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전
by 송화은율영영전
(전략)
앞부분의 줄거리 : 소년 선비 김생은 회산군의 궁녀인 영영을 우연히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김생과 영영은 막동과 노파의 도움으로 회산군 몰래 궁에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후 회산군이 죽고 노파도 세상을 뜨고 나자 서로 연락할 길이 끊긴 채 3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 동안 김생은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3일의 유가(遊街)를 떠나다가 회산군의 집을 발견하고 술에 취한 듯 말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회산군은 죽은 지 이미 3년이나 되었으며, 궁인들은 이제 막 상복(喪服)을 벗은 상태였다. 그 동안 부인은 마음 붙일 곳 없이 홀로 적적하게 살아온 터라, 광대들의 재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녀들에게 김생을 부축해서 서쪽 가옥으로 모시고, 죽부인을 베개삼아 비단 무늬 자리에 누이게 하였다. 김생은 여전히 눈이 어질어질 하여 깨닫지 못한 듯이 누워 있었다.
이윽고 광대와 악공들이 뜰 가운데 나열하여 일제히 음악을 연주하면서 온갖 놀이를 다 펼쳐 보였다. 궁중 시녀들은 고운 얼굴에 분을 바르고 구름처럼 아름다운 머릿결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주렴을 걷고 보는 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영영이라고 하는 시녀는 그 가운데 없었다. 김생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그녀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낭자가 나오다가 김생을 보고는 다시 들어가서 눈물을 훔치고, 안팎을 들락거리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이는 바로 영영이 김생을 보고서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차마 남이 알아 챌까 봐 두려워한 것이었다.
이러한 영영을 바라보고 있는 김생의 마음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날은 이미 어두워지려고 하였다. 김생은 이곳에 더 이상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궁중의 늙은 노비인 장획(藏獲)이라는 자가 달려와 아뢰었다.
“회산군 댁입니다.”
김생은 더욱 놀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왔습니까?”
장획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김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였다. 이때 부인이 술로 인한 김생의 갈증을 염려하여 영영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하게 되었으나,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단지 눈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영영은 차를 다 올리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면서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떨어뜨렸다. 이에 김생은 얼른 편지를 주워서 소매 속에 숨기고 나왔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뜯어보니, 그 글에 일렀다.
박명한 첩 영영은 재배하고 낭군께 사룁니다. 저는 살아서 낭군을 따를 수 없고, 또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잔해만이 남은 숨을 헐떡이며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어찌 제가 성의가 없어서 낭군을 그리워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늘은 얼마나 아득하고, 땅은 얼마나 막막하던지! 복숭아와 자두나무에 부는 봄바람은 첩을 깊은 궁중에 가두고, 오동에 내리는 밤비는 저를 빈 방에 묶어 놓았습니다. 오래도록 거문고를 타지 않으니 거문고 갑(匣)에는 거미줄이 생기고, 화장 거울을 공연히 간직하고 있으니 경대(鏡臺)에는 먼지만 가득합니다. 지는 해와 저녁 하늘은 저의 한(恨)을 돋우는데, 새벽 별과 이지러진 달인들 제 마음을 염려하겠습니까?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면 구름이 제 눈을 가리고, 창가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면 수심이 제 꿈을 깨웠습니다. 아아, 낭군이여! 어찌 슬프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또 불행하게 그 사이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어 편지를 부치고자 하여도 전달할 길이 없었습니다. 헛되이 낭군의 얼굴 그릴 때마다 가슴과 창자는 끊어지는 듯 했습니다. 설령 이 몸이 다시 한 번 더 낭군을 뵙는다 해도 꽃다운 얼굴은 이미 시들어 버렸는데, 낭군께서 어찌 저에게 깊은 사랑을 베풀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낭군 역시 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요? 하늘과 땅이 다 없어진다 해도 저의 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아, 어찌하리오! 그저 죽는 길밖에 없는 듯 합니다. 종이를 마주하니 처연한 마음에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중략)
김생은 다 읽은 뒤에도 오랫동안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였으며, 영영을 그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두 배나 더 간절하였다. 그러나 청조(靑鳥)가 오지 않으니 소식을 전하기 어렵고, 흰 기러기는 오래도록 끊기어 편지를 전할 길도 없었다. 끊어진 거문고 줄은 다시 맬 수가 없고 깨어진 거울은 다시 합칠 수가 없으니, 가슴을 조리며 근심을 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생은 마침내 몸이 비쩍 마르고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니 김생은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김생의 친구 중에 이정자(李正字)라고 하는 이가 문병을 왔다. 정자는 김생이 갑자기 병이 난 것을 이상해 했다. 병들고 지친 김생은 그의 손을 잡고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자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놀라며 말했다.
“자네의 병은 곧 나을 걸세. 회산군 부인은 내겐 고모가 되는 분이라네. 그 분은 의리가 있고 인정이 많으시네. 또 부인이 소천(所天)을 잃은 후로부터, 가산과 보화를 아끼지 아니하고 희사(喜捨)와 보시(布施)를 잘 하시니, 내 자네를 위하여 애써 보겠네.” (중략)
“그는 재기(才氣)가 범인(凡人)을 지나고 풍도(風道)가 속되지 않아, 장차 크게 될 인물이옵니다. 불행하게도 상사의 병이 들어 문을 닫고 누워서 신음하고 있은 지 벌써 두어 달이 되었다 하더이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문병하는데, 피부가 파리해지고 목숨이 아침저녁으로 불안하니, 매우 안타까이 여겨 병이 든 이유를 물어 본 즉 영영으로 인함이라 하옵니다. 영영을 김생에게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인은 듣고 나서,
“내 어찌 영영을 아껴 사람이 죽도록 하겠느냐?”
하였다. 부인은 곧바로 영영을 김생의 집으로 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꿈에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이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생은 기운을 차려 다시 깨어나고, 수일 후에는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김생은 공명(功名)을 사양하고, 영영과 더불어 평생을 해로(偕老)하였다. - 작자 미상, <영영전>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애정 소설, 한문 소설
성격 : 낭만적, 현실적(다른 고전 소설과는 달리 전기성, 사건 전개의 우연성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배경 : 명나라 효종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두 주인공은 현실의 공간에서 사랑을 이루며, 우연이 아닌 필연에 의해서만 헤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당시의 작품으로서는 뛰어난 구성력과 현실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발단 – 명나라 효종 때 뛰어난 용모를 갖춘 김생은 우연히 회산군의 궁녀인 영영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전개 – 한 노파의 주선으로 김생과 영영은 궁에서 몰래 다시 만나 하룻밤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헤어지게 된다.
위기 – 영영과 연락할 길이 끊어져 상사병에 시달리던 김생은 3년이 지난 후, 과거에서 장원 급제하여 3일 유가[遊街 :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데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거리를 돌며, 시험관·선배 급제자·친척들을 찾아보던 일《보통 사흘 동안 행함》.]하던 중, 회산군의 집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영영을 만나지만, 서로의 신분 때문에 아는 체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절정 – 영영에 대한 그리움으로 앓아누운 김생은 회산군 부인의 조카이자 친구인 이정자의 도움으로 영영과 재회하게 됨.
결말 – 김생이 영영과 해후하여 행복한 여생을 보내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한다.
주제 : 신분을 극복한 사랑의 성취 / 고난을 뛰어넘는 사랑의 실현
특징 : 청춘 남녀의 사랑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그렸고, 한시의 삽입, 사실적인 표현과 생동감 있는 비유를 사용했으며, 김생과 영영 사이의 ‘재회 – 이별 – 해후’의 과정이 이야기 전개의 주된 축이 되고 있으며, 개화기 때 이해조가 신소설 ‘잠상태(岑上苔)’로 개작하기도 함.
인물 :
김생 - 선비,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는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내는 낭만적 인물
영영 - 회산군의 궁녀, 김생에 대한 그리움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냄
이정우 - 김생과 영영 사랑의 조력자
줄거리 : 젊은 선비 김생(金生)이 하루는 성 밖 경치 좋은 곳에서 놀다가 한 미인을 발견하여 황홀하여 그 뒤를 따랐다. 상사동 어느 허술한 집으로 들어간 그녀의 정체를 수소문해 보니, 이름은 영영이고 회산군의 시녀로 궁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몸이었다. 상사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던 김생은 여러 곡절 끝에 약속된 날 궁중에 들어가 영영과 하룻밤 운우(雲雨)의 즐거움을 나눈다. 그 후 3년 동안 영영을 만나지 못한 김생은 과거에 급제하고 친구 이정우의 노력으로 영영과 백년해로(百年偕老)하였다.
내용 연구
앞부분의 줄거리 : 소년 선비 김생은 회산군의 궁녀인 영영을 우연히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김생과 영영은 막동과 노파의 도움으로 회산군 몰래 궁에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후 회산군이 죽고 노파도 세상을 뜨고 나자 서로 연락할 길이 끊긴 채 3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 동안 김생은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3일의 유가(遊街)를 떠나다가 회산군의 집을 발견하고 술에 취한 듯 말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
(전략)
이때 회산군은 죽은 지 이미 3년이나 되었으며, 궁인들은 이제 막 상복(喪服)을 벗은 상태였다. 그 동안 부인은 마음 붙일 곳 없이 홀로 적적하게 살아온 터라, 광대들의 재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녀들에게 김생을 부축해서 서쪽 가옥으로 모시고, 죽부인을 베개삼아 비단 무늬 자리에 누이게 하였다. 김생은 여전히 눈이 어질어질 하여 깨닫지 못한 듯이 누워 있었다.
- 김생이 회산군의 집에 들어가게 됨
이윽고 광대와 악공들이 뜰 가운데 나열하여 일제히 음악을 연주하면서 온갖 놀이를 다 펼쳐 보였다. 궁중 시녀들은 고운 얼굴에 분을 바르고 구름처럼 아름다운 머릿결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주렴[구슬을 꿰어 만든 발. 구슬발]을 걷고 보는 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영영이라고 하는 시녀는 그 가운데 없었다. 김생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그녀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낭자가 나오다가 김생을 보고는 다시 들어가서 눈물을 훔치고, 안팎을 들락거리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사랑하는 김생을 보고 안절부절(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모양)함 / 전전긍긍(戰戰兢兢)]. 이는 바로 영영이 김생을 보고서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차마 남이 알아 챌까 봐 두려워한 것이었다. - 김생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는 영영
이러한 영영을 바라보고 있는 김생의 마음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자신과 영영의 처지 때문에] 그러나 날은 이미 어두워지려고 하였다. 김생은 이곳에 더 이상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자신이 있는 곳이 회산군의 집인지를 몰랐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 - 듸도적임]
궁중의 늙은 노비인 장획(藏獲)이라는 자가 달려와 아뢰었다.
“회산군 댁입니다.”
김생은 더욱 놀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왔습니까?”
장획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김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였다. 이때 부인이 술로 인한 김생의 갈증을 염려하여 영영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하게 되었으나,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단지 눈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당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관습과 궁녀는 궁 밖의 남자와 결혼할 수 없고,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 없다는 불문율 / 이심전심(以心傳心)]. 영영은 차를 다 올리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면서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떨어뜨렸다. 이에 김생은 얼른 편지를 주워서 소매 속에 숨기고 나왔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뜯어보니, 그 글에 일렀다. - 김생이 영영과 재회하여 영영의 편지를 받게 됨
박명한 첩 영영은 재배하고 낭군께 사룁니다. 저는 살아서 낭군을 따를 수 없고, 또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경경열열 (哽哽咽咽) : 슬픔으로 목이 메어 욺.]. 그래서 잔해만이 남은 숨을 헐떡이며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어찌 제가 성의가 없어서 낭군을 그리워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늘은 얼마나 아득하고, 땅은 얼마나 막막하던지![김생과 만날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비유적으로 표현] 복숭아와 자두나무에 부는 봄바람은 첩을 깊은 궁중에 가두고, 오동에 내리는 밤비는 저를 빈 방에 묶어 놓았습니다[영영이 봄바람이 불어도 궁중 밖을 나가지 못했으며, 밤비가 내릴 때에도 빈 방에 홀로 있었음을 말함 - 주객전도(主客顚倒)]. 오래도록 거문고를 타지 않으니 거문고 갑(匣)[상자]에는 거미줄이 생기고, 화장 거울을 공연히 간직하고 있으니 경대(鏡臺)[화장대]에는 먼지만 가득합니다[꾸미지 않았다.]. 지는 해와 저녁 하늘은 저의 한(恨)을 돋우는데, 새벽 별과 이지러진 달인들 제 마음을 염려하겠습니까?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면 구름이 제 눈을 가리고, 창가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면 수심이 제 꿈을 깨웠습니다[임이 곁에 있지 않아서 쓸쓸하고 외롭게 지내왔음을 비유를 통해 표현]. 아아, 낭군이여! 어찌 슬프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또 불행하게 그 사이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어 편지를 부치고자 하여도 전달할 길이 없었습니다. 헛되이 낭군의 얼굴 그릴 때마다 가슴과 창자는 끊어지는 듯 했습니다. 설령 이 몸이 다시 한 번 더 낭군을 뵙는다 해도 꽃다운 얼굴은 이미 시들어 버렸는데, 낭군께서 어찌 저에게 깊은 사랑을 베풀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낭군 역시 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요? 하늘과 땅이 다 없어진다 해도 저의 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아, 어찌하리오! 그저 죽는 길밖에 없는 듯 합니다. 종이를 마주하니 처연한 마음에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김생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영영의 편지
(중략)
김생은 다 읽은 뒤에도 오랫동안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였으며, 영영을 그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두 배나 더 간절하였다. 그러나 청조(靑鳥)[반가운 사자(使者)나 편지를 이르는 말로 푸른 새가 온 것을 보고 동방삭이 서왕모의 사자라고 한 한무의 고사에서 유래]가 오지 않으니 소식을 전하기 어렵고, 흰 기러기는 오래도록 끊기어 편지를 전할 길도 없었다[속수무책(束手無策)]. 끊어진 거문고 줄은 다시 맬 수가 없고 깨어진 거울은 다시 합칠 수가 없으니, 가슴을 조리며 근심을 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룬들[전전반측(輾轉反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생은 마침내 몸이 비쩍 마르고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니 김생은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김생의 친구 중에 이정자(李正字)라고 하는 이가 문병을 왔다. 정자는 김생이 갑자기 병이 난 것을 이상해 했다. 병들고 지친 김생은 그의 손을 잡고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허심탄회(虛心坦懷)]. 정자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놀라며 말했다.
“자네의 병은 곧 나을 걸세. 회산군 부인은 내겐 고모가 되는 분이라네. 그 분은 의리가 있고 인정이 많으시네. 또 부인이 소천(所天)[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을 잃은 후로부터, 가산과 보화를 아끼지 아니하고 희사(喜捨)와 보시(布施)[자비심으로 불법이나 재물을 베풂. 포시(布施)]를 잘 하시니, 내 자네를 위하여 애써 보겠네.” (중략)
“그는 재기(才氣)[재주가 있는 기질]가 범인(凡人)을 지나고 풍도(風道)[풍채와 태도]가 속되지 않아, 장차 크게 될 인물이옵니다. 불행하게도 상사의 병이 들어 문을 닫고 누워서 신음하고 있은 지 벌써 두어 달이 되었다 하더이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문병하는데, 피부가 파리해지고 목숨이 아침저녁으로 불안하니, 매우 안타까이 여겨 병이 든 이유를 물어 본 즉 영영으로 인함이라 하옵니다. 영영을 김생에게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인은 듣고 나서,
“내 어찌 영영을 아껴 사람이 죽도록 하겠느냐?”
하였다. 부인은 곧바로 영영을 김생의 집으로 가게 하였다[인지상정(人之常情)의 마음]. 그리하여 꿈에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이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생은 기운을 차려 다시 깨어나고, 수일 후에는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김생은 공명(功名)[입신양명(立身揚名)]을 사양하고, 영영과 더불어 평생을 해로(偕老)하였다. - 김생과 영영이 해후하여 함께 여생을 보냄 - 작자 미상, <영영전>
이해와 감상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한문 필사본. 〈상사동기 相思洞記〉·〈상사동전객기 相思洞餞客記〉·〈회산군전 檜山君傳〉이라고도 한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본을 비롯하여 5, 6종의 사본(寫本)이 전한다. 이 작품은 지체 높은 귀공자가 궁녀를 열렬하게 사랑한 사연을 담은 애정소설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나라 효종 때 성균진사 김생이 있었는데 용모가 뛰어나고 쾌활하였다. 어느 날 취중에 한 미인을 만나 사모하게 되었다. 남자종인 막동이가 미인이 사는 집 노파와 친하게 되어, 그 미인이 회산군의 시녀 영영임을 알게 된다.
김생의 그리움이 더해지자 노파가 주선하여 영영과 만나게 되나 동침만은 거절당한다. 그 뒤 김생은 회산군집에 몰래 들어가 영영과 하룻밤을 동침하고 헤어진다.
이들은 만날 길이 없는 가운데 3년이 지났는데, 그리움으로 자결까지 하려던 김생은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를 한다. 삼일유가(三日遊街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시험관과 선배 급제자와 친척을 방문하던 일)를 하다 회산군 집에 들어간 김생은 영영과 편지만 주고받는데, 이때 회산군은 죽은 지 3년이 되었다.
김생이 영영에 대한 그리움으로 앓아 눕자, 회산군 부인의 조카인 친구가 김생의 사연을 말하여 영영을 보내주게 하였다. 김생은 벼슬도 사양하고 영영과 여생을 보낸다.
이 작품은 〈운영전〉과 유사하여 동일 작자설까지 논의된 바 있으나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운영전〉의 비극적 결말과 달리 이 작품은 남녀의 지상결합으로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진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에 따라 〈운영전〉의 전기적 성격이 〈영영전〉에 나타나지 않게 된다.
이 작품은 궁녀들의 폐쇄된 생활상을 드러내고, 삽입한 시와 함께 사실적인 표현, 생동적인 비유를 통한 절절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삼방요로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유영전〉 즉 〈운영전〉의 필사기가 ‘대명천계(大明天啓) 21년(1641)’인 것으로 보아 이 작품도 그 무렵에 이미 읽히고 있었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漢文小說選(金起東·林憲道, 精硏社, 1972), 韓國古典小說硏究(金起東, 敎學社, 1981), 한국문학통사 3(조동일, 지식산업사, 1984), 雲英傳과 英英傳의 比較考察(裵源龍, 國際語文 2, 198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영영전과 운영전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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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전 |
운영전 |
공통점 |
궁녀와 선비의 사랑을 소재로 함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이 있는 궁궐로 몰래 들어감 사랑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등장함 한시를 삽입하여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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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점 |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짐 추보식 구성을 취함 중세적 신분질서의 극복 |
두 주인공이 모두 죽는 불행한 결말 액자식 구성을 취함 중세적 신분질서를 극복하려 하나 좌절 |
잠상태(岑上苔)
이해조(李海朝)가 지은 한문소설. 1906년 11월부터 1907년 4월까지 ≪소년한반도 少年韓半嶋≫에 연재된 미완의 한문현토소설(漢文懸吐小說)로 작자의 처녀작이다.
주인공 김진사는 서울 명문의 후손으로 영랑(英郞)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재자(才子)이다. 한식날 동대문 밖으로 유산(遊山)갔다가 천연동(天緣洞)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미행하여 집을 확인한다.
상사병이 든 김진사를 위하여 종 의동(意同)이 꾀를 가르쳐, 김진사는 대부인에게는 병 치료차 피접간다고 핑계대고 천연동 집을 찾아가 주인노파에게 방 한 간을 빌려 유숙하기로 한 뒤 노파에게 진심을 토로한다.
그래서 그 아가씨의 이름은 홍운영(洪雲英)이며 이상서 정경마마의 몸종으로 노파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파가 매파로 나서 이상서 집에 가 운영을 달래 초파일에 천연동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받아오지만, 약속한 날 운영은 오지 않고 수수께끼 편지가 오는데, 김진사가 궁리 끝에 수수께끼를 풀고 즐거워하는 데서 미완인 채 끝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궁녀와의 염정을 그린 작자 미상의 고전 한문소설 〈영영전 英英傳〉을 바탕으로 〈운영전 雲英傳〉·〈춘향전〉 등 우리의 전통 재자서(才子書)의 영향도 함께 아우른 아류작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이해조의 문학이 이인직(李人稙)과 달리 전통적 교양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재자서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인간해방의 염원이 그의 계몽사상에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 韓國開化期小說의 史的硏究(宋敏鎬, 一志社, 1975) ≪참고문헌≫ 韓國近代小說史論(崔元植, 創作社, 1986)(출처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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