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소통과 인간 관계
by 송화은율의사 소통과 인간 관계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우리는 많은 인간들이,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인간 관계에 있어서 문제에 봉착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요즈음 신문지상을 보면 인간 관계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살인, 강도 등 강력범의 이야기, 자살자와 정신병자들의 이야기, 행복해야할 결혼 생활이 파국에 이르러 결국 이혼에 이르는 이야기,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이웃과 이웃 사이의 마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참여자와 소외자 간에 발생하는 충돌, 첨예한 노사 대립, 제도권과 재야의 대립, 정치 협상의 교착 상태 등으로 가득 찬 신문 지상을 꼭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간 관계의 잘못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비극들이 엄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 관계는 왜 발생하는 것인가? 여러 가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진단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고찰해 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원만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의사 소통 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의사 소통 능력이란 언어 능력과는 달리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단한 훈련과 계속적인 관심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현재 우리들이 일상 생활을 통해서 직면하고 있는 많은 인간 관계 문제들이 그 외형적인 형태야 어떻든 결국은 의사 소통이 원만하게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인간 관계들은 결국 성공적인 의사 소통 방법을 조직적으로 훈련받아 본 경험이 없음으로 해서 암중 모색만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일반 백성들은 의사 소통의 기회를 갖지 못했었고 역사를 통하여 ‘과묵한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칭송함으로써 웃사람에게 말없이 순종하는 인간형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고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는 식으로 의사 소통에 의한 적극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위기를 넘겨 보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던 것이다. 해방 이후 민주 정부를 수립한 후에도 의사 소통을 통해 국민의 뜻을 수렴하려는 태도보다는 ‘말 많으면 빨갱이’식으로 말을 하려는 의욕을 꺾는 데 더욱 강조점을 두어 왔다. 해방 이후의 우리 나라 국어 교육도 입시 준비를 위한 국어에 관한 지식과 교양을 주입하는 데 급급했을 뿐 국어 교육의 근본 목표가 되어야 할 의사 소통 능력의 개발은 무시함으로써 선진적인 민주 시민의 양성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결과로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올바르게 발표하는 방법을 아무 데서도 배우지 못함으로써 논리적 방법에 의한 문제 중심의 논의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소리나 지르는 경우가 허다하여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는 식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웅변 스타일의 말솜씨만 늘어났고 이러한 방법으로 일방적인 강요만을 국민들에게 요구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정치가들과 행정 관료들, 기업의 경영가들, 교육자들 등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은 우리 국민들의 의사 소통 체계를 불일치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은 정상적의 의사 소통 방법이 아닌 폭력과 극단적인 파괴 행동으로 그들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지도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화’에 의한 해결 방법을 만병 통치약처럼 들먹거렸으나 실제로는 힘과 권력에 의한 강요만이 대화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최근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한꺼번에 분출된 근로자와 농민 등 이른바 기층민중의 불만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이들의 진정한 의사 소통 방법의 훈련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해방 이후부터 꾸준히 학교 교육을 통하여 또한 사회 교육을 통하여 의사 소통 능력 개발 훈련을 실시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인간 관계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안정헌, ｢의사 소통과 인간 관계｣, 부산대학교 인문 논총,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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