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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乙支文德)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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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乙支文德)

 

 

 요점 정리

 연대 : 1908년
 작자 : 신채호
 형식 : 전기 소설(논문에 가까운 필체)
 구성 : 전 15장 서론 결론
 주제 : 국난극복을 위한 영웅의 탄생을 염원
 구성 : 내용은 전 15장과 서론 ·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을지문덕의 전기를 골격으로 삼고 있으나 소설이라기보다는 논문에 가까운 문체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서론,
제1장 을지문덕 이전의 한한관계(韓漢關係),
제2장 을지문덕 시대의 여수형세(麗隋形勢),
제3장 을지문덕 시대의 열국상태(列國狀態),
제4장 을지문덕의 의백(毅魄),
제5장 을지문덕의 웅략(雄略)이다.
제6장은 을지문덕의 외교,
제7장 을지문덕의 무비(武備),
제8장 을지문덕의 수완하(手腕下)의 적국(敵國),
제9장 수구(隋寇)의 성세(聲勢)와 을지문덕,
제10장 용변호화(龍變虎化)의 을지문덕,
제11장 살수대풍운(薩水大風雲)의 을지문덕,
제12장 성공 후의 을지문덕,
제13장 구사가관공(舊史家管孔)의 을지문덕,
제14장 을지문덕의 인품,
제15장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을지문덕,
결론 등으로 되어 있다.

 

 

 이해와 감상

신채호 ( 申采浩 )가 지은 전기소설. 1908년 광학서포(廣學書 孃 )에서 간행하였다. 원제목은 ‘ 대동사천재 제일대위인 을지문덕(大東四千載第一大偉人乙支文德) ’ 이며 같은 해 5월에는 국한문본, 7월에는 국문본으로 발간하였다. 안창호 ( 安昌浩 ) · 변영만 ( 卞榮晩 ) · 이기찬(李基燦) 등의 서문이 붙어 있는데, 당시의 영웅 출현을 염원하는 풍조와 함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서문에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전기소설로서 문학적 또는 소설적 조작이나 허구가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전기소설로 단정짓기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의식은 당시의 비당위적 역사를 극복하여보려는 저항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외세에 대한 무력항쟁의 준거를 역사적 위인인 을지문덕에서 찾은 문학이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난 극복을 위한 영웅의 탄생을 염원하는 작가의 의도가 뚜렷한 작품이다.

 

≪ 참고문헌 ≫ 애국부인전 · 乙支文德 · 瑞士建國誌(李在銑, 한국일보社, 1975), 丹齋申采浩全集(螢雪出版社, 1977), 申采浩의 乙支文德硏究(金治弘, 국어국문학 86, 1981).

 

 

 심화 자료

 

 을지문덕(乙支文德 )  

 

 

  생몰년 미상. 고구려시대의 장군. ≪ 자치통감 ≫ 에는 ‘ 위지문덕(尉支文德) ’ 이라고도 표기하였다. ≪ 삼국사기 ≫ 을지문덕전에서는 그의 세계(世系)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 해동명장전 海東名將傳 ≫ 에는 “ 을지문덕은 평양 석다산(石多山) 사람이다. ” 고 하였다.

 

612년(영양왕 23) 수나라는 양제(煬帝)의 총지휘 아래 대규모의 군단을 편성해 고구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하였다. 이 때 육군은 고구려의 주요 군사거점인 요동성(遼東城 : 지금의 遼陽)을 공격하였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우중문(于仲文) · 우문술(宇文述) 등을 지휘부로 한 30만 5,000명의 별동부대를 구성해 해군과 더불어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성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별동대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였을 때, 을지문덕은 왕명을 받들어 거짓 항복을 청해 적진으로 들어가 군량이 부족한 수나라의 약점을 간파하였다. 돌아와서 수나라군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수나라군과 충돌할 때마다 패해 도망가는 척하면서 그들은 평양성 부근까지 유인하여 극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또한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의 구실을 찾던 수나라군에게 “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 라는 희롱조의 오언시를 보내 회군을 종용하였다.

 

한편, 수양제에 대한 영양왕의 알현 등을 조건으로 거짓 항복을 청해 퇴각의 구실을 만들어주는 척하면서 일대 반격전을 전개하였다. 살수(薩水 : 지금의 청천강)를 건너는 수나라군을 배후에서 공격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을 죽게 하고 불과 2,700명만을 살려보내는 대전과를 거뒀다.

 

이에 수나라군의 총퇴각과 고구려의 승리를 가져다준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이를 ‘ 살수대첩 ’ 이라 한다. ‘ 을지 ’ 라는 성에 대해서는 고구려 관등명(官等名)의 하나인 우태(于台)와 같이 연장자 · 가부장(家父長)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 을 ’ 만이 성이고, ‘ 지 ’ 는 존대의 접미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성인 ‘ 울지(尉遲) ’ 씨와 같은 것으로 보아 을지문덕을 선비족 계통의 귀화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참고문헌 ≫ 三國史記, 海東名將傳(洪良浩), 隋書, 資治通鑑, 三國史記 高句麗人傳의 檢討(李弘稙,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國譯三國史記(李丙燾, 乙酉文化社, 1977), 高句麗 · 新羅의 官階組織의 成立過程(金哲埈, 韓國古代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高句麗 人名表記에 나타난 用字法의 檢討(兪昌均, 東洋學 5, 1975), 乙支文德의 出自에 대한 疑論(金元龍, 全海宗博士華甲記念史學論叢, 1979), 다시 乙支文德 出自에 대하여(金元龍, 東國史學 15 · 16합집, 1981), 乙支文德과 木綿의 異論에 관한 一考察(李載浩, 韓國史硏究 39,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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