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쪽으로 - 박정만
by 송화은율해 지는 쪽으로 - 박정만
작가 : 박정만(1946-1989) 전북 정읍 출생. 경희대 국문과 수료.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등단. 『신춘시(新春詩)』 동인으로 활동.
고전(古典)과 전통의 미학(美學) 속에 우리말의 향토성과 운율미를 되살리고 있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는 『잠자는 돌』(고려원, 1979),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오상사, 1986), 『무지개가 되기까지는』(문학사상사, 1987), 『서러운 땅』(문학 사상사, 1987) 『저 쓰라린 세월』(청하, 1987), 『어느덧 서쪽』(문학세계사, 1988)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에서 시인은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고 소망한다. 해 지는 쪽은 서쪽이다. 불교에서는 극락을 서방정토(西方淨土)라 일컬어 왔다. 서쪽에 있는 깨끗한 땅, 속세의 번뇌와 고통 따위는 일체 없는 곳, 오로지 지극한 열반(涅槃)의 세계인 곳이 바로 서방정토이다. 시인은 자신의 정신적 지향점을 `해 지는 쪽'이란 한 마디 시어로 잘 함축해 놓고 있으며, 이같은 함축성은 시의 형식마저도 극도로 절제된 방향으로 이끌어 3행에 불과한 짧은 시를 낳게 했다.
`해 지는 쪽'이 품고 있는 이미지는 하강(下降)적이며 쓸쓸하다. 해가 진다는 것은 환한 낮의 시간이 끝나고 어둠이 밀려온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삶으로 비유하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죽음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기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해 지는 쪽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함축적 의미는 죽음이다. 제 2행에는 바로 죽음의 이미지가 연결되어 있다. 들판에 시들어 있는 꽃잎은 생명을 마감한 죽은 존재의 표상이다. 그 시든 꽃을 보며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겐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아름다운 질서일 따름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시인의 태도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는 담담하게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 담담한 소망에는 실은 시인의 불행한 삶과 고달픈 정신의 흔적이 스며 있으며, 그로부터 훨훨 벗어나려는 간절한 기도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해 지는 쪽'이 뜻하는 서방정토와 죽음의 의미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서방정토란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속세의 삶과 대립되는 공간이다. 죽어서 갈 수 있는 그 곳은 그러나 삶과 단절된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이고 진정한 삶이 구현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죽음은 이렇듯 훼손된 삶을 온전히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의 삶을 시인은 `나마저 없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나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린 상태, 그것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이며 견성(見性)이다. 인간[중생]의 번뇌와 어리석음은 아집(我執) 때문에 생기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인 것이다. 3행에 이르면 우리는 박정만의 지향점을 뚜렷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무화(無化)된 상태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우주의 본성과 합치하게 된 행복한 조화의 상태라 할 수 있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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