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해설 / 윤동주
by 송화은율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鐘)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시 세계의 특징 중 하나를 차지하는 속죄양 의식이 나타난 시이다. 그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그것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기 한 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간(肝)’과 더불어 이 시에서도 그 같은 희생 정신이 시 전체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1연은 정의로운 삶을 추구해 온 서정적 자아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더 이상 그러한 삶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햇빛’은 정의로운 삶의 지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햇빛’을 서정적 자아는 쫓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햇빛’은 교회당 꼭대기,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십자가에 걸렸다. ‘꼭대기’란 단어는 정의로운 삶의 추구가 극한점에 다다랐음을 대변해 준다. 그러므로 서정적 자아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길이란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十字架)’의 길이다. ‘십자가’란 소설로 말하자면 일종의 복선(伏線)이라고 할 수 있다.
2연은 1연의 ‘꼭대기’가 암시한 바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정의로운 삶의 추구가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뒤바꿔 말하면 서정적 자아가 처한 고난과 역경의 상황이 극한점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2연의 끝을 ‘있을까요’라고 설의적 언사(言辭)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상황의 인식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단정보다는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그로 말미암아 보다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3연 1행은 상황의 암담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기미나 계시가 보이지 않음을 종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서정적 자아는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는’ 자조적 내지는 자학적 행동을 취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비굴한 행동일지 모르나 어쩔 수 없는 몸가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 아래 희생되기를 바라고 있다. 3행과 4행에서 ‘괴로웠고’, ‘행복했다’는 반대 감정 병립적 표현이 나오는 데 이는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웠던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다는 것을 언술한 것으로 서정적 자아는 자신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동일성에의 지향을 꿈꾼다. 십자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상징으로 되어 있지만 이 시에서는 문맥에 의하여 그 의미가 특수화되어 있다. 즉, 시인 자신이 도달하기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4연은 자기 희생이나 속죄양 의식이 응축된 부분이다. 여기서 목을 비어(卑語)로 사용하여 ‘모가지’로 함은 자신의 행위를 겸손히 낮추려는 의도이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란 승화된 희생, 또는 자신의 희생이 승화되길 바라는 것이며, ‘조용히’라는 단어는 자신의 행동이 과시적이거나 의도적이 아닌 순수한 행위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지막 연은 주제 연으로 시인 윤동주의 정신적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 참 고 >
윤 동 주(尹東柱(1917-1945) : 북간도 출생. 항일 민족 운동의 사상범 혐의를 받고 일경(日警)에 피검되어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유고 30편을 모아 친구와 아우의 주선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했다. 허망한 존재 의식, 자아에 대한 내적 응시와 분열, 일제의 감시를 받는 강박 관념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한 것이 그의 시의 내용이다. 한국 민족의 슬픈 자화상을 간결하게 그린 ‘슬픈 족속’, 자아에의 애증과 내적 갈등을 그린 ‘자화상’, 어린 시절의 회상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한 ‘별 헤는 밤’ 등의 수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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