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구름 / 해설 / 헤르만 헷세
by 송화은율저녁 구름 - 헤르만 헷세
작가 :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 1877.7.2~1962.8.9). 독일의 소설가․시인.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 출생. 러시아령 에스틀란트 태생인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新敎)의 목사이고, 모계(母系)도 역시 유서 있는 신학자 가문이었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포교에 종사하였고, 그 인격과 인도학(印度學)과 수천 권의 장서(藏書)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死別)한 후 칼프에서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으며, 후년에 이 거리를 겔바스아우란 이름으로 묘사하였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에 어려운 주(州)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천성적인 자연아(自然兒)로서, 개성에 눈뜨면서 미래의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노이로제가 회복된 후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견습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프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하였다. 95년 가을 튀빙겐의 서점에서 다시 견습점원이 되는 한편, 여가에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99)을 출판하여 R.M.릴케에게 인정을 받았다. 헤세는 이로써 시인으로 입신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1904)였다. 그는 이 해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였고, 이어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移住)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하였으며,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 후 그가 걸어온 긴 생애에는,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일,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문단과 출판계로부터 지식계급의 극단적인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공격을 당한 일,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그 자신의 신병(身病) 등 가정적 위기를 당하자 정신분석 연구로 이 위기를 타개하고 작풍(作風)이 뚜렷하게 달라진 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인간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나치스의 광신적인 폭정에 저항한 일 등 많은 파란을 겪었지만,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기 실현의 길만을 걸었다.
주요작품으로 제2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1906), 음악가소설 《게르트루트:Gertrud》(10), 화가소설 《로스할데:Rosshalde》(14),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Knulp》(15), 정신분석 연구로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 《데미안:Demian》(19),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Siddhartha》(22),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혼돈시대를 살아온 탐구의 서 《황야의 늑대:Der Steppenwolf》(27), 신학자로서 지성(知性)의 세계에 사는 나르치스와, 여성을 알고 애욕에 눈이 어두워진 골트문트와의 우정의 역사를 다룬 《나르치스와 골트문트:Narziss und Goldmund)(30), 20세기의 문명비판서라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유리알유희:Das Glasperlenspiel》(43, 46년 노벨문학상 수상), 《헤세와 로맹 롤랑의 왕복서한》(54) 등이 있다. 또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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