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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전(銀愛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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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전(銀愛傳)

은애는 성이 김. 강진현 탑동리의 양가집 딸이었다.

 

이 동리에는 안씨 성을 가진 성미 고약한 할멈이 살고 있었다. 할멈은 기생으로 늙은, 말하자면 퇴물 기생이었다. 험악한 마음씨와 되는 대로 지껄이는 주둥이로 해서 구설도 많았다. 게다가 옴이 온몸에 퍼져 늘 가려워서 괴로워했다. 이런 형편이니 울화통이 터지거나 신세 한탄을 하게 되면 그 입에서 나오지 않는 말이 없었다.

 

할멈은 평소 은애의 집에 드나 들면서 쌀이나 콩 소금 메주 같은 것을 자주 꾸어다 먹었다.

 

그러자니 때로는 은애의 어머니가 거절하는 때도 있었다. 이때마다 할멈은 앙큼한 마음에 불이 붙어 자기의 몸을 온통 못살게 구는 질병에서 오는 화풀이가 더하여 기회만 있으면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같은 동리의 최정련이라는 아이가 살았다.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으로 할멈의 시누이의 손자인데, 나이 십 사오 세의 곱상스런 선머슴애였다. 할멈은 이 아이를 꾀어 시험할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먼저 남녀의 음탕한 정욕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준 다음 슬그머니 운을 때었다.

"너 저 은애 같은 처녀에게 장가를 들면 어떻겠니?"

 

이 말에 정련은 씽긋이 웃었다.

"은랑이라면 아름답고 근사하지요. 어찌 행복하지 않겠어요?"

"그럼 됐다. 너는 그저 돌아다니면서 이미 은애하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떠들고만 다녀라 내 반드시 일을 성사시켜 주마."

"그러지요"

"그건 그렇고.......나는 지금 온몸에 옴이 올라서 죽을 지경이다. 의원의 말이 가려운데 쓰는 약은 비싸다고 하더라. 너 말일 이 일이 성사되면 약 값을 대겠느냐?"

"어찌 말씀대로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며칠이 지났다. 어느날 할미는 늙은 영감이 밖에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뜻이 이렇게 말했다.

"글세. 은애가 정련이한테 반해서 나더러 중매를 부탁하지 않겠수? 내가 정련이 녀석을 생각해서 우리 집에서 만나도록 해주었는데, 뜻밖에 정련이 할미에게 들켜서 은애는 그만 담을 뛰어 넘어 달아났지 뭐요."

 

영감은 이 말을 듣고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할멈을 나무랬다.

"정련의 집은 보잘 것없고, 은애로 말하면 양반집 딸이 아닌가? 행여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도 마오."

 

그러나 소문이란 빨라서 순식간에 온 성중에 퍼져, 은애는 시집갈 길이 막혀 버렸다. 할멈은 우선 앙갚음을 한셈이었다. 은애는 전전긍긍(戰戰兢兢)하던 끝에 마을 총각에게로 시집을 갔다.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아는 김양준이란 젊은이였다.

 

"일단 혼인을 하여 살림을 차렸지만 나쁜 소문은 잇따른 모함으로 인해서 더욱 더 번져나갔고, 나중에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별별 소문이 다 퍼졌다. 기유년 윤 5월 스무 닷새 날. 안씨 할멈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내 처음 정련이와 중매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약 값을 타 내려고 했더니. 은애 고년이 갑자기 약속을 어기고 다른 데로 시집을 가지 않았느냐. 정련이 녀석이 약속을 틀린다고 약 값을 주지 않으니, 내 병이 더욱 위중하게 되었구나. 정말 은해 고년은 내 원수야."

 

이 말을 들은 동네 늙은이 젊은이 할 것없이 모두 놀란 얼굴로 눈을 껌뻑거리면서

"원. 저런 고얀 일이 다 있나"

 

하면서, 혹시 엉뚱한 소문이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말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할멈은 할멈대로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소문을 퍼뜨렸다. 은애는 천성이 모질고 독한 여자였다. 할멈의 앙갚음으로 억울한 욕을 당하기 2년, 이제는 부끄럽고 원통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여우같은 할망구를 어떻게 요절을 내야 한담."

 

분한 생각을 하면 할멈의 살점을 한 오리씩 오려 내어 원수 갚음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할멈이 새로운 소문을 떠벌리고 다닌 다음날 은애는 마침내 할멈을 해칠 결심을 했다.

 

마침 집에는 가족이 모두 나가고, 이웃 안씨 할멈도 혼자서 집에 있는 형편이어서. 기회가 좋았다. 은애는 초저녁이 되자 부엌칼을 집어 들고, 치맛자락을 허리춤에 꽂고는 나는 듯이 집을 나서서 곧장 할멈의 집 침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외로운 등불이 가물가물 타오르는 가운데, 노파는 이제 잠자리로 들어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웃옷을 다 벗어버리고 치마만을 두른 채 다시 들어 빠진 젖가슴을 드러낸 체였다 은애는 부엌칼을 비껴 들고 할멈을 노려보았다 눈썹이 모두 곤두섰다.

"어제 모함은 그전보다도 더욱 심하더구나. 너 년에게 분을 풀어야 하겠으니 이 칼을 받아 봐라!"

 

할멈은 빤히 올려다보면서,

"저렇게 가늘고 약해 빠진 것이 무얼하겠다고."

하고 생각하자 기세가 등등해졌다.

"흥, 찌르고 싶으면 질러 봐라!"

 

은애의 분노는 머리카락까지 곤두섰다.

"못할 줄 알고?"

 

빽 소리를 지르면서 식칼을 옆으로 휘둘러 재빨리 할멈의 왼편 목덜미를 찔렀다. 할멈은 아직도 옛날의 성깔이 살아 있어서 급히 은애의 칼을 쥔 손목을 잡았다. 은애는 잡힌 손목을 뽑자 이번에는 할멈의 오른쪽 목언저리를 찔렀다. 할멈은 끽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한쪽으로 쓰러졌다. 은애는 다시 할멈의 어깨와 젖가슴 위, 어깻죽지, 겨드랑, 팔을 찌르고 다시 팔꿈치, 가랑이, 갈빗대, 목덜미, 젖가슴 등 주로 왼쪽을 난자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른편 갈비와 등을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찌르며, 한 번씩 찌를 때마다 한 번씩 꾸짖었다. 모두 여덟 군데. 이렇게 마구 칼질을 한 뒤, 칼에 묻은 피도 씻을 사이 없이 이번에는 정련의 집으로 내달았다. 내친 김에 마저 분풀이를 할 셈이었다.

 

그러나 정련이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던지, 길에서 정련이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미가 울며불며 말리는 바람에 은애는 어지간히 분이 풀려 집으로 돌아섰다. 은애의 나이는 방년 18세.

 

마을의 이장이 관가로 달려가서 이 사건을 고발하였다.

 

현감 박재순은 위의를 갖추고 마을로 와서 현장을 살피고 할멈의 시체도 검사했다. 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믿기는 어려웠다.

 

은애는 관가에 잡혀 오고, 이어서 문초가 시작되었다.

" 너, 할멈은 왜 찔렀느냐? 게다가 할멈은 건강한 부인이요, 너는 약한 계집아이거늘 이제 칼질한 것을 보니 흉악하기 짝이 없다.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볼 수 없으니 네 숨김없이 바로 고하여라."

 

주위에는 사나운 기세의 나졸들이 둘러서고, 온갖 형틀이 즐비하였다.

 

옥사에 관계된 사람들은 제 얼굴이 아니었다. 은애는 목에 칼을 쓰고, 손에는 수갑, 다리에는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연약한 몸뚱이는 무거운 사슬에 얽혀 기운 없이 축 늘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없었고 말소리도 또렷했다.

 

"아아, 원님께선 저의 부모이십니다. 죄인의 말씀을 들어 주옵소서. 규방의 처녀가 무고를 입사오면 비록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 할지라도 더럽혀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할멈은 본시 기생의 몸으로 규방의 처녀를 모함하였으니, 고금을 통하여 천하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죄인이 할미를 찌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이다. 이 몸이 비록 세상물정에 어두운 계집아이이기는 하오나. 제가 살인을 했다는 소문이 나면 관가에서는 반드시 이몸을 죽일 것이오니, 어제 할멈을 죽였으니 오늘은 이 몸이 죽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할멈은 이미 죽었고. 남을 모함한 죄를 물을 곳이 없어졌사오니, 원컨대 관가에서는 정련을 때려 죽여주옵소서 이 몸이 홀로 모함을 입어 원수를 갚은 일이니 또 누가 이 몸을 도와서 이런 흉사를 도모하겠습니다? "

 

현감은 오랫동안 한숨만 내쉬었다. 은애가 노파를 죽일 때 입었던 옷을 감정했다.

 

흰모시 적삼과 푸른 치마가 피로 범벅이 되어 빛깔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감은 피 칠 한 옷을 보고 모골이 송연하면서도 대견한 감동을 느꼈다. 마음 속으로는 놓아 주고도 싶었으나 나라에는 국법이 있는 법 생각 끝에 대강 조서를 꾸며 관철사에게 올렸다. 관철사 윤행원 역시 사건이 사건인 만큼 추관에게 일러 판결을 늦추고 계속 공모자를 가려내도록 했다. 이리하여 아홉 번이나 심문을 거듭하였으나 죄인의 진술은 시종일관(始終一貫) 단독 범행이라주장했다. 최정령은 나이가 어려 할멈에게 유인을 당한 것으로 보고 죄를 묻지 않았다.

 

경술년 여름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었다. 은애의 옥사가 있는 다음해이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면 죄인을 특하사는 것은 예가 오늘이나 같다. 정조 임금께서는 사형수들의 죄상과 기록을 올리게 하였다. 관찰사 윤시동 이 이 옥사를 기록한 문서를 올렸는데, 그 기록의 글귀가 제법 부드러웠다. 임금께서는 기록을 보시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살려 주고 싶었으나 사건의 중대성이 비추어 형조에 사건을 돌리고 어려 대신들이 의논하여 보고하도록 했다.

 

대신 채제공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은애가 원한을 갚은 이 사건은 비록 마음속에 쌓인 통분한 마음을 설분한 것이오나, 그 죄가 살인이라는 데 이르러서는 신도 감히 용서를 청할 수가 없습니다"

 

임금께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렸다.

"정조를 지닌 여자가 음란하다는 모함을 입었다면, 이는 천하의 지극한 원한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저 은애와 같이 정조를 지킨 여자가 한 번 죽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스스로 죽기만 한다면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굳이 그 할멈의 살을 도려내어 한 고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더럽힌 사실이 없음을 입증하려 했다. 만일 은애가 열국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자취는 비록 다르다고 할지라도 저 섭앵과 무엇이 다르랴. 사관이 어찌 그의 전기를 쓰지 않겠는가. 옛날 해서에 처녀 하나가 살인을 한 일이 있었다. 이번의 옥사와 비슷했다 그때 감사는 놓아주기를 청하였고, 선왕께서는 그 말을 받아 들여 표창을 하였다. 그 처녀가 옥에서 나오자 중매장이가 구름처럼 모여 들고 천금을 내어 다투어, 마침내 양반의 아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 내려온다. 게다가 은애는 원한을 참아 가면서 출가를 하였으나 모함이 여전히 그치지를 않아서 급기야 원한을 풀 생각을 먹게 되었으니 이것은 아녀자로서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 이제 은애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풍속과 인심을 대한 교화를 펼 것인가. 그러므로 그녀를 용서하고자 하노라. 전자에 장흥의 신여척을 방면한 것도 역시 인륜의 상도를 높이고 기개와 절의를 중하게 보았던 까닭이었다. 이제 은애를 사면하는 것도 이 같은 뜻에서 나온 것이니 은애와 여척에 관한 두 옥사를 문서화하여 그 대략이나마 호남 사람들에게 반포하라. 사람마다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련다."

 

 

신여척의 사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여척에게는 같은 동리에 사는 친구로서 김순창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창은 아우 순남을 시켜 자기 집을 보라 하고는 아내와 둘이서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돌아왔다.그 아내는 밭에서 돌아오자 밀을 되로 되어 보고 두 되가 축이 난다고 종알댔다.

 

"시동생이 집에 있었는데 밀이 없어졌으니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순창은 곧 아우 순남을 꾸짖었다.

"내 집을 보아 줍네 하고 내 양식을 훔쳤으니 도둑이 아니고 무어냐. 어서 바른 대로 일러라!"

 

순남은 병이 들어 누워 있다가 이 말을 듣고는 원통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형제간에 밀두 되를 가지고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설움이 복받쳐서 흐느껴 울었다. 순창은 밉살스럽다는 듯이 눈을 흘기다가

"도둑도 후회하고 운다더냐!"

 

하고는 방앗공이를 들어 아우의 뒤통수를 때렸다. 순남은 더욱 죽게 되었다. 이웃에서 이 실랑이를 듣고 모여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괘씸하게 여기면서도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오직 전후담이란 사람이 좋게 타일렀다.

 

"옛말에 한 말 곡식도 찧어서 나누어 먹는다고 하였는데 밀 두 되가 무엇이 대단해서 형제가 서로 용서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도 순창은 여전히 욕지거리를 쉬지 않았다. 전후담은 집으로 돌아오자 분개한 어조로 이웃에 사는 신여척에게 이 말을 했다.

 

신여척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가지고 팔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창이란 놈은 사람의 자식이 아니야."

 

곧장 순창의 집으로 달려가서 순창의 상투를 틀어잡았다.

"밀 뒷박이 무엇이 그리 아까워서 형제끼리 싸운단 말이냐? 슬프게도 부모가 형제를 낳을 땐 서로 아끼며 사랑하길 바랐지 싸움질할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게다. 이제 방앗공이로

 

더구나 병든 아우를 때려서 반은 죽게 만들었으니 그래도 사람의 새끼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너 같은 놈은 이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내 네놈의 집을 헐어 버리고 이웃하지 않겠다."

"이놈아 내가 내 동생을 좀 때렸는데 네놈이 무슨 참견이야!"

 

순창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여척에게 발길질을 했다. 여척은 화가 상투 끝까지 올랐다.

"이놈 내 의리를 가지고 네놈을 권하는데 도리어 발길질을 해. 좋다. 나도 네 놈을 좀 차 보자!"

 

여척은 발길로 순창의 배를 걷어찼다.

순창은 엉금엉금 기며 일어나지 못하더니 다음날은 급기야 죽고 말았다. 집사람들은 이 일을 숨기고 관가에 고발하지 않아야겠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일은 마침내 발각되고 신여척은 관가로 잡혀갔다. 이 사건은 기유년 7월에 발생한 일이다. 이에 임금께서 몸소 이 사건을 다루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다. 종로 네거리 담뱃집에서 어떤 사람이 패관소설을 입으로 외는 것을 듣고 있다가 어떤 대목에서 영웅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장면에 이르자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느닷없이 담배 써는 칼을 들어 소설을 외던 사람을 쳐서 죽여 버렸다. 대체로 세상에는 이따금 맹랑하고 우스운 죽음이 있다지만 저 주도추나 양각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던가. 신여척은 진정 주도추나 양각애와 같은 부류라고 하겠다. 여척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한 말이 아니겠느냐. 사형수의 정상을 적어 올린 글이 전후해서 몇 천 건이 되었건만 그 강개하고 의협적인 점은 여척에게서 처음 보았다.

 

그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나는 이 두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찬양한다. "

 

금상께서는 성덕과 관인으로 중대한 옥사를 심리함에 있어서 그들을 마치 병든 사람을 생각하듯 하시었다. 밤새 숙고하시는 까닭으로 아침 늦게야 수라를 드시었고 밤에는 늦도록 촛불의 심지를 여러 번 돋우시며 의심나는 곳을 헤아려 참된 것을 발견하시고 어진 말씀이 한 번 내리자 온 나라 안이 크게 기뻐하였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김은애나 신여척은 정의로써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면을 받은 것이다. 아아! 만일 은애나 여척이 명군을 만나지 못하고 이럭저럭 시일을 끌다가 하루 아침에 그대로 남을 모함하는 자가 두려움을 모를 것이며 우애 없는 자가 잇달아 생길 것이다. 따라서 은애를 사면함으로 인하여 신하된 자는 충성하기를 좋아하였고 여척을 풀어 주니 아들된 자가 효도에 힘쓰게 되었으니 이는 결코 우여한 일이 아니다. 대개 충신은 그 몸을 깨끗이 하고 효자는 그 아우에 대해서 우애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충효가 널리 일어나는 것은 밝은 임금의 교화가 널리 베풀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점 정리

 

작자 : 이덕무

갈래 : 한문소설, 단편소설, 송사 소설

연대 : 조선 후기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형식 : 전(傳) 형식

배경 : 조선 후기(정조 때), 전라도(강진, 장흥)

성격 : 교훈적, 경세적, 사실적

주제 : 남을 모함하고 형제간에 우애 없는 것을 경계 / 살인 사건에 얽힌 전말과 임금의 사면을 통한 풍속의 교화

특징 및 의의 : ?실제 살인 사건의 법적 처리 과정을 기록했고, 당대 지배층의 통치 윤리를 엿볼 수 있으며, 당대 백성들의 생활상이 드러나 있고, ‘은애전’은 전라도 강진 지방의 ‘김은애’라는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룬 송사 소설로, 실제 살인 사건의 전말과 그 법적 처리 결과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 드러난 살인 사건의 핵심은 여성으로서의 정조를 지키려는 김은애의 정조 관념으로, 김은애가 자신의 정절에 대해 모함을 일삼는 안 노파를 살인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정조 관념은 김은애 살인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김은애가 자신을 변론하는 핵심이 되고, 이를 심리하는 현감을 비롯한 지배 계층의 동정을 사서 살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처리를 지연하게 만든다. 결국 김은애의 정조 관념을 높이 산 임금의 명으로 풀려나게 되기까지 한다.

 

임금인 정조가 이처럼 김은애를 사면한 이유는 작품 말미에도 드러나듯이, 비록 살인죄를 지었지만 정조를 지키고자 하는 동기가 훌륭하다고 인정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일을 본받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법보다 예교(禮敎)를 앞세워 백성을 통치하고자 했던 당대 지배 계층의 유교적 통치 이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의 : 실제 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냄

출전 : “아정유고(雅亭遺稿)”

내용 연구

(전략)

“두 되 밀이 부족한 것이 아깝다고 하여 형제끼리 다툴 것은 없지 않느냐? 슬프도다! 너희 부모는 너희 둘을 낳아서 단지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랐지, 서로 다투기를 바라지 않았을 터인데, 방앗공이로 병든 동생을 때렸으니 너는 짐승에 불과하다[여척이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유가 드러남]. 너 같은 짐승[순창을 지칭]과는 친하게 지낼 수가 없으니, 나는 네놈의 집을 헐어 버리고 우리 마을에서 함께 있지 못하게 하겠다.”

 

이에 순창이 여척을 힘차게 냅다 차며 말했다.

“내[순창]가 내 동생[순창의 동생]을 두들겼는데, 너에게 저촉된 일[여척에게 해가 된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여척이 매우 노하여 말했다.

 

“나는 옳은 말로써 말리거늘 네놈이 도리어 나를 발로 차다니, 나도 네놈을 차리라.”[바른 길로 훈계하기 위해 왔던 여척의 행동으로 폭력이 계획되지 않았음이 드러남]

 

그러고 나서 그는 순창의 배를 걷어찼는데, 순창이 엉금엉금 기더니 그 다음 날 죽고 말았다. 순창의 집 사람들은 이 일을 숨기고 관가에 고발하지 않았으나[순창의 집에서도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음을 알 수 있음],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일이 비로소 발각되어 여척이 옥에 갇혔다. 이는 기유년(1789) 7월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친히 옥안을 판부(判付)하니, 그 판부는 다음과 같다.

 

“(중략) 아! 여척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법을 맡은 관리도 아니건만 우애 없는 자의 죄를 다스렸다.’라는 말이 여척을 두고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사형수를 적어 들인 것이 전후 몇 천백 명이나 되었지만, 그 중 기개가 있고 녹록하지 않은 자는 신여척에게서 처음 보았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로다. 신여척이란 이름은 헛되이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 여척을 방면하라.”[예를 통해 풍속을 아름답게 하여야만 사회가 안정되고 민심이 바르게 된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풍속이 드러남] - 양반집 여인 김은애의 노파 살해 사건을 둘러싼 실제 판결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은애전'에는 김은애 이야기 외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신여척'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시된 부분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장흥 사람 신여척이 이웃집 형제간의 싸움을 말리다 살인죄를 다룬 것으로, 이 역시 정조실록에 기록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에 이덕무 ( 李德懋 )가 지은 한문 전(傳). 작자의 문집 ≪아정유고 雅亭遺稿≫에 실려 있다. 작품을 만든 동기는 1790년(정조 14) 정조가 모든 옥안(獄案)을 심리하다가 김은애와 신여척을 살리게 하고, 이덕무로 하여금 전을 짓게 하여 내각의 ≪일력 日曆≫에 싣게 하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은애는 강진현에 살고 있는 양반집의 딸인데 한동네에 사는 퇴물기생 노파가 턱없이 은애를 모함하여 차마 견딜 수 없는 경지에 이르자 원통함이 뼈에 사무쳐 그 노파를 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은애는 관가에 끌려가서 문초를 받는데, 두려운 빛도 없이 규중처녀로서 모함을 받은 자기의 원통함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사람을 죽인 죄는 달게 받겠다고 아뢴다. 현관은 마음으로 동정은 하나 어쩔 수가 없어 위로 보고를 한다.

그러자 임금은 정조를 지닌 여자가 음란하다는 모함을 입음은 천하에 원통한 일이라고 하면서 은애를 놓아주라고 한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는 당시에 밀 두 되 때문에 동생을 죽인 사람을 꾸짖다가 발로 채자, 노하여 배를 찼다가 사람을 죽인 신여척이 나중에 은애와 같이 방면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이 전은 남을 모함하고 형제간에 우애없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입전된 것으로 당시의 세태와 윤리관념, 그리고 정조의 밝은 덕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靑莊館全書, 李朝漢文小說選(李家源 校注, 敎學社, 1984), 한국문학통사 3(조동일, 지식산업사, 1984).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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