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병 환자(時代病患者) - 박세영
by 송화은율시대병 환자(時代病患者) - 박세영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지식인이 겪는 시대고(時代苦)와 불안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전쟁 준비에 더욱 몰두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일제의 병참 기지로 전락하게 되고,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지식인의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진다. 이 시에는 이러한 1930년대 후반의 현실이 숨을 쉴 수 없는 질식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스스로를 ‘시대병 환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을 ‘환자’라고 보아 주는 이가 전혀 없을 정도로 현실은 이미 회복 불능의 중증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사람들은 무감각하게[익숙하게]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시는 전체 내용으로 보아 2단락으로 구성된다. 1~4연은 ‘완연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도시의 일상적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도시의 객관화되어 있는 풍경의 모습 속에는 은연중 시적 자아의 불안 심리가 투영되어 있어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들여다 보인다. 1연에서 ‘솔개미가 빙빙 단엽기같이’ 날고 있는 모습에서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솔개’의 살기 등등한 눈매가 느껴지는 동시에, ‘단엽기같이’라는 비유에서 보듯, 솔개를 ‘단엽기’, 즉 전투기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역시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은근한 풍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연에서의 ‘나팔을 불고 지나가’는 ‘청년단원’과 ‘쉴 새 없이 도심지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트럭, 3연에서의 ‘보루’ 같은 ‘고사포’와 ‘콩크리트 굴둑’ 등의 시어에서 보듯,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자아의 불안 의식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늘어만 가는 ‘고사포’를 깨닫는 자신의 눈이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빠지게 되고, 결국 5연에서 보듯 자신을 ‘독까스를 마신 질식한 사나이’로, ‘시대병 환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무력감에 빠뜨리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환자’로 보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는 그 시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실 의식을 잘 보여 준다. ‘솔개미’․‘단엽기’․‘무장’․‘청년단원’․‘나팔’․‘트럭’․‘도심지대’․‘보루’․‘병원’․‘고사포’․‘콩크리트 굴둑’․‘공장’․‘독까스’․‘질식’․‘환자’ 등에서 보듯, 도시와 전쟁의 이미지의 시어들이 각 연의 ‘―다’의 단정적 진술과 어울려, 현실의 암담하고 질식할 것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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