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윤후명 작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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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1946- )

· 강원도 강릉생. 연세대 철학과 졸

·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 당선

· 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 당선

·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추천우수작상 수상(83,84,85,90년)

· 시집 [명궁], 작품집 [돈황의 사랑], [원숭이는 없다]

 

󰏐<인터뷰> 이상문학상 대상 받는 윤후명씨

 

"사물들에 대한 객관적인 눈 생기는 것 같소.“

"몇 차례 이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가 올해 이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늘 새로운 출발을 제 삶의 기본 자세로 삼아왔습니다. 새 삶이야말로 늙도록 젊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이 상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시작이 공고하게 되길 바랍니다.".

「협궤열차」, 「돈황의 사랑」,「원숭이는 없다」 등의 작품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쓸쓸한 분위기를 시적인 문체로 보여줬던 중견 소설가 윤후명씨(49)가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한국문학」 봄호에 발표된 중편 <하얀배>.

 

일종의 `로드 로망'으로 볼 수 있는 수상작은 화자인 `나'가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지역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동포 처녀 <류다>를 찾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그렸다.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천리마의 전설이 깃든 초원, 그리고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 만들어 놓은 이시크굴호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화자의 눈에 비친 나무와 강과 마을과 국경묘사가 섬세한 언어로 교직돼 있다. 여기에 화자의, 국내에서의 곤고한 삶이 회상 형식으로 곁들여져 있다.

 

이 작품에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화자의 공간여행은 류다라는 인물을 향한 탐색이며 류다는 우리말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미래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류다가 막 배우기 시작한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 말입니다"라고 외치자 "개양귀비 꽃밭이 수런거리고 숲속의 들고양이들이 귀를 쫑긋 거리고 커다란 까마귀들이 전나무가지를 치고 날았으며 사막쥐들이 이리뛰고 저리 뛰고 돌소금이 하얗게 깔린 사막으로 큰 바람이 불고 천산에서 빙하가 우르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윤씨는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 소설이 "지난 2년동안 네차례 소련땅을 밟으면서 얻어진 것"이라고 전하면서 "민족이라는 것,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 전작들에 비해 이 작품에 우리 민족의 역사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많이 담겨 있다"고 자평하는 윤씨는 "아무래도 사물들에 대한 객관적인 눈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강원도 강릉생인 윤씨는 지난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빙하의 시>, 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 <이 몹쓸 그립은 것아> / 윤후명 시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에

너를 잊어 버려야 하니

오늘도 칠흑같은 밤이 되면

사라진 길을 길삼아

너 돌아오는 발자욱 소리의

모습 한결 낭랑하고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를 깨물며 나는 자지러지지

산 자 필히 죽고

만난 자 필히 헤어지는데

어쩌자고 어쩌자고

온 몸에 그리운 뱀비늘로 돋아

발자국 소리의 모습

내 목을 죄느냐

소리죽여 와서 내 목을 꽈악 죄느냐

이 몹쓸 그립은 것아

 

󰏐 [나의 신인 시절] 윤후명

 

나는 아직도 문학을 믿는다. 이 말은 불과 20년 전, 혹은 30년 전에 내가 [믿었던] 문학의 본질을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불과]라는 말을 지나쳐서는 결코 안 된다고 나는 강조한다. 신춘문예라는 함정을 두 번 거쳐서 나는 30년 전에는 시인이, 18년 전에는 소설가가되었다. [불과] 이런 시간이 지난 다음 과연 세기말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려는 듯, 반야만국에서는 본질이니 진실이니 하는 말은 아예 사라진 것처럼 허황됨만 요란하다. 정치 얘기가 아니라 엄연히 문학 얘기만 하겠다는 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답고 진지한 본질적인 미학을 믿는다. 신인 시절에 바쳤던 그 고통과 번뇌를 보상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한자루의 흐린 촛불일지라도 꺼뜨리지 않고 내 개인의 삶 앞에 받쳐들고 이 시대를 밝혀 보리라 했었다.

시인이 되어 10년 만에 한 권의 시집을 낸 뒤 그 적막과 갈증을 소설에 의탁하고자 했을 때, 33세의 내 삶은 만신창이였다. 구차한 목숨을 이어 가느냐,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느냐, 나는 어둡게 묻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시적인 생명으로 소설쓰기를 택했다. 즉, 신춘문예에 되지 않으면 미련없이 제주해협의 밤바다에 투신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피폐한 날의 피폐한 약속이었다. 차디찬 겨울 밤바다에 내던져진 내 몸뚱이는 과연 어떤 몰골로 흐를 것인가, 가엾은 상상이 충분히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여기에 [생명은 모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12월24일 저녁, 임시직장의 마지막 퇴근시간이 넘었는데도 유일한 연락처였던 그곳으로 학수고대하던 당선 소식의 벨은 울리지 않았다. 틀렸다…. 나는 신음했다. 사무실을 나가는 동료들의 발자국 소리를 덮치며 새하얗게 바랜 내 골속으로 해협의 차디찬 바닷물이 와락 밀려들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 미적거리는 유예와 미련의 짧디짧은 찰나에 나는 생명 연장의 그 신비한 벨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너는 이제 죽지 않아도 돼…. 조금만 더일찍 그 소식을 전해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나는 지금도 그 기자를 원망한다. 고맙지만, 원망한다. 왜 마지막 절체절 명의 찰나까지 내 생명을 시험했느냐는 것이다.

 

운명은 그렇게 나로 하여금 소설가가 되게 했고, 따라서 [생명 담보]의 소설을 쓰리라 늘 다짐하고 있다. 소식을 전해 준 그 기자에게 생명의 고마움을 긴밀히 전한다.

 

󰏐 윤후명 소설 <협궤열차(挾軌列車)> 배경

 

경기 안산시, 4호선 고잔역에서 잠시 하차하여 역밖으로 나가면 허름한 횟집이 하나 서 있고, 그 집의 앞에는 사라져 가는 추억의 공간으로 금세라도 손님을 싣고 갈 것 같은 협궤열차의 좁은 선로가 있다. 지금은 녹슬고 풀이 우거진 선로 위로 아이들이 깽깽이 걸음을 걸으며 놀고 있을 뿐이지만 한때 소래 포구로 가는 협궤열차를 타고 낭만적인 문학도의 꿈을 키우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비극성을 발견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윤후명의 <협궤열차> 속에서 고잔역의 역장을 찾아간 ‘나’가 ‘류’를 끌고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던 허름한 음식점만이, 한때 ‘소철’, ‘작은철’의 이름을 가졌던 협궤열차를 대신해서 사라져 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증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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