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신문학사 / 근대문학사 / 김윤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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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문학의 등장

 

: 3.1운동의 민족사적 경험이 문단에 어떤 굴절을 가져왔느냐, 그런 식의 질문은 조금 거칠다고 보십니까. 계몽적 이성을 전제로 출발한 선생의 논법이기에 당연한 질문 아니겠습니까.

 

: 일반적으로 말해 육당춘원류의 계몽주의, 이에 맞선 창조폐허파의 문학 내면화(전문화) 흐름, 김소월에서 그 원형을 획득한 토착적 古層의 흐름 등의 발현이 일단 그 나름의 유형이랄까 틀을 이루었다고 볼 것입니다. 큰 범주에서 보면 이들 모두가 계몽적 이성에 포섭되는 것. 문학 내면화를 두고 제2계몽주의라 본 것도 그 때문이지요.

 

: 그렇다면 단재의 아나키즘 같은 것은 제3의 계몽주의라 하겠습니까. 내 나름으로 제3계몽주의를 정리한다면 국민주의(민족주의)제국주의자본주의아나키즘허무주의공산주의의 대응 도식이 되겠는데.

 

: 통틀어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위에 선 사상들이라 범박하게 말해 볼 수 있겠지요.

 

: 허무주의도 그러할까요.

 

: 절대적인 것과 대립함 때. 그 초월 방식의 하나로 극단화한 것이 허무주의 아닐까. 적극적 허무주의랄까. 앞의 지평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 아득할 적이면 저는 단재의 말을 가만히 외곤 하지요. 金剛 이 아모리 좋을지라도 飢兒의 눈에는 一匙만 못하며 솔거의 畵松이 아모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溺水者의 눈에는 一片木板만 못하며 살도 죽도 못하게 된 조선 민중의 귀에는 모든 미려한 가극과 소설의 이야기가 백두산 속 迷信鬼인 조선생의 강신필만 못하리니---(낭객의 신년만필, 동아일보 1925.1. 2). 아나키즘이 허무주의와 지척간에 있지 않습니까. 죽도 살도 못하는 자리. 죽고 사는 길이 동일한 자리에 선 사상이 아닐 수 없지요.

 

: 그만큼 현실성이 없달까 공상에 가까운 것이 아나키즘이라는 뜻이겠군요. 세계 어느 곳에도 아직 아나키즘이 실현된 데는 없으니까.

 

: 엥겔스의 유명한 명제 공상에서 과학으로가 나올 수 있었던 빌미도 이와 관련하여 설명될 수 없을까.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한갓 유토피아가 아니라 과학일 수 있었다는 것. 이것만큼 가슴 설레는 것이 달리 있었을까.

 

: 엥겔스가 말한 그 과학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유토피아의 일종이었음이 소련 해체로 자명해진 마당이라면 대체 그 과학이란 무엇이겠습니까.

 

: 조급하게 판단할 수 없지 않을까요.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볼 때 공산주의가 과학으로 보였던 것이니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한 단계를 국가 사회주의라 불렀지요. 소련의 성립이 그것. 그 소련의 해체란 실상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국가 사회주의 제일단계의 해체라 볼 수 없을까.

 

: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유토피아 사상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휩쓸렸다는 점이겠는데.

 

: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으니까. 문제의 발단은 시민사회, 곧 국민 국가에 있지 않았던가. 경제적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국민(nation)이었고. 자본재 생산 양식에서 시작된 경제적 이해 단계(욕망) 자체 내에서 조정하는 장치로 국가가 상정되었던 것. 헤겔은 근대시민사회의 이 욕망 체계를 국가가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러나 매우 불행하게도 그 기대는 적중되지 않았지요. 국가가 조정하기는커녕 시민계급(부르주아)편에 서서 그것을 조장, 완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철저히 탄압하는 꼴이 벌어지고 말지 않았던가.

 

: 제자인 마르크스가 스승 헤겔을 두고 거꾸로 선 변증법이라 비판하고 나섰던 이유도 결국 이 사실에 관련된 것이겠군요. 인간의 類的본질(사회적인륜적)과 개인의 사적 욕망(시민적)을 영원히 분리시키는 가능을 근대국가가 강행하고 있었던 것. 이를 이론화한 것이 자본론이며 노동력 상품론이겠고---.

 

: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이론의 옮고 그름이 아니라 그 현실 외각에 있었던 것. 시민사회가 세운 근대국가가 대포기관총을 앞세워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았던가. 노동자 탄압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식민지측, 노동자측에서 보면 생사의 문제였던 것. 마르크스 사상 및 그 운동이 현실적 힘을 가지지 않을 수 없지요.

 

: 이론이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문이겠군요.

 

: 루카치는 자신의 불세출의 역작 역사와 계급 의식(l923)의 입구에다 마르크스의 명구를 세 워 놓았지요.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했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라고.

 

: 잠깐. 계몽적 이성의 처지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도 같은 범주 아닐까. 이른바 근대성이라는 자리 말입니다. 선생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1973)가 카프 문학에서 출발, 그 내면화의 거점 탐구로 일관되어 있는데, 말을 바꾸면 근대 문학의 근대성이란 카프 문학에서 발단되고 그 속에 수렴되는 것입니까?

 

: 설명 모델의 하나로 카프 문학을 탐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프 문학을 가운데 놓고,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기. 또 아래로 훑어 내려오기의 탐구라고나 할까.

 

: 민족주의에 절망한 단재가 아나키즘으로 달려간 것이 l923, 24년 무렵 아닙니까. 그 조급성이 허무주의를 비껴 갈 수 없었다면 당초부터 과학이라 부른 마르크스주의(계급 사상)는 그만큼 승산 있는 세계관이 아니었겠는가. 오늘의 처지에서 보면, 그것 역시 한 설명 모델(허무)이지만 적어도 그 당대에는 가장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

 

: 카프 문학을 말하기 전에 당시의 여론을 잠시 엿보면 어떠할까. 3l운동 이후 우리의 나아갈 지평은 무엇인가. 일본 역시 조선 통치의 새 방향 모색에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조선자치론을 비롯, 일본 의회에서도 각론이 분분했던 것. 드디어 일본 정부는 예비역 해군 대장 사이토(齏藤)를 현역으로 복귀시켜 총독으로 임명했으며, 이른바 문화 정책을 한다는 명분으로 부임했던 것.

 

: 육군 2개 사단을 증설한 것도 문화 정책에 드는 것일까요.

 

: 역대 총독 중 제일 오래 통치한 자는 사이토이지요. l6년간. 두 차례에 걸쳤지요. 광주 학생 사건 수습차 다시 부임할 정도였으니까. 그의 통치 방식은 헌병 정치에서 살짝 빗겨 난 경찰정치였던 것. 본국의 내무 대신 출신의 인사를 정무총감으로 기용했던 것.

 

: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I924)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일본 유학에서 귀국하는 주인공이 그의 형을 만나는 장면. 소학교 훈도인 형은 금테 모자에 망토를 두르고 칼을 찼지 않았던가. 도금 을 물린 검정 환도 끝이 다리에 터덜리며 부딪는 것을 왼손으로 꼭 붙들고---. 기괴망측한 통치 방법 그게 헌병 정치 스타일이었던 모양.

 

: 1차 세계대전의 결과 일본은 세계 4위의 강국으로 격상했지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방식은 어떠해야 했을까. 우리 사회의 나아갈 지평이 떠오를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 선생이 어느 글에서 지적한 문학 장르 선택의 문제가 이에 대응된 것이겠지요. 당대 사회의 나아 갈 지평이 떠오르지 않으면 산문(소설)이 씌어질 수 없다는 것. 시적인 것(, 수필 등)만이 무성할 뿐이라는 것. 삶의 순간적 단편적 체험만이 가능하다는 것. 창조(1919)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l922), 금성(l924) 등의 동인지의 글들이 시적인 환각으로 충만한 것도 이로써 설명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진짜 산문(소설)은 언제부터 출현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의 해답이 쉽사리 나오네요.

당대 사회의 나아갈 지평이(응전의 전망) 어느 수준에서 떠오르지 않으면 소설이 등장할 수 없다. 가령 춘원의 무정(l9l7)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권 상실 이후 당대 사회의 나아갈 지평 이 어느 수준에서 떠올랐음과 관련된다? 선생 전공인 문학사회학 쪽의 설명 방법이겠군요. 그렇다면 3l운동 이후 당대인의 나아갈 지평이 떠오른 시기는?

 

: 1925년 전후로 볼 수 없을까. 조선공산당과 카프(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n.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 된 해이기도 하니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유미주의를 표방하던 백조지가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 김팔봉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하지요. 서울 중심의 백조(휘문, 배재고보 중심) 동인 박종화 박영희 등이 김팔봉과 더불어 의 예술에 동조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PASKULA(박영희 안석영 김형원 이익상 김팔봉 김복진 연학년, 1924) 를 형성했으며. 다른 한편 무명의 신인인 이적효 심훈 송영 김영팔 등에 위한 焰群社(염군사, 1922)도 조직되었던 것. 이러한 신경향의 문학 세력 두 단체가 주축이 되어 KAPF가 조직된 것. 카프의 운동으로서의 이념이 뚜렷해진 것은 제l차 방향전환(l927.9)이며 이 조직이 볼셰비키화한 것은 제2차 방향전환(1931). 물론 카프는 직간접으로 소련의 RAPF, 일본의 NAPF와 연결된 조직체로 볼 것.

 

: 저러한 카프의 성립이야말로 당대 사회의 지평 확인에서 가능했다?

 

: 민족운동과 사회 운동-그 차이점과 일치점(동아일보 1925,1.2)이라는 설문에서 개진된 한용운 주종건 김찬 최남선 조봉암 현상윤 등의 견해는 한결같이 양운동은 서로 부합한다는 것, 또 부합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간회(l927.2.l6).가 그런 의견의 결실이었던 것. 요컨대 민족주의와 계급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가 지평 위에 뚜렷이 떠올랐던 것. 이로부터 산문계(소설, 평론 기타) 예술이 가능했던 것.

 

: 민족주의(시민계급성) 문학과 계급주의(무산계급성) 문학의 두 바퀴가 우리 근대문학의 이념적 지향점이었다면, 이 둘 중의 우열이랄까 선택의 과제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각자의 출신 성분이나 신념이나 취향에 관련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기준이라도 있는 것일까.

 

: 핵심에 닿은 질문. 계몽적 이성이 지닌 어쩔 수 없는 背理라고나 할까. 거시적으로 본다면 역사에 대한 조급성이 그 기준이었다고나 할까. 각자가 싸워야 할 대상(타자)상대적인 적이냐 절대적인 적이냐의 선택 문제로 수렴되는 것.

 

: 선생께선 할말이 많은 모양이군요.

 

<한국일보 1996, 5, 3>

 

 

근대문학으로서의 結核

-나도향, 이태준, 이상의 경우

 

: 아무리 문학사라 해도 문학을 논의하는 마당이니까 약간의 일탈이랄까 문학의 육체도 그리워질 법한데요. 통상의 이데올로기나 논리로는 좀처럼 회수되지 않는 영역도 있지 않겠습니까.

 

: 물레방아(1925),벙어리 삼룡이(1925)의 작가 나도향(1902-1927)을 아시겠지요.

 

: 백조동인이며 20세에 장편 환희(동아일보, 1922.11-1923.3)를 썼고 만 25세에 요절한 천재 작가 아닙니까. 수필 그믐달은 한때 교과서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요절했기에 천재냐, 천재이기에 요절했는가. 좌우간 요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 미는 진실이며 진실이 미/지상에서 알만한 것은 이뿐이라 외치며 죽어간 영국시인 키츠(1795-1821)26. 비단망태기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쓴 시를 거기에 넣고 다닌 시인 귀재 李賀(790-816)가 죽은 것은 26.

 

: 박제가 되어 버린 우리의 천재 李箱27세에 갔고---.

 

: 무엇이 이들을 요절케 했을까. 나라의 사정까지는 알기 어려우나 근대문학의 저러한 천재들을 요절케한 병명은 뚜렷하지요.

 

:()결핵 말씀이군요.

 

:그냥 결핵이 아니라 깃발처럼 횃불처럼 휘황하게 휘날리는 병. 결핵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지요.

 

:횃불처럼 깃발처럼 결핵이 휘황하게 펄럭이었다 함은 무슨 뜻인가요. 실상 결핵이 주인공이고 문인 아무개라든가 그가 쓴 작품 따위란 한갓 그림자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나도향이 죽었을 때 전 文壇이 애도해 마지 않았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도향애사(정인보), 추억도향(이은상)을 비롯 월탄, 서해, 김동환, 박팔양(김여수), 김억, 김팔봉, 염상섭, 이태준 등 당대 중요 문인 전부가 애도사와 추억담을 썼지요. 가히 전 文壇적 사건. 신문학 이래 문인의 죽음이 처음으로 문학적인 자각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

 

: 그 죽음이 다름 아닌 문학이라는 지적입니까.

 

: 그렇소. 죽음이 곡 문학이라는 등식. 말하자면 죽음과 문학의 등가성의 인식.

 

: 비약이 좀 심한데요. 죽음과 문학이 등가라면 이렇게 되겠군요.그 죽음이란 곧 결핵이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 바로 결핵으로서의 문학이 아닌가라고.

 

: 우리가 말하는 서구의 근대문학이란, 여러 가지 종류의 갈래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의 한 가지에 결핵(죽음)과 관련된 것도 있다는 시각에서 보면 어떠할까.

 

: 결핵의 속성을 가진 문학의 갈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결핵의 메타포(은유)로서의 문학이라는 것. 서구 낭만주의문학이 이에 엄밀히 대응되고 있다는 것.

 

: 나도향의 죽음이 전 文壇적으로 인식되었음이란 분명 문학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어째서? 백조파의 화려한 낭만주의 또는 데카당한 세기말문학으로 규정되던 문학이 나도향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끝장난 것이니까.

 

: 백조파에서 그 절정을 이룬 유미주의랄까 탐미주의랄까 감상주의라 불리는 종류의 문학이 끝장났다함은 곧 새로운 문학의 도래를 예감하는 것. 무슨 눈엔 뭐만 보인다고. 선생이 말하는 그 잘난 문학사적 안목이 또 개입했군요.

 

: 너무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다만 저는 실증적인 부분을 살펴볼 뿐. 백조파란 무엇이겠는가. 배재, 휘문 두 고보 출신들 중심으로 모인 문학운동지. 중인계층 출신들. 문학(예술)이 뭔가 고상한 것, 신성한 것, 좌우간 대단한 구원으로 보았던 청소년 집단이라고나 할까. 31운동을 중학수준에서 체험한 그들인 만큼 창조폐허파와는 한 사이클 뒤에 나온 이들에게 있어 문학이란 흑방비곡(월탄) 월광으로 짠 병실(회월), 또는 나의 침실로(상화) 등에서 보듯 갈데 없는 환각의 세계 아니겠는가. 외나무 다리 저편에 있는 부활의 동굴 속으로 도피하기. 병실(밀실) 속에서 비로소 황홀경을 찾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 스스로 환자되기, 그 환각이 바로 문학이다. 그러니 병을 앓아야 한다. 그 병에 감염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병이 곧 문학이다!

 

: 현실에는 없는 그 환각(황홀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병에 감염되어야 했는데 결핵이 그것. 이런 현살이 나도향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났음에 주목할 것. 서울 청파동 중인계층(한약방) 출신의 나도향이 배재고보를 나와 경성의전에 진학했으나 중퇴, 문학을 택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는가는 월탄의 지적대로 赤貧(적빈) 그것. 결핵이 그 지척에 놓여 있지 않았겠는가.

 

: 결핵이라면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의 대명사였겠지요. 오늘의 에이즈 모양이라고나 할까. 환각(문학)의 절대경이란 불치의 병이 아니면 안되었다?

 

: 한 장면을 떠 올려 볼까요. 여기는 도쿄 우에노역 바로 윗정거장인 닛보리(日暮里) 근처 동백꽃 핀 작은 동산. 때는 1926년 봄. 두 조선청년이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한 청년이 각혈을 하지 않겠는가. 동행하던 청년은 멈칫 떨어져 걷지 않겠는가. 각혈한 이가 나도향. 함께 걷던 청년이 이태준.

 

: 불치의 병이 지닌 희대의 매력이 감염성이라는 것. 죽음에 이르는 이 병이 지닌 이 절대적인 매력.

 

: 여기는 도쿄, 조선인 고학생들이 모여 사는 자취방 友愛學舍(우애학사). 動則損(동즉손: 움직이면 손해)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오몽녀(1925)의 작가 이태준, 김지원, 나도향 3. 어째서 나도향이 이 틈에 끼여 있었을까. 기자직을 잃고 고료만으로 살던 나도향이 소설 공부차 도일하였으나 호구지책도 어려웠고 이미 결핵이 깊어 있었다. 재도일한 염상섭이 본 바에 따른다면 자기의 병을 익히 아는 나도향은 홧김에 술도 마시고 담배도 빨았다.(염상섭의 증언). C라는 여인을 짝사랑하여 마지 않았다. 최후작 피묻은 편지 몇 쪽(1926)의 집필 현장에 있던 이태준은 기침으로 숨막히는 목소리로 나도향이 읽어내려가던 C에게 보내는 연서를 듣고 또, 들어야 했다.

 

: 결핵으로 죽는 것, 죽음에 빨리 그리고 철저히 이르기야말로 문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의식, 그것이 나도향의 죽음으로 일단락되었다. 여기에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그렇다며 그 결핵이 란 무엇인가.

 

: 낭만파 문학의 메타포라 할 수 없을까. 결핵을 매개로 한 문학이 낭만파 문학이라 함은 18세기 중반 이후 널리 퍼진 사상이었지요. 건강함이란 야만스러움이며 세련된 성품의 감수성은 병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도출된 이 취향의 유행이 낭만파문학을 낳은 모태였지요.

 

: 그렇다면 결핵의 비참함과는 관계없는 취향의 일종이었다는 것입니까. 병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논리의 패러다임에 관련되 것이겠군요.

 

: 셸리와 키츠가 이 병에 잔혹하게 당했거니와 셸리가 키츠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결핵이 그대같은 멋진 시를 쓰는 자를 좋아한다라고. 문제는 결핵이라는 병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 코흐의 병원체 발견 이래 얼마든지 치유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럼 어디 있는가. 결핵이 현실적인 육체의 병과 분리되어 하나의 메타포로 사용되었음에 있지요. 이 메타포에서 해방되지 않는한 결핵은 정복되지 않는다는 것(S 손탁,메타포로서의 병,1977)

 

: , 알겠다.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이태준에 와서 우리문학은 낭만파문학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명제.

 

: 나도향에 있어 결핵이 가문(전통)을 버리고 가출(예술)함으로써 얻어진 그 무엇의 메타포였다는 것. 그 얻어진 세계가 궁핍이었다는 것. 이것이 비극적인 것은 궁핍이 근원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시대적 혹은 식민지적 궁핍으로 한정된 까닭. 나도향의 죽음이 전 文壇적으로 애처로움의 범주에서 인식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되지 않았을까. 결핵이 근원적인 의미층으로 인식된 것은 이태준에 와서야 아닐까. 까마귀(1936)에서 이 점이 뚜렷하지요.

 

: 독신작가가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인텔리여성을 관찰하는 작품.

 

: 글쓰기(소설)가 바로 황홀경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이 독신작가의 존재야 말로 주목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장정 고운 신간서같이 생긴 여인과 그것이 풍기는 세련된 분위기. 글쓰기가 그럴 수 없이 즐겁다는 이 자기황홀증 환자가 거는 자기 최면. 그것이 무서록의 세계이고, 문장강화의 저 도도한 의고체 스타일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 사이비 세련성을 예술성이라 착각하지 않았을까. 한 대목을 볼까요.

 

폐병! 그는 온전한 남의 일같지 않게 마음에 씌었다. 그렇게 예모 있고 상냥스런 대화를 지껄일 수 있는 아름다운 입술이 악마같은 병균을 발산하리라는 사실은 상상만 하기에도 우울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될 수만 있으면 그를 위로해 주고 그와 더불어 자기의 빈한한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까마귀)

 

: 그렇다면 스물 세 살이오. 3월이요. 각혈이다---(봉별기, 1936)라고 외치는 날개의 작가 이상은 어떠합니까. 선생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부근이겠는데---.

 

: 그렇소. 신간서 장정의 멋진 세련성 따위가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겠는가. 메타포로서의 결핵의 내용, 그것은 자기 소모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소비, 낭비, 생명력의 소모등 자본주의의 마이너스적인 측면에 이상문학이 대응되었던 것. 방법으로서서의 결핵이었지요. 이상문학에 이르러 낭만주의 문학이 극복되었다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입니다.

<한국일보, 1996. 5. 17>

 

 

창작 방법론의 두 갈래

 

: 일본 강도 정치 하에서 문화 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이냐(단재)에 응답하는 문학의 앞자리에 카프 문학이 놓였던 것이라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문제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나아갈 지평 확인, 그것에 상응하는 현실의 성숙, 지식인으로서의 작가 등이 그것. 코민테른, 도시 노동자의 증가, 지식인으로서의 작가 증가 등의 조건이 31운동 이후 대두 또는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보겠지요.

 

: 카프 문학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문학 개념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A)작품으로서의 문학(B) 운동으로서의 문학 (C)글쓰기로서의 문학. 작가의 책임하에 쓰여진 것이 (A)이기에 해석(평가)도 유일해야 하는 범주. 이념을 드러내는 문자행위 과정 전체가 (B)인 만큼 선전 삐라거나 벽신문이거나 심지어 작품 하나 없더라도 문학으로 성립되는 범주, 제멋대로 괴발개발 쓰기가 (C)이기에 독자도 제멋대로 읽으면 그만인 범주. 이른바 해체주의가 이에 속할 것.

 

: 카프 문학은 (B)범주입니까.

 

: 좋은 질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리얼리즘계든 모더니즘계든 (A)범주 아니겠는가. 우리 문학사에서 (B)범주의 도입은 카프 문학에서부터라고 볼 것입니다. (B)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카프문학은 두 범주의 갈등을 숙명적으로 안고 고투를 겪어야 했지요. 때로는 (B) 범주가 우세해야 했지만 끝내는 (A)범주에 수렴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 예술과 실천이랄까 정치와 문학의 그 상극적 관계의 난점들, 가령 유명한 내용과 형식 논쟁도 그 일환이겠지요.

 

: 카프계 비평가 김팔봉이 월평에서 동지 박영희의 소설 사냥개(1925), 지옥순례(1926)를 혹평한 바 있었지요. 기둥도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있는 집도 있느냐라고. 소설은 건축이니까 갖출 것은 다 갖추어야 한다는 논법이지요. 박영희의 반론이 즉각적으로 일어났고 드디어 카프 내의 큰 논쟁으로 확산되었지요.

 

: 승부나기가 어려웠겠군요. (A)범주(김팔봉) (B)범주(박영희)의 대결이니까.

 

: 범주끼리의 대결이라는 점에 이 논쟁의 비평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승패란 쉽사리 날 수 없었겠네요. 당장 싸워야 하는 마당에 형식을 갖출 틈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명제도 용인될 수 있으니까. 이럴 경우 상식적으로는 카프의 조직이 결정권을 행사했겠군요.

 

: 정확합니다. 카프 조직 측에서 박영희쪽을 지지했던 것. 그렇다면 카프조직이란 무엇인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카프문학인 중 이른바 공산당원은 도쿄지부의 이북만을 별도로 친다면, ML당원이자 김팔봉의 친형인 조각가 金復鎭(법주사 미륵상 조각자)뿐이었지요.(훗날 그는ML당 사건으로 복역한 바 있음). 김복진의 주선으로 내용형식 논쟁은 일단락이 졌지요.

 

: 코민테른의 지령과는 전혀 무관했습니까?

 

: 현재까지는 거의 그런 것 같습니다.

 

: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불러들인 갈등은 필시 대중화 문제를 몰고 오지 않았을까요.

 

: 맞소. 당초 카프문학이란, 지식인의 사회개혁(반제반봉건)운동의 일환이었던 것. 지식인의 이러한 문학운동이란 고도의 수준이어서 정작 해방되어야할 무산 근로대중은 이해할 수도 ,읽고 즐길 수도 없지 않았던가. 무산대중에 읽힐 수 있는 문학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카프 내부에서 나올 수 밖에.

 

: 역시 어려웠겠지요. 김팔봉이 춘향전 식의 쉽고 흥미 있는 작품을 쓰자고 하면, 소장파는 그게 오락이지 어디 운동이냐고 반박했을 테고.

 

: 벽신문이 등장했고, 또한 슈프레히코르(Sprechchor)라는 시운동 형식도 등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특수한 형식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겠지만, 역시 문학과 정치의 관계라면 정도를 걸을 수 밖에. (A)범주에로 나아가기. 리얼리즘의 길.

 

: 신경향파 문학, 무산파문학, 프롤레타리아문학, 카프문학 등의 용어들이 있어 자주 혼선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한데요. 운동의 단계적 전개에 따른 명칭인가요?

 

: 원래 경향문학(Trenzdichtung)이란 독일 청년좌파들의 용어. 정치적 문학을 가리켰던 것. 여기에 자를 붙인 것이기보다는, 31운동 이후 전개된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라는 뜻으로 박영희등이 1924개벽에서 사용한 것.

개인의 향락문화에서 조선현실을 직시하는 사회적 문학의 뜻.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 무산파문학. 무엇이 무산계급이냐, 이 문제는 소련에서 벌어진 크로츠키와 마이스키의 논쟁에서 보듯, 과도기 명칭. 이론가 박영희가 신경향파문학이냐 무산파문학이냐를 문제제기한 것은 19272월이었지요.

 

: 1차 방향전환(1927.9) 이전이군요.

 

: 그렇소. 1차 방향전환 때부터 카프라는 용어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문학이라는 사류적 용어와 함께 일반화하지요. 카프문학이란 그러니까 뚜렷한 목적의식을 내포한 용어법. 1차 방향전환을 두고 목적의식기라 부릅니다. 자연발생적 단계와 뚜렷이 구분됩니다. 계급투쟁 목표를 설정함이란 의식적 행위이니까.

 

: 선생의 저술에서보면 제1차 방향전환 때부터 카프의 집행부를 비롯, 회의내용도 상세히 보고되어 있더군요. 신간회와의 관련 및 카프 도쿄지부와 소장파들의 연결 문제도 등장하고---.

 

: 그보다 자연발생적인 신경향 문학과 목적의식기에 접어든 방향 전환 이후 문학과의 차이, 곧 이른바 창작방법론(지도원리로서의 리얼리즘)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문학 과제에 속할 것입니다.

 

: 조명희(포석)의 단편 낙동강(1927)을 이 시기의 가작으로 꼽지 않습니까. 검열에 의한 伏字가 하도 심하여 건너뛰어야할 대목이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감동적으로 읽히던데요.

 

: 소련으로 이주한 작가 자신이 1930년에 이 복자부분을 복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소련 당국의 의혹으로 불행하게 죽었지만 조명희 선집(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 1959)에서 복원된 낙동강을 볼 수 있지요. 앞에서 감동적으로 읽혔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렇던가요.

 

:낙동강변에서 낳고 농업학교를 나온 주인공 박성운은 민족주의자. 5년간 만주, 노령, 북경, 상해등지를 다니며 투쟁하는 동안 그의 사상에 큰 변화가 생기지요.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것. 그렇지만 그는 계급의식만을 독선적으로 내세우지 않던데요.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적 연장으로 계급사상을 내세웠던 것. 요컨대 어느 사상도 인간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또한 이 작품엔 박성운의 애인인 백정 집안 출신의 여교사 로사(로사 룩셈부르크에서 이름을 딴 것)의 등장도 인상적이었으며, 만장을 수없이 거느린 박성운의 장례식 행렬과 낙동강 뱃노래의 대합창도 인상적이었지요. 서사시적 감동이라고나 할까.

 

: ---.

 

: 한가지 물어보고 싶군요. 예의 그 복자에 대한 것. 「○○○는 계급이 생기고 ○○○지는 계급이 생겼다. 같은 복자는 추측해 낼 수 있습니다. 다스리」 「다스려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추측조차 하기 어렵더군요. 그러던 터에 ○○○○○○○(7) ○○○○○○○○○○○○○○○○○○○(20). 작가 자신이 복원한 텍스트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엎친데 덮친다고(7) 난데없는 이리떼같은 무리가 닥쳐와서 물러 악지르며 빼앗아 먹었다(20)

 

: 목적의식기의 창작방법론이란 낙동강같은 것입니까?

 

: 낙동강이 차지하는 창작방법(리얼리즘)의 중요성은, 방금 보신대로 구체적인 삶에 바탕을 둔 원숙성, 다시 말해 예술적 형상화에 있었던 것. 이를 리얼리즘의 원론적 범주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 범주는 원론으로 작용하는 것인만큼 어떤 특정한 단계의 창작방법론과 구분해야 되겠지요.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목적의식기(1차 방향전환)로 이행하는 것에 비평샂거 의의가 있다는 논법입니까? 원론보다는 시대적 의의랄까.

 

: 운동으로서의 문학범주에서보면 그렇지요. 가령 최서해의 홍염(1927)을 볼까요. 서간도 조선인이 빚으로 중국인지주에게 딸을 빼앗기자 어느 밤 지주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지죽를 도끼로 쳐죽이지 않습니까.

 

: (1)소재는 궁핍한 것 (2)구성은 지주(공장수)대 소작인(노동자)의 대립구성 (3)결말은 살인 방화. 이것이 이른바 자연발생적인 단계의 창작방법론. 요컨대 매개항이 없는 단세포적인 구도. 승산없는 일종의 자폭행위라고나 할까.

 

: 허무주의가 아니라 승리하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 사회걔혁운동이라면 치밀한 전술전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기영의 농부 정도룡(1926), 이 점에서 썩 문제적이지요.

 

:소작인 대 지주의 대립 사이에 매개인물 정도룡이 끼어든 구도이겠군요.

 

: 그렇소. 3자의 개입이야말로 이후의 창작방법론을 결정한 기본항. 3항이란 무엇인가. 가령 농부 정도룡의 경우 정도룡은 그 마을 출신일 수도 있고 외지에서 들어온 이질분자일 수도 있지요. 이 국외자는 다른 세계에 속했던 만큼 정보도 지식도 월등히 많이 갖고 있기에, 지주의 허점도 농민의 허점 및 그 잠재력도 알고 있지요. 더구나 그가 사회주의사상에 물든 인물이라면 선동자로 군림하겠지요. 그 자신은 희생될 것이고, 대신 농민노동자의 의식수준은 한 단계 높여질 것이고.

 

: 선생은 지금 루카치가 말하는 문제적 개인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설이 한갖 오락이나 잡스러운 산문이 아니라는 그런 논법 아닙니까.

<한국일보, 1996. 5. 31>

 

이론과 실천-물논쟁

소설의 운명에 관련하여

 

: 카프 문학이 운동으로서의 문학 범주에 기울어지면 그럴수록 전술전략의 치밀성이 문제되겠지요.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아나키즘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점이 여기에 있겠지요. 이른바 창작 방법론이란 단계별 전술전략에 대응되는 것이겠는데, 2차 방향전환론이 궁금합니다.

 

: 재건 공산당사건(공산주의협의회 사건)이 터진 것은 193110. 高景欽(고경흠) 17명이 종로서에 체포된 바 있습니다. 코민테른의 이름바 19288월 테제(한 나라엔 공산당도 하나여야 한다는 것)에 따라 조선공산당도 해체되기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朝共이 중국공산당 또는 일본공산당에 흡수될 수 밖에. 국가가 없으니까. 그러나 1931년에 와서 韓偉鍵, 梁明, 高景欽등이 일본, 중국 등지를 왕래하여 공산당 재건 운동을 펼쳤는데, 여기에 카프 문인들이 관여되어 체포되기에 이른 것. 임화(19081953), 김남천(1911?), 안막, 김팔봉, 이기영 등이 그들. 이를 두고 전주사건(193435)과 구별하여 카프 제1차 검거사건이라 부릅니다.

 

:카프문인엔 김복진을 빼면 당원이 없지 않았습니까?

 

: 카프문인 중 기소된 문사는 김남천(본명 金孝植) 뿐이지요. 나머지는 3개월 유치장살이에 지나지 않았고. 김남천의 경우도 이 사건과는 관련없 었지요. 평양 고무공장 파업에 관여했기에 기소된 것이니까.

 

: 감옥에서 나온 조선의 바렌티노 임화(조선일보, 1932.1.7)란 정확히는 감옥이 아니라 유치장(기소 이전)살이를 겪은 것이었겠군요. 진짜 감옥살이를 한 김남천은 얼마나 복역했습니까.

 

: 1년 반. 이 사실은 카프운동사에서는 두 가지 의의가 있지요. 하나는 이른바 제3전선파의 등장에 관련된 것. 박영희, 김팔봉등 카프계를 누르고 등장한 제3전선파는 도쿄(동경)에서 귀국한 소장파들. 임화, 김남천, 안막, 홍효민, 한식 등이 그들. 카프 도쿄(東京)지부가 생긴 것은 1927년 제 1차 방향전환 무렵이며 중심인물은 일본공산당 소속 이북만. 이른바 무산자의 중심인물 이 소장파들이 귀국하여 카프 헤게모니를 쥐게 됩니다. 서기장 임화를 비롯, 이들이 공산주의자 탄압이 강화되는 시대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바로 제2차 방향전환이지요. 전위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명제가 전략이었지요. 이른바 볼셰비키화.

 

: 지하운동의 성격이란 말입니까? 전략이라면 극단으로 나갈 수 없음이 전제되지 않습니까? 그 때의 정세에 대응하여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라면 합법적으로 출판되는 매체 이용의 한계선이 이 때 무너졌단 말입니까?

 

: 카프의 공식적 해체는 1935(5.21)이지요. 그 동안 카프의 운동은 합법적인 매체의 존속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엔 카프의 내면화 과정이 전개되었고.

 

:합법적 매체의 이용이라든가 내면화의 문제란, 요컨대 작품 내의 논의이겠군요.

 

: 맞습니다.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유명한 물논쟁의 의의를 파악하기 어렵지요. 작품으로서의 카프문학이지 운동으로서의 카프문학일 수 없는 그런 상황의 대두가 물논쟁에 관련되어 있지요.

 

: 출옥한 김남천이 맨 먼저 쓴 작품이 단편 !(1933.6) 아닙니까. 내용이 썩 단순하더군요. 두 평 칠 합(二坪七合)의 감방에 13인의 수인이 29도나 되는 삼복더위에 시달릴 때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물이라는 줄거리더군요.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 의 옥중 체험기라고나 할까. 좀 특이한 것은 작품 끝에 작가의 맨 얼굴 드러내기가 달린 점이라고나 할까. 백도의 여름이 다시 오련다. 이 한 편을 여름을 맞는 여러 동무들에게 올린다라고.

 

:이 작품에 대해 월평에서 임화가 혹평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두 사람 사이에 대논쟁이 벌어졌지요. 카프계 김팔봉, 박영희 사이에 벌어진 내용. 형식논쟁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 옥살이를 해보니, 이념 따위보다는 물이 제일이더라, 그러니까 문자를 쓰자면 이데올로기보다 생리적체험적 사실이 우위에 선다는 뜻으로 임화가 읽었던 모양이지요.

 

: 작품 속엔 이런 대목이 들어 있지요. 갈증을 참기 위해 오랫동안 수련 을 쌓았으나 무용했다는 것. 그 수련의 방편이 헤겔(마르크스)이었다는 것 .

사실 오랫동안의 경험은 나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것(생리적 욕구)을 가 능케 하였다. 나의 눈은 명백히 활자의 하나하나를 세었다. 꼬박꼬박 활자를 줍듯이 나의 정신은 그것에 집중하였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닥쳐올 황혼을 기다려서 비로소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십분도 못 계속하여 나는 내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활자를 읽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 활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를 모르고 읽고 있는 것이다

 

: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우위론이냐 생리적 경험주의가 우위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겠다. 과연 쟁점다운 쟁점이겠네요.

 

:카프 서기장 임화의 처지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 지요. 감옥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이념투쟁을 해야 된다는 것이 임화의 선 자리니까.

 

: 쉽게 말하면 이론과 실천의 과제 아니겠습니까. 모든 운동권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쟁점이니까.

 

: 임화가 문제삼은 것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 문제로 요약됩니다. 작품과 작가적 실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경우 작가적 실천이란 구체적으로 무 엇인가. 운동권문학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과제도 많지 않았지요. 임화의 문제 제기가 갖는 비평사적 의의가 여기 있습니다.

 

: 알겠소. 작가적 실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조류 가운데서 문제되는 실천이어야 한다. 그런데 '!'의 작 가는 어떠한가. 그런 문학운동의 연장선상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 그 구 체적인 조건들로부터 따로 떼어다가 인간적 실천 일반 가운데서 해소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베이컨류의 경험주의적 차원에 떨어져 버렸다---.

 

: 김남천의 반론은 이렇지요. 작가의 실천과 이론을 형이상학적으로 분리하는 임화는 저 데보린학파의 아류다라고. 그러나 설득력이 없지요. 김남천의 실천이, 개인적일지라도 그것을 역사적사회적으로 제약된 계급 속의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

 

: 실천이란 결코 개인적 의미의 작가적 실천에서 모든 해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문학운동의 일반적인 실천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문학운동이 종속 되어 있는 계급투쟁의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 요컨대 (1)개인적, (2)문학적, (3)계급적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실천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김남천은 (1)에 겨우 머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김남천은 감옥 속에서도 (1)갈증에서 출발, (2)헤겔(마르크스)을 똑똑히 읽어야 하며, (3)나아가 간수와 물담당 등과의 투쟁을 벌이는 그런 작품을 써야 했을 것이다.

 

: 임화 쪽이 이론상 한 수 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김남천으로도 그만한 자부심이 없을 수 없지요. 공산주의협의회 사건과 연루된 카프문인 중 기소된 것은 오직 그만이었으니까. 최초로 기소되고 복역한 김남천 그는 남다른 투쟁경력을 가졌던 것이니까.

 

: 이 논쟁에서 김남천이 받은 충격이 컸겠군요.

 

:한 동안 붓을 놓았을 정도. 그는 자기고발론을 비롯, 내적 갈등을 겪 은 끝에 남매(1937), 소년행() 등으로 서서히 자기극복에 나아가 마침내 임화의 이론과 맞서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30년대 소설계의 한 장관이라고나 할까.

 

: 30년대 중반 이후만큼 문제적인 시대는 없다는 것은 그 속에서 비로소 카프이념의 내면화가 가능했다는 뜻입니까?

 

: 그 뿐만이 아니지요. 30년대 후반이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 민주주의(공산주의) 사이에 파시즘(절대주의)이 끼어든 세계사적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나아갈 지평은 어디인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아니었던가. 민족해방을 이루는 길은 이 세가지 정세의 변화에 달렸 는 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랄까 위기의식이 충만한 시대, 소설이란 이러한 시대의 방향성 지시용이어야 했던 것.

 

: 루카치의 소설관을 비로소 실감했겠군요. 소설은 시민계급(부르주아) 의 서사시(헤겔)라는 것, 따라서 과도기적인 것이며 시민계급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 근대(시민계급)가 끝나면 대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의 변신이 불가피하다는 것.

 

: 임화가 내세운 소설의 전망을 도식화하면 주제성격사상. 한편 김 남천의 그것은 풍속관찰묘사. 이 두 도식이 30년대 후반기 소설론의 두 산맥이라 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불가능한 시대에도 이데올로기에 매달리느냐, 발자크적인 관찰(풍속)에 매달리느냐.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 소설사는 장편(Roman)의 본질에 직면하지요.

 

: 김남천의 유명한 평론 '소설의 운명'(1940)이 그런 것입니까?

: 루카치의 이론을 처음으로 수용한 이 평론의 의의는 무엇인가. '리얼 리즘의 길밖에 없다'로 요약되는 곳에서 찾을 것입니다.

<한국일보, 1996.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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