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by 송화은율
반응형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 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 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님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에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 안는 옷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