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시 3 - 다산생각 - 송재학
by 송화은율얼음시 3 - 다산생각
한밤중*에 깨어났다 꿈을 꾸다가, 기침을 하면 늑골까지 얼음이 깔리고 이명(耳鳴)의 귀에 흩어진다 결빙음(結氷音)은 내가 읽는 요즘의 책*에도 있는데 밤의 내륙 땅에서 강진*의 앞바다를 떠올린다 백일홍*은 봄날이라도 어둡고 초(艸)*의 구절은 마른번개처럼 울린다 돌아보면 그의 땅에는 버린 노래*들만 가득한데 청솔가지 유배지(流配地)*의 꿈을 되풀이 꾼다 이월 봄밤, 자전을 펴들고 짚어가는 기민시(飢民詩)*는 먼 곳으로 띄우는 편지*처럼 적막하다 <중략> 내 방의 고요도 내 그리움의 이름들도 차가운 노래*로 남녘말까지 흐른다 지금 내 몸은 새벽 추위에 있고 찬(撰)*의 말들은 이 땅의 역참마다 아침이슬이나 풀씨로 머물러 있음을 본다 먼 바다 이월 해일은 그믐이면 해변 다복솔을 덮칠 것이고 흰 파도 검은 바위*는 뒤엉켜 있으리라
* 한밤중 : 다산(茶山)이 살았던 시대는 영․정의 탕평책 등으로 일시 르네상스가 왔지만 백성들의 형편은 임진․병자 양난 이래로 여전히 곤궁했고 나라는 당쟁으로 어지러웠다. 다산(茶山)은 왕조사회의 말기적 현상인 정치․경제․사회의 모순이 극에 달했던 그 시대에서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개혁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믿었다.
** 책 : 다산(茶山)의 저작 시기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기는 30대까지의 수학기, 득의의 관료시절이다. 이 때는 `논(論)' `소(疏)' `찬문(纂文)'등 단편적이고 과학기술 관계서가 많다. 2기는 강진 유배 시절로 역학(易學)․경학(經學) 등의 연구 및 소위 이서일표(二書一表)인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를 남긴다. 3기는 해배뒤 마재 귀향 후로, <자찬묘지명(自撰墓地名)> <상서고훈(尙書古訓)> <매씨서평(梅氏書評)>등을 완성한다.
** 강진 : 다산(茶山)의 정신적 결정(結晶)은 강진 시대에 있다. 그는 여기서 모든 학문에 관심을 기울이며 엄청난 집필력을 보여준다.
** 백일홍 : 무진년(1808년) 봄 다산으로 이사하여 대를 쌓고 연못을 파고 꽃나무를 열지어 심었으며 물을 끌어다가 비류폭포를 만들었다.
** 초(艸) : 가만히 살펴보건대 이 사회에 무엇 하나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에 와서 이 병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를 망친 뒤에야 고치게 될 것이니 어찌 충신과 열사가 그저 팔장만 끼고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 이것을 초(艸)라 한 것은 이를 수식하고 윤색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경세유표(經世遺表)>,<방례초본서(邦禮艸本書)>중에서.
**노래 : 1794년 10월, 33세에 경기도 암행어사로 목격한 비참하고 부패한 농촌 현실이 사회 개혁 사상을 모색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때 유명한 <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기민시(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飢民詩)>를 남긴다. 농촌의 어려운 형편은 그가 1810년경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 <산옹(山翁)>에서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배지(流配地) : 1790년, 서산 해미현에 하루 동안 유배. 1795년, 주문모신부 입국사건으로 충청도 금정역 찰방으로 좌천. 1801년, 신유사옥으로 영일 장기에 유배. 1801년, 11월에 강진으로 옮긴다. 1817년, 57세에 해배.
** 기민시(飢民詩) : 암행어사를 역임한 후 다산은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기민시(飢民詩) 3편을 쓴다. 소능 이가환이 평하길 격앙되었다가 어세가 갑자기 바뀌고 종횡으로 치솟아 흐른다, (…) 완곡하면서도 엄하여 두들겨 패는 듯 꾸짖는 듯하니 죄지을 말은 아니면서도 읽는 사람은 큰 경계를 삼으리라했다.
** 편지 : (…) 무릇 시의 근본은 부자(父子)나 군신(君臣), 부부의 인륜을 밝히는 데 있으며 더러는 그 즐거운 뜻을 선양하기도 하며 더러는 그 원망하고 사모함을 도달하게 하는데 있다. 다음은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며 항상 무력한 사람들을 들어 올려주고 가난한 자는 구휼하고 싶어 방황하고 안타까와서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이 있어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 노래 : 다산(茶山)은 시경 305편을 논하기를 시는 간림(諫林)이다고 정의했다. 간(諫)이라는 글자는 사간원(司諫院)이니 간쟁(諫諍) 기관이니 하여 봉건 시대에 충신이나 열사는 임금에게, 효자는 아버지에게, 열녀는 남편에게, 진정한 벗 사이는 벗들끼리 상대의 대상에게 잘못을 일깨워 간(諫)한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 찬(撰) : 다산(茶山)의 저작을 출간하여 세상에 널리 전하려고 하는 뜻은 이미 다산(茶山) 자신의 간곡한 비원(悲願)이었다. 100년 후를 기다리라(백세오가후(百世吾可侯))고 읊조리며 스스로 아호를 후암(侯庵)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실제 다산(茶山)의 책이 출간된 것은 일제하 애국계몽운동 및 민족주의 이념이 고조되고부터였다.
** 바위 : 선왕은 예(禮)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예(禮)가 쇠퇴하자 법(法)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법(法)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백성을 이끄는 것도 되지 못한다. 천리에 헤아려보아 합당하고 인정에도 화합한 것을 예(禮)라면 위협에서 두렵게하고 핍박(逼迫)하여 비통하게 함으로써 백성을 두려워하게 하여 감히 범하지 못도록 하는 것을 법(法)이라 한다. <경세유표(經世遺表)> 중에서.
<서정시학, 깊은 샘, 1994>
작가 : 송재학(1955- )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 치과대 졸업.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어두운 날짜를 스쳐서」을 발표하며 등단. 『오늘의 시』 동인. 김달진 문학상 수상(1994).
죽음과 폐허의 분위기에 휩싸인 세계를 예리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면서 그 극복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인다.
시집으로는 『얼음시집』(문학과지성사, 1988), 『살리시오네 집』(세계사, 1992), 『푸른 빛과 싸우다』(문학과지성사, 1994)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다섯 편으로 된 「얼음시」 연작 중 셋째 편인 이 시는 시에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학술논문을 작성하듯 각주 처리를 꼼꼼하게 해놓은 것이다.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의 한 사람인 T.S.엘리어트가 그의 장시 「황무지」에서 시도했던 이같은 수법은 시의 형식에 있어 새로움과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낳기에 충분하다. 본문보다 훨씬 긴 열 두 개의 각주―물론 이 각주들은 시의 본문에 속한다―는 모두 다산(茶山) 정약용의 행적에 관한 것이다. `다산 생각'이라는 부제를 단 이 시를 쓰며, 시인은 내용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독자들에게 다산에 대한 배경지식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를 느꼈던 듯 싶다. 이를 각주로 처리함으로써 시인은 시의 압축미와 서정성을 그대로 살리고, 서사적 요소의 과다를 막으며, 참신한 형식미를 산출하는 다중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
「얼음시」 연작은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비판하는 의도 하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얼음'은 대체로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들과 비인간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극도로 혼란했던 이조 말엽, 오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남다른 비판의식과 개혁의지를 가졌던 정약용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산은 시인의 의식의 지향점이며 존경의 대상이다.
시인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다산이 살았던 시대와의 공통점을 느낀다. 두 시대는 모두 `기침을 하면 늑골까지 얼음이 깔리'는 고난의 시대이며, `버린 노래들만 가득'하고 굶어 죽는 백성들의 처참한 실상을 그린 「기민시(飢民詩)」가 유효한 모순에 찬 시대이다. 화자의 몸은 지금 견디기 힘든 `새벽 추위' 속에 있다. 다산 역시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 수 없었던 험한 세상을 살았다. 그러나 다산이 백년 뒤를 기다린다고 한 말이 정말로 실현되어 후세의 역사는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일제시대에 쏟아져 나온 다산의 책들은 애국운동을 고무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다산이 남긴 말들이 오늘 `이 땅의 역참마다 아침이슬이나 풀씨로 머물러 있'어 곧 빛을 볼 희망적이고 생기에 찬 상태에 있음을 본다. 현실은 비록 `흰 파도와 검은 바위'가 뒤엉켜 있는, 정의와 혼돈이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다산이 희망과 의지를 버리지 않았듯 시인은 이 사회가 올바로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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