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 심훈
by 송화은율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 읽기 전에
○다음은 작가 심훈의 연보이다. 아래 연보를 보고, 그의 작품들은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추측해 보자.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남
1919년 경성 제일 고등 보통 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한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출옥 후 상하이로 망명길에 오름
1920년 중국 항저우(杭州) 즈장(之江)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 공부를 함.
1922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함.
1926년 동아 일보에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려는 강렬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소설 ‘탈춤’을 발표함.
1935년 동아 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공모에서 ‘상록수’가 당선됨.
1936년 사망함
◦그의 시집 ‘그 날이 오면’(1949)은 일제의 검열로 출간되지 못하다가 공복 이후 출간됨
◦조선 일보에 연재하던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는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어 미완성 작품으로 남음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 심훈(沈熏)
어머니!
오늘 아침에 차입해 주신 고의 적삼을 받고서야 제가 이 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 동안에 오죽이나 내를 태우셨겠습니까?
저는 이 곳까지 굴러 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쇠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先知者)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이 꺼지는 것을 신호삼아 몇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발원(發願)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또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니보다도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가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하였습니다. 돌아간 사람은 먼 시골의 무슨 敎(교)를 믿는 노인이었는데, 경찰서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 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고 옮겨 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은 나날이 뼈에 사무쳐 그 날에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더 높았습니다.
밤이 깊어 악박골 약물터에서 단소 부는 소리도 끊어졌을 때,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맡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쳐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희미한 눈초리로 5촉밖에 안 되는 전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추억의 날개를 펴서 기구한 일생을 더듬는 듯하였습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본 저는 무릎을 베개삼아 그의 머리를 괴었더니, 그는 떨리는 손을 더듬더듬하여 제 손을 찾아 쥐더이다. 금세 운명을 할 노인의 손아귀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어머니!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벌떡 솟구치더니 ‘여러분!’ 하고 큰 목소리로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찢어질 듯이 긴장된 얼굴의 힘줄과 표정, 그 날 수천 명 교도(敎徒) 앞에서 연설을 할 때의 그 목소리가 이와 같이 우렁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그의 연설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고는 뒤미처 목에 가래가 끓어올랐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분이 유언할 것이 없느냐 물으매 그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흐려지는 눈은 꼭 무엇을 애원하는 듯합니다마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 날에 여럿이 떼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소절도 다 부르기 전에 설움이 북받쳐서, 그와 같은 신도인 상투 달린 사람은 목을 놓고 울더이다.
어머니!
그가 애원하던 것은 그 노래가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후 일각의 원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슴 한복판을 울리는 그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후렴이 끝나자, 그는 한 덩이 시뻘건 선지피를 제 옷자락에 토하고는 영영 숨이 끊어지고 말더이다.
그러나 야릇한 미소를 띤 그의 영혼은 우리가 부른 노래에 고이고이 싸이고 받들려 쇠창살을 새어 나가 새벽 하늘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저는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날이 밝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며칠 동안 몰래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온 듯 먼 川(천)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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