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 / 푸시킨 작(Pushkin, Aleksan dr Sergeevich)

by 송화은율
반응형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 / 푸시킨 작(Pushkin, Aleksan dr Sergeevich) 

 

 

 작품의 아우트 라인

 

 백부의 죽음으로 부유한 재산을 상속받은 오네긴은 사교계를 은퇴하여, 시골의 영지(領地)에서 농토와 공장을 관리하는 몸이 되었다. 새로운 생활을 가지게 됨을 무척 좋아하였으나, 그것도 순간이고 3일 후부터는 다시 지루한 나날이 되어되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한 오네긴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요 며칠 전에 이웃 영지(領地)로 돌아온 젊은 지주(地主) 렌스키와 이야기를 하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친구가 된 것이다. 렌스키는 독일에 유학하여「괴팅겐 정신」을 몸에 익힌 이상에 불타는 시인으로서, 라린가(家)를 방문하고, 올리가와 그녀의 언니 타치야나를 소개받았다. 타치야나는 사람의 눈을 끌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낭만적인 꿈을 가슴에 품은 소박한 시골 처녀였다. 그녀는 한눈에 오네긴의 세련된 매력의 포로가 되어, 연모의 정이 넘치는 편지를 띄운다.
 그러나, 젊어서 일찍 사교계의 총아가 되어 방자한 생활을 해 온 오네긴은, 타치disk의 순박한 애정의 고백에 감동하면서도, 진실로 그녀를 대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타치야나의 실망도 아랑 곳 없이, 오네긴은 「젊은 아가씨란 그 가벼운 꿈을 항상 바꿔 가는 법이지요」라고 설교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마치 인생의 허망한 꿈에서 갓 깨어난 차일 해럴드의 시늉을 한다.


 곧, 라린가에서는 타치야나의 명명일(命名日)을 축하하는 댄스 파티가 열린다. 표정이 어두운 타치야나를 오네긴은 가련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뜬 기분으로 이것 보라는 듯이 올리가와 춤을 추고, 렌스키의 질투와 부노를 산다. 다음 날 아침, 렌스키로부터 오네긴에게 결투장이 송달된다. 그러나 결투는 렌스키의 비운의 죽음으로 끝난다.


 올라가의 행복을 짓밟고, 타치야나를 비탄의 밑바닥으로 몰아 넣고, 오네긴은 페테르부르크로 떠난다. 그로부터 수년 동안, 방랑 생활을 계속하다가, 오네긴은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는 그레민 공작(公爵)의 저택에서 벌어진 댄스 파티에 나타난다. 그는 그곳에서 젊고 아름다운 공작 부인이 한때, 자기에게 애정을 고백한 일이 있는 타치야나임을 알고, 큰 마음의 충격을 받는다. 그녀의 여왕과 같은 의연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오네긴은 그 후부터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몇 번이나 편지로 고백한다. 그러나 타치야나는 이제는 옛날의 꿈많은 처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오네긴에게 마음이 끌리면서도, 남편에 사랑과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그이 사랑을 물리치는 것이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오네긴은 넘쳐흐르는 재능을 가지면서,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붕괴되어 가는 19세기 러시아의 인텔리겐차의 전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상류 사회의 환락에 흠뻑 젖고, 세상 만사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인데, 이와 같은 인간상(人間像)은 데카부리스트의 난(亂)(1825년 12월)이후, 니콜라이 1세의 엄한 탄압 정치 밑에서 현저히 늘어난 현상이었다. 푸시킨은 이러한 지식인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동정을 베풀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네긴은 『지혜(知惠)의 슬픔』(그리보예도프作)의 주인공 쨔쯔키와 더불어, 후에 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잉여 인간」의 원형(原型)이 되었다. 『현대의 영웅』(레르몬토프作)의 페쵸린, 『귀족의 보금자리』(투르게네프作)의 라브레쯔키 등은, 모두 오네긴의 그림자를 걸머지고 있다.


 한편, 타치야나는, 서구 문화의 물을 먹은 지식인의 무력한 모습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는 한때 순박한 처녀의 마음으로 사랑하였던 오네긴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고 몹시 동요하지만, 본능적으로 그의 붙임성 없는 사랑의 본성을 안다. 러시아의 풍부한 자연의 품 속에서 자란 타치야나는, 러시아 민중의 소박하고 굳센 정신을 나누어 가진 이상적인 여성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자의 생애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러시아 문학의 기초를 이룩한 국민적 시인. 1799년에 모스크바의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혈통적으로 아프리카의 피가 섞여 있었다. 어려서부터 라시느, 볼테르, 루소, 그리스·로마의 고전(古典)에 친숙하였고, 12살 때 짜르스코에 쎄로의 리쩨(제실 고등학교;帝室高等學校)에 입학하여 서구식의 교육을 받고, 큐헤리베케리, 데리뷔크 등과 친교를 맺었다. 1817년에 6년간의 리쩨 생활을 마치고, 외무성(外務省) 8등관(等官) 관리가 되었다. 상류 사회에서 관능적인 환락 생활에 탐닉하는 한편, 시작(詩作)에 몰두하여, 당시의 문단의 대가 카람진, 쥬코프스키 등에 의하여 그 재능이 높이 평가되었다.


 1820년, 자유주의적 기분에 넘친 격렬한 정치시(政治詩)가 알렉산드르 1세의 노여움을 사서 남부 러시아로 추방되고, 크리미아, 코카사스, 키시네프, 오데사 등을 전전하다가, 1824년 미하일로프스코에에 도착하였고, 여기서 러시아의 민중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얻었다. 이 시기에 바이런 열(熱)이 차츰 식어지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하였다. 다음 해인 25년에 농노제의 폐지, 공화제의 실현 등의 요구를 내세운 데카브리스트의 난(亂)이 일어나고, 학습원 시절의 학우들이 많이 이에 가담하였다.


주모자의 처형(處形) 후, 당국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모스크바로 출두하고, 여기서 니콜라이 1세로부터 직접 심문을 받고, 추방의 형(形)은 면제되었으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1829년 댄스파티에서 나탈리야 곤챠로바(당시 16살)를 알게 되고, 결혼을 신청하여 다음 해 30년 약혼이 성립되었다. 영지(領地) 검증(檢證)을 위하여 볼지노를 방문하였는데, 콜레라의 유행으로 발이 묶이어, 3개월간의 장기 체류가 되었다. 이 기간에 「볼지노의 가을」이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상상력(想像力)의 개화(開花)를 경험하고, 8년의 세월이 결려 집필한 『예브게니·오네긴』을 완성하고, 이어 『돌의 손님』『인색한 기사(騎士)』벨킨 이야기』등을 집필하였다. 31년에 결혼하였는데, 사교계의 꽃이 된 아내 나타리야의 낭비와 바람기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궁정 내부에서의 고립화(孤立化)가 깊어지는 속에서, 『청동의 기사(騎士)』『스페이드의 여왕』『대위의 딸』등 만년의 걸작 소설들을 완성하였다.


 1837년, 염문(艶聞)이 끊이지 않던 나탈리야와 청년 근위사관(近衛士官) 단테스의 밀통(密痛)이 표면화되어, 2월 8일 페테르부르크 교외에서 결투하여,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이틀 후 37세의 생애를 마쳤다.

 명문구 낙수

 

 「늘씬하게 빠진 여자의 발은, 러시아 전국을 찾아 헤메도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 아아, 나는 오랫동안 저 두 발을 잊을 수 없다…… 아아, 발이여, 발이여, 너는 어디에 있느냐.」


『예브게니 오네긴』 「우리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쉽게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더구나 유혹의 그물에 걸린 여자를 더욱 확실히 파멸시킬 수 있다.」(제 4 장)


 「찰찰 넘쳐 흐르게 따른 술잔을 바닥까지 마시지 않고, 인생의 축제일과 이별을 고한 자는 행복하다.」(종장)

 심화 자료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시킨이 8년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운문체(韻文體)의 소설이지만, 벨린스키가 「러시아 생활의 백과 사전(百科事典)이라고 부른 대로, 이야기의 서술 간간에 당시의 러시아인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푸시킨의 결투사(決鬪死)에는, 나탈리야의 미모에 눈이 먼 니콜라이 1세도 그늘에서 한몫하였다고 한다. 또 푸시킨을 죽인 단테스는 과거 1세기 반이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귀축(鬼畜)과 같은 취급을 받는 운명이 되었다.

 

 

 세계문학의 명작과 주인공 총해설에서 - 소봉파편- (일신사간)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