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의 배리 / 지허
by 송화은율식욕의 배리 / 지허
<전략>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 군불을 아궁이에 꽃불이 죽고 알불만 남으면 고방에서 감자를 몇 되박 훔쳐다가 아궁이에 넣고 재로 덮어버린다. 저녁에 방선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감자구이 담당 스님이 아궁이로 감자를 꺼내러 간다. 뒷방에서는 공모자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기다린다.
감자는 아궁이에서 몇 시간 동안 잿불에 뜨뜻하게 잘 구워졌다. 새까만 껍질을 벗기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맛은 틀림없이 삶은 밤맛이다. 서너개 먹으면 허기가 쫓겨간다. 잘 벗겨 먹지만 그래도 입언저리가 새까맣다. 서로를 보며 웃는다. 스릴도 있고 위의 사정도 좋아지니 여유가 생겨서다.
처음에는 화대스님이 주동이 되어 몇몇 스님만 방선 후에 아궁이 앞에서 재미를 보았는데
이제는 뒷방에서 재미를 본다. 살림살이 책임자인 원주스님은 큰방에서 자지 않고 별채에 있는 원주실에서 잔다. 그러기 때문에 뒷방의 감자구이가 가능하다.
규모가 커졌다. 공모자가 많으니 감자의 절취량도 많아야 한다. 감자껍질 뒤처리는 당번스님이 철저히 한다. 그러나 계량심(計量心)의 천재인 원주스님이 감자가 없어지는 것을 오래도록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대중공사를 열어서 감자를 구워먹지 못하게 할 정도로 꽉 막힌 스님은 아니다. 그래서 고방문에는 문고리가 박아지고 자물통이 채워졌다. 그러나 감자구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감자구이 공모자 가운데 못과 손톱깎이만 있으면 웬만한 자물통은 다 따는 스님이 있다. 이 스님의 재주를 미처 몰랐던 원주스님의 실책이었다.
아무 말 없이 감자 유출을 막기 위한 비상책을 강구하던 원주스님이 강릉을 다녀왔다.
손에는 큼직한 번호 자물통이 들려있었고 틀림없이 고방에 채워졌다.
그러나 감자구이는 계속되었다. 그날 감자구이 당번은 40대의 원두스님인데 이 스님은 묘한 습성이 있는 분이다. 어느 절엘 가거나 절간 방에 문이 채워져 있으면 돌쩌귀를 뽑아 버린다. 중이 감출게 무엇이 있으며 도둑맞을 것은 무엇이 있느냐면서 중생의 업고와 무명을 가두어 놓은 것 같아 갑갑하다는 지론을 가진 스님이다.
<하략>
지은이 : 지허
갈래 : 수필
문체 : 간결하고 담백한 이야기체
성격 : 교훈적, 일화적
주제 : 식욕의 배리를 이용한 스님의 지혜
출전 : 산방일기(禪房日記)
내용연구
겨울철에 구워먹는 상원사의 감자맛은 일미다. 선객[참선하는 중]의 위 사정이 가난한 탓도 있겠지만 장안 갑부라도 싫어 할 리 없는 맛이 있다.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 군불을 아궁이에 꽃불[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이 죽고 알불[무엇에 싸이거나 담기지 않은 불등걸, 재 속에 묻히거나 화로에 담기거나 하지 않은 불등걸]만 남으면 고방에서 감자를 몇 되박 훔쳐다가 아궁이에 넣고 재로 덮어버린다. 저녁에 방선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감자구이 담당 스님이 아궁이로 감자를 꺼내러 간다. 뒷방에서는 공모자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기다린다.
감자는 아궁이에서 몇 시간 동안 잿불에 뜨뜻하게 잘 구워졌다. 새까만 껍질을 벗기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맛은 틀림없이 삶은 밤맛이다. 서너개 먹으면 허기가 쫓겨간다. 잘 벗겨 먹지만 그래도 입언저리가 새까맣다. 서로를 보며 웃는다. 스릴도 있고 위의 사정도 좋아지니 여유가 생겨서다.
처음에는 화대스님이 주동이 되어 몇몇 스님만 방선[참선을 끝냄] 후에 아궁이 앞에서 재미를 보았는데
이제는 뒷방에서 재미를 본다. 살림살이 책임자인 원주스님은 큰방에서 자지 않고 별채에 있는 원주실에서 잔다. 그러기 때문에 뒷방의 감자구이가 가능하다. - 뒷방의 감자구이 공모
규모가 커졌다. 공모자가 많으니 감자의 절취량[훔치는 양]도 많아야 한다. 감자껍질 뒤처리는 당번스님이 철저히 한다. 그러나 계량심(計量心 : 여러 가지 심리적 현상을 수량적으로 측정하고 기술하는 학문을 계량심리학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심리를 읽는 능력)의 천재인 원주스님이 감자가 없어지는 것을 오래도록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대중공사를 열어서 감자를 구워먹지 못하게 할 정도로 꽉 막힌 스님은 아니다. 그래서 고방문에는 문고리가 박아지고 자물통이 채워졌다. 그러나 감자구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감자구이 공모자 가운데 못과 손톱깎이만 있으면 웬만한 자물통은 다 따는 스님이 있다. 이 스님의 재주를 미처 몰랐던 원주스님의 실책이었다.
아무 말 없이 감자 유출을 막기 위한 비상책을 강구하던 원주스님이 강릉을 다녀왔다.
손에는 큼직한 번호 자물통이 들려있었고 틀림없이 고방[광 :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에 채워졌다.
그러나 감자구이는 계속되었다. 그날 감자구이 당번은 사십대의 원두 스님인데 이 스님은 묘한 습성이 있는 분이다. 어느 절엘 가거나 절간 방에 문이 채워져 있으면 돌쩌귀를 뽑아 버린다. 중이 감출게 무엇이 있으며 도둑맞을 것은 무엇이 있느냐면서 중생의 업고[억압으로 받게 되는 괴로움]와 무명[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을 가두어 놓은 것 같아 갑갑하다는 지론을 가진 스님이다.
<하략>
이 글은 스님들의 산 속 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화를 소재로 한 수필이다. 서술자의 간결하면서도 구수한 말솜씨와 등장 인물들의 정갈한 마음씀이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고방에 둔 감자가 계속해서 없어지는 것은 안 원주 스님은 욕망의 이면, 곧 배리[이치에 맞지 않음]를 이용하여 문제 상황을 해결한다. 욕망의 흐름을 억지로 막기보다는 그 흐름의 배리를 이용하여 지혜롭게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에서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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