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논술52 -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
by 송화은율
이화여자대학교
논제
다음 제시문들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리와 방법에 대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생각들을 보여준다. 제시문 (가), (나), (다)를 논의의 근거로 삼아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을 논술하시오.
(가)
전하(殿下)의 다스림이 이미 그릇되어 나라의 근본이 망했고, 하늘의 뜻은 가버렸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우선 주색만을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는 위에서 어름어름하면서 오로지 재물만을 늘리며,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궁궐 안의 신하는 자기 세력 끌어들이기를 용이 못에서 물을 빨아들이듯 하고, 궁궐 밖의 신하는 백성 벗기기를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 하니, 가죽이 다 해어지면 털도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라 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하게 형벌을 정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한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따라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하루 깜짝 놀라 깨달아 팔을 걷어붙이고 학문에 힘쓰시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 안에 온갖 선(善)이 갖추어지고 온갖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고루 잘 살게 할 수 있고, 백성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일은 몸을 수양함으로써 하며, 몸을 수양하는 일은 도(道)로써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이렇게 하신다면 전하를 모신 신하들로서 사직을 보위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덕화를 베푸셔서 태평한 천하를 이루신다면, 저는 마구간의 끝자리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정성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바로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전하께 올리옵니다.
- 남명 조식(南溟 曺植)의 『을묘사직상소』 중에서
(나) 나는 상상적인 견해보다 사물의 구체적인 진실을 따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 존재로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방식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이상(理想)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열중한 나머지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완벽한 선(善)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파멸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는 좋지 않은 짓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치 않은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악덕이 없이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는 그런 악덕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군주는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함께 누리기는 어려우므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이고 위험을 피하기에 급급하며 이익을 탐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은 전적으로 군주의 편이어서 자신의 피, 재산, 목숨과 자식까지도 바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그럴 필요성이 별로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막상 그래야만 할 때가 닥치면 그들은 배반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만 믿고 다른 준비를 해놓지 않은 군주는 몰락하게 된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얻은 우정은 매수한 것일 뿐 진정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위기에 몰리면 군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인간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을 해칠 때 덜 망설인다. 사랑은 의무의 사슬로 묶여 있는 것인데,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기 목적에 도움이 될 때는 언제든지 그 사슬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는데 그것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
(다) 남북전쟁 이래의 영웅인 카우보이는 기술 시대의 새로운 영웅인 엔지니어로 대체되었다. 엔지니어는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효율성이라는 도구로 무장한 엔지니어는 신(新) 제국의 건설자였다.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마천루와 교각과 댐이 미국 전역에 세워졌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기술화(技術化)의 가치에 몰입한 나머지 기술 이상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미국의 사회이론가 베블렌은 상업적인 탐욕과 시장의 비합리성이 기술의 시대적 역할을 약화시킴으로써 대대적인 낭비와 비능률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를 전문 엔지니어들에게 위탁함으로써 경제를 구원하고 미국을 새로운 에덴 동산으로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엄격한 효율성의 기준에 의거하여 비능률을 뿌리 뽑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를 잘 작동하는 메가톤급 기계처럼 생각하고 전문 엔지니어가 그것을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 이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 칭하는 개혁자 집단은 베블렌의 생각을 받아들여 미국의 엔지니어들에게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부여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치 경제와 관련된 철학적 개념들과 대중적 민주주의가 미 대륙의 기술 지배를 위한 설계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에 의한 통치보다도 과학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였다.
이들은 기술 유토피아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은 과학이 낭비와 실업, 배고픔과 빈곤을 영원히 추방하고 궁핍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로 바꾼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연과 인간 및 기계 사용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국가의 자원을 총괄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창하였다.
-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중에서
< 답안 작성시 유의사항 >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500자 내외(1400~1600자)로 서술할 것.
2. 시험 시간은 150분임.
3.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4. 수험번호, 성명 등 자신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지에 드러내지 말 것.
5. 반드시 흑색 연필이나 흑색 볼펜으로 작성할 것.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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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답안>
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에는 리더십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운명이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해 좌우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링컨 대통령의 지도력이 상당히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거꾸로 한 나라가 망할 때에는 대개 백성들을 마구 잡아다 죽이는 폭군들이 있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바람직한 리더십을 정립하는 것이 한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개의 제시문은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세 가지 서로 다른 리더십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동양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에서 제시되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왕도정치는 동양의 이상적인 정치 철학으로 도덕에 의한 교화를 정치의 기본으로 삼는다. 지도자는 몸을 수양하고 덕(德)을 수양하여 태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 제시문 (나)는 현실적이고 강력한 리더쉽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군주는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둘을 모두 누리기는 어려우므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포기하고 두려움의 존재가 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제시문 (다)는 과학 기술에 의한 통치로 기술 유토피아의 이상을 실현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과학 기술에 의한 통치는 낭비와 실업, 배고픔과 빈곤을 추방하여 궁핍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바람직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현대 사회는 지식 기반의 정보화 사회이고 다원화된 사회다. 따라서 오늘날 필요한 지도자는 왕도정치의 이상주의적 지도자나, 마키아벨리의 독재적이면서 강력한 지도자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무조건적인 독재 권력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분명 소외되는 국민을 낳게 될 것이고 결국엔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德에 의한 이상적인 지도자가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덕에 의한 이상적인 지도자는 적어도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문 (다)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기술 과학에 의한 정치도 실현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국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정을 운영하고 도덕적 청렴성을 아울러 갖춘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리더십은 도덕성이나 강력한 국정운영 능력이나 전문성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이 모두를 두루두루 겸비한 지도자만이 무한경쟁 시대에 전체 국민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면서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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