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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법(詩法) /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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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법(詩法) /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져지고 묵묵해야 한다.

 

엄지에 닿는 낡은 메달처럼

소리 없고

 

이끼 자라난 소매에 닳은

창시렁의 돌처럼 조용해야 한다.

 

시는 새들의 비약처럼

말이 없어야 한다.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달이 밤에 얽힌 나무로부터

가지를 하나하나 풀어 놓듯이

 

겨울 잎새 뒤에 있는 달이

마음에서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 놓듯이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시는 사실이 아니라

동등해야 한다.

 

슬픔의 모든 내력으로는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사랑의 경우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에 뜬 두 불빛을-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요점 정리

작자 :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서정적. 주지적

어조 : 시의 당위를 강조하는 설득적 목소리

심상 : 비유적. 상징적

구성 :

1-4연 : 시의 묵묵함

5-8연 : 시의 정물감

9-12연 : 상징을 통해 드러나는 시의 존재

제재 : 시(詩)

주제 : 의미(意味)에 앞서는 시의 존재성(存在性)

내용 연구

묵묵(默默) : 말이 없음. 잠잠함

시렁 : 물건을 얹기 위해 건너지른 두 개의 장나무

비약(飛躍) : 높이 뛰어오름

내력(來歷) : 어떤 사물이 지나온 유래

시는 둥근 과일처럼 / 만져지고 묵묵해야 한다. : 시를 둥근 과일에 비유하고 있다. 둥근 과일은 그 자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만질 때 어떤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시는 사실이 아니라 / 동등해야 한다. : 시는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 그 자체이다.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 슬픔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로 온갖 슬픔의 사연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텅 빈 문간에 단풍잎 하나면 된다는 뜻이다. 즉 인적이 끊어진 어느 슬픈 집안의 쓸쓸한 분위기를 '객관적 상관물'로 제시해 주면 된다.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에 뜬 두 불빛 :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로 사랑을 과학적·일상적 어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시에서는 이처럼 설명의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된다. 시에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의 두 불빛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객관적으로 제시해 주면 그만이다.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 존재해야 한다. : 시란 어떤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생명과 자기 충족적인 미를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매클리시 시론을 압축시켜 제시한 구절이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제목이 환기시키듯 시로 쓴 '시론(詩論)'이라고 할 수 있다. '시론'에 대해서는 여러 시 이론가와 평론가들이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시인들도 시로써 시론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시로써 시론을 쓸 경우에는 추상적인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서 구상화시켜 독자들에게 정서적으로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시의 이론을 한결 실감나게 이해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효과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갖가지 비유를 통해 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이 시의 핵심은, 시란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시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생명과 자기 충족적인 미(美)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제일 마지막 구절인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 존재해야 한다.'란 대목은, 바로 이러한 시인의 시론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명구라고 할 수 있다.(출처 : 최동호 외3인 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 1892- )

미국의 시인.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법률학을 전공하여 한 때 변호사 생활을 한 적도 있다. 1923년 파리로 건너가 엘리엇 파운드의 영향 아래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시극에 깊은 관심을 보여, 작품으로 "공황", "도시의 함락" 등의 우수한 시극을 남겼다.

서정주의 시론(詩論)

시론(詩論)

바닷속에서 전복 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준단다.

詩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과 유사성

매클리시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론의 선구자인 엘리엇의 영향을 받았다. 엘리엇의 문학관은 인간의 이성과 지적인 현실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개인의 정신적 자유을 추구하였다. 엘리엇은 시란 어떤 특정한 정서와 동일한 이미지나 일련의 이미지, 또는 어떤 장면 등 객관적 사물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으로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시에서 주장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시는 어떤 진실(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과 동등한 별도의 객관적인 실체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사실이나 진실을 다루는 것은 과학의 임무이고, 시의 임무는 상징에 있다. 이것을 예증하기 위해 시인은 '슬픔'과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객관적 상관물

시작(詩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것을 나타내 주는 어떤 사물, 정황, 혹은 일련의 사건을 발표하여 표현해야 한다. 이러한 사물, 정황 사건을 객관적 상관물이라 한다. 엘리어트의 「햄릿과 그의 문제들」이라는 에세이에서 우연히 소개된 이 용어가 그 이후 문학비평에서 엘리어트 자신도 놀랄 정도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예술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것, 즉 `특별한 정서의 공식이 되어야 하는, 사물의 한 장면이나 상황, 사건의 한 연쇄를 발견하는 것'이며 이것은 독자로부터 똑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엘리어트의 공식화는 흔히 시인의 실제적인 시작(詩作) 방법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어느 대상이나 상황은 그 자체로서 어떤 정서를 위한 공식이 아니고, 그것의 정서적 의미와 효과를 계기로 시인에게 포착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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