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잠자는 불 / 요점정리 / 최성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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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최성각(崔性珏: 1955- )

강릉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잠자는 불}이 당선됨. 광산촌 교사, 출판사 잡지사 기자 등 역임. 그는 광산촌 등의 삶의 현실 속에서의 따뜻한 인간성 회복을 신화적 감각으로 그려내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뿌리 박기}, {진또배기 그늘}, {따뜻한 수박}, {월광곡}, {앞으로 가는 고기 뒤로 가는 고기} 등이 있다.

 

요점정리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 광산촌.
인물 : 나 - 관찰자. 교사. 다정하고 자상한 성격.
       혜옥 - 학생. 정이 많고 현실 극복적 성격.
       미숙 엄마 - 인정 많고 소문을 잘 믿는 광산촌 아낙네.
       수학 선생 - 부지런한 인물.
주제 : 고통을 통한 원초적 삶의 각성.

 

이해와 감상

  최성각의 {잠자는 불}과 {뿌리 박기}는 광산촌을 배경으로 하여 삶에 대한 작은 애착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잠자는 불}에서는 한 소녀를 통해 광산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광산이라는 곳도 역시 정들여 사랑을 나누고 살 만한 곳임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진또배기 그늘}과 {앞으로 가는 고기 뒤로 가는 고기}는 동해안 어촌의 제사지내는 모습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진또배기 그늘}에서는 핵가족화로 인해 노부모와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생각들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따뜻한 수박}에서는 우리네 인정이 아직도 메마르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 모두 달밤에 춤을}이라는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경쾌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관심 있게 그린 작품이다.

 

줄거리

  광산에 온 지 5년이 되는 나는 하숙은 똥굴이라는 곳에 하고, 밥은 작년에 담임을 했던 미숙이네 집에서 먹는다.

그날, 3교시가 첫 수업이었던 나는 수업 중에 양호 선생이 2학년 4반 교실로 뛰어들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2학년 4반은 나의 학급이었다.

수업 후 교무실에 있는데, 양호 선생이 숨을 헐떡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우리 반 아이들이 사지를 뒤틀며 쓰러졌다고 했다. 급히 양호실로 가 보니 혜옥이와 경자가 심하게 몸을 떨며 팔다리를 뒤틀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자 양호 선생은 교실로 가 보라고 했다.

양호실을 나와 교실로 가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서너 명씩 쓰러진 아이를 부축하여 양호실로 오고 있었다. 교감 선생과 생활주임이 교실로 뛰어가는 모습과 학생들이 한 무리씩 떼를 지어 헛소리를 하고 부들부들 떨며 발작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남은 학생들도 공포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그때 2학년 3반 아이들도 우리 반 아이들과 똑같은 증상을 나타내며 쓰러져 갔다. 양호실로 아이들은 옮겨졌고 그들 대부분은 공포로 가득 찬 목소리로 '뭐가 보인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직원 회의를 하는 동안 학생들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해서 하나 둘씩 교실로 되돌아 갔다. 이후에도 쓰러져 있는 아이들은 병원으로 실려 가고 학생들에게 하교를 지시했다. 병원에 가서 아이들을 살핀 후 다시 학교로 되돌아왔다.

그 이튿날 소문이 퍼지고 밥을 차려 주던 미숙이 엄마는 아이들이 쓰러지는 이유가 불도저로 무덤을 파헤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에 가 보니 어제의 그 사건이 전염성 괴질이라고 보고되었다. 어제 쓰러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첫째 시간에 어제 일어난 증상이 또 일어났다. 결국 학교는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무기한 임시 휴교로 들어갔다.

학교에 기자가 오고 갔고 병원은 보건 사회부의 역학 조사반과 의로진들이 와 있었다. 역학 조사반은 최초 발병자와 쓰러진 학생들의 학적부, 어제의 날씨, 채육 시간의 수업 내용과 환자의 증상 등 자세한 것들을 조사하더니 악성 감기 같다고 했다. 그러나 옆 학교인 태곡 중학교에서도 괴질이 발생했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원인 미상의 집단 괴질에 대해서 거의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했다.

나는 실제로 공동 묘지가 파헤쳐졌는지 확인키 위해 공동 묘지로 갔다. 광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금기와 미신이 성한 편이었다. 나는 묘가 파헤쳐진 것은 이장을 하고 난 뒤의 흔적인 듯싶어 마을 소문이 왜곡된 것임을 알았다. 산에서 내려오자 사암 중 고등학교에도 괴질이 번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학교는 휴교 중이었지만 교사들은 연일 출근했다.

그 다음날, 서울에서 내려온 정신과 의사들로부터 광산에서 일어난 일은 집단 히스테리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과 의사는 적절하게 배출되지 못한 감정의 욕구가 허약한 학생의 발작을 기화로 다른 학생들의 무의식이 자극을 받아 집단적으로 이환된 듯하다고 하면서 그것에 의한 과잉 반응은 히스테리를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광산의 환경이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을 정서적인 기아 상태로 만들지나 않았나 하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학교는 정상 수업에 들어갔다.

나는 최초의 발병자인 혜옥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혜옥이로부터 일기장을 건네 받았다. 그것을 읽고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쉽게 살아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을이 한 소녀로 하여금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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