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뱀 퓌톤
by 송화은율왕뱀 퓌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대홍수 뒤 땅에 남아 있던 습기가 햇볕에 뜨거워질 즈음에 저절로 생겨났다. 이즈음 늪지의 진흙이 열기에 부풀어오르고, 만물의 종자는 어머니 자궁안에 든 것처럼 부풀어올라 시간이 흐르자 일정한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하구가 일곱 개인 네일로스 강이, 범람해 있던 벌판에서 원래 있던 하상으로 되돌아갈 때였다. 네일로스 강이 원래의 물길로 되돌아가자, 범람해 있던 곳에 쌓여 있던 진흙은 햇볕을 받아 뜨거워졌다. 이때 이 흙을 일구던 농부들은, 이 흙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수많은 짐승들을 보았다. 이 수많은 피조물 중에는, 종자에서 갓 빚어진 것도 있었고, 살아나 마악 기어나오려 하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아직은 다 만들어지지 못해 사지가 온전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몸의 일부는 생명체인데 나머지는 흙덩어리 그대로인 것도 있었다. 이러한 피조물들은, 온기와 습기가 알맞게 어울리는 환경에서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만물이 이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말하자면 물인 습기와 불인 온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홍수가 지나가 뒤 대지에 덮였던 진흙이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의 그윽한 열기로 다시 더워지자 대지는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생명을 지어내었다. 이렇게 지어진 생명 중에는 홍수 이전에 있던 것도 있었고 전혀 새롭게 지어진 것도 있었다.
그럴 의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지가 산 것 중에서 크기로 치면 으뜸이 될 만한 왕뱀 퓌톤을 지어낸 것도 이때였다. 이 왕뱀은 누우면 산자락 하나를 덮을 만큼 컸다. 이렇게 큰 짐승을 본 적이 없는 새 인류에게 이 왕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달아나는 사슴 아니면 겁많은 산양에게나 활을 쏘아본 적이 있는 활의 신 아폴로는 이 왕뱀을 상대로 화살통을 비웠다. 왕뱀이 상처로 독액을 모두 쏟을 때까지 수천 개의 화살을 쏜 것이다. 아폴로는,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이 영웅적인 행적을 잊지 않도록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재간 겨루기 대회를 창시했다. 이 겨루기 대회가 바로 퓌티아 대회다. 이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겨루기가 벌어진다. 씨름, 달음박질, 병거 경주 같은 겨루기에서 승리한 젊은 선수는,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상으로 받았다. 이 시절에는 월계수로 만든 월계관이 없었다. 포에부스도 머리카락이 흘러내릴 때면 이 관을 썼다.
벨베데레라고 불리는 유명한 아폴론의 상은 피톤을 퇴치한 후의 이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바이런은 《해롤드경의 순유》제4편 161절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보라, 표적을 놓치지 않는 화살의 신을,
생명과 시와 빛의 신을,
인간의 모습을 한 태양신을, 그리고
전투의 승리에 빛나는 그 이마를 ,
화살은 막 활을 떠났다, 신의 복수에 번쩍이는 화살이.
그의 눈에도 콧구멍에도,
적을 겁내지 않는 아름다움과 힘과 위엄이
전광처럼 반짝이고, 그것을 한번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천제를 현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화 자료
대지 :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말함
아폴론 : 그리스 신화의 광명 ·의술 ·예언 ·가축의 신.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로 여신 아르테미스와는 쌍둥이 동기간이다. 레토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출산할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델로스섬으로 도망쳐 가 그곳에서 아폴론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스계(系)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보아 동방의 소(小)아시아나 북방민족으로부터 이입(移入)된 신이며, 본래는 목자(牧者)의 수호신으로 생각된다. 노미오스(목축의), 리카이오스(이리의), 스민테우스(쥐의) 등의 호칭을 갖고 있는 것은 이리나 쥐로 인한 피해를 막는 힘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나중에는 그리스적 성격과 문명의 대표적 신이 되어 국가에 있어 중요한 도덕이나 법률을 주관하여, 특히 살인죄를 벌하고 그 더러움을 씻어 주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예언의 신이기도 하여 델포이를 중심으로 그의 신전(神殿)이 세워져, 무녀(巫女)를 통해 신탁(神託)을 받는 일이 성행하였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라고도 하나 이것은 비교적 나중의 일이다. 신화에서는 아폴론신이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 델포이에서 대사(大蛇) 피톤을 사살하였다고 하여, 활과 화살이 그의 특징적 무기이다. 사랑의 신화도 많아, 예를 들면 다프네는 아폴론의 구애(求愛)를 피하여 월계수가 되었고, 카산드라는 그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힘을 얻었으며, 하천신(河川神) 페네이오스의 손녀 귀레네를 사랑하여 아리스타이오스를 낳았고, 테사리아의 왕녀 코로니스와의 사이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얻었으며, 또한 미소년 히아킨토스도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이 아폴론 숭배는 에트루리아를 거쳐, 남(南)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로부터 직접 로마로 들어와, 일찍이 로마에는 그의 신전이 세워졌고, 훗날 아우구스투스제(帝)가 아폴론을 특별히 신봉하여 파라티누스의 언덕에 대신전이 세워졌으며, 아폴론 숭배가 성행하였다. 로마신화에서는 아폴로와 동일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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