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숲은 한민족의 자존심 / 전영우
by 송화은율우리 숲은 한민족의 자존심 / 전영우
우리에게는 세계를 향해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에게 숲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폐된 국토를 다시 푸르게 복구시킨 숲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앞선 세대가 합심해서 지난 1973년 이후 30여 년 동안 약 1백억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결과,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한국 전쟁 전후의 사회적 격동기에 헐벗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숲은 다시 푸르러졌다.
세계 문화사를 되돌아볼 때 황폐된 숲을 완벽하게 복구시킨 예는 흔한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2백여 년 전에 국토를 녹화시킨 독일과 20세기 후반의 우리만이 이 과업을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민은 세계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어렵게 녹화시킨 우리 숲은 경제 자원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고, 환경 자원으로서의 기능조차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근원적인 이유는 대부분 30여 년 생 이하의 어린 나무들로 구성된 우리 숲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산림 축적도 임업 선진국 독일이 1헥타르 당 250입방미터 이상인데 비해 우리는 겨우 60입방미터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경제적 수익을 얻기 위해 경영할 만한 숲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1957년도에 1헥타르 당 6입방미터 미만의 축적을 가진 민둥산이 이만큼이나 불어나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대부분 어린 나무들로 구성된 우리 숲의 취약한 구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숲을 대하는 우리 각자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숲을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아니면 단순한 여가 공간 정도로 생각하지, 임산물을 생산하는 경제 자원이나,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생산하는 환경 자원, 또는 인간의 심성을 어루만져 줄 문화 자원으로서 숲이 가진 복합적인 역할과 기능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숲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진실처럼 통용되어 올바르게 숲을 가꾸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지금부터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의 잘못된 상식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잘못된 상식 1 : 우리 숲엔 쓸모 없는 나무뿐이다
우리 산하에 자라는 나무들 중에 쓸모 없는 나무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수종(樹種)이 아까시나무이다. 이 나무는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제 영역 안에서 쉽게 자랄 수 없게 독특한 화학 물질을 분비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무는 뿌리에서 줄기가 될 눈을 만들어 새로운 개체로 번식할 수 있다. 그래서 줄기를 잘라내어도 땅속에 남아 있는 뿌리에서 계속 새 줄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다른 식물을 몰아내는 특성과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아까시나무는 우리 숲을 오히려 파괴하는 나쁜 나무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큰 도시나 마을 주변의 산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온 국토가 나쁜 나무로 잠식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그렇게 나쁜 나무도 아니며 전 국토를 잠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 쓸모 없는 나무란 없다. 아까시나무는 오리나무와 더불어 뿌리에 공기 중의 질소를 흡수하여 저장하는 균이 있어서 스스로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이 한때 사막같이 헐벗은 민둥산의 척박한 토양을 기름지게 하여 효과적으로 녹화시키는 데에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게다가 아까시나무의 꽃은 한해 약 1천억 원 이상의 수입을 양봉 농가에 안겨주는 중요한 밀원(蜜源)이기도 하다.
또 아까시나무는 연탄이 보급되기 전에는 땔감을 공급하는 연료림의 구실도 톡톡히 해냈다. 인가 주변에 이 나무가 특히 많은 이유도 땔감 채취로 황폐화된 도시 주변의 산에 집중적으로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가가 드문 깊은 산에서는 아까시나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복구된 우리 숲은 아직 1세대도 지나지 않았다.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은 아까시나무나 오리나무 같은 사방(砂防) 수종만이 당시 사막같이 헐벗은 우리 산에 적응해 살 수 있었기에 이들 나무들을 심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다. 또 이들 사방 수종이 산림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오늘날 경제 수종을 심고 가꿀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숲도 독일처럼 2백여 년 동안 길러 내면 쓸모 있는 나무들이 가득 한 훌륭한 숲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좋은 숲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잘못된 상식 2 : 녹화가 됐으니 더 이상 투자할 필요가 없다
숲은 옳게 가꾸고 현명하게 이용하면 대대로 벌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재생 가능한 자연 자원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녹화가 되었으니 산림에 대한 투자를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선입관은 숲의 특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숲의 나무들은 광합성으로 고정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목재로 변화시켜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동안 고체로 유지시킨다.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 물질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고체로 변환시켜 목재나 종이로 저장하는 이런 특성 때문에 흔히 나무나 숲을 자연 탄소 통조림 공장이나 천연 공기 청정기라고 일컫기도 한다.
한편 촘촘하게 심겨진 나무들을 제때에 솎아 주면, 숲 바닥으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와 숲 바닥에 쌓인 낙엽을 빨리 썩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숲 바닥의 흙 알갱이에 유기물 성분이 많아지게 되고, 그래서 부피가 늘어난 산림 토양은 마치 스펀지처럼 더 많이 빗물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숲을 녹색 댐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울창한 숲의 토양이 빗물을 저장하여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산림학자들은 우리 숲을 적절하게 가꾸어 줄 경우 자연 상태로 방치했을 때보다 경제적 기능은 물론이고 환경적 기능을 훨씬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잘 가꾸어 준 숲은 그렇지 않은 숲보다도 부피 생장을 2-3배나 더 빨리 하여 더 많은 목재를 얻을 수 있고, 더 효과적으로 환경을 개선한다고 알려져 있다. 임산 자원과 더불어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을 생산하는 이 자연 공장이 원활하게 가동되게 하기 위해서는 녹화가 되었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투자를 계속하여 더욱 잘 가꾸어야 한다.
잘못된 상식 3 : 숲길을 내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숲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녹화 초기에 심었던 어린 나무들은 덩치가 커져서 이웃 나무의 가지들과 서로 맞닿게 되어 옳게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콩나물처럼 촘촘하게 심겨진 나무를 솎아 주어 충분히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산림에 기대어 살아왔던 많은 농촌 주민들이 산업화의 여파로 도시로 떠나고 없기 때문에 어렵게 녹화시킨 우리 숲은 가꿀 때가 되었건만, 숲 가꾸는 데 필요한 사람도 많지 않고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숲을 가꾸고 지키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임업 기계로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업 기계의 활용마저 숲길 건설의 미비로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가지치기나 솎아주기를 실시하여 가치 있는 자원으로서 육성하거나 병충해나 산불의 피해로부터 산림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숲길을 내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흔히 독일은 환경보호 정책을 가장 철저하게 시행하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독일도 숲을 가꾸기 위해서 헥타르 당 40미터의 숲길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겨우 2미터의 숲길을 가진 우리는 숲길을 만들 때마다 반대 여론에 직면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숲길을 내는 것을 환경을 파괴하는 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숲길을 내기보다 불충분한 예산으로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워서 무리하게 숲길을 낼 수밖에 없었던 잘못된 숲길 공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숲길 건설의 잘못된 공사 관행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숲길 건설 자체는 계속되어야 한다. 숲길이 부족한 우리 산림에 숲길을 더 많이 내는 것은 숲이 가진 경제적 기능과 환경적 기능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임을 우리 모두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나무와 숲은 인간의 의식주에 필요한 임산 자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뿐만 아니라, 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와 물을 공급해 준다. 아울러 숲은 생태계의 질서를 정상적으로 유지․지탱시켜 주는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자연 환경을 개선하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해 준다. 이런 이유로 숲을 가꾸고 지키는 일은 날로 심각해져 가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의 하나가 되고 있다.
앞선 세대가 심은 1백억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면서, 그 숲을 이용하는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숲을 가꾸고 지키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경제와 환경과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 자원으로서의 가치 창출은 물론이고, 자연 환경을 지탱하는 생태적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숲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나무를 심어 헐벗은 국토를 녹화시킨 의지의 한민족은 세계를 향해 그 자존심을 활짝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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