노라.
* 무거(無據: 터무니 없음 * 궤상육(机上肉): 도마에 오른 고기 * 명촉달야(明燭達夜): 촛불을 밝혀 밤을 샘 * 초개(草芥): 지푸라기 * 기유여은미보(其有餘恩未報): 아직 다하지 못한 은혜에 대한 보답 * 원이사지이일(願以俟之異日): 다음 날을 기다려 주오 * 의중여산(義重如山): 의리가 산처럼 무거움 * 불인지심(不忍之心): 정이 깊은 마음 * 분분(忿憤): 분하여서 원망스럽게 여김 * 풍류좌상(風流座上): 풍류를 즐겨 모이는 자리
* 적벽강이 뒤꿇으니 불빛이 낮빛이로구나 :화북을 평정한 조조는 중국을 통일하려고 대군을 이끌고 남하, 적벽에서 오·촉 연합군과 대치하였다. 그러나 오나라 황개의 화공계로 전선이 불타게 된다. 이 싸움에서 조조는 대패를 당하고 화북으로 후퇴했다. 이 구절은 적벽강에 매어 놓았던 배들을 태우는 불이 낮을 방불케 할 정도였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덟 '팔'자 ~ 방패 맞어 박살하고 :八자형으로 늘어선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 군모를 맞추고, 쇠도리깨를 휘둘러 화살을 막는 어릎파를 부수고, 불화살(신기전)을 쏴 방패를 박살 낸다는 뜻이다. 황개의 군사들이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의성어를 사용하여 생생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한 군사 내달으며 ~ 어느 때나 뵈오리까? :이렇게 군사들이 죽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은 '삼국지연의'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부분이다.
조조 겁 중에 ~ 윅이나 부다 :조조는 말을 거꾸로 탔기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쪽을 바라보고 있으나 움직이는 방향은 반대이므로 다른 군사들이 앞으로 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보인다. 그래서 조조는 그들이 축지법을 행하여 살며시 발로 땅을 찍어 가까이 당기는 줄로 안다.
조조 막 목을 ~ 있나 보아라 :조조가 메추리를 화살로 착각하여 겁을 집어 먹었음을 보여준다. 조조에 대한 희화화가 두드러진다.
조조 무색허여 ~ 안주감 좋으려니 :조조가 자신이 메추리에 놀란 것을 무안해 하며 도망가는 와중에 걸맞지 않은 안주감을 운운한다. 역시 조조가 겁이 많고 경박스러운 인물로 희화화하고 있다.
편전 :짧고 작은 화살
따르르르르르르 깍지손을 때떼르니 :활시위 당기는 소리 깍짓손, 활시위를 당기는 손
어릅파 :화살을 막는 기구
신기전 :불을 지르게 하는 화살
시그르르르르르르 :불화살에 맞아 방패가 타는 소리
와삭와삭 먹고 죽고 :독약을 맛있게 먹는 양 표현함
세설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 놓으며
꾀탈앙탈 :꾀부리며 앙탈하며
퇴불여전 :달아나기를 전과 같이 하지 않아
상프듬 :살포시, 사뿐히
윅이나부다 :가까이 당기나 보다
창황 분주 :어찌할 겨를 없이 매우 급함
푸르르르르르르르 :새가 날아가는 소리
수루루루루루루루 :화살이 무수히 날아가는 소리
불가사문어타인 :다른 사람이 듣게 해서는 안 됨. 곧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서는 안 됨
이해와 감상
'적벽가'는 애초에 '화용도타령'이라 했다. '삼국지연의'의 처음부터 '적벽 대전' 직후 조조의 화용도 패주 대목까지를 바탕으로 하되 그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크게 변화시켰다. 즉 삼고초려(三顧草廬), 장판교 대전, 동남풍 비는 것, 적벽 대전, 화용도 패주 등의 삽화(揷話)는 '삼국지연의'에 있는 것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상당한 정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군사설움과 군사 점고 등 원작에 없는 것을 많이 만들어 넣었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싸우던 적벽 대전(赤壁大戰)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변용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적벽가' 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이다. 즉, 적벽 대전의 전야(前夜)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고향의 부모, 처자를 이별한 설움과 애틋한 사연들을 늘어놓은 사설들이다. 그런데 그 인물들이 판소리 창자가 창안한 인물들이다. <삼국지연의>의 처음부터 '적벽 대전' 직후 조조의 화용도 패주 대목까지를 바탕으로 하되, 그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또, <삼국지연의>에 없는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기존의 인물을 변화시켜 <삼국지연의> 영웅들을 보통 병사들로 변용하여 그들의 사연을 토로하게 한다. 이것은 판소리가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민중의 노래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외국 문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서민 의식을 반영한 좋은 예가 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적벽가'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으로, 적벽가의 원전(原典)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없는 것으로 판소리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일전(一戰)을 벌이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적벽 대전(赤壁大戰)의 전야(前夜)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설움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설움은 고향의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어서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움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음 날이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에 죽거나 부상당할 운명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또한 반전사상이 나타나 있는 것도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심화 자료
조조
적벽가(赤壁歌)
판소리 전승 5마당의 하나로
기본줄거리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차용하고 있으나, 세부에 있어서는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이 창작된 부분이 많다. 작품의 내용은 전체가 삼고초려·장판교대전·적벽대전·화용도패주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사의 초기부터 불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권력을 놓고 다투는 내용이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어서 예로부터 양반 귀족들이 즐겨 들었다고 한다. 수많은 군대와 장수들이 등장하여 전투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를 많이 사용하는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이다.
〈적벽가〉에 뛰어났던 명창으로는 송흥록·모흥갑·주덕기·박만춘·박유전·박만순·정춘풍·박기홍·김창록·서성관 등이며, 근세에 〈적벽가〉로 유명했던 사람은 김창룡·이동백·정정렬·장판개·조학진 등이 있는데, 이들의 소리는 현대 〈적벽가〉의 뿌리가 되었다. 8·15해방 이후에는 임방울·김연수·박동진·박봉술·한승호·정권진 등이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다.
〈적벽가〉는 크게 보아 삼고초려, 강능 피난, 박망파 싸움,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 타령, 적벽강 싸움, 화용도로 구성되는데, 바디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 불려지고 있는 〈적벽가〉 중에서 박동진의 〈적벽가〉는 정춘풍-박기홍-조학진을 거쳐 전승된 것으로, 위의 모든 대목을 갖추고 있어서 길이가 가장 길다. 유성준이나 송만갑이 부르던 동편제 〈적벽가〉는 임방울·김연수·정광수·박봉술 등에게 이어졌는데, 본래는 군사 설움부터 시작하는 이른바 〈민적벽가〉였다고 하며, 보성소리 〈적벽가〉는 박유전-정재근-정응민을 거쳐 정권진 등에게 이어진 것으로, 강능 피난과 장판교 싸움이 없다. 한승호의 〈적벽가〉는 이날치-김채만-박동실로 이어진 서편제 소리이다. 현대에는 본래 삼고초려가 없던 〈적벽가〉까지도 삼고초려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앞부분을 새로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적벽가〉는 전통적으로 충의(忠義)를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남창 위주인 〈적벅가〉는 현대 판소리의 여성화 추세로 인해 전승 탈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 1984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최초로 창극화되었다. 신재효가 개작하여 정착시킨 창본 외에 7종 정도의 이본이 전한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삼국지연의
중국의 역사 소설. 애초 민간 설화로 전해지던 삼국 쟁패의 이야기를 나관중이 집대성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우리 나라에도 널리 읽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문본, 국문본은 물론 '적벽 대전', '화용도실기' 등 부분을 소설화한 것도 많이 있다.
적벽대전
중국 후한(25~220)말 소규모 병력인 손권(孫權)· 유비(劉備)의 연합군이 양쯔 강[揚子江] 중류 츠비에서 조조(曹操)의 대군을 물리친 유명한 전투.
화북지방을 통일한 위(魏)나라의 조조는 208년 20만(80만으로 알려져 있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샹양[襄陽]·장링[江陵]에 진을 쳤다. 조조는 유비를 추격하는 한편, 양쯔 강 하류에 할거하던 오(吳)나라의 손권에게 투항을 권유하여 전국통일을 기도했다. 유비는 번구(樊口: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어청[鄂城] 서쪽)로 패퇴한 후, 손권에게 제갈량을 파견하여 동맹을 맺도록 설복시켰다. 손권이 주유(周瑜)·정보(程普)를 앞장 세워 3만의 병사를 출전시킴으로써 유비군과 함께 모두 5만여 명의 병사가 반격에 나섰다.
10월 조조군은 장링에서부터 양쯔 강 동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츠비에서 손권·유비 연합군에게 저지당하여 북철오림(北撤烏林:지금의 후베이 성 훙후 호[洪湖] 동북쪽)에서 손권·유비 연합군과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주유의 부하장수 황개(黃蓋)가 위장투항 계책을 써서 화공(火攻)으로 조조측 수군(水軍)의 군함을 불살랐다. 조조군은 수전(水戰)에 서툴고 먼데서 와 지쳐 있는 데다 전염병이 퍼져 병사들의 마음이 흩어져 있었고 계속되는 화공으로 군대를 재정비하지 못했다. 조조는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북방으로 패퇴했다. 츠비 대전 이후 손권은 강동(江東:즉 양쯔 강 하류) 정권을 공고히 했고, 유비도 형주(荊州) 지역을 차지하고 후에 익주(益州:지금의 쓰촨[四川])를 병합함으로써 3국 정립(鼎立)의 국면이 형성되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판소리 용어
광대 : 창자(唱者). 노래 부르는 사람
고수(鼓手) : 북 장단을 맞추는 사람
아니리 : 광대가 창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극적인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사설
추임새 : 고수 또는 청중이 내는 탄성으로 흥을 돋우는 소리. '얼씨구', '좋다', '그렇고 말고', '어허' 등
발림 : 창하면서 하는 동작
너름새 : '발림'과 같은 의미나 가사, 소리, 몸짓이 일체가 되었을 때를 가리키는 말.
더늠 : 어떤 광대가 창작하여 삽입한 마디를 말한다.
진양조 장단 : '세마치' 장단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느린 장단으로 극적 상황이나 한가한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즉 슬픈 정조를 환기할 때에 쓰이기도 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에 쓰인다.
중머리 장단 :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12 잡가 '적벽가'
삼강(三江)은 수전(水戰)이요 적벽(赤壁)은 오병( 兵)이라 난데없는 화광(火光)이 충천(沖天)하니 조조(曹操)가 대패(大敗)하여 화용도(華容道)로 행(行)할 즈음에 응포일성(應砲一聲)에 일원대장(一員大將)이 엄심갑(掩心甲)옷에 봉(鳳)투구 저켜 쓰고 적토마(赤兎馬) 비껴 타고 삼각수(三角鬚)를 거스릅시고 봉안(鳳眼)을 크게 뜹시고 팔십근(八十斤) 청룡도(靑龍刀) 눈 위에 선뜻 들어 엡다 이놈 조조(曹操)야 날다 길다 하시는 소래 정신(精神)이 산란(散亂)하여 비나이다 잔명(殘命)을 살으소서 소장(小將)의 명(命)을 장군전하(將軍前下)에 비나이다 전일(前日)을 생각하오 상마(上馬)에 천금(千金)이요 하마(下馬)에 백금(百金)이라 오일(五日)에 대연(大宴)하고 삼일(三日)에 소연(小宴)할 제 한수정후(漢壽亭候) 봉(封)한 후에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에 미녀충궁(美女充宮)하였으니 그 정성을 생각하오
금일 조조가 적벽(赤壁)에 패하야 말은 피곤 사람은 주리어 능히 촌보(寸步)를 못하겠으니 장군후덕(將軍厚德)을 입사와지이다
네 아무리 살려고 하여도 사지 못할 말 듣거라
네 정성 갚으려고 백마강(白馬江) 싸움에 하북명장(河北名將) 범 같은 천하장사(天下壯士) 안량(顔良) 문추(文醜)를 한 칼에 선듯 버혀 네 정성을 깊은 후에 한수정후(漢壽亭候) 인병부(印兵符) 끌러 원문(轅門)에 걸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였으니 네 정성만 생각하느냐 이놈 조조야 너 잡으러 여기 올 제 군령장(軍令狀) 두고 왔다 네 죄상을 모르느냐 천정(天情)을 거역(拒逆)하고 백성을 살해(殺害)하니 만민도탄(萬民塗炭)을 생각지 않고 너를 어이 용서하리 간사한 말을 말고 짤은 목 길게 늘여 청룡도(靑龍刀) 받으라 하시는 소래 일촌간장(一村肝臟)이 다 녹는다
소장(小將) 잡으시려고 군령장(軍令狀) 두셨으나 장군님 명(命)은 하늘에 달립시고 소장(小將)의 명은 금일 장군전(將軍前)에 달렸고 어집신 성덕(聖德)을 입사와 장군전하(將軍前下) 살아와지이다
관왕(關王)이 들읍시고 잔잉(殘仍)히 여기사 주창(周倉)으로 하여금 오백도부수(五百刀斧手)를 한편으로 치우칩시고 말머리를 돌립시니 죽었던 조조가 화용도(華容道) 벗어나 조인(曹仁) 만나 가더란 말가(자료 출처 :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적벽가의 골계적 성격
「적벽가」는 나관중이 지은 중국 산문소설인 『삼국지연의』 중 영웅 조조가 패한 ‘적벽대전’을 판소리의 형식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숭고하고 비장한 정서를 체험하게 되는 원작에 비하여 「적벽가」는 골계적 성격이 짙게 나타난다. 이 골계성은 주로 영웅적 인물의 희화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영웅적이었던 인물을 나약하게 그림으로써 무명의 여러 군사들이 부각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것은 「적벽가」가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민중의 노래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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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