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향약언해 (呂氏鄕約諺解)
by 송화은율여씨향약언해 (呂氏鄕約諺解)
요점 정리
번역자 : 김안국
시대 : 조선 중기(1518)
원본 : 중국 '여씨향약'
이해와 감상
여씨향약언해
1518년(중종 13)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첨삭, 주석한 ≪여씨향약≫을 김안국(金安國)이 언해하여 간행한 책. 원래의 서명은 ≪주자증손여씨향약언해 朱子增損呂氏鄕約諺解≫이다.
≪여씨향약≫은 송나라 학자 여대충(呂大忠)의 저작이라 한다. 그러나 언해본에서는 여대충의 막내동생인 대림(大臨)의 저작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본시 여대충은 대방(大防)·대균(大鈞)·대림과 함께 4형제였는데, 모두 장재(張載)와 정이(程蓬)에게 배워 도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대림은 정문4선생(程門四先生)의 하나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언해본의 주석은 그러한 데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여씨향약≫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4형제가 다 저작에 관여하였다고 할 것이다. 저작연대는 미상이나, 그들의 생존연대인 11세기 후반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향약이 남송에서 널리 시행되었는데, 이는 주희가 본문에 손질을 하고 주석을 붙인 ≪주자증손여씨향약≫의 영향이라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고려말·조선초 주자학의 수입으로 ≪ 朱子大全≫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이다. 그 뒤에 ≪주자대전≫이 이 땅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꽤 알려졌을 것이다.
그것이 높이 평가되고 널리 보급된 것은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신진사류가 그것을 전국적으로 철저히 시행시키고, 또 그 언해서가 그 때 간행되면서였다.
언해는 신진사류의 한 사람인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로서 도민의 교화에 관한 책 11종을 경주와 안동 등 5읍에서 간행하였는데, 향속(鄕俗)을 바르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 책과 ≪정속언해 正俗諺解≫가 포함되었다.
≪정속언해≫와 마찬가지로 원전의 한문에 차자(借字)로 구결(口訣)을 달고 한글로 언해하여 경상도의 한 고을에서 간행하였으나, 중앙에서 약간 손질을 하여 중간한 것은 1519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언해는 원전에 충실하지만, 간혹 본문과 주석을 뒤섞거나 중복된 원전을 줄인 부분도 있다. 또 원전에도 없는 협주를 많이 달았다. 원전을 정확히 익히기 위한 경서언해와는 달리, 원전의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이본이 전하는데, 원간본으로 추정되는 책은 일본 동경의 손케이문고본(尊經閣文庫本)이다. 이 책은 목판본으로 후쇄본(後刷本)인데, 판식과 언해의 정서법과 어휘 등으로 보아서 가장 오랜 책이다.
이보다 늦은 이본은 간행년 미상의 을해자본(乙亥字本)인 고려대학교 화산문고본(華山文庫本)과 비교적 흔한 1574년(선조 7) 간행의 을해자본과 그 복각본들이다. 이들은 언해는 물론이고 원전의 한자까지도 차이를 보인다.
가령 손케이문고본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의 명사의 말자음을 ‘사譴믈’, ‘문늬’ 등과 같이 이중으로 표기한 데 대하여 다른 이본은 한 번만 적은 것 등이다. 원전인 한문도 손케이문고본과 1574년판이 크게 다르고 화산문고본이 중간 위치에 있다. 한문의 차이를 보면 1574년판이 가장 세심한 교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난상에 주석까지 달아놓았다. 그러므로 손케이문고본, 화산문고본, 1574년판과 그 복각본의 순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 책은 방점, 戇, 窮 등이 모두 나타나는 중세어자료로서, 또 구결표기의 차자로서 국어사연구에 가치가 있다.
특히 원간본이 지방에서 이루어진 점과 임진란 이전에 적어도 두 번 중간된 점에서 이들을 비교하여 중세어 말기에 일어난 정서법과 어휘의 변천을 볼 수 있으므로 그 가치는 크다. 한편 우리 나라 향약의 시행에 이바지한 점에서 향약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呂氏鄕約諺解(檀國大學校東洋學硏究所 影印, 1976), 朱子增損呂氏鄕約(方鍾鉉, 一蓑國語學論集, 民衆書館, 1963), 呂氏鄕約諺解의 原刊本에 대하여(安秉禧, 學術院論文集 14-人文社會科學篇-, 197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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