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돈’ 해설
by 송화은율이효석의 ‘돈’ 해설
돈(豚)은 1933년 10월 조선문학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비교적 과작이었던 이 작품은 처음에는 한자 표제 돈(豚)으로 나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짤막한 길이에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필치로 소홀치 않은 밀도를 가지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초기 작품에서 유진오와 함께 도시와 유령, 행진곡 등에서 동반자(同伴者)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1933년 돈을 기점으로 그러한 경향은 일소되고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형상화한 서정적인 문학의 경향으로 옮겨갔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바다가 가까운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주인공 식이가 ‘자본주의’횡포에서 오는 좌절감과 순수한 애욕을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였다.
돈은 큰 야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식이가 돼지를 교배시키면서 키워가고 있는 꿈이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주인공 ‘식이’는 고지식한 농촌 청년이다. 그는 돼지새끼를 받아 세금을 내고 분이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소박하게 살아간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돼지 한쌍을 사서 길렀다. 얼마 뒤 놈은 죽고 말았고 암놈만 겨우 살아 남았다. 그는 암놈을 방에다 지푸라기를 깔아주고 자기 밥그릇에 먹이를 주어가며 길렀다. 이 돼지는 식이의 전체 희망이 걸려있는 돼지인 것이다. 그는 어서 돼지새끼를 갖고 싶은 마음에서 여섯 달밖에 안된 어린것을 종묘장에 데리고 갔으나 교섭에 실패한다. 달포 후 두 번째로 데리고 가서야 어렵게 성사를 시킨다.
식이는 암놈이 고통을 당하는 도안 구경꾼들의 낄낄거리는 음담속에서 달아나 버린 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분이는 박초시의 딸로서 그가 아주 공을 들이면서 손에 넣으려 했던 여성이다. 그런데 그녀는 입술이 늘 뾰로통해 있었고 쌀쌀하게 굴더니 그녀가 그만 며칠 전에 가출해 버린 것이다.
돼지와 분이를 놓고 여러가지 공상을 하던 식이는 철도 건널목을 지나오면서 하마터면 기차에 칠 뻔 하였다. 말하자면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앞에 끌고 가던 돼지는 흔적도 없이 차에 깔려 사라져 버렸다. 그 역시 위기 일발의 순간에 목숨을 건졌으나 건널목 망꾼에게 따귀를 얻어 맞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식이는 한시대의 사회현실로부터 똑바로 걸어나온 인물이다. 종묘장의 묘사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생생하고, 식이가 분이를 생각하는 대목도 무리없이 자연스럽다. 특히, 분이와 돼지에 대한 공상 장면이 짤막한 서술자로서 상황을 집약해 준다.
“장에 가서 돼지를 팔면 노자가 되겠지. 차 타고 노자가 자라는 곳까지 달아나면 그곳에 곧 분이가 있지 않을까?...... 농사같이 초라한 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못살기는 일반이니......분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돈과 사랑에 굶주린 그에게 있어 돼지의 상실은 곧 분이의 상실임을 암시한다. 더욱 그 당시 우리 농촌 현실의 어려운 단면이 제시된 점도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이 소설은 돼지의 교접 행위를 통하여 잠재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인간의 성적본질이 되살아난다고 하는 독특한 섹스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즉 동물의 성행위와 등장인물의 성적 욕구를 병치시킨다거나, 암돼지의 상실과 분이의 상실을 대응시킨 것과 같은 반복된 기법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성욕이 갖는 동물적 본능 을 드러내는데 주안점이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돈에서 식이가 암돼지를 성욕의 대상으로 분이와 동일시(Identity)한 것으로 파악되며, 그 외에 모밀꽃 필 무렵 에서 허생원과 당나귀,수닭에서 을손과 수닭에서도 진한 관계가 엿보인다.
이와같이 이효석의 동물 세계는 유독한 인물과 일대일 대응의 관계로 동거동식하여 주인공의 분신이나 애정의 투사 대상으로 동물들이 나타난다. 한편,분녀에서의 돼지꿈,독백에서 종묘장 돼지 등 동물들이 등장인물의 성욕을 환기시키는 소재로도 이용된다.
작가는 성(性)에 대한 문제를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 적극적인 방법이 아닌, 성 자체에 대한 집념으로 동물적 애욕을 추잡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성(性)이 갖는 궁극적 의미보다는 동물적인 본능 그 자체로써 제시한 이 작품은 향토성 짙은 문학의 하나로 평가된다.
작품 요약
주제 : 자본주의 횡포에서 오는 좌절감과 인간의 순수한 애욕.
인물 : 식이-소극적이고 고지식한 농촌 청년.돼지를 교미시켜 새끼를 받아 분이와 결혼해 살아가고자 하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 정적 인물.
종묘장 기수,농부,분이-단역들로 잠깐 얼굴을 비친 정적 인물.
배경 : 바다가 가까운 어느 농촌의 종묘장.(공간적 배경은 처음부터 사건이 일어나는 종묘장으로 분이의 가출과 돼지의 철도 사고에서 오는 황폐한 공간이며,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이 계속되다가 돼지의 교미를 연상하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분이와 함께 살 것을 상상하는 미래의 시간이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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