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1 / 전문 / 톨스토이
by 송화은율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1 / 톨스토이
1. 법원의 동료들
커다란 법원 건물 안 이반 에고로비치의 방에 판사들과 검사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메리빈스키 사건 심리의 중간 휴식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우연히 요즘 떠들썩한 크라소프 사건으로 옮겨갔다.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는 그것이 관할 착오라고 역설하며 흥분했다. 그러나 이반 에고로비치 역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에는 흥미 없다는 듯 막 배달된 <새소식> 신문을 보고 있었다.
"여러분!"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이반 일리이치가 죽었군요."
"아니, 정말이오?"
"이것 좀 읽어보세요." 그는 아직도 잉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방금 인쇄된 신문을 건네 주며 후요돌 와시리에비치에게 말했다.
신문 한 쪽 검정 테두리 안에는 다음과 같이 부고가 실려 있었다.
'미망인 프라스코비야 후요도로브나 고로비나는 비탄에 가득 찬 심정으로 친척과 지우 여러분에게 삼가 알립니다. 법원 판사 이반 일리이치 고로빈이 지난 1882년 2월 4일 작고하였습니다. 발인은 오는 금요일 오후 1시에 거행합니다.'
이반 일리이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의 동료였다. 모두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벌써 수주일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는 불치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으나 그가 죽으면 아래크세프가 그 자리에 임명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또 아래크세프의 후임에는 브니코프나 슈타베리가 임명되리라. 이것은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방 안에 모여있는 여러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으로 그들 자신이나 혹은 친지들이 어떻게 직책이 바뀌고 승진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번엔 틀림없이 슈타베리나 브니코프의 차지가 되겠군.'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는 생각했다.
한편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생각했다. '그 자리는 오래 전부터 내 몫으로 정해져 있지. 그 자리로 승진만 되면 독방에다 봉급이 8백 루블 추가되니까... 그렇게 되면 꼭 처남이 카루가에서 전임해오도록 해야지.'
'그렇게만 된다면 마누라가 무척 좋아하겠지. 또 나도 이젠 처갓집에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는 잔소리는 면할 수 있겠지.'
"나도 그 친구가 얼마 못 가리라고 짐작은 했지."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서운한 듯이 말했다.
"참 안 됐어."
"아니 그런데, 도대체 무슨 병이었다던가?"
"의사들도 확실한 진단을 못 내렸다더군. 의사마다 진단 결과가 달랐다는 거야. 난 그래도 마지막 만났을 때 이제 회복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난 지난 번 축제 때부터 한 번도 문병을 가지 못했어. 늘 한 번 가본다고 벼르기만 했지..."
"재산 문제는 잘 마무리된 건가?"
"부인에게 얼마간 남겼다고 하던데, 그것도 그리 대단치는 않은가 봐."
"어쨌든 조문은 다녀 와야지. 그런데 우리 집에선 너무 멀단 말이야..."
"자네 집에서 가려면 멀다는 얘기지. 하긴 자네 집에선 가려면 어디든지 멀게 마련이지."
"이봐, 이 친군 내가 물 건너 사는 게 도무지 못마땅한 모양이군."
슈베크는 웃으며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이후 그들은 시내 각 지역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법정으로 돌아갔다.
이반의 죽음은 그들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근무상의 이동이나 변화 외에도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의 마음에 '죽은 것은 그 친구지, 내가 아니다'는 기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 그 친구가 죽었단 말이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있단 말이야.'
모두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반과 친했던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은 약간 다른 부담도 느껴야 했다. 또 그놈의 귀찮은 예의상의 의무를 위해 영결식에도 참석하고 미망인 위문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아울러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특히 후요돌 와시리에비치와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과 각별한 사이였다. 특히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의 법률학교 동급생이었다. 게다가 이반에게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이반 일리이치가 죽었다는 것, 처남이 이곳으로 전근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평소 저녁 식사 후에는 한숨 자던 것도 그만두고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이반의 집을 향해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반 일리이치 집의 현관 앞에는 한 대의 고급 마차와 두 대의 합승마차가 멈춰 있었다. 아래층 응접실에는 외투걸이 옆의 벽에 분칠해 놓은 금(金) 모르와 장식술이 달린 무늬 없는 비단 관 덮개가 걸려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 두 사람이 털가죽 외투를 벗고 있었다. 한 사람은 표도르도 안면이 있는 이반의 누이동생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부인이었다. 동료인 슈발츠가 막 이층에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슈발츠는 표도르가 집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계단 위에 서서 마치 이렇게 말하듯 눈짓을 했다.
'이반도 어리석었지... 그렇지만 자네나 나는 다르지...'
영국식 구레나룻 수염을 잘 가꾼 슈발츠의 얼굴과 연미복을 입은 호릿한 몸매는 언제나 우아하고 장중했다. 평소 그는 떠벌이였지만, 그래도 이런 장소에서는 그의 용모가 뭔가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숙녀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섰다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슈발츠는 걸음을 멈춘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즉각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분명 오늘 저녁 어디에서 빈트(트럼프 놀이)를 할 것인지, 의논하고 싶은 것이다.
여인들은 계단을 지나 미망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슈발츠는 입은 굳게 다문 채 눈과 눈썹만 장난치듯 움직여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오른쪽에 있는 빈소를 가리켰다.
이런 경우 누구나 그렇듯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약간 당황한 기분으로 그 쪽으로 걸어갔다.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경우 성호를 긋고 절을 하면 된다. 그러나 과연 머리까지 숙여야 할 것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표도르는 절충안을 택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빈소에 들어서면서 가슴 위에 십자를 긋고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는 손과 머리를 그렇게 하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방안을 두루 살폈다.
고인의 조카인 듯한 두 청년이 십자를 그으면서 방을 나가던 참이었다. 곁에는 한 늙은 여인이 서 있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여인이 노파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대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체구가 건장한 사제가 악의 세력이 와도 개의치 않는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무언가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식당 일을 돌보는 농부인 게라심이 가벼운 걸음으로 그의 앞을 지나치면서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그는 문득 썩어가는 시체의 희미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반을 옆에서 간호해온 이 농부를 이반은 유난히 아꼈던 것 같았다.
2. 미망인과 유족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몇 번 십자를 그으면서 관과 사제, 한구석에 안치된 성모상의 중간쯤 되는 곳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문득 너무 많이 십자를 그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동작을 멈추고 잠자코 죽은 이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시체는 으레 그렇지만 죽은 이는 굳어버린 사지를 관 바닥에 펴고, 영원히 굽어버린 목을 베개에 걸친 채 무겁게 누워 있었다. 움푹 패인 관자놀이와 벗겨진 이마가 마치 밀랍으로 빚은 것 같았다. 윗입술에 덮일 듯이 뾰죽한 코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시체는 그가 이반이 살아있을 때 마지막 보았던 것보다 더 여위어 있었다. 그 모습은 생전과 아주 달랐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은 어딘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의젓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아주 훌륭하게 의무를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표정에는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힐책이나 경고 같은 것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어쩐지 그는 기분이 불쾌해져 다시 한 번 부지런히 십자를 긋고는 좀 경망하리만큼 허둥지둥 몸을 돌려 바쁘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슈발츠는 통로로 이어진 방에서 두 발을 꼿꼿이 버티고 서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실크햇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명랑하고 말쑥한 슈발츠의 모습을 보자 금방 기분이 신선해졌다. '슈발츠란 이 친구는 이런 구질구질한 일 따위에는 개의치 않고 사는군. 남이야 언짢은 기분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것이겠지...'
이반 일리이치의 장례식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해오던 일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도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훼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인은 이미 새 촛불을 네 개 가져다 세워 놓았고, 일행은 새 트럼프 한 벌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이 장례식이 오늘 저녁 일행이 모여 즐기는 것을 잡칠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슈발츠는 그냥 가려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귀에 대고 오늘 후요돌 와시리에비치 집에서 열리는 노름에 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할 운이 아닌 모양이다. 머리에 크레프를 쓴 여인이 아까 관 앞에 서 있던 여인처럼 유난히 눈꼬리를 치켜 뜨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방에서 나와 여인들을 빈소로 들여보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장례 미사가 시작됩니다. 함께 들어가시죠."
이반 일리이치의 미망인인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라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본인은 그렇게 보이기를 원치 않겠지만, 어깨로부터 밑으로 갈수록 점점 더 벌어져 보이는 전신을 검은 상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슈발츠는 이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목례를 하면서 발을 멈췄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한숨을 휴 내쉬면서 그에게 바싹 몸을 가져다 붙이고 손을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과 이반은 정말 친한 친구셨잖아요..."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말에 뭔가 그럴싸한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까 빈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인의 손을 꼭 쥐고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구 말구요!" 하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했다. 그러자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풀에 감동했고 그녀도 따라서 감동한 것이다.
"자,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시죠. 사실은 선생님께 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망인은 말했다. "팔을 좀 빌려주세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팔을 내밀어 그녀가 잡게 한 후, 웃음을 참으며 눈짓을 하는 슈발츠의 앞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자넨 오늘 빈트 노름엔 못 끼겠군. 미안하지만 다른 친구를 끌어와야겠어. 요행히 빠져 나올 수 있다면 다섯이 함께 놀아도 상관없으니까...' 그의 짓궂은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더 한층 깊은 비탄의 한숨을 짓자 미망인은 감격해서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장미빛 크레튼 갱사로 갓을 씌운 흐릿한 램프불이 켜 있는 응접실에 들어와 두 사람은 탁자 옆에 앉았다. 그녀는 긴 의자에, 그는 스프링이 부러져 거북한 느낌을 주는 낮은 안락의자에 각각 앉았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그에게 다른 의자에 앉도록 권하려다가 그러는 것이 이 경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 두었다. 낮은 안락의자에 앉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이치가 이 응접실을 설계할 때 그와 의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망인은 긴 안락의자에 앉으려고 탁자 옆을 지나가다가(이 방에는 크기가 작은 살림살이와 가구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었다.) 검은 만치리야 크레프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조각상에 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걸린 옷자락을 떼어주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엉덩이 밑에서 깔려있던 안락의자가 파도처럼 흔들리면서 그의 엉덩이를 툭툭 쳐댔다.
미망인이 자기 손으로 옷자락을 조각상에 벗겨내기 시작하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흔들리는 안락의자를 간신히 누르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나 미망인이 옷자락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하자 그는 또다시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안락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들리며 이번엔 아주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내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멎고 조용해지자 그녀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울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 소동으로 기분을 잡치고 시무룩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 네 식당 일꾼인 소호로프가 나타나 이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가 말했던 그 묘지는 가격이 2백 루블이나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마치 불행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슬픈 눈매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건너다 보면서 프랑스어로 말했다. "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담배라도 피우세요."
그녀는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너그럽게 말하고 소호로프와 묘지 가격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녀가 묘지 가격을 자세히 묻고 결정을 내려주는 것을 듣고 있었다. 묘소를 고른 다음 그녀는 장례식에 부를 합창단에 대해서도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소호로프는 이야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일일이 다 제 손으로 해야 하는군요."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앨범을 한 쪽으로 밀어 놓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담배가 타들어가 재가 탁자 위로 떨어지게 된 것을 보자 그녀는 재빨리 표도르 이바노비치 앞으로 재떨이를 밀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슬픔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요... 죽은 그이를 위해 마음을 쓰고 뭔가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슬픔을 잊게 해주는 거랍니다."
그녀는 또다시 울 것처럼 손수건을 꺼냈다가 갑자기 스스로를 억지로 참아 누르듯이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선생님과 상의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또다시 흔들거리는 의자를 간신히 누르면서 꾸벅 절을 하고 앉은 자세를 고쳤다.
"그이는 마지막 이삼일 동안은 정말 고통이 심했답니다."
"고통이 그렇게 심했나요?"
"정말 끔찍했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몇 분 아니 몇 시간씩이나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어요. 사흘 밤낮은 숨도 안 쉬고 그저 끔찍한 소리만 질렀어요. 참말이지 제가 그 끔찍한 소리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어요. 글세 골목이 세 칸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다 들렸어요. 그때 저의 심정이란 뭐라고 이루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의식은 남아 있었나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글쎄 그이는 죽기 15분 전에 우리를 모두 불러놓고 마지막 작별까지 하고 워로자를 데려가라는 말까지 했어요."
3. 나에겐 이런 일이...
처음엔 쾌활한 소년으로, 다음엔 학생으로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엔 트럼프 친구로서 그렇게 친하게 사귀던 사람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자기 자신과 이 여인의 위선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치를 떨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죽은 이의 그 이마와 입술을 덮듯이 뾰죽하게 튀어나온 코를 생각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덮쳐 오는 것 같았다.
'그 무서운 사흘 낮과 밤, 그 다음에 오는 죽음... 이런 고통은 지금 당장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한순간 소름이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평소의 생각 - 이건 이반 일리이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에게 생긴 일은 아니야.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그런 무서운 일은 나에게 생겨날 까닭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렸기 때문이야. 슈발츠처럼 이런 기분에 짓눌려지지 않도록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었다.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이렇게 스스로 기분을 다스리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침착한 기분으로 일종의 흥미마저 느끼며 이반 일리이치가 운명하던 순간을 자세히 캐물었다. 죽음은 이반 일리이치에게만 있는 특유한 사건으로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란 것처럼.
이반 일리이치가 겪은 그 무서운 육체적 고통을 상세히 설명한 후 미망인은 진짜 용건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아, 표도르 이바노비치씨, 이토록 무서운 일이 생기다니요... 이렇게도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그녀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슬픈 듯이 연방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코를 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코를 풀고 나자 그는 말했다.
"저를 믿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이윽고 그에게 의논하고 싶었던 진짜 용건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낼 수 있느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녀는 아마 연금에 관해서 그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실상 그가 알지 못하는 것, 즉 이 죽음을 꼬투리로 국고에서 타낼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자기가 아는 것 말고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타낼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귀찮아졌다. 그는 그저 정부가 인색하다며 몇 마디 욕을 한 후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이 손님으로부터 풀려날 것을 궁리하는 눈치였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담뱃불을 끄고 일어섰다. 그는 미망인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주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식당에는 이반 일리이치가 언젠가 골동품 가게에서 샀노라면서 무척 기뻐하던 시계가 걸려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거기서 목사 한 사람과 역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는 아는 사람들을 몇 만났다. 그 가운데서 그는 이반 일리이치의 딸을 발견했다. 그도 본 적이 있는 그 아리따운 아가씨는 온 몸을 검은 옷으로 감고 있었다. 날씬한 허리가 상복 때문에 더욱 가늘어 보였다.
그녀는 어둡고 의연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으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인사했다. 마치 그가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태도다. 그녀의 등 뒤에는 한 청년이 똑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라고 알려진, 재산이 많은 예심판사였다. 그 사나이는 침울하게 표정으로 그에게 머리를 수그리고는 시체가 누워있는 방으로 가 버렸다.
그러자 계단 위에서 이반 일리이치와 아주 닮은 중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그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법률학교 시절에 봤던 이반 일리이치의 모습과 흡사했다. 소년은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신경질적으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보이고는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촛불, 신음소리, 향 연기, 눈물, 훌쩍거리는 울음소리.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얼굴을 찌푸린 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발을 내려다 보면서 서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그 분위기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영향을 받지 않고 앞장 서서 나오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곳을 나왔다. 응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 하인 농부인 게라심이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외투를 찾아왔다.
"요즘은 어떤가, 게라심? 이반은 참 안됐어..."
"모두 하나님의 뜻이죠. 누구나 결국엔 이렇게 가버리는 걸요..."
게라심은 농부답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답게 바람이 불 정도로 잽싸게 문을 열고 마부를 불러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태워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마치 급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향과 시체와 석탄산 등 퀴퀴한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공기를 벗어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여간 유쾌하지 않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물었다.
"아직 그렇게 늦지는 않았겠지... 그럼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네 집에 들러야겠군."
이렇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의 짐작대로 로벨(트럼프 놀이)의 첫 판이 끝날 무렵에 그곳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는 마침 잘됐다 싶어서 다섯 번째 파트너로서 그 속에 끼어들었다.
4. 삶의 출발
이반 일리이치의 과거 생활을 극히 단순하고 평범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무서운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법원 판사로 일하던 마흔 다섯 살에 죽었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에서 출세길이 탄탄하게 열려 있었던, 어떤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 출세의 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는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실을 다들 알면서도 긴 과거 경력과 권위의 덕택으로 사직 당하지 않고 교묘하게 버틸 수 있는 길을 말한다. 억지로 마련한 지위와 6천 내지 1만 루블의 봉급을 누리면서 아주 늙은 뒤까지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지위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별로 필요 없는 기관의,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인력의 한 사람이었던 삼등관 이리야 에피모비치 고로빈도 그런 부류의 하나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가운데 둘째였다. 맏아들은 부친과 같은 출세의 길을 더듬어 올라와 이제는 타성적으로 봉급을 타먹을 수 있는 근무 경력을 쌓은 상태였다.
막내 아들은 실패자였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철도 일을 보고 있다. 그래서 부친이나 형들, 더구나 형수들은 그와 마주서기도 꺼릴 뿐 아니라 여간 특별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으면 아예 그의 존재를 생각해내는 일조차도 거의 없었다.
누이동생은 뻬쩨르부르그의 전형적인 관리인 그레프 남작과 결혼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른바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는 맏아들처럼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성격도 아니며 아우처럼 분별없이 덤비지도 않았다. 그는 두 형제의 가운데서 - 슬기롭고 활발하며 명랑하면서도 예의 바른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우와 함께 법률학교에서 공부했다. 아우는 졸업을 못하고 5학년 때 퇴학을 당했으나 이반 일리이치는 훌륭하게 전체 교육 과정을 마쳤다. 법률학교 시절에 이미 그의 뛰어난 면모는 잘 드러났다. 그는 유능하고 쾌활하며 서글서글하고 사람 사귀길 좋아하지만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은 엄격하게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소년 시절이나 또 어른이 된 후에도 그는 특별히 남에게 아첨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주 어려서부터 마치 파리가 불빛에 끌려 가듯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끌려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태도와 인생관을 본받고 그들과 친교를 맺었다. 어릴 때, 그리고 청년 시절에 한 때 열중했던 일들은 모두 그에게 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그도 한때 정욕과 허영과 마지막엔 자유 사상에도 빠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때도 그의 감정이 일정한 한계를 넘는 일은 없었다.
법률학교 시절, 어렸을 때는 무척 추잡한 짓으로 여겨서 그 행위를 할 땐 자기 자신에 대해서 혐오를 느꼈던 그러한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행위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며 별로 비난을 받지도 않는 것을 보고서는 그는 거기 대해서는 어느덧 깨끗이 잊어버렸다. 간혹 다시 생각나는 일이 있어도 그는 그것을 별로 괴롭게 여기지 않았다.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십등관이 되어 이반 일리이치는 부친에게서 양복을 살만한 돈을 받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샤르멜 가게에서 양복을 맞추고 공작과 교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도온' 식당에서 동급생들과 파티를 했다. 이런 일들을 마치자 그는 고급 상점에서 최신 유행 가방과 내복, 양복, 면도 기구, 화장 기구, 수건 등을 마련해서 부친이 주선해준 지방의 주 지사 촉탁 관리로서 부임했다.
지방에 가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이내 법률학교 시절과 같은 경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자기 주위에 만들어냈다. 그는 성실하게 근무해서 출세 길을 착착 마련하는 한편 오붓하고 품위 있게 놀았다. 이따금 상관의 지시를 받아 군(郡)으로 출장도 나갔으나 그곳에서도 윗사람에게나 아랫사람에게 위엄을 갖춰 응대했다. 그리고 스스로 긍지로 삼고 있는 정확성과 결백함을 유지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했다.
직무 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는 그 젊음과 가벼운 즐거움을 좋아하는 성품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조심스럽고 공식적이어서 오히려 엄격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종종 농담을 즐기고 재치가 풍부하게 굴었다. 그는 항상 선량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해 그가 마치 부모처럼 여기고 드나들던 지사 부부는 그를 아주 꽤 쓸만한 사나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지방에 있는 동안 그는 자기를 좋아하는 여인 가운데 한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 여자 디자이너와 친해졌으며 도시에서 온 시종무관과도 술자리를 같이 했다. 지사 뿐만 아니라 지사 부인에게도 적절하게 아첨했으나 아무도 그의 이러한 태도를 나쁘게 헐뜯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것들은 프랑스 격언이 말하듯 '젊은 한 때는 방탕해도 좋다'는 항목에 들어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말쑥한 손에 깨끗한 셔츠를 입고 프랑스어를 지껄이는 이런 것들이 그곳에선 가장 상류 계급에서 좋아하는 일들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거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이반 일리이치는 5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자 그에게 직업상의 전환기가 다가왔다. 새로운 재판 제도가 생겨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새로운 인재가 되었다. 그는 예심 판사의 지위에 앉게 되었다. 새 근무처는 다른 지방이었으므로 그는 그 동안 사귀어오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 다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로 떠나기로 했다. 그는 친구들과 작별 파티를 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은제 담배 갑을 선물로 받은 후 새 근무지로 떠났다.
예심 판사 시절에도 그는 촉탁 관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착실하게 근무했다. 직무상 의무를 사생활과 구별하고, 여러 사람의 존경을 얻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심 판사의 업무도 그에게는 이전의 일보다 훨씬 더 한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전에도 물론 즐거웠다. 샤르멜에서 맞춰 입은 양복을 차려 입고 쭈뼛쭈뼛 접견을 기다리는 민원인이나, 부러운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관리들 사이를 지나 곧장 지사의 개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지사와 더불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직접 자기 뜻대로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무척 예의 바르게, 거의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자신이 그들을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자기가 너그럽게 친구처럼 거리낌없는 태도로 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잘 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심판사가 되고부터 그는 자기가 모든 사람들 - 그가 아무리 행세하는 사람일지라도 예외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일정한 문구를 관용 서류에 써 넣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김없이 피고인이나 증인으로서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원하기만 하면 그들을 자기 앞에 불러 세우고 질문을 던져 거기에 대답하도록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결코 자기의 직권을 악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오히려 자기의 태도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를 썼다. 실은 자기가 가진 이 권력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권력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이 새로운 일자리가 주는 가장 큰 흥미와 매력이었다.
업무 그 자체, 즉 일반 심리 사무에 있어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극히 성공적이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건일지라도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고 필요한 모든 공식적인 형식과 방법에 근거해 무척 신속하게 해결했다. 그것은 과거 관료 사회에서 보기 힘든 사례였다.
이렇게 그는 1864년에 공포된 법률을 현실 업무에 적용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5. 결혼
예심 판사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고장으로 이사 온 이반 일리이치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고 새로운 지위를 이룩했다. 생활 태도도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지방 관청 당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고장의 부유한 귀족과 법관들 가운데서 엘리트들만 골라 서클을 조직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 적당히 불만을 나타내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적인 태도를 연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우아한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다만 턱수염만은 깎지 않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새로운 고장에서도 아주 원만했다. 주 지사에게 불만을 품은 친구들도 마음이 맞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며, 봉급도 많아졌다. 특히 당시 새롭게 시작한 빈트 놀이는 그의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트럼프 놀이에 있어서도 그는 원래 머리를 잘 굴리고 명랑하고 재치 있게 노는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 대체로 따는 편이었다.
이곳에서 2년간 근무했을 때 이반 일리이치는 장차 아내가 될 아가씨를 만났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 미헤리는 그가 드나드는 써클에서 가장 매력 있고, 머리가 좋고, 화려한 아가씨였다.
일상적인 판사 업무를 마친 다음 필요한 오락과 휴식을 위해 그는 그녀와 농담 비슷한 가벼운 관계를 맺었다.
그는 촉탁 관리 시절에는 대체로 춤을 많이 추는 편이었으나 예심 판사가 되고부터는 가끔씩 예외적인 경우에만 춤을 추었다. 자신이 직분상으로는 오등관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춤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춤을 추곤 했다.
그는 야회가 끝날 무렵에 이따금씩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와 춤을 추었으며 주로 그 춤을 추는 시간을 이용해 그녀를 정복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특별히 그녀와 결혼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인쪽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 문제를 자신의 일신상에 관련된 진지한 문제로서 검토했다.
'하기는 결혼하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지.'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제법 지체가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외모도 단정하지만 그녀가 물려받을 재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반 일리이치는 그보다 조건이 좋은 처녀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조건도 괜찮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이 받는 봉급 정도의 수입은 그녀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사실 그녀는 학벌도 좋고 귀엽고 예쁘며 나무랄 데 없는 그런 처녀였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의 결혼은, 그 때 주위 사람들이 둘이가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서로 합의해서 결혼했다. 그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식대로 실행했다. 그러한 결혼, 그러한 아내를 맞이함으로써 자신을 위해서 보다 유쾌하고 동시에 훌륭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 과정 그 자체와 부부간의 애정 표현, 새로운 가구, 새 식기, 새 내의 등으로 치장되는 결혼 생활 초기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내가 임신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일찌감치 결혼이란 것은 사회에서도 인정 받는 것이고, 경쾌하고 즐겁고 흐믓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예절 바른 생활 분위기를 파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 2,3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이 결혼 생활에는 무언지 새로운, 생각하지도 못했던 불유쾌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침울하고, 무척 볼성 사나운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것들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내는 아무 이유도 없이, 심심풀이 삼아 그의 생활의 즐거움과 예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 그녀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질투하고 자신의 비위를 맞춰달라고 요구하고 공연히 대들곤 한다 -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불쾌하고 난폭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처음 얼마 동안 이반 일리이치는 경쾌하고 점잖은 생활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런 불쾌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는 전에도 그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해 주었다. 이런 기대 때문에 그는 아내의 감정에 별로 개의치 않고 종전처럼 경쾌하고 유쾌한 생활을 계속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노름판을 벌리기도 하고 혼자서 클럽이나 친구에게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때때로 굉장히 억척스럽게 막된 말투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면 그때마다 더욱 집요하게 비난을 퍼부어서, 그가 마침내 굴복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역시 그녀처럼 항상 집안에 틀어 박혀서 침울하게 시간을 보내게 될 때까지 결코 그런 행패를 그치지 않은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제야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적어도 아내와의 생활이 언제나 생활의 즐거움과 품위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즐거움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는 스스로 이런 파괴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근무는 아내를 위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방패 삼아 자기의 독립된 세계를 지키면서 아내와 대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 및 거기 따르는 여러 가지 실망, 장모의 병(이반 일리이치는 이 문제에 자기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등 거듭되는 사건들은 그를 더욱 가정 밖으로 내몰았다. 가정 밖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전보다 더 근무에 열중하게 됐고, 거기에 대해 명예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 후 1년도 못 되어 그는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생활에 어느 정도 편의를 줄 수 있으나 실제로는 아주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즉, 사회에서 인정 받는 예의 바른 생활을 꾸리기 위해서는 근무에 임할 때와 같은 일정한 태도를 꾸며서 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부부 생활에서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꾸며냈다. 그는 가정에서는 그저 집에서의 식사, 주부의 역할, 잠자리 등 아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편의와 외면상의 형식적인 품위만을 요구했다. 집에서 그는 명랑과 유쾌와 고상한 것만을 기대했으며 간혹 그런 것이 발견되면 무척 기뻐했다. 그러다가 저항이나 불평에 부딪치면 벽으로 둘러싸인 근무라는 별세계로 피난을 가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직무 수행에서 훌륭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 받았고, 3년 후에는 검사보로 승진했다. 새로운 직무와 그 중요성, 모든 사람들을 투옥하고 기소할 수 있는 가능성, 논고의 공개성과 여기에 대한 자신의 성공, 이런 것들 때문에 그는 한층 더 근무에 몰입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아내는 점점 더 말이 많고 화를 잘 내는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잔소리도 이반 일리이치의 가정 생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고장에서 7년 동안 근무한 뒤, 다른 주의 검사로 영전되어 갔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부임했다. 그러나 돈이 딸리고 새로운 고장은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봉급은 전보다 많아졌으나 생활비는 더욱 많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를 둘이나 잃게 되어 그의 가정 생활은 더욱 즐겁지 못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새로 옮겨온 지방에서 무엇이고 좋지 않은 일만 생기면 남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부부가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에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싸움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부부 사이에 드물게나마 서로 사랑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상태가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고, 이제 그런 상태를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이것이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는 그 역할과 목표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차 줄임으로써 이루어 나갔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할 경우에는 제 3자와 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활의 흥미를 모두 이 직업의 세계에서 찾았다. 자기의 권력의식, 미운 사람은 누구든지 혼내 줄 있는 가능성, 법정에 들어갈 때나 동료들과 만났을 때 갖추는 위엄, 상관이나 부하 등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특히 자신도 느끼고 있는 사무 관리상의 수완 등 이것들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밖에 동료들과의 대화나 식사, 트럼프 놀이 등도 그의 생활의 윤활유였다. 이처럼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그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흡족하고 품위 있게...
그는 그 지방에서 7년 동안 더 살았다. 맏딸은 벌써 열 여섯이 되었다. 아이를 하나 더 잃어버리고 남은 사내 아이 하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가 항상 가정 불화의 원인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사내 아이를 법률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아내는 그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억지를 부려 중학교에 입학시켜 버렸다. 딸 아이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어쨌든 아들도 착실한 편이었다.
6. 위기
결혼하고 나서 17년 동안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는 이미 고참 검사였다. 그는 보다 좋은 자리가 나설 것을 기대하면서 두 세 군데 전임 요청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그의 생활의 평화를 밑바닥부터 뒤집어 엎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반 일리이치는 전부터 대학이 있는 도시의 법원장 자리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후배인 코페가 그를 뛰어넘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는 공연히 화를 내며 아무 것에나 트집을 잡고 동료나 친근한 상관들과 말다툼을 했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를 피하게 됐고, 냉담해져서 그는 다음 번 인사 이동에서도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1880년의 일이었다. 그 해는 이반 일리이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해였다. 봉급은 생활비를 하기조차 턱없이 부족했고,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렸다. 아버지조차도 그를 도우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누구나 연봉 3천5백 루블인 그의 지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도 그의 불행을 인정하고 도와주려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 남들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아내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진저리를 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입 이상으로 낭비한 탓에 빚에 쪼들리고 있다. 아무도 이걸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끼고 있다.
그 해 여름 휴가 때, 그는 휴가비를 줄이기 위해 처남이 있는 시골집으로 아내와 함께 내려갔다. 이반 일리이치는 시골에서 근무 없이 무료하게 지냈다. 이반 일리이치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심심함에 질려 버렸다. 그는 견디기 힘든 우울함을 느끼고 단단히 결심했다 - 이런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다. 뭔가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이반 일리이치는 잠이 오지 않아 테라스를 어슬렁거리며 꼬박 밤을 샜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에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상관들이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다른 관청으로 옮겨 버리는 거다... 그는 결심했다.
다음날, 아내와 처남이 한사코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뻬쩨르부르그로 떠났다. 그는 단 한 가지, 연봉 5천 루블을 받는 지위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이제 그는 어떤 관청이든, 또는 일의 방향이나 성격 등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연봉 5천 루블일 뿐이다. 행정 방면이든 은행이나 철도든 또는 마이야 황후 학원이나 세관일지라도 꺼릴 것 없었다. 그저 5천 루블만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을 중요하게 쓸 줄 모르는 지금의 소속 관청으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떠나 버리고 싶었다.
이반 일리이치의 이번 여행은 뜻밖의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클스크에서 그의 친구 에프 에스 일리인이 같은 일등차에 올라탄 것이다. 일리인은 방금 클스크 주지사로부터 전달된 전보를 보여 주었다. 그것에 의하면 며칠 안으로 주 청사의 인사 이동이 있으며, 표도르 이바노비치 자리에 이반 세미요노비치가 임명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인사 이동은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즉 표도르 이바노비치와 그의 친구인 자할 이바노비치의 역할 변경은 이반 일리이치에게 다시 없이 유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모스크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뻬쩨르부르그에 도착하자 이반 일리이치는 자할 이바노비치를 찾아가서 자기가 전에 근무했던 사법성에서 확실한 지위를 약속 받았다. 일 주일 후 그는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자할 미르레르의 후임으로 제 1차 보고시에 임명 됐음.'
이반 일리이치는 에상치 못했던 이 인사 이동 덕분에 동료들보다 2계급이나 뛰어오게 됐다. 게다가 5천 루블의 봉급과 부임 수당으로 3천 5백 루블까지 덤으로 받게 되었다. 그는 이전의 경쟁자들과 관청 전체에 대해 품었던 적개심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아주 행복한 기분에 잠길 수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만족스럽고 쾌활한 표정을 되찾고 시골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도 옛날처럼 명랑해져 두 사람 사이엔 휴전이 맺어졌다. 이반 일리이치는 뻬쩨르부르그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 예전엔 적이었던 사람들이 체면 따위는 던져 버리고 이제 그에게 아첨하게 된 것이다. 모두들 그의 지위를 부러워했다. 특히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의심 없이 믿는다는 표정을 하면서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해 갈 고장에서의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이었다.
아내가 말하는 계획은 이반 일리이치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는 서먹서먹하고 씁쓸했던 생활이 이제 멀리 사라지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즐겁고 점잖은 생활로 되돌아 가는 모습을 흐믓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잠시 머무를 생각으로 시골에 돌아왔던 것이다. 9월 10일에는 새 임무를 맡아야 했으며 그밖에 새 부임지에서의 생활을 준비하고 시골에서 이삿짐을 전부 옮겨야 했다. 살림도구도 새로 장만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그의 머리 속에서 꾸몄던대로, 또 아내의 결심대로 정비되어야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 완전히 의견이 일치한 그들 부부는 사이가 무척 좋아졌다. 신혼 때에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곧 가족들과 함께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남 부부가 갑자기 그들 가족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굳이 붙잡는 바람에 일단 혼자 떠나기로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새 임지로 출발했다. 직업적인 성공 그리고 아내와 화합한 것이 그에게 흐믓하고 즐거운 기분을 안겨 주었다. 그 만족감은 점점 더 커졌다. 이사할 멋진 집도 하나 찾아냈다. 그들 부부가 전부터 가슴 속에 그리던 이상형의 그런 집이었다. 고풍스럽게 넓고 높게 설계한 응접실, 편리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서재, 아내와 딸의 방, 아들이 쓸 공부방 등 모든 것이 마치 그들을 위해 일부러 주문해 만든 것 같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몸소 집 정리에 나섰다. 벽지를 선택하고 가구를 사들였다. 일부러 아주 고풍스러운 물건을 사들였다. 그것이 특별히 우아하게 보이도록 덮개를 장만하여 마음 속에 그렸던 이상에 가깝게 꾸며 나갔다.
집 정리를 절반 정도만 했는데도 그 효과는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는 집 정리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속되거나 상스러운 구석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우아하고 고상한 분위기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밤에 잠들면서도 그는 머지 않아 완성될 넓은 응접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손님방을 둘러보며 벌써부터 벽난로와 칸막이, 선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의자와 벽에 걸린 큰 접시, 오래 된 접시들과 청동 장식품들이 각기 제 자리에 놓인 모습을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혼자서 흐뭇한 기분에 잠겼다. 특히 방 전체에 아주 고상한 품위를 갖추어 줄 오래된 물건들을 찾아내서 싸게 사들인 것이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다. 그는 나중에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고 더욱 놀라도록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실제보다 축소해서 편지로 써 보냈다. 이런 일들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려 그는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새로운 직무에 대해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때때로 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커튼 윗 부분은 어떤 식으로 주름을 잡을까, 직선적인 게 나을까, 좀 여성적인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때로는 너무 생각에 열중한 나머지 몸소 가구를 고쳐보기도 하고 커튼을 갈아 보기도 했다.
한 번은 좀 서툰 미장이에게 직접 지시를 하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다행히 워낙 몸이 날쌔고 튼튼했으므로 옆구리를 모서리에 부딪쳤을 뿐이었다. 옆구리는 약간 아팠으나 이내 나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동안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했다. 그는 때때로 편지에도 썼다 - 나는 나이가 열 다섯 살이나 젊어진 것 같다고. 그는 9월 중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정리되리라고 예상했지만 일은 10월 중순까지 끌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그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모두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별로 부유하지 못하면서 부유한 척 보이려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두꺼운 비단 커튼, 흑단 목재 가구, 꽃, 융단, 번쩍이는 것들이 모두 일정한 종류의 사람들이 그 일정한 종류의 사람답게 보이기 위해 장치해 놓은 것일 뿐이었다. 그의 집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런 것이어서 실상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모든 것들이 무슨 특별한 것처럼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는 철도 정거장으로 가족을 마중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정리된, 눈부신 새 집으로 데려왔다. 하얀 넥타이를 맨 하인이 꽃으로 장식된 대기실의 문을 열어 젖혔을 때 모두들 응접실로 서재로 돌아다니면서 와! 하고 감탄의 함성을 터뜨렸다. 그는 너무 행복해 그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그들의 찬사를 마음껏 즐겼다.
그날 밤 차 마시는 자리였다. 그는 아내의 물음에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사다리에서 뛰어 내려 미장이를 놀라게 했던 모습을 몸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체조를 배운 게 뭐 장난인 줄 아나?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여기를 좀 부딪쳤을 뿐이야. 아직 만지면 아프긴 해도 이젠 거의 다 나았어. 가벼운 타박상일 뿐이라니까."
이렇게 그들은 새로운 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매사가 그렇듯 이 새 집에서도 얼마쯤 살다 보니 방이 하나쯤 더 있었으면... 수입도 한 5백 루블쯤 더 많았으면 하는 사소한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직 갖추어진 시설이 좀 부족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부부가 이것저것 장만하고 고쳐 달라기도 하고 바꿔 놓을 때가 가장 좋았다. 부부 사이에는 무언지 아직 석연치 않은 구석도 남아 있었으나 둘 다 아주 흡족한 상태였다. 또 해야 할 일도 많았으므로 별로 크게 싸우는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더 이상 손 댈 것이 없어졌을 무렵, 약간 지내기가 심심했지만, 그 무렵에는 새로 친구도 생기고 습관도 정해지고 생활도 충실해졌다.
7.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이반 일리이치는 오전을 법원에서 보내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었다. 처음 얼마 동안 그의 기분은 문자 그대로 최고였다. 집안 일 때문에 약간 골치를 썩기도 했지만, 그의 생활은 지금까지 그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그는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은 다음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법원으로 나간다. 법원에는 그가 달고 일해야 하는 목걸이가 마련되어 있다. 법원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목에 달아야 했다.
사무실에서 민원인들을 조사하고, 사무실 자체 업무나 회의, 공판과 공판 준비 회의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를 둘러싼다. 이것들 가운데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회색의 생활이 끼어든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이것을 배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사람을 다룰 때에 직무 이외의 어떠한 관계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의 동기는 오로지 직무상의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도 직무상 허용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가령 누가 무언가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 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직무를 떠난 자연인 이반 일리이치는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사람의 용무가 관리와 관련된 것이며 공문용지에 기재될 성질의 것이라면 이반 일리이치는 그러한 관계의 범위 안에서 규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자세히 알아봐 준다. 덧붙여 그는 인간적으로도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직무상의 일이 끝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반 일리이치는 직무상의 일을 분명히 구분, 자신의 진짜 사생활과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왔다. 이 방법을 이반 일리이치는 최대한 이용했다. 그것은 오랜 경험과 재능에 의해 이상할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는 가끔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듯이 인간적인 관계와 직무상의 그것을 자신이 혼동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스스로 정한 원칙의 속박을 풀어버리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또다시 직무상의 관계를 칼처럼 구별, 인간적인 측면을 떼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어진 업무를 손쉽고 유쾌하고 의젓하게 처리했다. 그 솜씨는 실로 달인의 경지라고 평가할 만했다. 직무를 처리하는 사이사이에 그는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며 간단한 정치 관련 화제를 입에 올리는 일도 있었다. 또 일반적인 세상사나 트럼프 놀이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의 화제는 대부분 인사 이동에 관련된 의견 교환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역할을 솜씨 있게 해치운 명인처럼,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제 1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처럼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아내가 딸과 함께 외출했거나 손님이 와 있거나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가정교사와 예습을 하거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매사가 전혀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찾아온 손님이 없으면 이반 일리이치는 이따금씩 평판이 좋은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더 늦은 밤에는 다시 일에 열중한다.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관련 법규를 조사하고, 진술 내용을 법률과 대조해보고 들어 맞는 조문을 찾아내곤 했다. 이런 일은 지루하고 갑갑하기만 했다.
물론 빈트 노름을 할 때도 지루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내하고 함께 있거나 혼자서 우두커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반 일리이치의 즐거움은 조그마한 만찬회를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지위에 있는 신사 숙녀를 초대해서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의 집에서 가든파티를 열고 무도회를 가진 일도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흐믓한 기분이었고, 파티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음식 문제로 아내와 대판 싸워야 했다. 아내는 그녀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그가 우겨서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장만했으나 손님들이 다 먹지 못해서 음식이 많이 남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점에 치루어야 할 계산이 45 루블이나 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어리석게 고집을 피운다고 몰아세웠고, 남편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홧김에 이혼까지 서슴지 않는 식의 말을 중얼댔다.
그러나 야유회는 눈부셨다. 모두 일류급 인사들만 모여서 이반 일리이치도 포르포온노 공작부인과 춤을 추었다. 근무상의 기쁨은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며, 사교적인 기쁨은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가 진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빈트 놀이를 할 때였다.
이렇게 그들은 생활했다. 그들은 사교계에서 제 1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조직된 서클에 들어갔다. 이 서클에는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서클에 관해서는 남편과 아내, 딸까지도 완전히 의견이 일치했다. 그들은 별다른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벽에 일본 도자기 접시가 걸려있는 그들의 객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종류에 제한을 가했다. 실속도 없이 말만 앞세우는 귀찮은 친구들과 차림새가 허술한 축들은 상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집에는 최상류층 사람들만 드나들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이반 일리이치의 딸인 리잔카를 자주 화제에 올리곤 했다. 특히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페트리시체프의 아들이며 상속자인 예심판사 페트리시체프가 가장 관심이 많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진작부터 그 문제에 관해서 아내와 상의하곤 했다. 두 젊은이를 트로이카로 드라이브를 시키거나 또는 함께 소인극을 연출시켜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생활은 변함없이 그대로 흘러갔다. 만사는 아주 순조로웠다.
8. 무너진 생활
가족들은 모두 건강했다. 이따금씩 이반 일리이치가 입 속에서 야릇한 냄새가 난다거나, 왼쪽 배가 좀 거북하다고 말하는 일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기분은 점점 더 심해졌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옆구리에 뭔가 끊임없이 묵직하고 답답한 기분이 느껴져 기분이 침울해지곤 했다. 이 침울한 기분은 나날이 더 심해져서 급기야 그가 고로빈 가문에 어렵사리 이룩해 놓았던 품위 있고 가볍고, 명랑한 생활 분위기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내는 날이 갈수록 싸움이 잦아졌다. 머지 않아 가볍고 유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체면 유지를 위한 법칙만이 유지되게 되었다. 아내가 전부터 가끔 남편에겐 음울한 성격이 있다고 말한 것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무엇이든지 좀 보태서 지껄이는 성품이었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이렇게 무서운 성격이었어요, 내가 사람이 좋아서 20년 동안이나 그걸 참고 살아왔노라고 떠들어댔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그가 먼저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통례였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식탁에 앉아서 스프를 먹을 때쯤 거의 언제나 잔소리를 시작하곤 했다. 그것도 그릇이 이가 빠졌다거나, 요리가 글러먹었다거나, 또는 아들이 상 위에 팔을 올려 놓았다거나, 딸의 머리 모양이 어떻다는 둥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아내의 잘못 탓으로 돌렸다.
아내는 참다 못해 처음에는 말대답도 하고 불쾌하게 쫑알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밥 먹기 전에 두 차례나 아주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후로는 그녀도 그가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화를 가라앉히고 잠자코 부지런히 식사를 끝마치기로 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처럼 성격이 유순하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아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기의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내심 단정하고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더 남편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를 바랐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실제로 그것을 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봉급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녀는 더욱 마음이 상했다. 남편의 죽음조차도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무섭게 불행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늘 조바심을 쳤으나 그런 태도를 될수록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 감추어진 조바심은 더욱 남편의 울화를 긁어 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반 일리이치의 신경질이 유난히 심했던 어느날이었다.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는 요즈음 자기가 짜증을 잘 내는 것은 모두 병 때문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말했다.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이름있는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하라고 성화를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했던대로였다. 그는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마치 그 자신이 법정에서 취하는 태도를 흉내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사는 정중하게 꾸민 태도와 판에 박은 듯한 형식이라는, 직업의 가면을 쓰고 그를 대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아주 낯익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저 모든 것을 내게 맡기시면 됩니다. 해롭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똑같은 방법으로 다 해결해 왔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듯한 의사의 그 꾸며진 표정, 이것은 그가 한결같이 법정에서 지켜왔던 태도와 흡사했다. 법정에서 그가 피고인들에게 지어 보이는 표정과 그 저명한 의사가 그에게 보여준 표정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의사는, 이러저러한 징후는 당신의 몸에 이러저러한 병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모저모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병은 아마 또 다른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단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어쩌구저쩌구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단 한 가지 문제만이 중요했다. 그의 병이 심각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이러한 질문을 무시해 버렸다.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따위 질문은 이롭지 못한데다, 문제로 삼을 것도 못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만성 탈장이냐 아니면 맹장염이냐 둘 가운데서 확률을 놓고 따지는 것일 뿐이다.
의사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생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맹장염에 대한 논쟁의 문제였다. 의사는 이반 일리이치를 앞에 앉혀놓고 아주 재치 있는 솜씨로 논쟁을 진행, 맹장염의 승리로 결론을 지었다. 의사는 이와 같은 진단에 덧붙여서 혹시라도 소변 검사 결과에서 새로운 증거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때는 다시 진찰해야 한다는, 발뺌을 위한 장치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이반 일리이치 자신도 피고인들을 다룰 때 빈틈없는 솜씨로 천 번도 넘게 해오지 않았던가. 그가 늘 그랬듯이 의사는 즐거운 듯 득의만면해서 이제 피고의 입장에 선 그를 안경 너머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의사나 다른 사람에겐 이런 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지...' 이반 일리이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놀라고 두려워졌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의사가 괘씸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위에 돈을 놓으면서 한숨을 쉬고, 이렇게 물었다.
"환자들은 원래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만... 제가 혹시 아주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의사는 안경 너머로 그를 차갑게 쏘아 보았다. 마치 '피고인 그대가 허용되지 않은 질문을 끄집어낸다면 부득이 퇴정을 명령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말씀드릴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 말씀 드렸는데요." 의사는 대답했다. "그 이상의 것은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말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의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느릿느릿 그곳을 나와 기운 없이 썰매를 타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의사가 한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의사가 말한 그 모호한 낱말들은 과연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내 병은 심상치 않은 것일까? 무척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까?' 그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의사가 한 말 속에서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로서는 생각할수록 의사의 말이 아주 위험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길거리의 풍경도 그에게는 서글프게만 보였다. 합승마차도, 늘어선 집들도, 사람들도, 구멍가게도 모두 처량해 보였다. 게다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둔탁한, 곪는 듯한 아픔... 의사는 모호하게 말하지만, 이 고통은 훨씬 심각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침울하게 아픔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진찰 결과를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딸이 모자를 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려던 참이었다. 사실 아내는 이 답답한 대화를 억지로 참으면서 자리에 앉아 들어주고 있었으나 그런 그녀의 노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 그래요? 그럼 이제 안심이군요." 아내는 말했다. "당신도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꼬박꼬박 약을 드시도록 하세요. 그럼 게라심에게 처방전을 주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도록 하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다른 방으로 갔다.
아내가 방에 있는 동안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나가자 그는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이런 젠장! 어쩌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도 모르지..." 그는 중얼거렸다.
이반 일리이치는 약을 마시고 의사의 지시를 착실히 지켜 생활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은 얼마 못 가서 소변 검사 결과에 의해 바뀌었다.
그건 별로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의사의 검사와 그 결과에 따른 치료 방법에 일종의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의사의 실책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의사가 한 말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종전대로 의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 속에서 일종의 위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약을 먹고 기타 요양에 관한 의사의 지시를 제대로 지키는 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는 또 몸의 고통과 내장의 기능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병이나 건강에 대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앓고 있는 어떤 환자의 이야기, 특히 자신의 증상과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그는 억지로 마음의 동요를 감추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거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자신의 증상과 견주어 보았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