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본문 일부 및 해설 / 김동명
by 송화은율어머니 / 김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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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타박녀야!
너 어디로 울며 가늬?
내 나이 어렸을 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혹은 '코쿨' 앞에 마주 앉아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말하면, 달 속의 계수나무와 옥토끼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은하수 가의 견우 직녀 이야기, 천태산(天台山) 마구[麻姑] 할멈 이야기, 구미호 이야기, 장사 이야기, 신선 이야기, 그리고 '유충렬전(劉忠烈傳)', '조웅전(趙雄傳)', '장화 홍련전', '심청전' 등 고담책(古談冊) 이야기며, 이 밖에도 이루 들 수 없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마는, 그 가운데서도 슬프기로는 타박녀의 이야기가 으뜸이었다.
영영 가 버린 어머니를 찾아,
슬피 울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타박녀!
어디선가, 타박녀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귓가에 들리는 듯하면, 타박타박 걸어가는 타박녀의 뒷모습이 눈앞에 서언하여, 나는 이 슬픈 환상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아, 타박녀의 울음소리,
타박녀의 뒷모습!
이것은 바로 내 눈물의 옛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어느 사이에 어머니를 잃은 '타박녀'가 되었구나. 더욱이 나는 어머니와 함께 눈물도 동심도 다 잃어버린, 세상에도 가엾은 고아가 되고 말았구나!
<하략>
작자 : 김동명(金東鳴 1900-1968)
형식 : 경수필. 서정적 수필
성격 : 회고적, 해학적, 진솔함,
문체 : 간결체. 우유체
제재 : 어머니
주제 :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출전 : <한국 대표 수필 문학 전집>(1946)
특징 : 간결한 문장으로 빠르게 내용을 전개하고, 유머, 위트를 섞어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대화와 서술을 적절히 구사하여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제시함.
구성 : 주제에 따른 2단 구성
Ⅰ. 어머니에 대한 나의 그리움
1. 타박녀처럼 어머니를 잃은 나
2.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나
Ⅱ. 어머니에 대한 회고
3. 자식에 대한 야심이 컸던 어머니
4. 삶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사신 어머니
마구[麻姑] 할멈 : 전설에 나오는 신선 할미.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함
구미호(九尾狐) : 꼬리가 아홉이나 된다는 오래 묵은 여우
장사(壯士) : 몸이 우람하고 힘이 센 사람
고담책(古談冊) : 옛날 이야기 책
타관(他官) : 타향(他鄕)
과대망상증(誇大妄想症) : 턱없이 과장하여 엉뚱하게 생각하는 증상
냉엄(冷嚴) : 인정이 없이 가혹하고 엄함
편린(片鱗) : 한 조각의 비늘. 사물의 극히 작은 부분
고미소(苦微笑) : 쓴웃음
까탈스러워 : 여기서는 '편지에 쓰인 말이 순조롭지 못해 읽기에 불편하다'의 뜻임.
고질 : 오래도록 낫지 아니하여 고치기 어려운 병, 여기서는 오래 된 나쁜 버릇
슬프기로는 - 으뜸이었다. :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타박녀의 이야기가 가장 슬펐다. 지은이가 타박녀의 이야기를 가장 슬픈 이야기로 떠올린 까닭은, 타박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잃은 슬픈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와 - 되고 말았구나! : '나'는 어머니를 잃으면서 동시에 어린이의 천진함과 순진함도 모두 잃어버린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 순수성을 상실한 자아에 대한 회한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비단옷이 - 결심이기도 하다. : 고향을 떠나 타관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아들이 강릉 군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겠다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 무서운 야심이신가 : 어머니는 '나'가 잘 생겨야 한다는 무리한 야심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이다. 또 자식이라 무조건 예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미흡함도 정확히 집어 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이 얼마나 '건방지신' 말씀이시뇨? : 어머니가 '나'의 편지에 대해 '까탈스럽다'거나 '병두보다 못 쓴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배움이 부족하신 분으로서 건방진 말씀이시다. 지은이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고질처럼 - 즐기는 버릇이 있으니 : '나'는 '내 주제'에 당치 않은 말을 거드럭거리며 지껄이는 좋지 못한 버릇이 고질이 되어 있으니, 지은이의 개성이 직접적으로 제시된 구절이다.
이것도 - 하나인가 : 대언 장담하는 좋지 못한 버릇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것인데,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것도 슬픈 유산의 하나가 되었다는 구절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단락(1∼2)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두 번째 단락(3∼4)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록 배움은 없지만 삶에 대한 긍지와 지식에 대한 큰 포부를 갖고 사신 어머니의 모습은, 곧 대범하고도 꼿꼿하신 옛 어머니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회상의 형식을 빌어 산만 구성으로 짜여진 이 작품은, 어머니의 모습을 미화하기보다 위트와 유머를 섞어 서술한 진솔한 표현, 이야기의 빠른 전개, 자신의 심정을 비유하기 위한 옛 민요의 적절한 인용 등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김동명(金東鳴 1900-1968)
시인. 정치평론가. 호 초허(超虛). 강원 명주(溟州) 출생. 시 "파초"와 "내 마음은'이 널리 알려져 있음. 시집 <파초>, <진주만(眞珠灣)>, <목격자(目擊者)> 등이 있으며, 정치평론집 <역사의 배후에서>, 수필집 <세대(世代)의 삽화> 등이 있다.
김동명의 작품 세계와 어머니
8세 때 고향을 떠나 함경도 원산으로 이주해 온 김동명은 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 저 학교로 옮겨 다니며 교사로 근무하는 등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그의 정서적·지적 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그의 작품 맥락은 '상실'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고향의 상실, 부친의 상실, 부의 상실 등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우선 부친을 대신하는 모친의 가부장적인 성격으로 인해 남성적 호기를 띠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적 감상성에 치우쳐 꿈과 애조의 가락이 호소하는 듯한 민족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즉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남성적인 정서와 여성적인 정서는 어린 시절의 상실감과 더불어 그의 작품에서 기본적인 분위기와 정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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