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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오딧세이아(호메로스)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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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호메로스]에 대하여

<일리아스 >에 대하여

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 전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진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한다. 거북해진 주신(主神)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한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다.

  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遠征軍)을 편성한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 - 은 이제 유괴당한 헬레네를 찾아오기 위해 각기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참가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 휘하의 10만 대군이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했다. 그러나 때마침 아가멤논 왕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신의 사슴을 죽인 탓으로 갑자기 바람이 자버려 그리스 함대는 출항할 수 없게 된다. 예언자의 말에 의하면 아가멤논 왕의 맏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가멤논은 오딧세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구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다.

  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트로이 성주(城主)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한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한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리아스》(일리오스의 노래)의 구성은 전편이 24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장마다 5백 행 내지 8백 행의 시로 되어 있으므로 전체 행수는 1만 5천7백 행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 전후 51일 동안 전쟁터에서 생긴 일들이 이 속에 담겨져 있는데, 그 중 중요한 사건은 제 1장, 제 9장, 제 15장, 제 16장에 나타나고, 그 밖의 장들은 이를 이어가는 삽화들이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제 1장부터 9장까지는 전편, 제 10장부터 17장까지는 중편, 제 18장부터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戰功)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한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된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防壘)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른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도록 권해보는 데서부터 중편 부분이 시작된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한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빌려 입고 나가 싸운다. 그는 적병을 무찌르며 전진하다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처음에는 그를 아킬레우스인 줄 알고 두려워했던 트로이군의 반격을 받아 헥토르는 그를 죽이고 갑옷을 벗긴다.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분해한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종말되기 시작하는 후편 부분이다. 복수하기로 결심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른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간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한다. 이때 트로이의 노왕(老王)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兩軍)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진다.

이와 같이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며,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이다.

<오딧세이아> 에 대하여

  헥토르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알렉산드로스(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발꿈치를 활로 쏘아 아킬레우스는 그 화살의 독으로 죽는다. 아킬레우스가 남긴 훌륭한 갑주를 놓고 아이아스와 오딧세우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나 결국 오딧세우스의 차지가 된다. 실성한 아이아스는 자살을 하고 이어서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트로이의 알렉산드로스도 마침내 죽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전세는 일진일퇴를 거듭하여 아직 어느 편의 승리를 단정하기 어려웠다. 이때 오딧세우스의 지략으로 그리스군은 큰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무사들을 숨겨서 성 밖에 갖다놓고는 전쟁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체하며 바닷가에 머물러 있었다. 트로이군은 사제(司祭) 라오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자, 밤중에 그리스군 무사들이 뛰어나오고 함대에서도 쳐들어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 승리한 그리스군의 각 부대는 마침내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고국을 향하여 귀향 길에 오른다.

  오딧세우스는 열두 척의 배에 6백 명의 부하를 태우고 떠났으나 바다 위에서 재난을 겪는다. 그들은 트로이 성에서 아테네 신의 성상(星像)을 농락하여 노여움을 받게 되었고 이어서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게 되어 난파를 당하고 10년 동안이나 바다 위를 이리저리 헤맨다.

  한편 오딧세우스의 고국인 이타케에서는 그가 원정한 지 10년, 트로이를 떠난 지는 2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오래 전부터 근처의 많은 귀족 무리들이 그의 궁전에 모여 부인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하다시피하며 횡포가 심했다. 그들의 야망은 페넬로페를 아내로 삼고 이타케의 왕위에 오르려는 것이었다. 절세(絶世)의 열녀인 페넬로페는 남편에게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꾀를 내어 구혼자들의 성화를 물리친다. 우선 늙은 시아버지의 수의(壽衣)를 만드는 동안은 기다려 달라는 핑계를 대고 천을 짜지만, 낮에 짠 천을 밤에는 다시 풀며 시일을 끌어간다. 오만한 구혼자들은 주인도 없는 궁전의 큰 식당에서 매일 실컷 먹고 마시며 오딧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할 뿐 아니라 그의 외아들 텔레마코스를 조롱한다.

  《오딧세이아》(오딧세우스의 노래)는 그 길이가 1만 2천1백 행이나 되는 장시(長時)로서 모두 24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원래 각 장이 별권으로 되어 있는데, 권마다 그리스어의 알파벳 a로부터 w까지의 소문자가 표시되어 있고 그 밑에 한두 줄 매우 간단한 개요 같은 것이 적혀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원정의 귀로에서 10년 동안 겪은 온갖 고초와 그의 부재중에 고향 집의 가족들이 겪은 사건들이 담겨져 있는데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병행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의 서술이 반드시 시간적 순서에 따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제 1 장 <신들의 모임>은 오딧세우스가 원장을 떠난 지 20년째, 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귀향 길에 오른 지는 10년째 되며, 나중에 그가 자기 집에 도착되는 날짜로부터 40일이 앞선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4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지나간 긴 세월 동안 집안과 타관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다루어지기 때문에 그 서술이 현재에서 과거의 회상으로, 다시 과거에서 현재의 묘사로 되돌아오곤 하는 매우 교묘하고 변화가 많은 수법이다.

  전체 24장을 크게 나누면 제 1장에서 4장은 전편(前篇)의 1부, 제 5장에서 13장까지는 전편의 2부, 제 14장에서 19장까지는 중편, 제 20장에서 24장까지는 후편이라고 볼 수 있다.

  각편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편 1부는 오딧세우스의 귀국 준비에 관한 것이로, 아테네 여신이 신들의 회합에서, 7년간이나 요정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는 오딧세우스를 집에 돌려보내 주도록 제의하여 허락을 얻는다. 한편 이타케 왕국에서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영주들의 성화 같은 청혼을 무릅쓰고 오로지 남편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만 20세의 성인이 된 그의 외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그는 배를 타고 집을 떠나 필로스의 왕 네스토르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만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편 2부는 귀국 도중에 오딧세우스가 겪은 재난과 모험에 관한 것으로, 그가 트로이를 떠난 후 요정 칼립소에게 붙들려 부하를 잃고 7년간이나 외로움을 겪었으며, 이제 그녀 곁을 떠났으나 다시 배를 탄 지 18일 만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로 난파를 당하여 표류한 끝에 겨우 파이아키아족의 나라에 다다른다. 그곳서 아름다운 공주 나우시카의 안내로 알키노스 왕의 대궐에서 대접을 받는다. 이때 그는 그때까지 겪은 모든 경험담을 털어놓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족, 무서운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마녀 키르케와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레네스(사이렌), 아이데스의 명부에서 망자들과의 대화, 태양신 헬리오스의 노여움으로 배와 부하들을 잃고 표류했던 요정 칼립소의 섬 이야기 등 한없이 다양한 모험담이 펼쳐진다. 중편은 귀국 후의 신중한 준비에 관한 것으로, 거지꼴을 하고 고국 이타케에 돌아온 오딧세우스는 시골 농장에서 돼지를 치고 있는 충복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나 그는 얼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텔레마코스는 자기를 죽이려는 영주들의 복병을 피하여 무사히 이곳에 도착하여 마침내 감개무량한 부자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오만불손한 청혼자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오딧세우스가 누더기를 걸치고 대궐로 들어가자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지 취급을 하며 마구 모욕하고 행패를 부린다. 그러나 오딧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에게까지도 그의 정체를 숨기고 모욕을 참아가며 집안에 있는 모든 무기를 먼저 치워 놓게 하는 등 계획대로 치밀하게 행동한다. 후편은 마지막 복수의 심판에 관한 것으로 청혼자들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페넬로페는 과녁을 맞히는 자에게 개가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활쏘기 시합을 제의한다. 그리고 이 시합에 사용할 활로 그녀의 남편만이 다룰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활을 내놓는다. 호언장담하던 청혼자들은 그 큰 활을 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마음대로 당길 수가 없어 당황한다. 이때 그들이 업신여겼던 거지꼴의 사나이가 나서서 별로 힘도 안들이고 활을 쏘아 도끼의 과녁을 정통으로 맞혔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기겁을 한다. 이를 신호로 아들 텔레마코스와 두 사람의 충복이 합세하고, 아테네 여신도 힘을 주자, 오딧세우스는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둘러 처자식을 괴롭히던 무례한 자들과 그들에게 놀아났던 방종한 하녀들을 모조리 살육한다. 이리하여 20년 동안 헤어졌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늙으신 아버지 라에르테스와 재회의 기쁨을 비로소 나눈다. 이윽고 죽은 자들의 유족들이 그에게 보복하려고 몰려와 위태로울 듯했으나 아테네 여신의 중재로 마침내 영원한 평화를 이룩했다.

  다시 말하면 《오딧세이아》는 첫 장에 표현되어 있듯이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방랑 중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들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과 습관"을 보고 다닌 모험담 속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 부부간의 의리, 가족의 재회 등 아름다운 인정의 이야기가 인상깊게 담겨져 있어, 잔인한 전쟁과 영웅의 분노를 그린 《일리아스》보다는 한결 더 낭만적이고 다양한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서구 문화의 원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으며, 이 두 서사시(敍事詩)가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는 호메로스는 실제 인물이었으며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도 그의 작품이란 것이 거의 정설(定說)로 낙찰되었다. 이 정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기원전 약 9세기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변의 스미르나 또는 키오스 시(市)에 살았으며, 이 두 작품도 모두 소아시아 서해안 아이오네스족 무사계급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영웅담을 호메로스가 그의 천재를 발휘하여 그리스 고래의 신화, 전설들을 혼합·가미하여 장단단(長短短) 6각운(六脚韻)의 시형(時形)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눈먼 노인으로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금전을 구걸하며 여러 도시를 편력하고 다닌 음유시인이었다고 하나 사적(史的) 근거는 없다. 그의 이름은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史學者) 헤로도투스의 저서 안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이 최초에 나타난 확실한 역사적 전거(典據)가 되고 있다. 하여튼 호메로스가 그리스 최고(最古)의 문인일 뿐 아니라 서구(西歐)의 시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은 오늘날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기에 번역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가장 완전한 서사시의 전형으로서 높이 찬양되는 서구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걸작이다.


  《오딧세이아》와 《일리아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8백년 전에 다시 말하면 기원전 약 9백년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서사시(大 事)의 자매편( 妹篇)이다. 《오딧세이아》는 <오딧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며, 《일리아스》는 <일리오스(트로이)의 노래>라는 뜻이다. 《오딧세이아》는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수많은 난관의 이야기가 주요한 골자로 되어 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전사(戰士)들의 무용, 영웅들의 알력(軋轢), 적장(敵將)과의 결투 따위의 사건이 중요한 줄거리로 다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일리아스》는 전쟁 중의 이야기요, 《오딧세이아》는 전쟁 후의 이야기이므로 《오딧세이아》는 《일리아스》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양자의 차이는 적지 않다. 《일리아스》는 순전한 전쟁 서사시로서 처참한 전쟁터에서 혈투하는 영웅들의 용맹과 열정이 흥미의 중심이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힘세고 겁없고 자존심이 강한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자아내는 파란곡절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있다. 한편 《오딧세이아》는 전쟁은 이미 지나간 일로 이따금 회상될 뿐, 마지막 복수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편에 평화스런 분위기가 흐른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 오딧세우스의 용기와 지략과 침착성이며, 거기에 부인의 정절, 부부 또는 부자간의 깊은 애정과 의리 등 가정적인 요소가 곁들어져 있다.

  이러한 주제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용어와 격조와 종교생활 양식에도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오딧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훨씬 후대의 작품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러한 주장에는 확실한 증거가 따르지 못하고 있다. 본서에서 《일리아스》를 앞에 놓은 별다른 뜻이 없고, 다만 일반 독자에게 처참한 전쟁의 비극과 살육이 장황하게 펼쳐지는 《일리아스》는 다양한 모험담과 사랑, 방랑 등의 낭만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오딧세이아》보다 용맹이나 열정이 더욱 흥미를 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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