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송인(送人)

by 송화은율
반응형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요점 정리

 

지은이 : 정지상

갈래 : 7언 절구의 한시

연대 : 고려 인종 때

성격 : 애절하고 우수적임, 서정적, 송별

어조 : 이별을 슬퍼하는 애상적인 목소리

운자 : 다, 가, 파.

구성 : 시상의 전개상 '기 - 승 - 전 - 결'으로 해야 자연스러울 것다. 그러나 칠언절구는 1,2,4구에 압운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운자를 맞추기 위해 전구와 결구를 서로 바꿔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기) 강변의 서경 - 서러움의 봄빛

(승) 이별의 전경 - 이별의 슬픔

(전) 이별의 한 - 대동강 물의 원망

(결) 이별의 정한 - 이별의 눈물

주제 : 임을 보내는 정한, 이별의 슬픔

의의 : 별리(別離)를 주제로 한 한시의 걸작이며, 당나라의 왕유(王維)의 시 '송원이사안서(宋元二使安西)'와 함께 이별시의 압권(壓卷)이라 칭송한다.

특징 : 자연 현상과 화자가 처한 상황이 대비되어 나타나고, 화자의 정서가 깊은 강물의 흐름과 어우러짐. 시어의 운율 역시 비애감이 확장되고 지속됨을 느낄 수 있도록 함.

출전 : <파한집(破閑集)>

내용 연구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 서러운 봄빛이 가득함 - 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 이별의 전경과 슬픔 - 승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 이별의 한 - 대동강 물의 원망 - 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 이별의 정한 - 이별의 눈물 - 결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비 갠 뒤 싱그러운 자연(시각적 색채 심상 - '결구'와 호응) / 화자의 심정과 대비되는 경치]

그대를 남포[이별의 공간, 특정 지명 사용 - 시의 구체성과 함께 향토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킴 / 대동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에서 보내며[시적 상황으로 화자의 처지는 이별을 하고 있음] 슬픈 노래[시상이 집약된 구절 /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 청각적 이미지] 부르네.

대동강[이별의 공간]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설의적 표현으로 시상 전환의 기능 / 전구와 결구의 도치법 사용],

이별의 눈물[강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 해마다 푸른 물결[색채 이미지 - 이별의 정한을 한기 / '풀빛'과 시각적으로 어울림]에 더하는 것을['과장법'을 통해 이별의 정한을 극대화 / '이별 눈물'을 통해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대동강 가에서 이루어지는 빈번한 이별 때문이라고 과장함].

 

送人(송인) : 사람을 떠나 보냄

雨歇(우헐) : 비가 그치다

長堤(장제) : 긴 둑

草色多(초색다) : 풀빛이 짙다. '풀빛이 선명함'의 뜻으로 여기서 '多'는 '짙다, 푸르다, 선명하다'로 풀이됨, 완연한 봄기운을 말함

送君(송군) : 친구를 보냄

南浦(남포) : 대동강 하구에 진남포. 이별의 장소

動悲歌(동비가) : 슬픈 이별의 노래가 울리다, 봄의 싱그러움과 이별의 안타까움의 대조

何時盡(하시진) : 어느 때 다하리(마르리), 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

년년 : 해마다

別淚(별루) : 이별의 눈물

添綠波(첨록파) : 푸른 물결에 보태다 곧, 이별의 슬픔이 끝이 없음. 이시어는 '첨작파'라고 쓴 것을 이제현이 고친 것이라고 함.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 시의 기구이다. 비극적 정서를 자아냈던 비도 그치고 강 언덕 긴둑에 한결 짙어진 풀빛은 백 년이 가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낸 한의 길이의 상징이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 승구의 비가는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하고, 효과음이기도 하다. '동'은 강나루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뱃노래의 구슬픈 가락이 심금에 와 부딪히는 울림이요, 떨림이요, 흔들림인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의 북받침이고, 흐느낌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별의 정을 돋우는 슬픈 노래에 강나루는 싱그런 풀빛까지도 서러운 이별의 무대이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르겠는가라는 말은 쉼 없이 흐르는 강물은 이별의 서글픈 정을 한없이 짙게 만든다. 비 온 뒤 대동강 물은 한층 더 유유히 흐르고 있거니와 해마다 이별하는 이들의 눈물은 쌓이고 쌓여서 강물이 마를 날이 없으리라는 뜻으로 설의법이 사용되었다.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 전구와 결구이다. 이 두 구의 핵심은 인간사와는 아랑곳 없이 유유히 흘러가기만 하는 푸른 강물에 대한 애꿎은 원망이며, 별루 즉 이 시의 주제와 가장 밀접한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서 수량이 증가해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하는 탄식이다. 여기에서 '첨록파'의 '록파'는 수심을 시사하는 한편, 초록의 반영인 봄의 강물의 색감으로서, 벽파나 창파보다 한결 정감적이다. '첨'은 덧붙이는 첨가의 뜻이다. 임과 이별하면서 흘린 눈물을 강물의 이미지로 전환시켜 그 슬픔을 극대화하고 있다.(과장법이 사용됨)

물의 이미지는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을 의미하고, 물의 이미지는 '눈물'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한(恨)으로 충만된 이별의 정서를 고조시키고 있으며, 이 시의 뛰어난 점은 풀빛 짙은 강둑에서 흘린 눈물을 대동강물의 이미지로 확장시켜 표현한데 있으며, 이별의 슬픔이라는 인간사를 자연에 대응시키고 있다. 또한 그 이별의 눈물 때문에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만큼 이별의 슬픔이 깊은 것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별의 눈물로 인해 강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그 과장법이 과장을 넘어 슬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이해와 감상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우리 나라 한시 중 송별시(送別詩)의 최고작이다. 님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와야 할 비도 개고 말았다. 항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으니 이별의 애달픔이 더 고조된다. 전구(轉句)에서 시상은 전환되어 대동강물이 이별의 눈물로 마를 날이 없다고 했다. 자기의 사연을 일반화하면서 동시에 대동강의 사정을 그려 일방적인 자기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났다.

이 작품은 대동강에서 친한 벗과의 이별을 하는데 대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김만중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고려 정사간의 '남포' 절구는 곧 해동의 위성삼첩이다. 끝구의 '별루년년첨작파(別淚年年添作派)'를 '첨록파'라 하기도 하는데, 익재는 마땅히 '녹파(綠波)'를 좇을 것이라 했고, 사가는 '작(作)'자가 낫다고 했다. 생각건대 심휴문의 '별부'에 이르기를 '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像如之何''라 했으니, 정사간의 시가 바로 심휴문의 말을 썼으므로 '녹파'로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허균은 그의 '성수시화'에서 정지상의 '서경시(西京詩)'는 아직도 절창이다. 누선(樓船)의 제영(題詠)들을 조사(詔使)가 올 때마다 철거하고 이 시만을 남겨둔다고 말했으며, 이인로는 그의 '파한집'에서 '서도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다. 산을 끼고 강을 둘러 기상이 수이하여 예로부터 기인(奇人)이 많이 났다. 예왕 때에 정성을 가진 이름모를 준재가 있었는데, 소년 때에 '송인'을 지었다. …… 그말이 표일(飄逸 : 빼어나게 훌륭함)하고 속세를 벗어난 것이 다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시의 작자 정지상은 고려 때의 시인으로 호는 남호(南湖)이다. 평양 사람으로 인종 때 묘청(妙淸)의 난에 참가하여 피살되었다. 그의 시풍(詩風)은 만당(晩唐)의 풍으로 매우 청아하며 호일(豪逸: 호탕하고 빼어나)하였다는 평가를 얻는다.

이 시는 고래(古來)로 한시(漢詩)의 명품(名品) 가운데의 명품으로 꼽힌다. 특히 한시를 짓는 소객(騷客) 가운 데 이 시를 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시는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대동강의 부벽루(浮碧樓) 정자에 걸려 있는 데, 이 부벽루에는 고려, 조선 시대의 숱한 시인들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움을 읊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벽루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가 적혀 있다. 명(明)나라의 사신이 올 적에는 반드시 평양을 들렸고, 평양을 들리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바로 이 부벽루이다.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접빈사들은 미리 먼저 부벽루의 모든 시들을 치우고 오직 정지상의 이 '送人'이라는 시구만 걸어 놓는다. 중국의 사신들이 '送人'을 보면 모두 신품(神品)이라고 극찬한다고 하였으니 이 '送人'의 시가 어떻게 빼어난 것인지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기구(起句: 제 1구로 시상詩想을 일으키는 역할)와 승구(承句: 제 2구로 起句를 이어 받아 시를 전개)를 살펴보자. 지금은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모든 만물이 봄비가 온 뒤로 생기 발랄함을 얻었다. 특히 긴 둑에 풀들은 파릇파릇 돋아 봄날의 정취를 돋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님의 손을 붙잡으며 희망과 부푼 꿈을 않고 인생을 설계하며 상춘(賞春)을 하고 있다. 바로 곁에 사랑하는 님과 봄날의 정취(情趣)를 만끽하면서 보내니 이 세상의 무엇을 더욱 바라리요. 그러나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남포에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내는 나의 처지는 무엇과 비교하리요. 차라리 비라도 주룩주룩 내린다면 나의 심사를 달래주렴만. 비가 그친 뒤의 맑은 하늘과 이 비를 머금고 싹을 틔운 풀잎들은 모두 나의 이별을 조롱하는 듯하다. 아 세상과 불일치를 무엇으로 감당하리요.

이 시의 묘미(妙味)는 바로 전구(轉句: 제 3구로 시상을 변환시키는 역할)에 있다고 하겠다. 난데없이 갑자기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리'라는 구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아니 지금 사랑하는 님과 헤어지는 판국에 대동강 물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인가. 더욱이 대동강 물이 왜 마른다고 하는가. 강물이 마른다니 이 무슨 표현인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게 한다. 이런 어리둥절함은 결구(結句: 제 4구로 시상을 맺는 구)에 가서 해결된다.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가 이 곳에서 해마다 연인(戀人)들이 모여 석별(惜別)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고 이 눈물이 바로 대동강 물에 보태어져 마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구의 기발(奇拔)함이 이 곳의 재치에 이르면 모든 이가 수긍을 하며 동시에 무릎을 치며 감탄(感歎)을 금(禁)치 못한다. 이런 재치와 표현의 기발함은 정지상의 한시가 몇 편 전해지지 않지만 다른 사람 수백 편의 시를 감당할 만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시의 내용만을 살펴 보았는데 한자를 살펴 보면 많은 글자들이 유음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모음으로 끝나고, 받침 글자도 'ㄹ, ㅇ, ㄴ, ㅁ' 등의 부드러운 자음을 끝난다. 이러한 유음의 사용은 봄날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이는 나의 불행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할수록 나와 세상의 거리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해와 감상1

고려 중기에 정지상(鄭知常)이 지은 한시. 칠언절구로 ‘송우인(送友人)’이라고도 하고, ‘송인(送人)’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송인’이라는 제명을 가진 작품은 오언율시로서 이것과는 다른 것이다. ≪동문선≫ 권19, ≪기아 箕雅≫ 권2, ≪대동시선≫ 권1에 수록되어 있다.

〈대동강〉의 내용은 대동강변에서 친구를 보내며 노래한 것이다. “대동강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물결을 더하네(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라고 하여 석별의 정을 나타내었다.

한시에 있어서도 인간의 애정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이것은 송별의 아쉬움을 노래할 때에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이성애(異性愛)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송우인〉에서 떠나 보내는 대상이 되고 있는 ‘우인’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하는 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대동강〉에서 ‘송군남포(送君南浦)’와 ‘하시진(何時盡)’은 왕유(王維)와 노윤(盧允) 같은 당인(唐人) 및 신라말의 견당유학생(遣唐儒學生)이었던 박인범(朴仁範) 등에 의하여 이미 사용된 시어이다.

특히 ‘첨록파(添綠波)’는 원래 ‘첨작파(添作波)’였던 것을(破閑集에 의함.) 뒷날 이제현(李齊賢)이 ‘첨(添)’과 ‘작(作)’은 그 뜻이 중복되는 것이라 하였으므로(白雲小說), ‘작(作)’이 ‘녹(綠)’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러나 이 결구의 ‘별루연년첨록파’는 명구로 알려져 있다.

정지상의 시는 만당(晩唐)의 풍(風)이 있다. 웅심(雄深)한 거작은 적다. 그러나 어운(語韻)이 청화(淸華)하고 구격(句格)이 호일(豪逸)하다는 평이 있다. 〈대동강〉은 시상이 참신하고 아름다워 만고의 절조(絶調)로 꼽혀 왔다. 후세 사람의 차운시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참고문헌≫ 東文選, 東人詩話, 韓國漢文學講解(閔丙秀, 一志社,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정지상 (鄭知常)

?∼1135(인종 13). 고려 중기의 문신. 서경 출신. 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 1114년(예종 9) 과거에 급제하였다. 1127년(인종 5) 좌정언으로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 발호하는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해 유배하도록 하였다.

1129년 좌사간으로 기거랑(起居郎) 윤언이(尹彦蓬) 등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소(疏)를 올리니 왕이 받아들였다. 음양비술(陰陽煉術)에도 관심이 많아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함께 삼성(三聖)으로 불렸다.

서경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되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해올 만큼 뛰어났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 왕명에 따라 곽여(郭輿)를 위해 〈산재기 山齋記〉를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재로 고려 12시인 중의 하나로 꼽혔다. 노장사상에 심취했으며, 역학(易學)·불교(佛敎)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림·글씨에도 능통했는데, 특히 사륙변려체를 잘 썼다고 한다.

작품으로는 ≪동문선≫에 〈신설 新雪〉·〈향연치어 鄕宴致語〉가, ≪동경잡기 東京雜記≫에 〈백률사 栢律寺〉·〈서루 西樓〉 등이 전하며, ≪정사간집 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 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補閑集, 破閑集, 鄭知常(梁柱東, 韓國의 人間像 5, 新丘文化社,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절구

중국 시의 한 체(體)로 4구로 이루어지는 최소의 시체이며, 한 구의 자수가 5자인 오언(五言)절구와 7자인 칠언절구 두 종류가 있다. 절구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율시(律詩:8구의 시)를 반절(半絶)한 것 또는 1구 1절의 뜻이라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정설은 아직 없다. 오언절구의 기원은 육조(六朝)의 진(晉)·송(宋) 때 양쯔강[揚子江] 하류 ·중류 지역에서 유행하던 《자야가(子夜歌)》 《서곡가(西曲歌)》 등의 민가(民歌)에 있다. 예를 들면, :落日出前門 瞻葉見子度 :冶容多姿? 芳香已盈路 <子夜歌> :朝發襄陽城 暮至大枋宿 :大枋諸女兒 花艶驚郞目 <西曲歌 ·襄陽樂> 등처럼 남녀간의 애정을 경묘한 표현으로 노래하는 것이 많다. 이것이 나중에 문인들의 주목을 끌어, 제(齊)·양(梁) 이후로 활발하게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민가풍의 것으로부터 차차 무게와 깊이를 더한 것이 되었으며, 당대(唐代)에는 운율(韻律)의 규격도 갖추어져 근체시(近體詩)의 하나로서의 형태가 정해졌다.

한편 칠언절구는 칠언체가 다 그렇듯이 오언의 발전에 편승한 형국으로 육조 말부터 당대에 걸쳐 급격히 생겨났으며 초당(初唐) 말에는 그 체가 정해졌다. 오언과 칠언은 모두 성당(盛唐) 때에 최고조에 달했으나, 특히 칠언절구는 가장 보편적인 체로서 성행하였다. 절구는 최소의 시체이니만큼 착상 ·감각 ·표현에 고도의 날카로움이 있어야 하고, 또 언외(言外)의 정(情)이라는 여운이 존중된다.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王維 ·竹里館> 불과 20자 속에 유현(幽玄)의 세계가 포착되었으며, 시인의 유유한 심경이 여운을 남긴다. 절구는 문자 하나하나가 음미되고, 구 하나하나가 긴밀히 구성된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법도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서 자연히 정해진 것이다. 당대의 절구를 모은 것으로는 송나라 홍매(洪邁)의 《만수당인절구(萬首唐人絶句)》 101권(그 중에서 75권이 칠언절구)이 있다. (동아대백과사전)

'임제'의 '(浿江曲 패강곡)'

離人日日折楊柳 이인일일절양유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折盡千枝人莫留 절진천지인막류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紅袖翠娥多小淚 홍수취아다소루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이런가

烟波落日古今愁 연파낙일고금수

부연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 있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