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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 안도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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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 안도현

 

경북점자도서관에서 황송하게도 <연어>하고 <관계>를 점자책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포항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끝난 뒤에 강당에 엉거주춤 서서 강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 앞에서 (제가 무얼 좀 알아서가 아니라) 시적인 삶에 대해 말하는 동안 무지하게 땀이 많이 났습니다. 시적인 삶이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할 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색칠할 때 하늘색 크레파스만 쓰는 아이의 관찰의 수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앞에 백 명도 넘는 부처님들이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앉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줄곧 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초청 연사인 저를 덜 부끄럽게 하려고 그 분들은 일찍부터 고요히 눈을 감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부끄러워져서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연단에서 내려오는데 박수 소리가 마구 제 귀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만 아득해져서 문득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운주사에 처음 갔을 때 저는 두 눈 없는 불상 앞에 서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스스로 두 눈알을 손가락으로 후벼내어 기꺼이 세상에 던져 버리셨구나.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구나.

 

그런데 포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누군가 넣어준 강연료 봉투를 슬쩍 열어 보는 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는 뜨거워졌습니다. 거기에 삼십만원이 들어 있는 것을 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확인하고 있었던 겁니다. 장애인복지관에 그걸 맡길까 말까 하다가 하루 시간 다 까먹은 것 아까워서 그냥 모른 척하고 넣어 온 건데 참으로 멀었습니다. 시적인 삶에 이르려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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