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아벨 / 고정희
by 송화은율이 시대의 아벨 / 고정희
작가 : 고정희(1948-1991)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 졸업.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戀歌)」 등의 시 추천 완료.
시대의 불행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웃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우리 민족의 설화와 역사에 깊이 연계된 상상력으로 힘있게 노래한다.
시집으로는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 1979), 『초혼제』(창작과비평사, 1983),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지성사, 1983), 『눈물꽃』(실천문학사, 1986),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 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창작과비평사, 1989), 『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 1991)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대의 아벨」은 부정한 세상을 질타하는 매서운 어조를 통해 강렬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기본적인 구도는 선량하고 죄없은 아벨이 형 카인에 의하여 죽음을 당한 이후의 드러나는 인간의 타락과 죄악 그리고 이 죄업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질타의 목소리로 짜여있다.
1연에서 등장하는 바다에 불을 부리는 저승 뱃사공의 모습에서 독자는 이 불길이 종말적인 응징의 징후임을 짐작할 수 있다.
2연부터는 응징의 내용과 사악한 세상에 대한 질타가 뒤따른다. `너희'로 지칭되는 속악한 자들은 호화로운 침상과 교회당을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던 아벨을 내쫓고 핍박했으며, 안락한 처마 밑과 풍성한 잔치상에서 내쫓긴 아벨은 태평성대의 동구 밖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친 등을 추스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속악한 땅에는 환락과 거짓이, 바람부는 세상에는 아벨의 울음으로 가득하다. 죄없는 아벨을 핍박하고 그 대가로 식탁과 침상과 교회당을 얻은 세상은 `회칠한 무덤'이며 `독사의 무리들'로 가득한 곳이다.
이와 같이 아벨로 표상되는 죄없이 핍박당하는 자와 `너희'로 지칭되는 `독사의 무리'의 도덕적 대립은 성서적 세계를 떠나 현실의 패덕성에 대한 질책으로 옮아가고 있다. 시의 앞뒤를 감싸는 `오그덴 10호'로 대표되는 현재적 시간의 명시는 성서적 과거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겹쳐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류의 원죄의식을 빌어와 현재에도 여전한 자행되고 있는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사뭇 준열하다. `배부른 가버나움'과 `음탕한 소돔과 고모라'의 화려하고 풍성함이 가득한 시대는 아벨의 고통과 한숨을 대가로 얻어졌듯 이 시대의 화려한 물질적 풍요는 또다른 아벨을 추운 땅에서 울게 할 것이다. 그들이 환락과 풍요의 대가로 쫓아버린 아벨을 모른다 부인할 때 그들의 죄는 절정에 달한다. 파멸과 재앙을 예고하는 심판의 목소리는 `한 사내'의 간절한 구원에의 갈망으로 유보된다.
이 시에는 카인의 살인과 구약 시대의 인간의 죄상과, 아벨과 예수에 대한 핍박과 구원, 묵시록적 예언의 이미지, 그리고 현재의 어지러운 상황이 중첩되어 있다. 진실된 참회의 눈물로 종말적인 재앙을 모면하는 결말에서 시인이 환기하고자 하는 점이 징벌의 응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패덕에 대한 경고이며 구원을 향한 희망에 있다는 뜻을 확인할 수 있다. [해설: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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