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수레 제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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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 제도

수레는 천리로 만들어져 땅 위에 다니는 것이며, 뭍을 다니는 배이고 움직이는 방이다. 나라의 쓰임 가운데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례)에서 임금의 재산에 대해 물었을 때에 수레가 많은지 적은지로써 대답했으니, 수레는 비단 싣고 타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레 가운데도 융거(戎車)·역거·수차(水車)·포차(砲車) 등이 있어서 천백 가지의 제도가 있으므로, 이제 창졸간(倉卒間)에 이루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내가 일찍이 담헌 홍대용, 참봉 이성재와 더불어 수레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수레의 제도는 무엇보다도 궤도를 똑같이 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수레가 천이고 만이고 간에 그 바퀴 자리는 하나로 통일될 것이니, 이른바 거동궤라는 게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다. 만일 두 바퀴 사이를 마음대로 넓히고 좁힌다면, 길 가운데 바퀴자리가 한 틀에 들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천리 길을 오면서 수없이 많은 수레를 보았는데, 앞 수레와 뒤수레가 언제나 한 국을 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애쓰지 않고도 같이 되는 것을 일철(一轍)이라 하고, 뒤에서 앞을 가리켜 전철(前轍)이라 한다. 성 문턱 수레바퀴 자국이 움푹 패어서 홈통을 이루니, 이게 바로 성문(城門)지궤(之軌)이다. 우리 나라에도 전혀 수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우리 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하고 말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을 뿐이다. 만일 수레가 다닌다면 길은 저절로 닦이게 될 테니, 어찌하여 길거리가 좁고 산길이 험하다고 걱정하랴.(중략)

중국에서 검각 아홉 굽이의 험한 잔도(棧道)나 태행의 양장(羊腸)처럼 위태한 고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수레를 채찍질하여 지나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래서 관, 섬, 천, 촉, 강, 절, 민, 광같이 먼 곳에도 큰 장사꾼들이나 또는 온 가족을 이끌고 부임하러 가는 벼슬아치들의 수레바퀴가 서로 이어져 마치 자기 집 뜰 앞을 거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렁차게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대낮에도 늘 우레 치는 것처럼 끊이지 않는다. 마천 청석의 고개와 장항, 마전의 언덕들이 어찌 우리 나라의 고개나 언덕들보다 덜 위험하겠는가? 그 가파른 곳, 막힌 곳, 험한 곳, 높은 곳을 우리 나라 사람도 모두 목격하였지만, 그렇다고 수레를 없애고 다니지 않는 곳이 있던가? 이러므로 중국의 재산이 풍족할 뿐더러 한 곳에 지체되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는 것이 모두 수레를 쓰는 이익일 것이다. / 이제 가까운 예를 든다면, 우리 사신 일행이 모든 번폐로움을 없애 버리고 우리가 만든 수레에 올라타고 바로 연경에 닿을 텐데,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영남 어린이들은 백하(白蝦)젓을 모르고, 관동 백성들은 아가위를 절여서 장 대신 쓰며, 서북 사람들은 감과 감자의 맛을 분간하지 못한다.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이나 하니 이렇게 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요점 정리

작자 : 박지원

형식 : 논설적 수필

성격 : 비평적

주제 : 수레 도입의 필요성

내용 연구

수레가 많은 지 ~ 아님을 알 수 있다 : 수레의 많고 적음이 왕권의 정도, 경제력 등을 평가하는 수단이었으므로, 단지 교통 수단으로서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의미

두 바퀴 사이에 ~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 수레 이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규격이 통일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잔도 :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듯이 하여 만든 길

양장 ; 고불꼬불하고 험한 산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아가위 : 산사나무 열매로 맛이 시며 껍질이 단단함.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임

영남 어린이들은 ~ 분간하지 못한다 : 수레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전국에 유통되지 못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그 물품을 접할 수 없음을 지적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실학자 박지원이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의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기행문 '열하일기'의 일부분으로 당시 조선 사회를 문약에 빠뜨린 성리학과, 국론 분열을 낳은 당쟁을 모두 지양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여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실용적 학문을 하자는 취지로 쓴 글이다. 우리나라가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길이 험해서라기보다는 수레를 쓰겠다는 의지가 없어서이고, 결과적으로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부해질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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